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간 직장에서 동고동락했던 친형같은 분의 갑작스런 부고로 인하여
이제서야 제2편 후기를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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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일차 대망의 답사일정이 잡혀 있는 날입니다.
답사도 기대되지만 진해에 와서 군항제의 장소인 여좌천을 못보고 가면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아 아침 5시 50분경에 일어나 이부자리 정리 후 간단히 씻고 물 한병 챙겨나옵니다.
어제 야간산책하며 보아둔 공공자전거센터에서 1,000원을 내고 1시간 30분간 자전거를 대여해서 페달을 밟습니다.
아. 이런....그래도 명색이 철 MTB로 인천-부산 670km 국토종주를 3일에 끝내고,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670km중 서울~공주~대전 구간을 1박2일로 다녀온 나인데 공공자전거라 그런지 바퀴도 잘 안나가고 기어 넣는것도 이상하고 브레이크는 힘껏 당겨야 겨우 서니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다.
고수는 장비를 탓하지 않는법이니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진해 제2부두 방파제를 가로질러 나갑니다. 상쾌합니다.
그런데 손이 시렵습니다.ㅠㅠㅠ
<1> 진해 앞바다에 떠있는 배들.....왜란중에도 저런 모습이었을까 잠시 상상을 해봅니다.
<2> 시원하게 쭉 뻗은 제2부두 방파제길을 신나게 달려봅니다.
진해는 따듯한 남녘 도시인줄 알았는데....
손이 시려워 손을 교대로 번갈아 주머니에 넣어가며 이곳 저곳 구경합니다.
소죽도 공원을 지나 진해루를 지나가는데 벌써 6시 30분이 훌쩍 넘었갔네요.ㅠ
이 속도로 여좌천까지 갔다가는 아침식사 시간인 7시 30분까지는 못돌아올 것 같아 바다끝쪽에 있는 속천항의 수협위판장까지만 같다가 되돌아오는데 해병대 훈련중 마지막 행군 코스인 천자봉 너머로 햇님이 떠오를 듯 하네요.
언제 여유있게 진해의 늠름한 저 산줄기를 한번 종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3> 해군의 도시답게 진해에는 어린이 놀이터도, 휴게소 건물도 거북선 모양이더군요.ㅋㅋㅋ
<4> 요트 5~6대와 그 뒤로 우뚝 솟은 천자봉 너머로 햇님이 떠오를듯 붉게 물들었습니다.
페달을 부지런히 밟아 숙소에 도착하니 다들 내려가시고 아무도 없습니다.
짐 정리후 다시 식당에 내려가니 많은 분들이 식사를 이미 끝내고 로비에서 담소들을 나누고 있더군요.
짐은 차에 보관한 뒤 판중추부사님과 함께 격군님이 리딩하는 2호차에 승차 후 오늘 첫 답사지인 북원로터리로 이동합니다.
이곳에는 창원시의 근대건조물 1호로 등록된 우리나라 최초의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습니다.
<5> 창원시 근대건조물 안내판과 이순신 장군 동상을 배경으로 설명전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있는 회원들
<6> 우리 이배사의 감사님이자 창원시 문화유산해설사이신 동자갑선님께서 전문가 다운 포스와 유려한 말솜씨로 이순신 장군상에 대한 설명을 술술술 얘기해주시고 있네요.^^
장군님 동상 아래에 적힌 "충무공 이순신 상" 이란 글자의 왼쪽에는 원래 '이승만 근서'라는 글자가 있었는데 언제 누가 그랬는지 모르지만 현재는 지워져 버린 상태라고 하시더군요. 이 말을 들으니 후대 역사의 평가에 따라 남아 있는 역사적 산물들도 결국 이리 저리 변형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정의롭게 또 올바르게 살아야 하는것 같습니다.
<7> 그래서 찾아보니 이렇게 이순신 장군 동상 제막식에 이승만 대통령이 기념사를 하는 사진이 남아 있네요.
사진을 자세히 보면 정말 왼쪽에는 판독은 안되지만 작은 크기의 5글자가 보입니다. - 사진 : 국가기록원
<8> 두 손을 모아 칼을 수직으로 세운뒤 잡고 있는 모습은 왕릉의 무인석을 기반으로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장군님의 배가 너무 앞으로 튀어 나온것 같아서 개인적으로는 좀 이상해 보였습니다.
(아래에 파란색으로 부연설명했지만 작가인 윤효중은 이 모습은 장군이 왼쪽 무릎을 꿇고 기도하다가 일어서는 순간이 표현되어 오른쪽 발은 뒤로 쭉 뻗어져 있고, 왼발이 앞으로 나와 있으며 허리는 뒤로 젖혀진 자세로 제작되었다고 함 - 박계리 논문 참고 )
<9> 동상 뒷면에는 아래와 같은 동상 건립기가 적혀 있습니다.
어허 민족의 태양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단기 3878년 3월 8일 서울에서 나시어 단기 3931년 11월 19일 노량바다에서 순국하신 어른이니 그는 54년 동안의 일생을 다만 정의에 살으시었고 임진란 7년 싸움에 오직 그의 힘으로 나라를 건지었으며 한몸을 버리시어 겨례를 살리시니 우리들의 영원한 지도자시요 역사적 은인이시라 진실로 거룩한 뜻과 자취 하늘과 땅과 더부러 길이 빛나리로다
단기 4285년 4월 13일
진해 군항대 여러 고을 유지와 해군 장병들의 성금으로 세우되, 손원일, 김성삼, 정금모, 강봉용, 김태수 등이 보살폈으며, 윤효중은 조각하고 이은상은 글을 짓고 손재형은 쓰다
이 동상은1952년 4월 16일(임진난 발발 6주갑 기념으로 4월 13일(충무공이순신도감-해사박물관)을 제막식으로 보는 견해도 있고, 4월 28일(김미정) 견해도 있으나 아래 주로 인용한 박계리의 논문에는 4월 16일로 나오기에 이를 따름)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진 이충무공 동상으로 6.25의 참화 속에서 국가적 사업으로 건립됐다고합니다.
1950년 11월 11일 해군 창설 제5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당시 진해 해군통제부사령관이었던 김성삼 소장의 발의에 의해 경남도지사와 인근지역 유지들로 기성회가 조직되고, 마산, 창원, 통영, 김해 등지에서 각출한 3천만원을 건립기금으로하고 최남선, 김은호, 이은상, 김영수, 권남우 등으로 구성된 고증위원회(김은호 작 충무공영정과 윤효중의 모형이 달라-윤효중은 김은호의 작품이 절세의 걸작이라고 하여도 자신이 예술가인 이상 다른 작가의 작품을 그대로 따라만 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면서 결국에는 충무공이 죽기 전날 비참한 결심을 하고 "이 원수를 갚게 하여주시면 오늘 죽어도 한이 없겠나이다."하고 눈물로 기도하였던 순간이야말로 충무공의 생애에서 가장 성스럽고 웅장한 순간이었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그 모습을 제작하려 하였으나 기도하는 모습이 무릎을 꿇는 좌상이 되는 관계로 문제가 될 것 같아서 기도를 끝내고 막 일어서는 순간 조금의 상념도 없는 상태에서 칼을 짚고 먼 하늘을 바라보던 그 순간적인 포즈를 작품화하였기때문에 허리가 뒤로 젖혀진 자세로 제작 - 박계리 논문 참고)를 거쳐 1952년 4월 16일 그 모습을 드러냈다.( 윤효중은 기초토대 공사비를 제외한 4,500여만원에 이 동상제작을 의뢰받았다고 하네요. -제막당시에는 제작비 총1억6천만원, 연인원 3천여명이 동원된 국책사업으로 동상제작은 51년 11월 15일에 끝났으나 제막식은 다음해 4월에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요인과 내외귀빈 다수가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거행되었답니다.
이 동상의 원형은 윤효중(친일행적으로 구설수에 오름)이 제작하였으나 당시 16척(약 482㎝)에 달하는 대형 동상을 주조할 만한 주물시설이 없었던 탓에 당시 함선과 병기를 제조하고 수선하던 해군공창(海軍工廠)[현 해군 군수사령부 정비창]의 시설을 이용하였으며, 이 동상은 한국 최초의 대형 동상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 1950년대 국가의 지도층에 의해 주도된 이충무공 사업은 국민들의 항일이라는 민족주의 정서에 반공산주의 이념을 덧씌우는 이후 한국현대사 관제 담론의 중요한 지점으로 김미정은 보고 있습니다.
- 이후 1952년 11월 19일 통영의 남망산 공원에 충무공 동상 건립(김경승 작) - 1953년 5월 31일(O)
해사박물관에서 간행한 "충무공이순신도감"에는 1955년 8월로 나오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 "통영시지"에 의하면 이동상
은 한국전쟁으로 이 고장에 피란온 김경승(金景承)이 임진왜란 6주갑을 기념하여 1952년 공의 순국 일인 음력 11월 19일
에 제막했다고 동상 좌대뒷면의 동판(銅版)에는 기록되어 있으나 사실 공사가 예정보다 늦어져 이듬해인 1953년 5월 31
일 오전 9시에 제막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53년 5월 31일이 맞을듯 함.
1955년 12월 22일 부산의 용두산 공원에 충무공 동상 건립(김경승 작)
1967년 4월 28일 전남 여수시 종화동 자산공원
1968년 4월 27일 서울 광화문 충무공 동상 건립(김세중 작)
1973년 3월 30일 경남 삼천포시 노산공원
1973년 12월 국회의사당 로비
1974년 8월 전남 목포시 유달산 공원
1976년 4월 11일 경남 사천군 용견면 선진리 진삼국도변
1986년 해군사관학교 - "충무공이순신도감" 1992, 해군사관학교박물관
<10> 다같이 단체사진을 찍고 다음장소인 해군사관학교 쪽으로 이동하기위해 버스타러 가는데---- 사진:군평선이님.
<11> 금갑도만호님은 벚나무 고목의 몸체에서 피어나는 벚꽃잎이 신기한지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저런 사진은 뒷배경이 진한 나무색이라 연분홍의 꽃잎이 돋보여서 참 곱지요.
<12> 판중추부사님은 도로변 화단의 귀여운 조선 수군상을 담고 있습니다. 포토제닉상을 염두에 두고~~~
좋은 성과 있으시길 응원합니다.ㅋㅋㅋ
다시 버스를 타고 거북선을 만나러 해군사관학교로 가는 버스안에서 격군님께서 이순신 장군상에 대한 추가설명을 해주시는데 북원로터리의 이순신 장군동상은 임진란 발발 6주갑(1주갑60년) 기념으로 만들어진것으로 1세대 이고 광화문의 이순신 동상이 2세대, 해사에 있는게 3세대 동상이라고 하셨었나???^^ 가물가물하네요
10여분정도 이동하여 위병들이 지키고 있는 해군사관학교 정문에 도착했는데 우리차는 2호차라 앞의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군사보호구역이라서 출입이 지연이 되고 있었습니다. 5분이상 대기하다 해군사관학교 안으로 들어갑니다.
격군님께서 원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곳인데 군항제때 전국에서 몰려오는 수많은 방문객들을 수용할 만한 주차공간이 없어 그때만 부득이하게 개방을 한다는 말씀도 해주신다.
안으로 계속들어가자 오른쪽으로 바다가 보이며 해군함정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래서 출입이 까다로웠구나 싶네요.
다들 군함에는 창문이 없다며 신기해하자 앞쪽에 있던 해군 출신(?^^)의 어란포님이 창문으로 비치는 달빛을 보면 배에서만 생활하는 군인들이 우울해서 자살을 할수도 있어서 창문이 많이 없다고 한것도 같고...ㅋㅋㅋ
다시 한번 정확히 알려주십쇼. 어란포님^^
해군특수전사령부 건물을 지나(이 부분이 혹 군사기밀인지 알려주세요. 그렇다면 지우겠습니다) 해사 건물 앞에 위치한 거북선에 도착합니다. 먼저 내린 1호차쪽 몇분이 거북선 내부로 들어가려다 이곳 해설을 맡은 임란기거북선님과 거북선 정장님이 통제를 합니다. 우리 인원이 한번에 다 들어가면 사고가 날수도 있으나 외부에서 전체적인 설명을 하고 세팀정도로 나누어서 안에서 다시 설명하는 것으로~~~
<13> 해군사관학교 바닷가에 정박중인 임란기거북선 전경으로 뒤쪽에 군함들이 있어서 사진을 마음껏 찍기가 어렵습니다.
<14> 임란기거북선 전면부 모습.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거북선의 머리모양과 다릅니다. 즉 기역자로 꺾인게 아니라 앞머리 상단에서 그대로 일자로 뻗어나왔더군요. 비율로 볼때 좀 작아보이는게 개인적으로는 어색해 보이지만 판옥선과 거북선에 대해 관심이 많아 거의 전문가 수준인 하성군님이 나중에 설명을 해주시는데 조금더 입을 비롯한 용머리 전체가 조금더 위쪽으로 향했으면 더 좋았을것 같다고 알려줌. 용머리부분에 대해서는 복원작업을 총괄한 임란기거북선님도 조금 아주 쪼금 아쉬움이 들긴 한다고 말을 하심^^
<15> 거북선 후면부 모습으로 안에서 2차팀이 설명을 듣는 동안 웅천현감님의 야외특강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 이배사에는 진정한 전문가분들이 많으시니 배움의 폭이 깊고도 넓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지요.ㅋ
바로 이 임란기거북선 복원작업의 총책임자이자 해사박물관 부관장였던 임란기거북선님께서 제작과정부터 제원에 걸쳐 레코드를 틀어놓은것처럼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셨다. 그 와중에도 설명하는 자기를 보지말고 거북선을 보라고 하셔서 열심히 보며 설명을 들었더니 너무 뒤통수에 대고 설명을 하니까 분위기가 어색하다며 다시 나를 봐달라고 하니 다들 웃음이 빵 터진다.
적절한 유머감각과 정확한 설명으로 귀에 쏙쏙 들어온다.
결국 임란기거북선은
이순신 장군의 조카 이분이 쓴 행록을 근거로 해 해군에서 역사적 사명을 갖고 2019년부터 작업을 해서 작년에 복원한 것이라고 하는데 다른것들과 가장 큰 차이점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는 내용였습니다.
1) 용머리가 다르다.(기역자로 꺽이지 않았다.)
2) 개판이라고 하는 부분에 철갑이 없다.(거북선은 철갑선이 아니라 목갑장갑선이다.)
3) 꼬리의 형태가 다르다.(양쪽으로 올라간 2개의 꼬리가 아니라 1개이다.)
4)내부 층수가 2층이냐 3층이냐 등을 가지고 약 40여년동안 싸웠는데 안에 들어가보면 정확하게 고증해 놓았다.
(거북선 내부는 기본적인 아래공간 위에 하방판자 230개와 상방판자 101개로 구성된 복층 공간이다. 즉 거북선은 2층 3층이 아닌 포판(갑판)위 가운데에 부분적으로 상방판자로 만든 공간이 있는 복층)
5)임란기거북선 크기(길이)는 약 24미터(50자?)로 기존 다른 거북선들의 약 35미터에 비해 약 10여미터가 줄어들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기존 거북선은 무겁고 둔해보였는데 이것은 날렵하다.
이외에도 중요한 것들을 귀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을 잘 해주셔서 거북선의 전반적인 부분에 대한 세세한 공부를 마치고 드디어 거북선 안으로 진입합니다.
저는 임란기거북선님의 설명을 하나라도 더 정확히 듣기위해 1차팀으로 휘리릭~~~
<16> 거북선 내부를 설명하고 계시는 임란기거북선님(가운데)과 판옥선과 거북선 분야에선 거의 전문가 수준의 경지에 오른 하성군님(좌측)과 오른쪽의 방진님.
<17> 수군이 사용하던 화승총??? 왜이렇게 부실해보이는지?ㅠㅠ
그 옆에는 사부들이 사용하는 활과 화살이 제법 폼나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저도 이쪽엔 문외한이지만 총이 이정도밖에 만들지 못하는 수준였나요? 화포는 일본보다 훨씬 더 앞섰으면서도???
<18> 천자총통(?)과 탄환 그리고 조란탄
<19> 대장군전과 장군전에 대해 설명하고 임란기거북선님(좌)과 질문하는 하성군님(우)
<20> 101개의 상방판자로 짜여진 복층의 상층구조 전경(가운데에서 용머리 방향)으로
<21> 용머리 앞에 배치한 현자총통이 저 앞에 보입니다.
<22> 노를 넣었다 뺐다 하는 공간으로 지금은 뚜껑을 열고 닫을 수 있습니다. 빠지면 안되니까^^
<23> 이것이 바로 노로 이렇게 길은줄은 몰랐습니다. 엄청 길더라구요. 가운데에는 장타원형의 노구명 덮개판이 보입니다.
<24> 거북선의 맨 뒤쪽 좌우에는 지휘관이 머무르는 작은 방이 양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바퀴 설명을 들으며 거북선 내부를 돌아봤습니다.
그런데 통영에 있는 거북선보다 좁아서 그런지 약간 답답하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리고 임란기거북선님이 계속 강조한 대로 잘못하면 머리를 부딪쳐서 다칠 위험이 있더라구요.
우리가 그러면 거북선에 승선한 수군들고 머리에 혹을 달고 살았을듯 ㅋㅋㅋ
어쨌든 최대한 임진란 당시의 상황에 맞게 즉 실제 전쟁시의 느낌이 들게 복원한것 같습니다.
아쉽지만 임란기거북선님의 퇴선명령이 내려져 밖으로 나온뒤
마지막 3차팀과 함께 다시 한번 천천히 거북선을 돌아봤습니다.
아산에서 궁궐건물 복원하는데 납품하려던 두꺼운 조선 소나무 원목으로 만들어서 그런지 소나무향도 나는것 같더라구요.
<25> 거북선을 나와 단체사진을 찍는데 각도가 안나와 옆으로 틀어서 ㅋㅋㅋ - [사진:군평선이님]
오우~ 이 사진에선 제가 맨 앞줄 가운데에 있네요.
맨앞줄 맨 오른쪽 첫번째가 지금까지 장시간에 걸쳐 명해설을 해주신 임란기거북선님이 힘차게 파이팅을 하고 계십니다.
다신 한번 감사인사드립니다. 임란기거북선님.
참고로 우리나라에 복원된 거북선에 대해서는 격군님이 쓰신 "이순신 파워인맥, 이순신을 만든 사람들" 345~352page도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다만 이 책은 2018년에 출판되었기에 지금 본 거북선은 빠져있답니다.
자 이젠 거북선 앞쪽에 있는 해군사관학교 건물 앞으로 이동하여 웅천현감님께서 이순신 장군 동상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웅천현감님께서는 바로 이곳에 있는 이순신 장군상을 건립을 총괄지휘하신 분이셨기때문에....^^
다시 생각해봐도 우리 이배사의 회원진은 너무 빵빵하십니다.
<26> 해군사관학교 교정 앞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에 대해 설명해주시는 웅천현감님.
이 동상제작을 기획하고 설계의 총 책임자이셨으니 제대로 된 최고의 안내였답니다. -[사진:군평선이님]
<27> 웅천현감님의 이순신 장군 설명해주시는 원경.
바로 앞에 열심히 장군님 동상을 찍는 분이 전날 제 룸메이트였던 부산지회장이신 송현마을님이십니다. 좋은 말씀 감사했습니다^^
<28> 해군사관학교 앞 충무공 이순신 상.
이 동상은 충무공 탄신 470주년과 해군창설 70주년을 기념하여 2015년에 건립한 것이라고 합니다.
웅천현감님께서 이 동상의 높이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물어보시기에 저는 약 2미터 50cm 정도라고 말했고 다른분들은 2미터 이하라고 말했는데 놀랍게도 약 5미터라네요. 엥??? 5미터씩이나~~~~그렇게 안보이는데?
이어서 하시는 말씀이 이 동상의 전체높이는 총 11.11미터로 해군창설기념일인 11월 11일을 상징한다고 하네요.ㅋ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동상이 있는 받침대가 크게 보면 3단이면서 동상의 중심폭에 비해 넓고 높이도 높다보니 자연적으로 장군상 자체는 약간 왜소해보이기에 전체적으로 실제보다 작아보이는 착시효과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다가 분수대(?) 높이가 약 54cm인데 이것은 충무공이 돌아가신 나이에 맞췄다고 하시네요.
웅천현감님께서 참으로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시면서 만드셨더라구요.
몇가지 더 말씀하셨는데 사진찍느라 잘 못들었습니다.ㅋ
세부사항은 아래 동상 설명문을 참고하세요.^^
1. 동상명 : 충무공이순신상
2. 건립배경 : 해사 충무공동상은 충무공탄신 470주년과 해군창설 70주년을 기념하여 2015년 11월 11일 건립하였다.
3. 동상구성
1) 동상
(1)형태 : 임진왜란 당시의 갑옷과 투구를 착용. 활과 환도 휴대, 등채(지휘봉)를 들고 전장에서 지휘하는 모습과 얼굴은 문무를 겸비한 장수의 모습을 형상화 함
(2)높이 : 11.11미터(동상 4.97m, 좌대 및 기단 6.14m)로 해군창설기념일(11월11일)을 상징
2) 좌대
(1)임진왜란 당시 주력함선인 판옥선을 기초로 형상화
(2)전면에는 '충무공이순신상' 명판, 후면에는 충무공 이순신 연표
(3)하부 전면에는 거북선 앞면의 귀수, 다른 3면에는 한산, 명량, 노량해전도 부조, 좌대 하단에는 천자총통 4문 비치
3) 기단(원형)
(1)직경(11.11미터) : 해군창설 기념일
(2)높이(0.54미터) : 충무공의 일생(54세)
(3)판옥선을 형상화한 좌대(1개), 조각동(11개) : '금신전선 상유십이'의 전선 12척을 의미
(4)주변 판석 330조각 : 명량해전 당시 왜군 함선 수를 상징
<29> 오른손에는 등채를, 왼손에는 활을 들고 화살통과 환도를 메고 있는 모습으로 아침에 보고온 북원로터리 장군상이나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상과는 달리 실제 전투시의 모습을 보는 듯한 디테일함이 살아 있는 동상였습니다.
<30> 여기서는 이런 단체사진을 찍었는데 사진 앞쪽 오른쪽 끝에보면 무릎을 꿇고 고개를 뒤로 젖혀가며 뭔가를 찍는 사람이 보이시나요?^^
<31> 바로 제가 이런 사진을 찍는 모습이랍니다.ㅋㅋㅋ
군평선이님이 단체사진을 찍으니 다들 거기만 쳐다보고 있네요. 바로 앞이 해주오씨님였는데 안경쓰셔서 못알아봤어요.ㅠ
그 뒤에는 하성군님이시고 ㅋㅋㅋ
<32>약간 줌으로 당겨찍은 사진입니다.
어디 아는분이?? 아. 앞줄 두번째가 웅천현감님 그 옆에 옆에 덩치좋으신분이 흥국사님(?) ^^ 그 옆이 이순신 장군의 제1차 출정노선에 대해 관심많았던 거제지회 회원님, 그 옆은 둘째날 점심 먹으며 잠시 얘기나눈(?) 분 등등...
다들 이 시간이 무척이나 행복하신듯 합니다.
<33> 해군사관학교를 떠나기전 화장실을 들리기로 했는데 웅천현감님 왈 하필이면 이제 막 폐쇄하려고 하는 상무관 건물로 왔다며 화장실 얘기를 하시네요.ㅋㅋㅋ 다녀오신분들은 지금까지 본 화장실중 최악(?^^)이라고 하고 늦게 간 남자회원분들은 여자회원분들이 남자화장실까지 장악해서 가지도 못하고...
그래도 건너편 낮은 산자락에는 분홍빛 진달래가 크고 활짝 피어 보는 눈이 즐거웠답니다.
자 이제는 오늘 답사의 마지막 코스인 안골포 왜성으로 출발합니다.
<34> 해군사관학교에서 안골포왜성 가는길은 약30분이 넘게 걸리며 생각보다 멀었는데
이번에는 사진속의 열선루님께서 전라남도 문화재전문위원답게 국가지정문화재로서의 국보, 보물 시도지정문화재로서의 기념물과 그보다 낮은 문화재 자료등에 대해 설명해주시는 귀한 자리를 마련해주셨습니다.
우리 이배사회원님들의 전문성이 끝까지 빛을 발휘하는 시간였습니다^^
반면에 30분이 넘는 꼬불꼬불 길을 후덥지근한 버스안에 있다보니 전날 새벽까지 젊은피의 힘을 보여주었던 ***나으리께서
속이 미식미식하셔서 순간 당황했었지요.ㅋㅋㅋ
<35>도로에서 내려 5분정도 데크계단을 올라서면 안골포 왜성이 나타납니다.
사진에 보이는것은 안골포 왜성의 내성인데 쑥을 뜯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36> 쑥도 많았지만 이렇게 이쁜 야생화인 산자고도 여기 저기 피어 있어 보는 눈이 즐거웠습니다.
일행들이 다 올라오려면 멀었고 이곳에서는 왜성을 볼 시간이 많지 않아 휘리릭 성쪽으로 뛰어갑니다.
<37> 왜군이 쌓은 왜성은 이렇게 입구가 미로처럼 한번씩 꺽이는 특징이 있는데 저 초입의 문을 돌아서 들어가면
<38> 짠하고 활을 겨누는 왜군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철퍼덕 앉은 아주머니들이 쑥을 뜯고 계시네요.
여기가 어떤 장소인지는 알고 계시겠지요?^^
<39>안골포 왜성의 제일 안쪽 내성 끝부분에서 바라본 내성의 범위와 안골포 바다가 보입니다.
<40> 여기에는 벤치와 함께 안골포 왜성 설명문이 세워져 있어 안골포 왜성에 대해서는 이것으로 대체합니다.
<41> 이쪽이 안골포 왜성중 가장 높은 곳으로(약 6~7m) 성벽돌도 큰것으로 쌓았습니다.
<42> 내성을 나와 왜성의 본진이 머물렀던 본성쪽으로 이동하는데 기본적으로 형성된 자연구릉을 이용하여 성벽을 쌓아서 노동력도 줄이고 축성시간도 줄이는 방법을 선택했음이 느껴졌습니다.
<43> 안골왜성의 본성입니다.
여기까지는 저만 왔는데 판부사님이 사람들 내려간다고 얼른 오라고 저를 부르네요.ㅋㅋㅋ
5분정도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저 아래까지 다녀오는건데 아쉽지만 여기서 발길을 돌려 턴합니다.
점심시간이 예정보다 늦어져서 다들 서두르기에....
<44> 안골포의 전경입니다. 아름답습니다. 지금은 평화로운 시기이기에....^^
저멀리 왼쪽 끝에 봉긋하게 솟은 산이 바로 웅포왜성이 있는 곳입니다. 웅포왜성은 사진과 영상으로 몇번 본적이 있는 곳이죠.
<45> 여기서는 격군님께서 사진처럼 설명을 간단하게 해주시고 -[사진 : 어란포님]
<46> 이렇게 단체사진도 찍었는데 저는 이때 성안을 돌아다니고 있었지요.
마지막 단체사진였는데.......그래도 궁금한건 좀 해결했으니 얻는게 있으면 잃는것도 있는법이겠죠.^^ -[사진 : 어란포님]
<47> 안골포 왜성을 내려와 다시 진해방향으로 조금만 오면 산채가라는 곤드레 가마솥밥 정식으로 유명한 맛집에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비벼먹을 반찬도 다양하고 푸짐하게 나오고 비빔밥의 생명인 비빔간장맛이 일품이더군요. 청국장도~~~^^
게다가 마지막으로 누룽지까지 ㅋㅋㅋ 누릉지는 두그릇을 먹은듯.
<48> 식사중 벽에 붙어 있는 이걸보고 고민을 좀 했습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맛있는 막걸리나 지역색의 막걸리가 있으면 최대한 맛을 보려고 하는편인데 이걸 보는 순간 집에 한병 사가야겠구나 했는데 지갑이 숙소 지하주차장 차에 있어서....고민하다가 판부사님한테 5천원 있냐고 물으니 없다고 해서 동자갑선님께 말씀을 드리니 선뜻 계산을 해주십니다.
야호....동자갑선님한테 4천원은 빚졌지만 너무 좋았습니다. 다 덕분입니다. 동자갑선님.
이거 맛본 사진은 맨 마지막에 나옵니다.ㅋㅋㅋ 다시한번 4천원에 대한 감사인사를....동자갑선님은 천사중에 천사^^
<48-1> 식사후 식당앞에서 판부사님과 기념사진을 찍는데 방진님이 계셔서 부탁드려 함께 찍었습니다.
이 사진을 찍어주신 남양산성님은 컨셉을 할아버지(방진님, 우), 아버지(달밤, 좌), 손자(판부사, 중) 였다고 하네요.ㅋㅋㅋ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시는 방진님 항상 감사드립니다.^^ -[사진:남양산성님]
<49> 점심식사를 푸짐하게 하고 한손에는 남북정상회담 대표 막걸리인 배다리 막걸리를 들고 버스에 타고 학술대회 장소였던 리더십센터로 가는길 1호차가 멈추더니 사람들이 내립니다. 알고보니 여기는 웅포해전 전적비가 있는 곳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차가 많이 다녀 위험하기때문에 2호차는 내리지 않고 사진처럼 격군님께서 웅포해전에 대해 설명을 해주십니다.
<50> 버스 차창 너머로 보이는 고가도로 위의 산이 바로 웅포왜성입니다.
<51> 숙소로 돌아가는 길 남명손서회장님께서 1박 2일의 행사에 대해 감사인사를 하시네요.
정말 이정도의 대규모인원이 아무런 사고없이 축하공연과 5건의 주제발표 그리고 새벽1시까지 이어진 6차 뒤풀이를(회장님이하 몇분^^) 무탈하게 마치고 답사까지 끝내고 헤어질 시간이 되었으니 얼굴이 미소가 저절로 지어지시나봅니다.ㅋㅋ
그렇게 감사인사가 끝나고
<52> 이배사의 돌고도는 인사를 나누며 헤어집니다.
모두들 환환 미소와 함께~~~ 다음을 기약하며 .........이렇게 진해에서의 창립 13주년 기념 학술대회와 답사를 모두 끝마쳤네요.
저는 대구로 가서 판부사님 내려드리고 집에 도착해서
<53>저녁에 동자갑선님이 빌려주신 4천원으로 산 배다리 막걸리를 마시는데 음....맛은 생각만큼 아니였습니다.ㅋㅋㅋ
그래도 덕분에 와이프랑 술잔을 기울였네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이배사 창립 13주년 기념 학술대회 및 답사 후기를 마칩니다.
20일(월)은 후기 1편을 쓰느라 새벽까지 있었고, 2편을 쓰려던 날에는 애사가 있어서 어제까지 장례식장에서 새벽까지...
23일(목)도 저녁부터 후기 2편을 쓰기시작해서 오늘(24일) 새벽까지...... 이제서야 숙제를 끝냈네요.
***참 2일차 답사때 산채가에서 점심먹고 나와 식당앞에서
저와 판부사님 그리고 방진님까지 함께 사진을 찍어주신분이 계셨는데.... 혹시라도 이글 보시면 사진좀 보내주세요^^
판부사님께 후기 보고 사진을 보내주셔서 지금 수정판에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남양산성님 얼굴은 기억하는데 닉을 몰라서~~~
첫댓글 역시...달밤님의 후기는 명품이네요. 1박 2일 동안의 여정들이...숨소리까지 들리는 듯 합니다. 거기다..개인 탐방을 통한 진해의 느낌까지....후기만 보아도...13주년을 맞이한 이배사의 저력과 힘의 원천이 느껴집니다. 이순신 장군님이 그러했듯이...다양한 전문성과 장기를 지닌 이배사 한 분, 한 분의 역량이 합쳐진 결과가 오늘의 이배사의 모습이 아닐까...그런 생각을 하게되는 명품 후기입니다. 이 참에..달밤님은...이배사의 역사를 기록하는...사관을 자처하심이 어떨지...문득 그런 상념이 떠오르는 아침입니다. 감사합니다....ㅎ
먼저 이배사의 든든한버팀목이 되어주시는 일심님에 대한 실제 제마음은 사진설명에 쓴 그이상입니다. 다만 많은사람들이 볼수있는 공간이기에^^
사관이란 생각을 갖고 역사를 쓴다는 생각을 한적은 없지요. 그럴 위치도 역량도 안되기에~
단지 제 스스로 후기를 쓰면서 그날의 배움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을뿐인거죠^^
언제 충주에서든 다른 자리에서든 진지하게 약주한잔따라드리며 장부의 목소리를 코앞에서 듣고싶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상세한 역사의 기록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1박2일 을 다시 되새기게 됩니다.
자전거를 차에 싣고 다니나 봅니다
ㅋ저 자전가는 이순신리더십센터 옆 아파트단지 정문쪽에 있는 진해시 공공자전거랍니다.
제 자전거를 차에 싣고 왔으면 아마 여좌천까지 다녀왔을겁니다^^
자세한 답글은 1편 후기에 달았습니다.
다음에 또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멀리 한밭에서 달구벌을 지나 웅천현까지..
그 열정에 긴 1, 2편의 후기까지 대단하십니다.
달밤님께서 이번에 저가 기획한 종신회원이 되는 날에는
우리 이배사의 위상이.... 상상이 안됩니다.
그날이 오면 좋아하시는 막걸리 중 으뜸인 "동래 산성 막걸리" 양껏 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공부합니다. 덕택에.......
회장님의 전화를 받을때마다 항상 느끼는게 회장님의 그러한 열정과 관심때문에 우리 이배사가 이렇게 발전하고 있구나입니다. 정말 감사드리며....종신회원 되기에는 아직 배움도 얕기에 멀은것 같습니다.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이나 최대한 초심을 잃지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종신회원되기전에 저도 금정산에서 회장님과 산성막걸리 먹을 날을 고대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먹어본 막걸리중 탑3안에 드는게 바로 산성막걸리였거든요.ㅋ
부산에는 약 8년전에 낙동정맥을 끝내면서 몰운대에서 제대로 한번.
작년 6월 인천-부산 자전거 국토종주때 한번....이렇게 먹은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다시 한번 큰 행사 진두지휘해서 무탈하게 끝내신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다음에 뵘겠습니다.
사진.. 고흥 남양리산성님께서 할아버지(방진님)-아버지(달밤님)-손자(판부사) 컨셉으로 찍어주셨죠 ㅋㅋㅋㅋㅋ 저도 못받지만..!
북원로타리 동상은 노량, 해사 동상은 명량 컨셉. 해사 동상 아래 구조물 중 133? 개의 틈?이라 할지 음. 적당한 단어가 안떠오르지만.. 명량 당시 적선 숫자만큼 만들었고, 물줄기가 나오는 구조물이 우리 전선의 숫자에 맞게 만들었다고 하셨던 것 같아요. 가물가물 합니다..
달밤님 덕분에 정말 유익+재미 있었습니다. 후기도요💫
엥....
손자?ㅋㅋㅋ 욕심이 많으시옵니다. 판부사나으리^^
네. 판부사님 말대로 북원은 노량해전을 떠올리며 만들었다했고,해사는 집중을 잘 못해서 ㅋ
인터넷 찾아보면 나오겠지요.
저도 판부사님덕분에 정말 많이 배우고 자극받는답니다.
참고로 후기는 한번 더 공부한다는 것도 있고 기록도 되고...
일석이조이지요^^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서도....
다음에 또 봅시다.ㅋㅋㅋ
@달밤(月明夜) 판석이 330개 라고 합니다. 댓글을 정정하려다가 알림이 가는게 나을듯하여..!! 정보제공-격군님💫
명품후기를 또?
아침 일찍 산책 가실 줄 알았으면..
우리 집에 잘 나가는 자전거가 있는데?
드릴 걸!..ㅎㅎ
이배사의 기록을 달밤님이 생생하게 남기네요!
동분서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답사하는 열정에 고개 숙여집니다.
고생많으셨습니다.
아래 사진은..해사에 있는..활을 든 충무공 동상 제막식 때의 사진입니당..ㅎ
으악....
자전거까지.....동자갑선님은 저에게 보물창고 같으신 분이군요^^
언제 동자갑선님도 뵙고 진해 산줄기도 타러 한번 내려가봐야겠습니다.
부족한게 많은데 챙겨주셔서 항상 감사드립니다.
마음은 누님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다음에 뵙고 때가되면 그리 불러도 되겠죠?^^
해사동상 제막식이 2015년이니 동자갑선님도 갖고 계시는군요.
대단하십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구요.
건강은 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달밤(月明夜) 맨왼쪽이 격군님이신가요? 아닌것 같기도 하고 그 옆은 귀선님과 진해현감님이시고 동자갑선님 우측은 금갑도만호님이신가요? 우측 맨끝은 일심님이시고?ㅋㅋㅋ 궁금합니다.
@달밤(月明夜) 역시 통하는군요!
제 닉이 동자누님.갑선언니.동자언니.갑선누님이에요..그기다가 이번에 또 2개가 늘었어요..동갑과 기둥뿌리..ㅎㅎ
이틀 동안의 강행군에..후유증에..
군항제 기간이라..
넘 힘들어서 밥을 소화 못 시켜 계속 죽을 먹고 있습죠..
아무래도 영양제를 한 대 맞아야 할 거 같습니다요.
건강까지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달밤(月明夜) 딩동댕!~~~~
금갑도 옆은 통영의 "김응함"님.
이번에 일이 생겨 못 다녀갔다고..통화했습니다.
김응함님 옆에는 명량(조신호)님..
달밤님은 눈썰미도 좋으시네요..ㅎㅎ
@동자갑선 허걱....그런데 기둥뿌리는 이해가 됩니다.
모든곳에서 동자갑선님이 안계시면 안되는 분이시니^^
그나저나 쓰러지시기전에 영양제 한대 맞으세요.
정말로...
쓰러지시면 더많이 맞아야하고 오래 걸리므로ㅠ
물론 시간이 녹록치 않겠지만서도
@동자갑선 아...명량님이 저분이시군요.
눈썰미랑 비슷한 의미의 관찰력은 조금 있답니다.ㅋ
백두대간과 정맥길을 걸으며 자연을 바라보다보니^^
명품후기는 과연~잠도 못 주무시고 한곳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는 장군님만 같아야 하는것인가? 과연 잘잠 다 자면서 장군님, 달밤님 같은 분을 따라갈수는 없는것인가? 이생에 꼼수는 과연 없단 말인가?
ㅋㅋㅋ해주오씨님의 유머감각이 이정도이신줄은 몰랐네요.
잠은 거의 4시간 정도 잤답니다.^^
해주오씨님같은 예인은 이미 저보다 수백보 앞서 있기에 제가 보이지 않는것입니다.
다음에 꼭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로 더 잘아시겠지만 꼼수는 얼마못가잖아요.
제가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 내 실력이 60인데 컨닝해서 90, 100점을 맞으면
남들이 너를 90점 100점으로 알고 대하고 뭔가를 시킬건데 그때는 어떻게 할것이냐...
그러니 꼼수부리지 말고 최선을 다해라
그리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안타까우면 노력해라....
라는 원론적인 말을 하지요.ㅋ
말이 길었네요.^^
다시 그날의 느낌이 스며듭니다.
아...
하성군님의 목소리도 귀에 맵돕니다.
공연후 질의응답시의 그 쉰목소리까지도~~~^^
감사합니다.
참...거북선 설명한 부분중 잘못된 부분있으면 댓글달아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한번 자세히 봐주세요^^
부탁드립니다. 하성군싸부님.
@달밤(月明夜) 설명을 잘들으셨기에 오류는 없는듯합니다.
@하성군 다행이네요.들은게 많고 피곤한상태에서 새벽까지 쓴글이라서ㅠ
감사합니다.
다시 읽어보니..
북원로터리 충무공 동상은..
임.란 발발 후 60주갑(1 주갑은 60년).그러니까 1952-1592=360년.
60주갑 만에 세워진 것입니다.
1592.4.13일은 음력을 기준으로..
1952.4.13일은 양력을 기준으로..
참고로 우리나라는 음력을 사용하다가 양력을 사용한 해는..
1895년 11월 17일(양력 1896년 1월 1일)을 기준으로 그때부터 양력을 사용했습죠..
시간의 촉박함에 해설 중 많은 것을 놓쳤네요..ㅎㅎ 🙆♀️🙆♀️
어..동자갑선님 저는 6주갑이라고 적었는데요?^^
1주갑이 60년이니까 6주갑은 360년이구요.
제작년이 단기 4285년 4월 13일로 되어 있으니 서기로 하면 1952년 그래서 말씀하신대로 1952-1592=360^^
@달밤(月明夜) 맞습니다..
제가 오타였네요..
쓰다보니..ㅎㅎ
머리도. 손가락도. 제멋대로..
@동자갑선 넵...^^
제2탄을 쓰기 전에 우여곡절이 있었군요. 그런 와중에도 멋진 후기를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버스안에서 10년 20년 언급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진해 북원로터리 충무공동상이 노량해전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설명드렸었죠.ㅎ 안골포왜성 답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지금 여기 계시는군요^^
1세대, 2세대, 3세대를 언급하셨었는데?^^ 노량해전 상황에 영감을 받아 작업을 했다는 말씀을 하신건 기억납니다.
안골포 왜성은 시간여유를 갖고 격군님 설명을 더 들었어야 하는건데...
다른곳에서 더 좋은 말씀 들을 기회가 있겠지요.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격군님 생일기념일 글 보면서 눈물이 쭈르륵~~~
다시말씀드리지만 격군님 그리 늙어보이지 않습니다요.^^
건강 잘 챙기시면서 더 강건해지셔서 앞으로도 계속 이배사의 기둥이 되어주십쇼.
저는 초심잃지않고 뒤를 따르겠습니다.
동료분이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진해의 그날,
그 새벽. 그 발품, 그 디테일
역시 발군이십니다.
[이배사 실록] 입니다.^^
친형같았던분이신데 좋은곳으로 가셨을거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방진님도 이배사의 어른으로 오래오래 지켜주시기바랍니다^^
이번 주말도 행복하게보내십쇼
모두가 인정하는 명품후기 복습하는기분로 잘 읽었습니다
부족한게 많고
한계가 있기에 명품이란 단어는 어울리지않습니다.
제 스스로다 공부한다는 차원에서 후기를 조금 집중해서 쓸뿐입니다.
대금부시는모습 최고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말 행사 치르고
월요일에 애사가 있었네요..
그럼에도 새벽 4시가 되도록 후기를 쓰셨네요..
애쓰셨습니다.
저도 안골왜성 단체사진에 없습니다.
그래서 격군님 명품해설을 못들었습니다.
언젠가 있을 틈새답사를 기대해야겠습니다.
잘 지내십시요~
애사는 2편을 쓰기로한 화요일에 있었지요. 고생덜하시고 편한곳으로 가셨을겁니다.
후기는 피곤한가운데 쓰다보니ㅠ
열성루님도 외성 돌아보시는걸 본것같았는데 그래서 사진에 없으시구나.
다음에 뵐때까지~^^
마치 함께한듯 느껴집니다. 이배사 회원은 글솜씨까지 두루 갖추신 멋진분들만 계신것같아요.♡♡♡
반갑습니다. 고음천님
글솜씨는 없구요.
그냥 복습한다는셈치고 복기해보는것이죠^^
주말잘보내십쇼~
와~~~~~대단하신 달밤님~~다시 한번 갔다온것같습니다. 같은 丁未年인데 부끄럽군요~~저도 분발해야되겠습니다. ㅎㅎ
친형같았던분의 명복을 빕니다.
앗
멋쟁이 천자총통님께서도 정미생ㅋ
정말반갑습니다^^
부끄러워하실필요 전혀없답니다.
다음엔 더반갑게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주말잘보내십쇼.
옛자료사진까지 찾아서 조사하시고.. 잘 읽었읍니다~👍🏻👍🏻
딱한장인데요^^ 기록사진이자 작품사진 남기시느라 고생많으셨습니다. 다음에 뵙게요~^^
와~멋진후기 한참 읽고 정성껏 쓰신다고 수고하셨어요 거북선 관심이 많아서 듣긴 들어도 가물가물 했는데 다시한번 새기게 해주어서 감사합니다 ^^
반갑습니다. 선거이님
거북선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관심대상이겠지요?^^
그래서 더 궁금증도 많기에 정확한 고증이 필요할테고~ㅋ
감사합니다.
가슴 아픈 일...애도합니다.
여러 모로 바쁜 일정 중에서도 정성가득하고
꼼꼼한 후기작성에 감탄할 뿐입니다. 덕분에 함께 했던 시간을 되돌려보며 감사한 마음입니다. 개인사정으로 안골포왜성까지는 못갔지만...
따뜻한 봄날... 기분좋은 시간으로 채워가세요~~😊
먼저 애도를 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진해현감님께서는 안골포왜성부터 안계셨었군요.
전날부터 고생많으셨고 지난주도 군항제로 정신없으셨을텐데도불구하고 댓글까지^^
감사합니다.
컨디션조절 잘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