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년 전이다. 혼기를 놓친 나이라 준비할 게 많았다. 하지만 기침이 많아지면서 삭막한 도심을 벗어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고심한 끝에 막일하던 철공소를 그만두고 홀로 짐을 싸서 작은 섬으로 입도해 들어갔다.
먼저, 오래 머물 방을 구하러 돌아다니다가 섬치고는 아담하게 돌로 쌓은 집이 눈에 띄었다. 비록 몇 평 안될 만큼 낡고 작았지만 사방이 바다라 풍경도 좋고 가격도 아주 저렴했다. 육십 중반은 됨직한 집주인도 섬에 젊은 청년이 들어왔다고 무척 반겼다.
그 섬은 이름난 곳이 아니어서 한적했다. 그래도 평소 동경하던 바닷가라 생활은 꿈만 같았다. 종일 평온한 바다가 조망됐다. 햇볕도 포근했다. 대신 태풍 같은 바닷바람이 빈번했다. 동백나무가 방풍역할을 하였으나, 휘젓듯 부는 바람에 주변의 무언가가 크게 흔들리는 소리가 자주 났다. 그때마다 붉은 꽃송이가 통째 툭툭, 떨어졌다.
하지만 외딴 섬에서 만족은 시간과 상반됐다. 보이는 것도 하는 일도 반복된 일상이 너무 단조로웠다. 생활비마저 축나면서 마냥 놀 수만은 없었다. 마침 섬을 찾는 낚시꾼들이 부쩍 늘어났다. 그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곧바로 집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돌집을 카페로 개조했다.
“와, 우리 섬에도 육지에서나 보던 신식 카페가 생겼어.”
몇 가구 안 되는 섬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았고, 또 바다에서 물질로 연명하고 있었다. 섬에 처음 생긴 낯선 카페를 신기하게만 여겼다.
“확실히 젊은 사람은 달라도 뭔가 달라.”
집주인도 뿌듯해했다.
“고맙습니다. 잘 꾸려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게끔 명소로 소문내볼게요.”
집주인의 응원에 야무진 포부까지 내놓았다. 첫 개업 날에는 섬사람들에게 모두 무료로 시음을 제공했다.
하지만 워낙 낙후된 섬이라 관광객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이 낚시꾼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동영상을 제작하고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들도 몇몇 있었다. 그들에게 음료를 무료로 제공하며 섬에 관한 비경과 숨은 이야기들을 콘텐츠들로 발굴하여 수시로 제공했다.
다행히 반응이 좋았다. 소문을 듣고 섬을 찾는 관광객들이 눈에 띄게끔 부쩍 늘어났다. 단숨에 카페가 필수인증코스가 됐다. 새롭게 메뉴도 개발하여 다양하게 내놓았다. 매출이 크게 늘자 바로그때부터 집주인의 시기와 갈등이 시작됐다.
“사촌이 땅을 사면 샘이 나서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던데? 혹시 뜻을 아나해서.”
하루는 집주인이 불쑥 찾아와 불편한 심기를 스스럼없이 드러냈다.
“다 어르신이 도와주신 덕분이죠. 이윤이 많아지면 좋은 일에 쓰이도록 섬에 기부도 할 생각입니다.”
“내 말은 그런 기부가 아니라 이제 그만 여길 비워줬으면 해서.”
“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요구에 깜짝 놀랐다. 가슴까지 철렁 내려앉았다.
“아, 글쎄. 육지로 나가있는 큰애가 섬에 내려와 우릴 모신다는데. 그럼, 여길 우리가 써야할 수밖에 없어.”
“아무리 그러셔도 계약기간이 아직 일 년은 남아있는데요?”
나이가 어리다고 너무 얕보는 것만 같아 대들 듯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물론, 나도 양심은 있지. 당장 빼달라는 게 아니라 한 달 정도 여유를 줄 테니 그때까지 다른 장소를 알아봐.”
“......?”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그 한 달이 금세 지나갔다. 그동안 집주인이 몇 번을 더 오가며 빨리 안 나간다고 화까지 돋웠다. 그렇다고 카페를 순순히 뺄 수만은 없었다. 임대차 법을 달달 외우다시피하며 버텼다. 하지만 집주인은 막무가내였다. 그동안 섬에서 늙도록 법 없이도 잘살았다면서 오히려 싸가지 없이 어른 말을 안 듣는다고 역정까지 버럭 냈다.
그로부터 집주인과의 날선 신경전이 오갔다. 하도 속상해서 섬사람들에게 이를 하소연도 해봤다. 하지만 다들 모른 체하며 집주인만 편들었다. 워낙 작은 섬이라 법도 치안도 없었다. 나이 많은 아집이 곧 규율이었다.
하루는 집주인이 카페로 들어오는 입구를 농기계로 막아놓았다. 항의했지만 집주인은 막은 게 아니라 그냥 세워둔 것이라며 계속 역정만 냈다. 그럼에도 섬사람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여전히 침묵만 했다. 집주인만 의기양양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지인들에게 전화상으로 하소연만 할뿐이었다. 누군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며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니 다 털고 그냥 빠져나오라 했고. 또 누군 끝까지 버텨서 법적으로 대응하라며 강경하게 조언도 했다.
하지만 하루에 배가 네 차례만 오가는 외딴 섬이었다. 집주인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오히려 집주인은 더 강경하게 나오더니 끝내 카페입구를 장애물로 완전 폐쇄했다. 대응이라고는 법적비화를 대비한 증거자료로 사진만 잔뜩 수집할 뿐이었다.
그해 마지막계절이었다. 찬바람이 불어왔다. 섬을 둘러싼 동백나무마다 붉은 꽃들이 하나둘씩 피어나고 있었다. 배가고픈 동박새가 그 꿀을 따먹고 있었다.
때마침 큰 바람이 불었다. 하오의 바닷바람이 초록으로 반질거리는 동백나무가지를 끌어안고 부르르 떠는 탓에 모가지가 부러진 동백꽃들이 그냥 발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두 눈은 벼랑에 바짝 붙어 있는 새순을 보고 있는데 도무지 선명하지가 못했다. 섬에 들어올 때만해도 먼 바다에 떠다니는 작은 배도 훤히 알아볼 만큼 시력이 좋았었다. 하지만 여름부터 겨울 초까지 꼬박 여섯 달 동안 집주인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 때문이지 시력이 너무 나빠져 깜짝 놀랐다.
바닷바람이 유난히 심하던 그날, 저녁 무렵에 한 뉴스가 작은 그 섬을 슬픔으로 온통 덮쳤다.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배가 풍랑에 전복됐다는 비보가 섬에 전해졌다. 하루 네 차례 중 마지막 배는 외부관광객들 보다는 대부분이 섬마을과 연관된 친족사람들이 많았다. 다행히 지나던 어선이 긴급 구조했다는 반가운 뉴스도 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 남자가 실종됐다는 속보가 이어졌다.
그날 밤, 주인집에선 아들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집주인의 통곡소리가 밤샘동안 끊이지 않았다. 도무지 마음을 종잡을 수 없어 동백나무 숲길을 무작정 걸었다. 발밑에 바스락 밟히는 것이 있었다. 그 중 하나를 주워 살짝 벌어진 붉은 이파리를 모질게 떼어냈다.
이튼 날, 꼭두새벽부터 섬을 빠져나가기 위해 짐을 쌌다. 그리곤 섬에서 무사히 나오자마자 집주인을 상대로 냈던 소송취하서를 작성하여 빠른우편으로 발송했다.(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