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사람
240623낮 (왕상17:8-16)
<8)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9)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10)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11)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12)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13)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14)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5)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16)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아멘
오늘 본문에는 엘리야와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 여인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아들 하나 딸린 과부입니다. 그녀의 이름도 나이도 모르고, 아들의 이름도 모릅니다. 아들이름이라도 알면, ”아무개 엄마“이렇게 부를 텐데요,,, 아들 이름도 몰라서 그녀가 사는 동네 이름을 따서 사르밧 과부라고 부릅니다. 아들 하나 딸린 이 과부가 사는 동네가 ”사르밧“이거든요...
아들이 있다고 하는 것 보니 나이 많은 과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자기 인생 책임지기도 힘든 과부인데 어린 아들까지 딸렸으니 이 여인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피곤할지는 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굶어 죽기 직전까지 갔을 만큼 가난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성경에 기록된 사람들 중에 가장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만난 후에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흉년의 때가 지나도록 아무런 걱정 없이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여인의 인생을 책임져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르밧 과부의 인생을 책임져 주시기 위해서 그의 종 엘리야를 보내신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는 감당할 수 없었던 피곤하고 지친 인생을 하나님께서 맡아 주셨고, 그들이 직면한 생존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이 보기에는 너무 불쌍하고 불행해 보여도, 하나님이 책임지는 사람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든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지 그런 것에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책임져 주시면, 그것이 곧 행복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엘리야 시대에나 지금 우리의 시대에나 동일한 사랑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사르밧과부가 어떻게 하였기에 긴 가뭄 동안에 양식이 떨어지지 않고, 어떻게 그는 이 어려운 때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만나 죽을 인생이살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하면 사르밧 과부처럼 인생의 어려운 고비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이 책임지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를 알아보며, 우리도 그 비결을 통하여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첫째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8절입니다.
<8)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9)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눅4:25-26절 말씀을 보면,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 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두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사르밧 과부에게 보내셨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엘리야시대 그 길고 극심했던 흉년의 때에, 그 땅에 많은 과부들이 있었지만, 엘리야는 오직 시돈 땅 사렙다 과부에게만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엘리야 선지자 스스로 찾아간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보냈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엘리야를 사렙다과부에게 보냈을까요? 네... 하나님입니다.
자녀의 모든 것은 부모가 책임져 줍니다. 자녀에게 있어서 부모는 그 자녀를 책임져 주는 사람입니다. 자녀를 낳고 부모는 그 자녀가 스스로 인생을 살 수 있을 때까지 책임집니다. 여기에는 자녀가 아무런 노력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냥 부모님이 나를 낳으시고, 내가 성인이 되어 스스로 세상을 살아갈 때까지 책임져 주십니다. 내가 잘나고 못나고가 없습니다. 내가 노력한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부모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시돈땅 사르밧 과부로 하여금 왜 하나님의 종 엘리야를 공궤하게 하셨는지? 같은 동족 이스라엘 백성도 아닌 이방여인에게 하나님의 종을 보내어 공궤하게 하셔서 가뭄이 끝나도록 굶주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셨는지?...전혀 인과 관계도 없습니다.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가 그전에 어디서 만난 인연도 없고, 만날 수 있는 인과관계도 없고, 만날 확률 제로에 가까운데, 긴 가뭄에 마지막 남은 양식을 먹고 아들과 함께 죽으려던 사르밧 과부에게 하나님의 종을 보내어 죽지 않게 하시고, 가뭄이 끝날 때까지 양식이 떨어지지 않게 하셨는지? ...하나님의 은혜로 밖에 설명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밖에 설명이 안 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는, 사르밧 과부의 순종이 있었습니다.
과부의 집에 양식이 다 떨어졌습니다. 마지막 남은 밀가루 한 움큼이 전부입니다. 사람이 이런 지경이 되면 양심이나 예절 이런 것이 아무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지진 같은 재난이 일어나거나 긴 흉년이 들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약탈입니다. 남의 것을 훔치고 빼앗아서라도 먹고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이런 형편에 처해 있는 사르밧 과부에게 하나님은 명령하셨습니다.
9절입니다.
<9)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그릿 시냇가에 있던 엘리야선지자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일어나 시돈 땅에 속한 사르밧 과부에게 가라 내가 이미 그에게 네가 오면 음식을 주라고 명령해 뒀다”는 것입니다.
여기 음식을 주게 하였다는 말씀은 음식을 한끼 대접하라고 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개역성경에는 “공궤하게 하였느니라” 로 기록되었는데, 히브리 원어를 직역하면(쿨) “부양하게 하다“는 뜻입니다.
즉 이런 오래된 가뭄에 그렇지 않아도 가난한 과부라 남들은 아직도 먹을 것이 있는데 자기 집은 먹을 양식도 다 떨어져서 아들과 함께 마지막 남은 밀가루 탁탁 털어서 기름 몇 방울 남은 것 넣고 빵 한 조각 만들어 먹고 죽으려는 처지에 있는 자기에게 내가 내 종을 보낼테니 그를 부양하라고 합니다. 부양이 무엇입니까? 음식 한번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잘 모시고 살면서 책임지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라는 말씀 아닙니까?
한 끼 대접도 아니고, 이런 가뭄에, 이런 형편에 아무리 하나님의 명령이라 해도 하나님의 종을 집에 들이고 부양할 수 있겠습니까? 이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까?
15절입니다.
<15)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사르밧 과부는 이런 자신의 처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것입니다. 이런 순종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이 책임져주는 사람”이 되게 한 것입니다.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형편에도 순종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책임져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져 주시기를 원하십니까? 사르밧 과부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인생을 사는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요셉과 결혼하기로 약속한 마리아에게 어느 날 가브리엘 천사가 와서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남자를 가까지 하지 않았는데 아이를 갖게 되고 아이를 낳게 된다니,,, 처녀가 아이를 배면 결혼은커녕 돌에 맞아 죽습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어떻게 남자도 가까이 하지 않았는데 아이를 가집니까? 여러분 같으면 이렇게 이해할 수도 없고, 실제로 그렇게 된다 해도 자기는 파혼당하고, 돌에 맞아 죽는 큰 위험과 손해를 볼텐데, 아무리 하나님의 계획이라도 여러분은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고 순종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하심, 순종하면 자신에게 커다란 손해와 상상 못 할 수치와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명령에 순종했던 마리아는 파혼당하지도 않았고, 수치를 당하지도 않았고, 돌에 맞아 죽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가 되는 여인 중에 가장 복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하고 순종했더니 그 이후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이 다 책임져 주셨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이 책임져주시는 복을 받는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인생을 원하십니까?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들이고 순종하셔야 합니다. 모든 믿음의 조상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이, 야곱이, 요셉이, 다니엘이, 사도바울이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지라고 하실 때에라도 기쁘게 그 짐을 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께 먼저 드리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10-11절입니다.
<10)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11)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사르밧 과부의 집에 찾아 온 엘리야는 정말 인정사정없는 요구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물을 조금 달라고 하더니 물을 가지러 가려니까 다시 불러 세워 놓고 음식까지 내 오라 합니다. 가뭄에 물 한 방울이 얼마나 귀합니까? 시내가 다 말랐는데요,, 물 조금 달라는 것도 염치없는 노릇인데, 음식까지 내 오라 합니다. 그래서 사르밧 과부는 사실 대로 얘기합니다. 사실은 먹을 양식이 없다고, 조금 남은 밀가루와 기름을 가지고 마지막으로 아들하고 빵이나 구워먹고 죽으려던 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이런 비참한 얘기를 듣고도 “네 말대로 하려니와” 마지막으로 아들하고 먹고 죽던지 그건 네 말대로 하랍니다. 이런 애기를 들으면 그랬냐고 내가 몰랐다고, 그래도 그렇게 어려워도 죽으면 되냐고, 가뭄 끝날 때 까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살 궁리를 해야지 하며 위로해야 정상인데,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고 말합니다.
13-14절입니다.
<13)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14)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엘리야를 위하여 먼저 만들고 나면 남는 밀가루가 없습니다. 그런데 먼저 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이 세상에 존재한 모든 사람이 경험한 시험 중에 가장 가혹한 시험이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분통 터지는 요구입니까? 얼마나 뻔뻔스러운 요구입니까?
하지만 여러분,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에게 한 요구는 모든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시는 요구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먼저’ 요구하십니다. 먼저가 아닌 것은 하나님께 가치가 없습니다.
다음 성경 구절들을 보십시오.
출23:19,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레2:12, “처음 익은 것으로는 그것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민15:21, “너희의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을 대대에 여호와께 거제로 드릴지니라”
잠3:9,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옛날에는 성미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요즈음은 거의 없어졌지요... 우리나라가 가장 먹고 살기 힘든 시절... 늘 양식이 부족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쌀이 부족했죠...쌀밥은 명절 때나 구경하죠... 어린 시절...도시락 싸들고 학교 다닐 때, 혼밥(보리쌀 섞었는지? 30%이상) 검사를 점심시간에 선생님이 검사하던 시절이 있었죠....그 시절에 우리 믿음의 어머니들은 밥을 지을 때, 먼저 성미를 떴습니다. 그 어려울 때 주의 종을 위해 기도하면서 쌀독을 열고 십자가를 먼저 긋고... 성미를 먼저 뜨고, 식구들 밥 지을 쌀을 퍼서 밥을 했습니다. 매 끼니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 성미 뜬 것을 교회로 가져와서 성미함에 드려서 주의 종이 먹고 살도록 했습니다.
여러분! 불과 몇 십 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쌀 생산량이 넘칩니다. 남아돕니다. 국민이 몇 년 먹을 쌀을 비축 해두고 있습니다. 남는 쌀이 처치 곤란입니다. 비축할 창고가 부족합니다. 한때는 북한에도 퍼주기도 했었습니다. 쌀로 막걸리를 해먹기 시작했고, 쌀 과자 종류도 많이 생겼죠...지금은 각종 기능 쌀이 쏟아져 나옵니다.
저는 그 어려운 시절 식구들이 먹을 양식이 없어 굶던 시절... 우리 믿음의 어머니들이 주의 종을 생각하면서 성미를 떠 하나님께 먼저 드렸기에 이 나라가 쌀 풍족 국가가 되도록 하나님께서 축복 하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의 말대로 자신의 마지막 양식을 ‘먼저’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에게 드렸습니다. 그 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굶어 죽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과부 모자의 인생을 책임지셨습니다. 흉년이 다 지날 때까지 사르밧 과부는 먹고 사는 문제를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바른 믿음, 바른 신앙은 무엇이든지 ‘먼저’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시간이든, 재능이든, 재물이든 하나님께 먼저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먼저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께 드릴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시간이 많아도 내가 먼저 사용하면 하나님을 위해 구별할 시간이 없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내 쓸 것을 먼저 쓰면 하나님께 드릴 것이 남지 않습니다. 그래서 먼저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에게 ‘먼저’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사르밧 과부가 그 요구에 응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을 책임져 주셨습니다.
어느 분이 인터넷에 ‘여자’를 재미나게 표현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여자는 처녀 때에는 비둘기고, 신혼 초에는 양이고, 10년 지나면 여우가 되고, 30-40년 지나면 능구렁이이가 된답니다. 그리고 늙으면 호랑이로 바뀐답니다. 그래서 나이 드시면 호랑이 할머니, 호랑이 시어머니가 되어서 할아버지나 며느리가 꼼짝 못한답니다.
다 맞다 고는 할 수 없지만 일리는 있다고 봅니다. 환경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고, 스스로 둔갑하는 바람에 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찌 여자뿐이겠습니까? 아이들도, 남자들도, 심지어 신앙인도 바뀌지 않습니까? 사람은 세월 따라 다 바뀌게 됩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경영혁신을 위해 마누라만 빼고 다 바꾸라고 했다죠?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는 것이 있는데, 자식이 부모에게 “이것 해줘라..저것 해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안변하는 것 같습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이것 해줘라, 저것 해줘라, 뭐 먹고 싶다. 용돈 줘라, 책 살돈 줘라, 등록금 달라, 자취하게 방 얻어 달라....당당하게 요구합니다. 좀 철든 자녀는 그래도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요구하지만, 웬만한 자녀들은 자기 쓸 것을 부모님께 맡겨 놓은 것처럼 당당하게 달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는 자식인 나를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을 책임져 주는 분이 있을 때 사람은 그렇게 당당합니다. 걱정이 없습니다. 말만하면 됩니다.
그러니 부모의 형편은 생각지도 않고,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요구합니다. 그러면 부모님은 “내가 은행이냐?”, “네가 요구하는 대로 막 나오는 줄 아냐?‘라고 타박 하시면서도 자식이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 주십니다. 성인이 되기 전에는 부모님이 나를 책임져 주시니 걱정거리가 없습니다. 요구만 하면 되니까요? 누군가가 나를 책임지고 있다면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부모님이 나를 책임져 주시는 대도 이렇게 좋은데, 하나님이 나를 책임져주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세상에서 제일 복 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책임져주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까? 그러면 사르밧 과부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십시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과 명령에도 순종 하십시오. 먼저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십시오.
여러분이 그렇게 하시면, 인류 역사상 가장 고단하고 궁핍했던 시절에 사르밧 과부의 인생을 책임지셨던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고난의 시절...가장 힘든 인생의 고비를 맞았을 때에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