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이 하마의 입속으로 들어간다/고경숙-
바람에 꽃가루 날리는 서쪽 하늘에서 무장 무장 몰려온 구름들이 함지
박 같은 하마 입속으로 들어간다 봄 내내 어리러운 춤을 추던 벌들의 죽
은 언어가 들어가고 동물원 담방에 매달려 구경하던 아이가 들어간다
소금쟁이 닮은 드론을 띄우고 하마 곁으로 성큼 다가서는 계절,
하마는 튀어나온 눈알을 굴리며 길고 육중한 송곳니로 위턱을 받쳐준
다 하마의 입이 신전처럼 환하다 회랑 같은 잇몸을 지나 핑크빛 융단 혀
에 감긴 덤불 냄새, 하마는 시야에 들어오는 먹이 영역을 현재라고 말한
다 총을 든 밀렵꾼도 뒤뚱한 엉덩이에서 폭포수같이 쏟아내는 오줌 줄기
를 보면 긴장을 늦추나, 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가 하마의 짧
은 다리가 둥둥 둥둥 북소리를 내며 초원을 뛰는 것은 쫓는 것일까 쫓기
는 것일까 그때 탕 총소리는 하마의 육중한 발로 당긴 방아쇠, 하마의 꿈
은 언제나 벌려 있는 입속에서 놀라 깬다
하마의 입속에는 비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던 아프리카 주술사의 달
콤한 거짓말과 습지 한복판, 암컷 한 마리를 위해 치열하게 싸우다 물어
뜯긴 얘기를 나불거리는 모란앵무도 산다 좀 전엔 엄마를 잃어버리고 엉
겁결에 아이가 놓친 풍선도 날아왔다 아이는 엄마 대신 풍선을 만나고
안도한다
동물원의 한낮은 온전히 하마의 것, 그 입속은 번안가요 2절처럼 익숙
한 듯 낯선 리듬, 바느질 솜씨 좋은 김선희 씨의 헝겊 바구니가 엉덩이
실룩이는 새끼들을 낳고 또 낳고, 그래서 더 뚱뚱해지는 입속,
한낮은 하마의 입속으로 하염없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