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서 6장 4절 은혜와 진리의 가치2-새 생명
오늘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늘로부터 오는 은혜와 진리가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 지에 대하여 두 번째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주에 들으신 첫 번째는 은혜와 진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진노의 자녀들에게 임하여 죄를 깨닫게 함으로써 예수님께로 인도한다는 것을 들으셨습니다. 그렇게 인도한 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나오는 은혜와 진리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은혜와 진리의 가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들으셨습니다. 오늘 들으실 두 번째는 새생명을 가져다 주시 때문에 은혜와 진리가 가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실 정도로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6장 26절을 보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이 생명은 이 땅에서 잠시 살다가 사라지는 그런 생명이 아니라 영원히 죽지 않을 생명이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가급적이면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믿고 진리를 알며 영원히 살기를 원하십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을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나서 새생명을 받고, 새생명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인 로마서 6장 4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는 모든 일의 결과를 말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그러므로”가 나오면 그 앞에 “그러므로”에 대한 설명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러므로”의 결과는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았으며, 함께 장사되었고, 함께 영광된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결과입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에 참여하여 함께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가는 것을 새샘영 가운데 행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결과라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원인은 1-3절을 찾아보면 됩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무슨 말씀입니까? 여러분들이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머리로 긍정하거나 인정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의 문제는 예수님께서 무엇을 요구하셔도 내어드리지 못합니다. 마치 부자 청년처럼 말입니다. 영생은 원하지만 이 세상의 것을 포기하지 못해서 결국 예수님을 떠나가지 않습니까? 머리로 믿는 믿음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참된 믿음은 자신의 전부를 예수님께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믿음을 영혼이 구원받을 믿음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은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자신의 은혜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어주심으로 인해, 그리고 자신이 선포하신 진리로 인해 갖게 되는 믿음의 역사를 경험한 사람들의 믿음을 인정하십니다. 그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남을 경험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한밤중에 자신을 찾아와서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가 맞다고 말하는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 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러니까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천국을 볼 수도 있고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이런 믿음은 단순히 지식으로만 아는 지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구원받을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은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그들 내면에서 무슨 일인가가 일어났습니다. 교회와서 똑같이 말씀을 들어도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몇 년에서 몇 십년 동안을 교회에 다녀도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영혼이 구원받아 새생명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속합니다.
하지만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그 책임이 하나님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께 자신의 육신이 원하는 것만을 구하지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내어드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그럴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제대로 행할 수가 없습니다. 보십시오,
불순종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기 위해 자신을 드릴 수도 없습니다. 땅의 것을 잃은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천하에 속한 것들을 얻고자 마음쓰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의 생애가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거룩함을 드러낼 수가 없습니다. 또 나라가 임하기를 갈망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온통 자기 육체의 욕심을 이루는 것에 온 마음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그것을 거부하셨다는 이론적으로는 알지만 자기는 그것을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전에 어느 큰 교회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 교회는 하나님 나라 사역을 위하여 가급적이면 교회 안에서 쓰는 돈을 절약하고 국내외 선교로 돌리며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사역에 집중하는 그런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는 예배당 건물도 지지않고 학교 강당을 빌려서 사용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성도가 몇 만명이나 되는데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 부활주일에 다른 많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느라 부활절 계란조차 돌리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연세많으신 여권사님이 “내가 부활주일에 계란 하나도 못얻어먹는 이런 교회에 계속 다녀야하나?”하고 회의가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비춰주시는 말씀에 회개를 했다고 하면서 교회 홈페이지에 그 글을 올렸다고 합니다.
여러분! 계란 하나와 에서의 팥죽이 왠지 비슷하지 않습니까? 다행히 에서는 회개할 기회를 잃었지만 그 권사님은 회개할 기회를 하나님께 받아서 신앙이 다시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계란이 문제며 팥죽이 문제겠습니까? 그런데 새생명을 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보다 자기 안일과 육체의 욕심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헌신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계속됩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자신의 뜻을 맞추셨습니다. 예수님은 거기서 자유함을 얻으셨고 누리셨습니다. 기쁨과 사랑을 찾으셨습니다. 심지어 십자가를 지시는 그 전날에도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면서 하나님께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여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에 자신의 뜻을 맞추신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늘에서 이루신 것처럼 이 땅에서도 온전히 이루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지금 원하시는 뜻이 무엇입니까? 온 세상이 죄와 사망과 저주로부터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이 이것인줄 아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루시는 구원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드리셨고 십자가까지도 지신 것입니다. 그로인해 예수님의 뒤를 따르며 온전히 자신을 드리는 새생명을 받은 교회들에 의해 지금도 구원의 역사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생명의 역사가 온 세상을 덮고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영적 싸움을 감수하고, 또 고난을 감수하고, 순교를 감수해가면서까지 말입니다.
지금도 어느 지역인가는 수많은 피를 흘리면서 영적인 싸움을 감당하고 있는 선교사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마귀에게 속한 무리들과 계속해서 선으로써 악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 승리의 영광은 그리스도의 몫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지 않으셨다면 새생명의 역사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6장 4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고 증언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과 함께 죽으셨습니다. 그것을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 여러분들은 예수님과 함께 장사되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동일시하신 이유가 어디있습니까? 그 이유는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처럼 여러분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 지낸바 되었던 사람들만이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여 예수님이 주신 새 생명 가운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갈라다이서 2장 2절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똑같지 않습니까?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다. 나는 이미 죽었다. 그리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고 계시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새 생명은 옛 생명과 다릅니다. 옛 생명은 길어야 백 살을 겨우 넘기는 몇 사람들을 제외하면 거의가 100살을 못넘깁니다. 하지만 예수님에게서 주신 새 생명을 받은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새 생명은 영원히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이 영원한 생명을 죄인이었고 진노의 자녀였던 여러분들에게 주셨습니다. 자신은 십자가를 지시면서 말입니다.
그로인해 전에는 육체적으로만 생각하며 살던 사람이 이제는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눈으로 보는 법을 배우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예수님이 행하셨던 것처럼 행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은혜와 진리가 임하기 전에는 전혀 가치가 없게 느껴지던 것들이었습니다. 오직 관심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주기도문 대로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을 보면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은혜와 진리를 받아 새롭게 눈을 뜨신 여러분들에게는 더없이 귀한 말씀이지만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 다시말해서 예수님이 주시는 새 생명을 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이것이 마치 이상한 나라의 말을 듣는 것처럼 전혀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무엇을 이야기하는 지도 모르고, 왜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이 중요한지 지도 모릅니다.
예전에 한 사람이 아프리카에 갔습니다. 이 마을 저 마을을 여행하다가 어느 마을엔가 아이들이 맨발로 놀고 있는데 조그만 돌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그 돌은 분명히 다이아몬드였습니다. 너무나 놀라 이 사람은 아이에게 빵을 하나 주면서 이 돌을 어디서 주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빵을 받아 신난 이 아이는 그 사람을 데리고 다이아몬드가 많이 나오는 곳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 사람은 아이들에게 많은 빵을 사다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많은 다이아몬드 덩어리를 주워가지고 가서 파는 바람에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부자라고 다 좋고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나 그 지역의 어른들조차 아이들이 매일 같이 가지고 노는 그 공깃돌들이 자기들이 그렇게 일평생 배를 주리지 않게 만드는 큰 값어치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은혜와 진리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은혜와 진리를 가볍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버지에게서 받는 장자권과 축복권의 가치를 알지 못해서 팥죽 한그릇에 팔아먹고 나중에 가서야 그 가치를 알았던 에서는 후회했지만 이미 동생 야곱에게 모든 영적인 복을 다 빼앗긴 후였습니다. 그는 잃어버린 이 장자권과 축복권을 되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빼앗은 동생을 평생동안 미워하면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에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야곱과 그의 후손들을 위해서였습니다.
사울과 여로보암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왕이라는 직분보다 왕이 되게 해주신 하나님이 훨씬 더 귀하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결국 그들은 왕이 되었어도 행복하기는커녕 일평생을 불행하게 살다가 갔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은혜와 진리의 가치를 몰라 하나님이 주시는 새생명을 구하기보다 세상 것을 구하느라고 자기의 마음을 다 빼앗긴 사람들이 이와 같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구하고 계십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새 생명을 구하십시오. 이미 새 생명을 받으신 성도님들은 그 새 생명의 기쁨으로 살게 해달라고 구하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의 생명이 여러분 안에서 역사하셔서 여러분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기심을 받으시고, 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고 하나님의 의로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구하십시오. 그래서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참 진리를 알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에 이르며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새 생명의 삶을 살게 해달라고 구하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서 놀라운 일을 이루시고 여러분들이 예상치도 못했던 수많은 구원의 열매가 풍성하게 맺히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하나님이 덤으로 주시는 특벌 보너스가 있습니다. 전도서 5장 18-20절을 보면 그 특별 보너스를 받는 사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는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
그는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 안에서 주신 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 세상에서의 썩어질 생명에 연연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가 은혜와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에 많은 특별한 보너스를 누리면서 이 세상에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즐거움과 재물과 부요입니다. 여러분들이 근원적인 것을 구하심으로 이 세상에 하나님의 선한 일을 행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도 채워주십니다. 그래서 요한삼서의 가이오에게 그런 복을 빌어주셨던 것입니다.
요한삼서 1장 1-8절까지입니다. 조금 길지만 여러분들이 아셔야 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읽어드리겠습니다.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을 사랑하여 진리 안에서 믿음의 형제, 곧 주님의 일에 힘쏟는 헌신적인 형제들, 복음을 위해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주님께 헌신하는 사람들을 진리 안에서 마음을 다하여 돕는 가이오와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으시며 그들에게 영적인 복과 범사가 잘되는 복과 강건해지는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새생명을 받은 사람들이 누리는 복입니다. 축복이 은헤와 진리로 인해 새생명을 받고 온전히 그리스도께 헌신하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