가을에 관한 시모음 79)
가을 /이해인
보고 싶어
보고 싶어
가을은
사랑에 빠진
하느님 얼굴
산천이
일어서네
풀섶의 벌레가
숨어 빚는 가락이
기도가 되는
가을은
나를 안은
유리 항아리
눈을 감아도
하늘 고이네
물이 고이네
가을 /박홍심
가녀린 갈대의 흔들림 처럼
살랑이며 속삭이듯,
가을은 그렇게 오려나 보다.
저 미지의 계절로 열리는 꿈을가득 안고
휘파람 소리 내어
가을은 그렇게 오려나보다.
지난 여름밤의 풀벌레 울부짖음을
아쉬움으로 떠나 보내고
가을은 그렇게 다가 오려나 보다.
피와 땀으로 열매를 맺고
수확을 기다리는 농부의 손끝에서
가을은 그렇게 영글어 가나보다.
색색으로 수 놓은 오색 빛깔의 향연
황금빛 햇살 쏘아대는 원색의 물결
축제의 계절에 가을은 무르익어 가나보다.
열매가 알알이 영글어 가듯
우리 마음도 풍성하게
가을은 그렇게 맞이 하나보다.
가을 산사에서 /김옥준
푸른 내음 멀어지고
솔 향기 낙엽향기에
묻혀
억새 가슴에 둥지 틀고
갈색 햇살 받으며
넘치는 안정감에
갈색바람 일어
내 허전한 내음 멀어지고
당신은 갈색바람 타고
번뇌의 숲 속을 지나
내게 왔습니다
쌓이는 낙엽 속에
나의 업도 차곡차곡
덮어 삭히고 싶습니다
오염된 내 영혼
청수를 헹구어
메마른 가지에
말리고 싶습니다
가을 낭만의 커피 /최한식
아름다운 카페에서 음악을 들으며
그대와 함께 커피를 마셔 본다,
달콤한 시간 가을 향기 나는
커피를 마시며 우아한 기타 소리,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가을 향기 한 모금하니
가슴이 놀라워 요동을 치는구나,
향기로운 이 시간
아름답고 어여쁜 그대와
함께 영원히 같이 있고 싶구나
아쉬운 가을 /김덕성
낙엽이 떠나 뼈만 남은 나목을 본다
이렇게 세월은 흐른다
야속하지만
또 한 계절
서서히 떠나려고 한다
차라리 아픔을 주고 떠나면 좋으련만
잔뜩 정을 주고 떠나니
아쉽지만 어쩌겠나
순리로 사는 세상인데
곧 새 아침이 오겠지
그 날을 위해
미련을 버리고 함께 시작하자
더 나운 꿈을 꾸면서
이 가을은 /김민지
이 가을은
뽀얀 조각구름 사이로
때때로 보이는 햇살에 물이 들어
샛노래진 금빛 은행잎들이 더욱 화사합니다
산들바람에 살랑살랑 흔드는
코스모스의 가냘픈 몸짓은
한층 더 아름다워진 색채로
눈시울이 뜨거울 지경입니다
잔잔한 호수에 갇혀
반짝이며 일렁이는 은빛 물결은
고인 눈물에 초점이 흔들릴 만큼
가슴이 벅찬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그리고 이 가을은
높고 높은 파란 하늘을
유유히 흐르는 강물 위에 얹어 보내도
아깝지 않을 여유로운 날들입니다
가을 이별 /박진표
구름 햇살 바람
가을 향기 남기고 떠나네
바람 불어 낙엽 날리면
우리들의 아름다운 이야기
당신의 뜨락에서 노래하는 별
가을이 떠나는 소리
사랑이란 이름으로 꽃을 피우네
새벽 가지에 잔별 매달려
행복한 추억을 노래합니다
그대 지치고 힘들 때 미래를 살아요
떠나는 계절의 뒷모습
가을이 떠나고 겨울이 오고
아쉽지만 그리움 하나 그렇게 익어갑니다
가을은 기다림의 계절 /곽춘성
가을은 기다림의 계절이 아닌가?
한 다발의 꽃을 줄 사람이 있으면 기쁘겠고,
한 다발의 꽃을
받을 사람이 있으면 더욱 행복하리라.
혼자서는 웬지 쓸쓸하고,
사랑하며 성숙해진다,
그러나 푸른 하늘아래..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은 더욱 아름답고
가을은!
옷깃을 여미는 질서와 신사의 계절이기도 하다.
가을 노래 /박정애
통째로 하늘을 들인 아니
아무 데나 들어와선
나야 나 가을
틈새 없이 드나들이 하며
젖는 사물은 모두 추색(秋色)으로 만연해
산기숡 강에도
들과 호수에 먼 산의 그림자 깊어지면
사람 가슴마다
국토의 끝자락까지
물드리며 일어선
눈부신 가을이야
오색 길 오르고
사색의 창을 내어
누군가의 의미가 되고
설레는 가슴 붉게
출렁이는 은빛 물결이야
바람이는 푸른 하늘빛
가을은 설레임의 계절 /나명욱
가을은 설레임의 계절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에게는
주황빛 희망을
꿈을 노래하는 사람들에게는
푸른 꿈을 이루게 하는
가을은 누구라도 가슴에 한 가득
따스한 사랑을 품게하는 계절
그러므로 다가올 11월
거리의 쓸쓸함에도 움츠려 들지 않을 수 있는
문득 잊고 있었던 지인들
오랜 세월 속에 묻혀있던 친구들
다시 새롭게 환한 얼굴로 만나
인생의 아름다움과 향기
계절의 변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가을은 색색의 색깔로
영혼과 육신을 물들이는
아직 겨울이 오기 전
맞이할 날들을 준비해야 할
가을은 차분하게 주위를 돌아보는
넉넉함과 풍요로움의 계절
추수하는 날 /初月 윤갑수
황금들녘 길섶에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며 반기 운다
오늘은
가을걷이하는 날 소 몰고 가는
아버지를 따라 가다 방아깨비
한 마리 마중 나오듯 길섶에
기다리고 있다
다리만 잡고 있어도 자동으로
덩더꿍 방아 찌듯 잘도 논다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 윤슬처럼
수정구슬이 되어가는 가을 아침
들녘은 온통 황금빛 물결이다
벼 베기가 한창인 고향의 들녘
옛 향수를 자아내는 그리움은
쪽빛하늘에 떠가는 구름처럼
추억을 되새김질한다
가을이 오면 /오순남
코스모스꽃 바람에
한들거리며 날 부를때
구름처럼 사뿐히
그대 마중 나가리
하얀 들국화
가을 햇살 머금고
그 향기 짙어 유혹하던 날
꽃잎에 살포시 입맞춤하리
파란 하늘 빛 아래
흥겨운 휘파람 소리
잠자리 날개 위에 얹고
가을 바람 불면
그리움의 언덕을
훨 훨 날아오르리
가을이 오면
그대 머무는 곳마다
아름다운 추억의 빛으로
곱게 물들이리
가을맞이 /靑山 손병흥
여름 내내 맹위 떨쳐왔던 무더위 물린 채
간절히도 기다리던 빗줄기 따라서 다가선
점차 가을빛으로 물들어가는 산야 가을마중
한낮에는 아직까지 후덥지근함이 남아있지만
달빛 머금은 귀뚜라미소리 선선해진 밤공기에
훌쩍 어디로든 떠나고만 싶어지는 설렘의 계절
살랑살랑 불어오는 선선한 가을바람 흔드는 능선
여름내 말려두었던 구름타고 찾아든 옷깃여민창가
억새 핀 산자락 강기슭 갈대꽃 되어 피어나는 가을철
가을문턱 /이정우
저 만치 멀어져 가는
하늘 틈새로
상쾌함이 싸아 하게
날아 분다
물러가기 아쉬워하는
햇살은
한 자락
따사한 미소 내리고
들녘은 조용히
감사의 기도 올리며
채곡한 열매로
머리 숙인다
생의 수레바퀴는
무정하게 돌아가고
떠나기 아쉬워하는 나그네는
인정의 미소 지으며
사명의
마지막 땀방울을 뿌린다
가을이 오면 /김미경
가을이 오면
아파하는 당신을 위해 아름다운 시를 읊조리며
눈물닮은 한 여인을 위해
위로가 되는 시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가을이 오면
바쁜 당신을 위해 마음의 노래를 담아
가슴을 울리는 목소리로 힘껏
당신을 위해 목청껏 노래 하고 싶습니다
가을이 오면
고달픈 당신을 위해 신선한 바람이 되어
찌든 일상에서 받는 노여움을 비껴 놓으며
곤한 어깨위에 내 사랑을 내려 앉히고 싶습니다
가을이 오면
굳어버린 당신 마음을 열어
잃어버린 미소를 더불어
먼 여정길인 낙엽을 밟으러 가고 싶습니다
이 가을에는
퍼내어도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사랑을 속삭이며
한없이 행복해 지고 싶습니다.
가을의 전설 /(宵火)고은영
이 공원은 가을의 절정이다
한여름 하늘을 올려다볼 수 없던
수많은 잎들 사이 허공에 드문드문 들어선 하늘
낙엽을 밟는 걸음마다 놓이는 감동은
강한 페이소스를 남기고 있다
완벽하게 황갈색 물기를 머금은 느티나무
올려다보는 키 큰 은행나무는
크림옐로우 색의 고고한 자태, 환하다
저 이름 모를 새의 노래는 신비하고
환상의 그래프로 가을 시공을 유영하고 있다
설렘과 쓸쓸함이 교차하는 황홀한 계절의 경이
이전설 속에선
거칠고 잔인했던 그림자들이 순해지고
낙엽과 동색으로 빛나는 영혼의 오로라도 곱다
언제인가 인사동에서 사 온 검정 고무신을 신고
낙엽을 밟는 섬세한 발끝의 감촉은
심장의 깊은 곳까지 관통하는 미치도록 황홀한 결로
부드럽게 내 영혼에 속삭인다
계절의 숨결을 가슴으로 들어봐
지금 네 눈동자에 가을의 전설이 열리고 있어
가을 /정태현
가을은
꽃보다도 진한
향기로 젖어온다
끝없이 깊은 하늘은
천상이라도 보여 줄듯
마음을 홀리고
서늘한 대기는
스산한 기운으로
뼈 속 마디마디 파고들어
왠지 모를 사무침에
젊은 가슴도
단풍같이 멍이 들고
떨어진 낙엽은
영혼 위에
겹겹이 쌓여
가을은
까닭 없이
넋을 낚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