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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 : 백가지
妖 : 요괴의
譚 : 이야기
백요담 [百妖譚] # 01
- 724
자정이 가까워 지는 시간, H시의 가장 번화한 유흥가는 대낮과 같이 환하였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이 곳은 갓 생기를 찾은 것 마냥 형형색색 옷차림의 사람들이 오색찬란한 네온등사이를 꿰질러 다니며 밤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 거리위에서 한 소녀가 각양각색의 가게들 문앞으로 건너 넘고 쓸려다니는 인파를 헤치고 지나 중심가에서 골목길로 굽어 들며 온 힘을 다해 달리고 있었다. 불빛이 탁한 좁은 골목에 완전히 들어서자 등 뒤의 번화한 중심거리는 순식간에 주변에서 멀어져 마치 새로운 세계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일게 만들었다. 소녀는 가까스로 숨을 고르며 고개를 돌려 골목어구를 살폈다. 어둠을 뚫고 두 남자가 아직도 끈질기게 뒤쫓고 있었고 소녀는 별 수 없이 재차 앞으로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별안간 소녀의 길을 가로 막아 택시 한대가 탁 멈춰섰다. 이어 뒷좌석이 차문이 소리없이 열렸다.
" 학생, 타요. "
" 택시? "
소녀는 의아한 표정으로 갑자기 멈춰 선 택시를 쳐다보았다. 아마 택시기사가 소녀의 머리를 쓸어올리던 움직임을 오해하고 곧장 달려온 듯하였다. 등 뒤에서 쫓아오던 두 남자는 이미 아주 가깝게 달라붙어 왔다. 이 택시는 뒷편에 있는 중심가로 가지 않고 이 골목길로 들어온 이유가 뭐지? 소녀는 잠시 그 생각을 내려놓고 재빨리 택시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뒤따라 온 두 남자는 연신 거친 욕을 담아내며 시동이 걸린 자동차 뒤를 집요하게 쫓아 뛰었다. 그 중 한명은 발로 차문을 여러번 걷어차기까지 하였다.
" 학생, 어디로 가요? "
기사인 남자의 목소리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평온하기만 하였다.
" 하아, OO아파트요. "
남자는 이미 애 띈 얼굴을 가진 여학생이 이런 장소에 드나드는 것을 익숙히 봐온 탓이 아닐까? 소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다 차창에 머리를 받치고 생각하였다. 자신과 같은 여학생이 오밤중에 이런 장소에서 뛰쳐나오고, 게다가 뒤에 건장한 두 남자까지 쫓고 있었으니 누가 봐도 그런 쪽으로 생각되겠지?
" 사실 아까 두 사람은 ... "
무언가 설명을 해줘야 할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남자는 소녀의 말을 들어주려는 의사가 조금도 없었다.
차창유리에 머리를 받친 채 시선만 움직여 남자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마침 가로등불이 환하게 차안으로 스며들어 상대방의 옆얼굴을 똑똑히 비췄다. 남자의 얼굴은 아주 평범하였다. 설사 9번을 더 만난다고 해도 10번째에 과연 이 사람을 알아불 수 있을지 소녀는 의심이 들었다.
남자는 아무 말, 아무 표정 없었고 침묵에 삼켜진 차량은 가로등불속으로 달렸다.
차량밖으로 점차 듬성듬성해지기 시작하는 경물들을 바라보며 소녀는 별안간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깊은 밤 택시 한대가 어두운 길을 달리고 있고 말없는 기사와 혼자인 여승객, 시가에서 벗어나는 고욋길...
갑자기 차가 멈춰섰고 소녀는 숙였던 머리를 번쩍 들어 남자의 뒷머리를 쳐다보았다.
" 다 왔어요. "
" 네? "
소녀는 창밖을 향해 시선을 기웃거렸다. 과연 이미 목적지에 도달하였다.
" 4000원. "
평소와 같이 만원 지폐를 한장 꺼내든 소녀는 잠시 멍하니 있다 다시 지갑에서 몇장의 잔돈을 꺼내 세여보지도 않고 넘겨주었다.
차에서 뛰어내리자 택시는 금새 빠르게 사라져버렸다. 어둠에 삼켜진 불빛을 마지막까지 쫓아 보던 소녀는 상의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액정시간을 확인하였다.
" 십분. 적어도 10km는 될텐데. 아무리 이 시간에 차가 막히지 않는다고 해도 ... "
#
아침, 아주 평범한 아침이 시작되었다. 덜컹거리는 지하철에서 꾸벅 졸고 있는 사람도 있고 신문이나 책을 읽는 사람도 있고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고개를 까닥이는 사람도 있었다. 출근시간 북새통을 이룬 인파들 사이에 밀리고 밀리다 틈새를 비집고 겨우 자리를 찾아 앉은 지연은 잠이 덜 깬 표정으로 멍하니 앞쪽만 쳐다보았다. 애 띈 얼굴에 반듯한 교복은 흔히 볼 수 있는 여고생들과 다를 게 없었다. 유일하게 의아한 점이라면 지연은 가방을 들고 있지 않았지만 누구 하나 그것을 주의하지는 않았다.
" 또 한 사람이네. 말세다, 말세. "
정장을 갖춰 입은 젊은 남자 두명이 각각 신문을 든 채 마주 말을 나누며 혀를 찼다. 그러나 걱정 띈 대사와 달리 남자의 어투는 조금 흥분되어 있었다.
그 옆에 앉아있던 지연은 남자의 손에서 신문을 다짜고짜 낚아채더니 훑어보기 시작하였다. 낯선 여고생에서 신문을 빼앗긴 남자는 멍한 얼굴을 하다 이내 난감한 표정으로 동행한 남자의 신문을 같이 들여다보았다. 신문을 훑어볼 필요도 없었다.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뉴스에는 커다란 제목이 채색으로 인쇄되었다.
「 살인마 연속 살인사건, 여섯번째 피해자는 명문대 대학생. 」
그러한 제목을 보며 지연은 이 신문지도 남자의 목소리처럼 흥분으로 가득한 것마냥 느껴졌다. 건조하게 메마른 일상에서 아마 이러한 소식들만 사람들의 마비된 신경을 자극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사건은 이러하였다. 짧은 십여일동안 이 도시에서 6번의 살인사건이 발생하였다. 단순한 살인사건이라고 보기엔 모든 피해자들의 시체는 머리만 남겨져 있었다. 맨 처음 사건이 발견된 것은 새벽녘 청소부가 쓰레기더미에서 머리통 하나를 찾아내면서 부터였다. 그 뒬 둘, 셋 ... 오늘까지 이미 여섯번째 피해자가 발견되었다. 연쇄살인사건이라고 확정 지은데는 이 사건들 모두가 하나 같이 피해자는 남성이고 살해시간은 자정을 넘긴 시각, 게다가 모두 날카로운 흉기에 목이 찢겨나갔다. 그러나 피해자들에는 일반 회사원도 있고, 대학생, 동네 양아치까지 다양한 신분인데다 나이, 직업, 외모까지 공통점을 찾기 애매하였다. 사건은 커다란 의문부호를 남기고 오리무중에 빠졌다.
" 시신 여섯개, 아무리 토막 살인하고 봉투에 담았다고 해도 부피가 작지 않겠지? 경찰들이 곳곳을 이 잡듯 수색했는데 손가락 하나 발견 못했다는 게 말이 돼? 범인이 사람 머리도 버젓이 버려놓으면서 시체가 발견되는 게 두려운 건 아닐 거 아냐. "
지연의 앞에 서있던 남학샐들이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곤 너도나도 한 소리씩 하였다.
" 장기밀매 조직단에서 저지른 범행 아닐까? "
한 학생이 말하자 다른 학생이 고개를 저었다.
" 내가 보이기엔 그저 변태인 거지, 시체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다던가 ... "
고개를 숙여 신문을 들여다 보던 지연은 작게 중얼거렸다.
" 시체는 .. 먹혔어 ... "
신문에 인쇄된 피해자의 사진을 보면 볼수록 어딘가 낯익었다. 고개를 기웃거리며 기억을 더듬던 지연은 순간 숨을 도로 들이키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 이건 어젯밤 나를 쫓던 두 남자 중 한 놈이잖아? "
무슨 영문인지 지연의 머릿속엔 집까지 타고 갔던 택시가 떠올랐다. 말없이 조용하던 기사, 단 십분으로 교외로 빠져나간 기이함 ...
" 그 남자 .. 어떻게 생겼더라. 기억이 안 나네. "
사람들의 대화는 이미 다른 주제로 넘어갔고 지연은 뒤로 등을 받친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 어제 그 거리에 다시 나가 볼까, 아 ... 배고파. 가기 전에 뭐 좀 먹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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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은 저녁보단 조용하지만 여전히 급급히 움직이는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끊이지 않는 번화가 구역을 몇번이고 빙빙 돌았다. 대낮에 이런 곳에서 홀로 다니는 교복 차림의 여고생은 눈에 뚜렷하게 띄였지만 누구 하나 신경쓰는 사람이 없었다. 길어구 난간에 기대 선 지연은 하나 둘 빠르게 스쳐지나는 택시들을 눈여겨 보았다. 어제 탔던 택시가 ...
" 택시번호가 2848이었나. 아, 맞아. 2848 ... "
입속으로 중얼거리던 지연은 갑자기 허리를 앞으로 꺽으며 크게 폭소를 터뜨렸다.
" 2848? 이판사판? 푸하하하! 번호, 풋, 너무 멋진데? 이판사판 ... 푸하하! "
주위 사람들의 눈총에도 지연은 허리를 앞뒤로 젖히며 연신 소리 높혀 웃어제꼈다.
" 이판사판이라, 재밌네. 어디 한번 이판사판으로 가볼까? "
웃음을 멈춘 지연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택시 한대가 느릿하게 그녀의 앞에 멈춰섰다.
" 2848! "
지연은 이내 손을 번쩍 쳐들었다.
" 타세요. "
확실히 어젯밤 그 남자였다. 목소리는 여전히 그 어떠한 감정도 섞여있지 않아 메마른 감이 들었다.
" 학생 어디로 가요? "
" OO목장. "
번화가의 길어구, 새하얀 원피스를 차려입은 한 여자가 방금 전 지연이 있던 자리에 걸어왔다. 아리송한 표정을 띈 얼굴은 좀 전에 떠난 택시를 쳐다보고 있었다. 여자의 매혹적인 미모와 얼핏 띈 천진한 표정은 길 가는 많은 남자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여자는 원래 지연과 그 택시를 쫓아갈 계획이었지만 앞에 마주한 두 남자를 번갈아 보다 이내 생각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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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은 시골에 다달은 교외에 자릴 하고 있어 택시는 가로등마저 몇 없는 좁은 도로를 달렸다.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버려진 터밭들 위에 찬 바람이 몰아치며 흙먼지를 일궈내자 음산한 기분마저 들게 하였다.
" 됐어요, 여기에 서주세요. "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았는데 지연은 기사더라 택시를 멈추게 하였다.
기사는 아무 말 없이 차를 세웠고 그 뿐만 아니라 시동까지 꺼버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두 눈으로 지연을 마주 보았다.
그림자가 깔린 밀폐공간속에 대치하고 있던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을 지연이 먼저 깨뜨렸다.
" 당신, 인간 아니지? "
첫댓글 요괴....인가요???
잘 보고 가요~~^^
서양 판타지가 대부분인데 동양 판타지는 어떨지 모르겠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동양 판타지라ㅎㅎ 되게 기대되요ㅎㅎ
감사합니다, 동양배경은 많지 않더라구요.
몰입도가 좋네요~ 다음편 기대되네요
감사합니다, 다음 편, 그 다음 편에도 부쩍 노력을 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