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포션 "שְׁלַח־לְךָ 슐라흐-레카" 6월 14일 in 5780
민13:1-15:41(To), 수2:1-2:24(Haft), 히3:7-4:1(Brit), 살전1-5(신약)
1부 예배 마리아 사모님
민13:2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 그들의 조상의 가문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
שְׁלַח־לְךָ 슐라크 레카
10 정탐꾼처럼 불평하지 말고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온 마음으로 그 땅으로 들어가자, 끝! 일까?? 끝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이 불평속에 들어있는 어마어마한 이야기, 여호수아와 갈렙의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풀어보도록 하겠다.
Heart like heaven 마음을 넓히라
지금 공동체의 숫자가 장정 60만명이니깐 총 200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 스파이들이 투덜이 스머프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좀 불평하고 원망하다가 그 땅에 못들어간 것이 아니다. 200명 되는 우리 교회의 리더들도 존중해주시는데, 200만명의 리더들이 간 이야기다. 장난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굉장히 영적으로 탁월한 리더십,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분들이었다는 것이다. 우리 안에 아주 나이스하고 세련되게 들어있는 자동화 된, דב 디바 하면 시스템인데, 우리가 잘 바뀌지 않는 이유가 사람은 말인데 말은 시스템으로 내 안에 자동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 있다. 이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처리하시는 주간이다.
샤밭 때 이 시스템에 대해서 아주 재미있게 배웠다. 코끼리 라는 전체를 보지 못하고 우리는 아주 자동적으로, 눈만 평생 만지다가 죽는 사람, 다리만 만지다가 죽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서 12지파에 대해서 나눠서 보았다. 그중에서 재미난 이름 둘이 있었다.
סתור 수투르 : 해체하다, 공격하다
아쉘 지파의 수장
사람이 극도의 두려움에 닥치면 예를들어 사자를 만났다면 두 가지 양상을 보인다고 한다. 첫 번째 양상은 내 안에 있는 초인의 힘이 발휘해서 뚫고 나가는 공격의 힘, 그것이 이 수트르이다. 10 정탐꾼 중에서도 그 정탐을 이끌었던 리더들의 이름이다. 해체하고 공격하려는 힘, 그래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부수는 힘이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양상은 그 힘으로 도망가버린다고 한다.
נחבי 나흐비 : Cover, 도망가다, 피해버리다.
납달리 지파의 수장
이 둘이 우리 안에 자동적으로 있는, 하나님으로부터 임무가 주어졌을 때 공격을 하거나 도망가버리는 힘이 우리 안에 있다.
빌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 애굽에서 나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바르고 씻고 덮고 하면 끝인 줄 알았는데, 구원을 이루라고 하신다.
히4: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주님이 우리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래서 슐라흐 레카가 중요한 토라포션이다. 내가 보장된 구원을 받았다 할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것이 바로 디바 라는 것이다.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기 위해서, 내 안에서 꼭 처리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오늘 배워보도록 하겠다.
굉장히 독특한 하나님의 말씀이 나온다. 르우벤서부터 리더들을 이야기 하시고 나서 16절에 보면 모세가 이렇게 이야기 한다.
민13:16 이는 모세가 땅을 정탐하러 보낸 자들의 이름이라 모세가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 불렀더라(카라)
12 정탐꾼의 이름을 나열한 후에 이 말이 굉장히 뜬금없이 들어가있다. 내 안에 불러야 할 단 하나의 이름, 예슈아를 모세가 부른다. 갈렙이 없는 이유는 갈렙은 여호수아와 같은 인격이라고 할 수 있다. 갈렙은 여호수아를 온 마음을 따랐던 자이다. 여호수아의 마음은 예슈아의 마음이라고 볼 수 있다. 모세는 나머지 10정탐꾼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부르다 라는 것은 소망이다. 그들의 소망이 없음을 모세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정탐한 내용이 그 땅에 대한 악평이라고 한다.
דִּבַּת הָאָרֶץ 디바트 에레쯔 : 땅에 대한 악평
땅은 라쯔, 갈망이다. 주님을 갈망하는 것을 땅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마음에 대한 악평을(디바)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 마음에 못 들어가게 하고, 읽지 못하게 하는 것을 디바 라고 한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토라를 공부하는 이유는 하나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알기 위해서 아닌가? 그 마음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서가 아닌가? 어제 조장모임을 하는데 아쉘 지파인 태경이가 어떤 반대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놓으면서, 자신은 아쉘이라서 일단 반대하고 보겠습니다 라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이것이 재미난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심각한 이야기 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 속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우리 안에 자동화된 시스템이 하나님이 얼마나 심각한지 말씀 하신다.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40일을 40년으로 치신다고 말씀하신다.
민14:34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
여러분들이 자동적으로 디바하는 것을 하나님이 얼마나 싫어하시는지를 오늘 우리가 알아서 하나님의 마음과 완전히 하나되는, Heart like heaven, 내 마음이 하늘과 같이 넓어지는 그런 여러분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복한다. 그런데 이 마음이 얼마나 정체 불명의 것인지, 우리가 부부 혹은 친구끼리 싸우는 이유가 네가 내 마음을 알아? 이것이 아닌가. 이것이 우리 싸움의 근원인데, 도대체 이 마음이 무엇인지 말이다. 흔히들 그런 말을 많이 한다. 큰거 바라지 않고, 마음만 바란다고, 꽃 한 송이면 됐지 하고 말이다. 그런데 남자들이 여자들 마음 알아주는 것이, 여자들을 위해서 한번 차에 뛰어 들어서 죽는 것보다 어렵다고 한다. 재미난 이야기가 남자들에게는 7천개의 언어가 있다고 한다. 기술쪽에 관련된 남자들에게는 3천개의 언어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여자에게는 2만개가 있다고 한다. 여자는 10마디를 하고 남자 오기를 기다려서 19,990개를 써야 하는데 남자는 밖에서 3~7천개를 다 쓰고 집에와서 누워 자는 것이다. 네가 내 마음을 아냐고, 부부싸움이 시작된다.
마음 심 [心] Heart, 마음은 심장을 본 뜬 형상이라고 중국에서는 보고 있다. 재미난 한자가 또 있는데, 갈렙은 충성스러운 신하로
충성 충[忠]은 중심이 마음에 잡힌 상태인데, 더 재미난 사실은 이 중심이 두개면
근심 환[患]이 된다.
마음, 중심이 두개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기도 하고 안 알아주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는 미칠 지경에 이르게 된다. 차라리 마음을 안알아주면 좋겠는데, 어떤 때는 마음에 드는 행동을 또 하는 것이다. 히브리어로 보지 않으면 마음의 정체를 알 수가 없다.
לב 레브 : 마음
דב 디바 : Evil talk, 감각
갈렙을 כלב 콜 레브라고 하였다. 갈렙은 정탐을 레브로 한 사람이다. 마음의 반댓말은 무엇인지 아시는가? 10 정탐꾼들이 했던 정탐의 도구는 감각이었다. 그것을 디바 라고 한다. 유대인들은 마음을 제 6의 감각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 마음은 내 안에 정체불명의 feeling이 아니라 라메드(훈련)의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민15:39 이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주님은 슐라흐 레카의 교훈을 찌찟, 이 술을 달으라고 하시면서 마무리 하신다. 이것을 보는 이유는,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신다. 여기에서의 마음은 레브가 아니라 감각일 것이다. 눈의 욕심, 10정탐꾼들이 자신들의 마음에 따라서 정탐했던 것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신다.
엄마에게는 밥이 참 중요해서, 세 아이들의 밥을 어제 챙겨야 했다. 토요일은 굉장히 바쁜 날이기 때문에 교회에 와서 조장모임 끝나고 밥을 먹으라고 약속을 해놓고 나왔다. 큰 아이들 두 아이는 늦잠 잘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에게 열심히 못을 박아 두었다. 밥이 다 되고, 다들 먹고 있는데 세 아이들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하나에게 계속 전화를 했더니 여러가지 핑계가 문자로 오는 것이다. 그래서 점점 호흡이 안되고, 주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고, 호흡이 안되기 시작하면서 하나에게 이것은 이제는 먹는 문제가 아니라 순종의 문제야, 무조건 와! 하고 3층에서 밑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תורה 토라 라는 단어를 잘 보면, 토라에서 호흡을 빼버리면 תור 트루가 된다. 내려오면서 내가 지금 호흡이 안되고 있구나, 헤이가 빠졌네, 내가 지금 정탐을 하는구나, 내가 생각했던 가나안 땅, 하나님의 뜻대로 키우는 자녀 교육이라는 거대한 땅이 이것이 되는거야..? 갑자기 호흡이 안되면서 정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오늘 찬양을 준비를 해야하니 '이제는 내가 없고' 를 부르는데, 이것이 안 불러지는 것이다. 이제는 내가 너무 많은 것이다. 이것이 슐라흐 레카의 마지막 날에 이 말씀을 준비하기 위해서 제게 뭐가 남아있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호흡을 가다듬고 노래를 하고 목사님을 만나서 집으로 가는데 목사님이 갑자기 이 배는 어떻게 빠질까 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내가 하는 코어(Core) 운동을 같이 하자고 했더니 그런다고 돼? 운동한다고 이 배가 빠지나? 이러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말 슐라흐 레카가 맞다, 배가 쑥 들어가고 건강한 체구를 가지는 약속의 땅이 되는 것인가? 라는 불평이 또 나왔구나 하면서 웃었다.
여러분들의 삶 속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 선해보이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주 여러분 안에 이것이 되는 거 맞나? 애굽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나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월요일 밤, 자기 직전에 목사님하고 싸움이 일어났다. 목사님이 저를 씨앗으로 안봐준다는 것에 열이 받아서, 그래, 나를 씨앗으로 안보고 훈련생으로 안보는거지? 그래, 자기가 봐주는 육의 사람으로 다시 돌아가주지 라는 말을 했는데, 목사님이 코를 고시면서 편안하게 주무시는 것이다. 슐라흐 레카의 도입 부분이구나 라는 캐치가 오면서 한 5분 정도 울그락 불그락 마음을 추스리지 못하다가 여기에서 나의 악평을 끝내야겠구나 하고 목사님을 깨웠다. 그런데 아주 순식간인 것이다. 애굽으로 돌아가자, 네가 이야기 한 육의 사람으로 돌아가봐줄까? 하는 이 안에 이것이 뭔지 말이다. 내 안에 10 정탐꾼의 디바가 자동으로 흘러가는 시스템이 얼마나 강력한지 이번 한 주에는 얼마나 다이나믹한 시간들을 보내면서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דבר 다바르
그런데 디바에 레쉬가 붙으면 말씀이 된다.
2부 예배
שׁלח לך 슐라흐 레카 --> 코라흐
코라흐는 고라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덧 우리는 민수기에 와있다. 어제 달력을 보면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벌써 6월인 것이다. 한 해의 반이 지나간 것이고, 곧 2020년도 지나가겠다는 시간의 빠른 흐름 속에서 깜짝 놀랐다. 우리가 창세기를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민수기에 와있다. 이제 곧 드바림, 신명기가 올 것이다. 신명기는 두번째 토라이다. 반복하는 토라이다. 민수기가 토라의 마지막인데 어느세 민수기도 지나가고 있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시간은 무지막지하다. 절대 기다려주지 않는다. 왜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을까? 시간은 하나님의 일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시간 속에서 살아가면서 착각하는 것이 시간의 주인이 없는 줄 알고, 내가 시간의 주인인 줄 안다. 그런데 시간은 하나님의 일을 진행한다.
우리는 슐라흐 레카에 오면 이것을 배운다. 주님은 너희들은 생명을 택하라고 하신다.
חיים 하임 : 생명, 삶
주님은 우리에게 이 생명이 있는 땅, 약속의 땅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들이신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야 하는데 우리에게 문제가 이 삶이 내가 원하는 삶이 진행되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한다. 생명이란, 그냥 주님 자체이시다. 우리는 생명나무를, 내 생명을 영원히 유지시키는 그렇게 해서 필요한 것이 생명나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생명나무를 먹으려고 한다. 그런데 생명나무란 주님이시다. 너희들이 생명을 택하라는 것은 네 생명을 살으라는 것이 아니라 생명으로 이미 정해져있는 것을 살라는 것이다. 내 생명이란, 내 삶이란 사실 없다. 주님이 생명나무이다. 이 시간들은 그냥 주님을 살아가는 시간들이다.
이번 슐라흐 레카 토라포션에는 나무를 줍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민15:32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류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지라
우리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 참 궁금하다. 슐라흐 레카에 있는 굉장히 중요한 하나의 사건이다. 언뜻보면 이해가 안되는 이야기이다. 안식일에 나무하는 것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나무를 하는 것이 안식일에 도끼질을 했다, 엄청난 노동을 했다, 목제소를 운영했다는 차원이 아니라 안식일에 나무를 주었다? 이 정도이다.
מקשׁשׁ עצים 메카쉐시 에찜
메카쉐시란 קשׁ 코쉬,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주었던 짚을 이야기 한다. 메카쉐시란 형상 두개를 소망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선악의 지식나무를 이야기 한다. 선악의 지식나무를 주운 것이다. 슐라흐 레카에서 10 정탐꾼이 한 것이 무엇이냐? 제가 금요일에 말씀드렸듯이 나쁜 이야기가 불평이 아니다.
דב 디바는 나쁜 이야기가 아니다. 뒤집으면 바드, 한 개별, 한 부분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다. 각자의 부분들이 부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자기의 시각, 자기의 관점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다. 바트야도 종수랑 울면서 이야기 한 것이 서로가 틀린 말이 하나 없는 것이다. 서로에게 다 자기 이야기가 있다. 응급차를 불러달라고 하는 종수의 아픔 앞에서 너도 한번 아픔을 느끼라고 하는 바트야가 못된 년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바트야 가슴 속에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아파왔는가? 그리고 그 아픔 때문에 늘 자기가 걷고 싶은 길을 걷지 못했다. LTG도 시작을 하면 LTG가 폭파가 된다. 맨날 아프고 하니 리더가 맨날 LTG 미루고, 차라리 어디가 부러지면 사람들이 더 사랑해주는데, 두통은 표시도 잘 안난다.
그리고 나중되면 진짜인지 아닌지 의심이 되는 것이다. LTG원들이 무슨 리더가 시간을 매번 옮기고, 못하겠다고 하니 팔로워 입장에서는 정말 짜증이 나는 것이다. 머리가 안 아플 때 몸이 강하면 말을 안하는데 안아플 때는 안아픈대로 약한 것이다. 그래서 바트야가 쌍둥이를 낳았을 때 우리 모두가 기적이라고 했다. 그런 삶을 살아왔는데 자기의 고통을 남편이 알았으면 좋겠는가? 바트야에게는 종수야가 그렇게 응급실에 실려갈정도로 아픔을 느끼는 것이 일말의 소망이 되었을 것이다. 같아지는 말이다. 너도 나를 좀 알아주는 그런 인간이 되라고 말이다. 그런데 아니다 다를까 가끔 아픈 인간은 그것을 통해서 절대 알아주지 못한다.
바드는 모두가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면 다 맞는 이야기다. 바트야가 잔인하게 너도 좀 알아라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간절한 소망이겠는가? 참 나쁜 녀석이다. 자기 아내의 아픔을 못알아주고, 자기는 건강하다고 말이다. 여간해서 유다는 돌아오질 않는다. 바드가 하는 말이란, 사실 다 나의 관점 속에서 하는 말이다.
이스라엘의 10 정탐꾼이 한 불평과 원망은 틀린 말이 하나 없는 것이다. 정말 맞는 소리고, 정말 잘 정탐을 한 것이다. 정말 정확하게 정탐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론 인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한 것이다. 우리 모두가 다 죽을 것이라는 것이다. 만일 10 정탐꾼에게 아이들이 없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그런데 내 아이들, 자녀들, 처자를 다 죽이려고 하느냐? 그럴 수는 없다. 이 아이들이 애굽에서 목숨은 최소한 살아있었다. 애굽으로 지휘관을 세워서 돌아가자. 정말 맞는 이야기다. 여러분 같으면 뭐라고 하겠는가? 정말 가면 다 죽는 곳으로 정확한 눈으로 내가 파악했다, 그런데 가자고 하겠는가? 내 자녀들을 데리고 말이다. 아니다. 디바란, 나쁜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내 관점 속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다. 내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다.
주님은 이것이 다 죽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신다. 선악의 지식나무란, "나"를 생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생명이 살기 위해서는 선악을 끊임없이 줏어야 한다. 이 사람을 그래서 죽이게 된다. 여호와께 물었더니 죽이라고 하신다. 이 사람이 그래서 광야에서 죽게된다. 이 사람이 누구일까?
민27:3 우리 아버지가 광야에서 죽었으나 여호와를 거슬러 모인 고라의 무리에 들지 아니하고 자기 죄로 죽었고 아들이 없나이다
우리가 누구일까? 슬로보핫이라는 사람이다. 슬로보핫의 딸들이 모세에게 와서 우리에게 아버지에 속한 것을 상속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한다. 그런데 모세가 이것이 헷갈리는 것이다. 죄로 인해서 죽었는데, 이 죄인의 딸들에게 상속을 하는 것이 맞는지 말이다. 그런데 자기 죄로 인해서 죽었다고 한다.
וחטאו 베하타오 : 자기 죄
사실 이것을 히브리어로 정확하게 보면 바브의 죄이다. 바브의 대한 죄를 지은 것이다. 이 바브는 못을 상징하는, 주님을 상징하는 가장 핵심적인 히브리 단어이다. 바브는 히브리어 숫자값으로 6이다. 여섯 신성을 상징하는 가장 핵심적인 단어이다. 우리 주님은 여섯 신성이시다. 그래서 이것이 생명이다. 생명과 경건에게 속한 모든 것을 주겠다고 하시면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여섯 신성이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나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섯 신성을 살아가는 것이 삶이지, 나를 살아가는 것이 삶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슬로보핫이 지은 죄는 바브에 대한 죄이다.
안식일이란, 나를 살려고 하지 않고 이 생명나무를 살려고 하는 것이다. 여섯 신성, 주님을 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슬로보핫이 안식일에 선악의 지식나무를 줏은 것이다. 이것은 나를 살려고 줏은 것이다. 카쉐 하면 두 가지의 형상으로 인해서 정말 어려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마음이 어렵고, 힘든 일이 많지 않으신가? 바트야가 얼마나 마음이 어려웠으면 여기에 서자마자 울었겠는가? 그런데 따지고보면 종수가 얼마나 어렵게 했겠는가? 종수를 순 날강도로 만들고 가지 않았는가? 저 같았으면 꿈도 못 꿨을 것이다. 만날 아기들 앞 뒤로 업고, 이상한 말도 하지만 그렇게 통곡할 정도로 종수가 어렵게 했겠는가? 뭐가 그렇게 어려운가? 뭐가 그렇게 마음이 어려운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이다. 인생이 어렵다고 하는데 뭐가 그렇게 어려운가? 저는 가끔 인터넷에서 댓글을 쓰는 사람들을 보면 말을 어쩜 그렇게 하는지, 종수는 그런 말을 안하는데 뭐가 그렇게 힘든지 말이다.
그런데도 힘든 이유는 이 생명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생명은 가만둬도 죽을 것 같다. 단독자는 떨어트리면 그 자체가 죽을 것 같은 것이다. 그러니 가만둬도 어렵다. 가만둬도 죽을 것이다. 아주 건강한 나무를 뿌리 뽑아왔다는 것이 아니라 말라 비틀어진 나무를 줏어다가 자기 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선악의 지식나무를 먹는다는 것이, 그것을 갖다가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하는 것이다. 자기를 단독자로 만드는 순간 그냥 죽을 것 같고, 모든 것이 어려운 것이다. 심장이 바깥으로 나왔다면, 뭐를 해도 자기 죽이려고 하는게 된다.
이 광야에서 주님이 처리하셔야 하는 일이 단독자의 생명을 내 생명이라고 여기는 존재를 죽여야만 하나님의 생명이 내 생명이라고 하는 신부들이 산다. 그래서 슐라흐 레카에 오면, 왼쪽의 사랑은 밤의 때라고 했다. 밤의 때란 신부의 때인데, 신부는 마치 달과 같다. 오늘 간증했던 바트야가 달덩이 같은 얼굴을 지녔는데, 달은 겁나게 못생겼다. 달은 태양빛을 받아서 반사하지 않으면 겁나게 못생겼다. 그래서 바트야에게 지난 주간 계속해서 회개하기 전에는 진짜 못생겼다고 했다. 그런데 못알아듣는 것이다. 어제 간증을 525에서 쓰는데 진짜 이뻐 보이는 것이다. 그랬더니 눈치를 챘다.
왜 밤의 때를 신부의 때라고 하느냐? 자기의 생명이 죽는 때이기 때문이다. 시간이란, 인생이란 내 생명을 사는 것이 인생이 아니라, 주님이 생명이시구나. 내 신랑이 생명이시구나, 이것이 밤의 때에 일어나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그래서 슐라흐 레카에서 주님이 그것을 괜히 불평했다고 다 잡아 죽이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굉장히 착각한다. 따지고 보면 주님이 갔다가 오라고 해서 갔다가 와서 갈렙과 여호수아는 좀 보기 싫은 사람들 아닌가? 뭐가 그렇게 잘나서, 우리의 밥이다! 어쩌면 그때까지 노총각들 아니었을까? 자식도 처자식도 없고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아이들 7-8명씩 있고, 처자식있고 한데 죽으러 가자고 하면 되겠는가? 정말 맞는 소리를 했고, 정탐한 것을 올바르게 보고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을 듣고 울은 것인데, 그러려면 정탐을 보내지나 말던지 말이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선 다 죽였다? 동조한 사람들까지, 20세이상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 다 죽어야지 간다? 이것이 무슨 이야기일까?
우리가 정상인이라면 이 이야기를 듣고, 주님을 믿을 사람이 하나 없을 것이다. 무서워서 울기라도 하겠는가? 바트야 지금 울지 않았는가? 이제 죽어야하는가?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여호와는 밤의 때를 가져오시는 분이다. 밤의 때를 가져와서 모든 죄인과 모든 악인을 죽이시고 세상에서 없이하시는 분이다. 우리를 그분의 신부가 되게하는 길은, 우리 안에 있는 내 생명이라는 옛자아, 그 인격을 죽여야만 우리가 신부의 삶으로 넘어간다. 안 그러면 우리는 신부의 삶으로 넘어가지 못한다. 밤의 때 이 생명을 살리고자 우리는 선악의 지식나무 지푸라기를 줍고, 그것으로 살고, 그것이 뭐라도 되듯이 서로 뺐고, 아무것도 해산하지 못하고 열매가 맺히지도 않는데 서로를 두드려패고 말이다. 주님은 그러한 생명을 다 죽이시는 분이다. 그러한 생명을 다 소멸하시는 분이시다.
사33:14 시온의 죄인들이 두려워하며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이 떨며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겠으며 우리 중에 누가 영영히 타는 것과 함께 거하리요 하도다
죄인들은 절대로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지 못한다. 영영히 타는 불. 지옥이란, 이 삼키는 불과 영영히 타는 것과 함께 살지 못하는 곳이다. 그러니 지옥에는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것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 주님이시다. 태양은 영영히 타고 삼키는 불이다. 달은 그 불과 함께 산다. 달은 그 불을 Receive 한다. 자기가 생명이라고 하지 않는다. 지옥이란 자기가 생명이라고 하고, 다른 불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죄인들은 주님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 분 같다. 물론 맞다. 주님은 죄인들을 다 죽이고 소멸시키시는 분이다. 광야에서 철저하게 자기 생명을 주장하는 자들을 다 죽이신다. 여러분들이 주님을 믿기로 했다면, 슐라흐 레카의 역사는, 이 생명이 내 생명이라고 하는 어처구니 없는 옛자아를 죽이고 소멸시키신다.
민13: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누구 이야기와 비슷한가? 욥기와 비슷하다.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라고 한다. 약속의 땅은 우리 주님이신데, 이들이 삼키는 땅이라고 느낀다. 삼키다 라는 말이 אכל 아칼이다. 주님의 약속의 땅, 신성이 우리를 삼킨다는 것이다. 주님은 그냥 불이시다. 영원히 타는 불이시다. 이 불과 함께 결합해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가 신부들이다. 누가 그 불과 결합해서 영원히 사느냐? 자신을 nothing 으로 만드는 자들이다. 내가 생명이 아니다, 다시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우리를 위해서 죽었다가 사실 이를 위해서 살게 하려 함이라, 보라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 신부들만이 주님을 받아들인다. 이 신부들만이 삼키는 불, 삼키는 주님, 삼키는 하나님의 갈망을 반사한다. 그 갈망과 결혼한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 자들은 내가 한 생명이라고 한다.
이것을 깨닫기 까지가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모른다. 이것을 깨닫는데 걸리는 시간을 40년이라고 한다. 쉽게 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40이라는 숫자는 네페쉬가 에고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닫고 유턴하고 네샤마까지 올라가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우리는 다 하나라는 의식, Oneness의 의식, 에하드의 의식, 모든 사람과 하나되어서 할 수 있는, 야훼 에하드, 주님이 한 생명이라다 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의식, 우주를 통치하고 다스릴 수 있는 의식에 다다르는데 걸리는 시간을 40 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이 40살이 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40살을 불혹의 나이라고 하지 않는가?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유혹이란 이 생명이 내 생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을 얼마나 어렵게 하는지 모른다. 어디에서 왔니, 너는 왜 태어났니, 뭐하면서 살아야하니, 너는 뭐니? 우리의 삶을 너무 어렵게 한다. 그런데 40이 되면 그 의식이 에하드의 의식에 다다라서 네샤마의 호흡을 하게 되면서 그런 어려움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선악의 지식나무를 줏으러가지 않고, 생명나무를 먹는다는 것이다. 이 영원한 불, 이것이 와도 괜찮다는 것이다.
신4:2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삼키는 불, 아칼이다. 주님은 반드시 죄인들을 소멸하셔야 한다. 우리 안에 10 정탐꾼들을 소멸하고 죽여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안에 새로운 거듭난 생명, 아이들, 자녀들이 상속을 하게 되어있다. 다 다른 이야기 같지만 사실 똑같은 이야기다. 슬로보핫이 광야에서 자기 죄로 인해서 죽는다. 생명나무를 샤밭 때 먹지 않고, 선악의 지식나무를 줍다가 바브에 대한 죄를 지었다. 그러면 반드시 죽어야 한다. 광야에서 10 정탐꾼이 죽는다. 그들이 죽고, 그에 속한 자들이 죽고, 60만이 다 죽어야지 그 자녀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이다. 먼저 죽이는 역사가 있고, 그리고 나서 상속이 이루어진다.
우리에게서 먼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내어지는 역사가 없다면 아무도 성령님을 기업으로 받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를 상속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나 자신으로 사는 동안에 하나님은 끊임없이 역사하신다. 우리에게 디바를 하게 하신다. 이 디바가 경지에 다다르게 하신다. 끊임없이 나라고 하는 실체를 보게 하시고, 디바로 이루어진 실체가 어떠한 생명도 살지 못함을 확증시켜주신다. 이것을 빨리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암5:2 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러졌음이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자기 땅에 던지움이여 일으킬 자 없으리로다
처녀 이스라엘이 반드시 엎드려져야 한다. 모든 인류의 타락은 넘어짐으로 이루어진다. 슐라흐 레카에서 이 나팔을 정말 많이 가르치신다.
נפל 나팔 : 넘어지다, 타락하다
나팔은 눈이라는 알파벳을 설명한다. 원래 눈은 바브가 이 땅에까지 내려와서 꼿힌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타락이란 이 바브를 꺾어버린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메시아의 별명을 눈이라고 한다. ... 우리 주님의 여섯 가지 신성에 의해서 뒤틀려진 눈, 자기를 살려고 하는 눈이 생명나무를 먹는다고 하는 것이다. 처녀 이스라엘이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이것은 이것 자체로 죽어야 한다. 우리 삶 속에 죽음이 역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그것을 살리려고 시도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냥 죽게 두시길 바란다. 그것을 어떻게든 바꾸려고 한다. 우리의 대부분의 신앙 생활은 그것을 바꿔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힘들다. 바브를 영접하면 그냥 눈이 생겨난다. 바브 당신이 곧게 선 것이, 백향목처럼, 그것이 눈이다. 이 구부러진 눈이 우리인데, 내가 어떻게든 피려고 너무 노력을 많이한다. 그냥 구부러진 눈이 나타나고, 주님이 내 안에 10 정탐꾼을 멸하시기 위해서 나타나셨다, 이 땅에 우리의 삶의 대부분은 광야에서 주님을 만나는 사건이다. ... 이런 밤의 때가 오면 주님을 신뢰하고, 내 안에 디바가 가득하면 주님이 소멸하시기 위해서 주님이 일으키시는구나 하고 주님을 바라보기를 바란다. 그것이 신부이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17 모든 포도원에서도 울리니 이는 내가 너희 가운데로 지나갈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소멸하시는 분이 끝장내시는 분이다. 그래서 왼쪽에 나타나시는 분을 게부라 라고 하는데, 죽여버리고 심판하시는 파워로 나타나시는 것이다. 우리의 신랑은 오른쪽에는 아버지로 나타나신다. 그런데 왼쪽에서는 신랑으로는 나타나신다. 왼쪽은 강력한 파워로, 나타나신다. 다 죽이려고 칼을 들고 나타나신다.
18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 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
여러분들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시는가? 이것이 신부의 날이다. 이때 우리 안에 내가 한 생명이다 라고 하는 에고와 예자아를 다 끝장내신다. 그 날은 어둠이 빛이 아니다.
골2: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시고 못 박으시고, 주님이 엄청난 파워로 나타나신다. 우리는 슐라흐 레카에 이런 일이 있던 것을 성전 파괴인이라고 한다. 이때 제 1,2 성전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목놓아 울었던 밤에 같은 일이 벌어진다. 이 10 정탐꾼을 통해서 매해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죽음이 임한다. 어마어마한 사람들의 죽음이 임한다. 사실 우리에게 임하는 엄청난 죽음의 파워는 10정탐꾼의 디바를 통해서 임한다. 이 일이 과거뿐만 아니라 계속 이어진다. 지금 여러분들에게 슐라흐 레카의 역사가 있으려면 하나님이 여러분들 속에 있는 10 정탐꾼을 꺼내셔야 한다. 그때 그분을 신랑으로 맡이하시기를 바란다. 나는 디바하고 있지 않다고 뚝 잡아 때지 않기를 바란다. 자기가 죄인이라고 고백할 때 주님이 죽이신다. 이때 메시아가 탄생한다.
아4:7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כלך יפה 쿨라크 야파
인간이 슐라흐 레카를 통해서 진정한 신부가 되면, 우리 디바의 10가지 인격이 죽음으로 넘어가면, 인간의 전체는 다 10이다. 그것을 쿨라크 라고 한다. 너의 전체이다. 끝에 크가 붙으면 '너'이다. 너의 전체는 그냥 10개 밖에 없다. 여러분들의 디바도 전체는 10개 밖에 없다. 너의 전체가 야파, 아름답다고 한다. 야파란 beauty, 전체가 아름다운 것이다. 신부의 전체가 아름답다, 그러면 여자인데[한자] 아름답다는 것은 야파, 페가 있는데 입구 자이다. [같을 여] 여자의 말이다. 여자의 말이 하나님 아버지와 신랑과 같아지면 그것을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이것을 곧게 펴진 눈이라고 한다. 하늘의 바브와 땅의 바브가 결합하면 곧게 펴진 눈이 된다. 인간의 모든 타락이 끝나는 때이다. 인간이 매일 어렵다고 하면서 산다. 그 고역과 고뇌, 씨블림이 끝나는 것을 쿨라크 야파 라고 한다. 그래서 온 마음으로 하면 용서 받았다 라는 것이다. 너의 전체가 진짜 아름답다, 하나님의 그 모든 생명이 내려오는 입구이다. 쿨라크 야파, 전체가 한 생명이다.
슬로보핫이 나가서 자기 살려고 지푸라기를 줏은 것은 전혀 아릅답지 않다. 전체가 아름다운 것이다. 이것이 모든 인간의 고뇌, 고역이 끝나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내 사랑아, 너의 전체가 아름답다. 이때쯤 되면 우리는 신랑과 깊은 사랑에 빠진다. 주님이 여러분들에게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쿨라크 야파. 여러분들 속에는 나만을 나라고 하면 안된다. 주님이 오셔서 쿨라크 라고 해야한다. 여러분 속에 전체가 보여야 한다. 여러분 속에 여러분의 어려움만 보이면 안된다. 여러분이 그렇게 줏어 모은 나무가 고뇌와 삶의 어려움이 된다. 형체도 없는 지푸라기를 얼마나 잘 줏어 모았는지 말이다. 그런데 주님이 오셔서 그 지푸라기를 모으신 것을 보지 않으시고 그 속에서 다른 사람을 보시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다 들어와있다. 주님이 오셔서 여러분들 속에서 그것을 보실 수 있겠는가? 여러분들 속에 다른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 저 사람을 살려주십시오. 저 사람에게 주십시오, 저 사람을 축복하십시오. 주님이 그것을 볼 수 있겠는가? 내 안에 들어있는 전체, 이것을 또한 제자 라고 한다. 이것을 아들 딸 이라고 한다. 윤정희 권사님이 나는 이 딸들 결혼시키기 전까지는 못 죽는다, 주님이 내가 너를 축복하고자 한다,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으니 내 자녀들을 축복하십시오. 이것을 쿨라크 야파 라고 한다. 쿨라크 야파가 되었을 때 주님과의 결혼이 일어나는 것이다.
주님이 신부를 얻으시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우리는 내 생명을 내 생명으로 여겨서 슐라흐 레카를 읽을 수가 없다. 나 살려고 읽으니 토라는 다 닫혀있다. 그렇게 읽으면 주님을 말도 안되는 신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인데 우리는 그렇게 읽고 문제가 없다고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땅으로 떨어트려 버리고, 이상한 신으로 만들어버리고, 나 살리면 영원히 찬양하겠다고 협박을 하는 것이다. 슐라흐 레카를 신부의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사람들, 당신만이 이 정욕과 나의 교만를 태우실 수 있습니다. 나는 그냥 달이 되겠습니다. 나는 쿨라크가 되겠습니다. 나는 전체가 되겠습니다 라고 하는 신부의 출현을 얼마나 기다리시는지 모른다. 광야에서 주님으로 과감히 다 죽일 수 있도록 나를 다 내어드리는 것이다.
신22:23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 중에서 만나 동침하면
이것이 우리가 하는 짓이다. 약혼한 후에 남자와 동참을 한다. 처녀인 어린 상태, נער 나아르: 어린 여자인데, 베툴라 하면 처녀이기 때문에 나라, 헤이가 있어야 하는데 나아르 하면 어린 남자이다. 정말 이상한 대목이다. 약혼을 한 처녀 남자가 있을 것이다 라는 것이다. 우리는 신부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왼쪽의 때에 사실 달이 되기를 원하지 않고 해가 되고 싶다. 주님을 신랑으로 맞이하는 것도 내가 멋진 신부가 되고 싶다. 결혼을 하는 이유도 내가 멋진 신부가 되어서 I'm queen, 꼬인 여자가 되고 싶어한다. 그 이야기는 내가 찬란한 해가 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여자가 되고 싶지 않고 남자이다. 신랑의 영광과 권위를 갖다가 두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죽이라고 한다. 주님은 이 남자를 죽이러 오셨다. 그리고 이 나아르에게 너는 하나의 여자아이가 되어라, 헤이를 주는 것이다. 네쉬는 숨을 주는 것이다. 너 살려고 껄떡거리지 말고, 쿨라크 야파, 전체가 되어라. 그렇게 지푸라기 줏으러 다니지 말아라, 너는 전체가 아름답다. 내쉬는 호흡, 헤이, 너는 왕국이다. 네샤마, 너희는 전체이다, 헤이가 나아르 앞에 붙을 수 있도록 나아르를 죽인다. 그 죽이는 주님이 우리의 신랑이시다. 우리의 남자아이가 죽고, 진정한 여자아이가 되어서 주님을 찬양하게 되기를 바란다.
* 기도
슐라흐 레카에 절절한 신랑의 구애가 여러분들에게 들려지게 되기를 축복한다. 주님 내가 한 처녀 여자 아이가 되겠습니다. 주님을 이용해서 내가 해가 되려고 하고 내가 찬란해지려고 했던 옛자아를 다 죽이십시오.
이 생명을 내 생명이라고 여기며 내 생명을 살리려고 시간을 이용하고 주님을 이용하고 지푸라기를 줏으러 다녔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에게 나타나셔서 이 옛자아를 죽여주십시오. 이 땅에 다시는 죄인이 탄생하지 않도록 멸하여 주십시오. 주님은 소멸하는 불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