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어쨌든, 그렇게 묵직하고 불편한 아랫배를 감싸고 열심히 근무중인데, 또 소식이 왔다.
에이씨. 할 수 없지.
이 사무실 사람들의 평안과 안녕을 위해 내 한 몸 희생해야지. 즉시 일어나서 화장실로
향했다. 급해 죽겠는데, 오늘따라 똥 누는 놈들이 왜 이렇게 많아? 변기칸이 다 꽉 찼다.
젠장. 할 수 없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는데, 마침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고 한다.
1초라도 빨리 가자는 심정으로 냉큼 올라탔다. 그랬더니 방동호가 떡하니 있는게 아닌가?
“어? 어디가?”
“어, 로비에 좀. 너는?”
“(썩소) 어, 밑 층.”
하면서 난 바로 밑 층 버튼을 눌렀다.
“야, 한 층을 그래, 귀찮아서 이걸 타고 가냐? 좀 걸어라, 걸어.”
방동호는 쿠사리를 주면서 씨익 웃는다.
“누가 아니래냐? 그래도 이 몸이 좀 바쁘셔ㅅ….”
휘이잉 덜컹.
헉. 이게 뭐야?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멈춘 엘리베이터 타는 건 처음이다. 어라?
이게 왜 이렇지? 난 빨간 버튼을 막 눌러보았다. 그랬더니 수위실과 연결이 되었다.
“아저씨. 여기 엘리베이터 1호긴데요. 이거 멈췄거든요? 빨랑 좀 꺼내주세요. 아저씨.
들리세요?”
“어, 멈췄습니까? 잠시만 기다리세요. 승강기 회사에 연락해서 바~로 열어 드리겠습니다. “
바~로가 언젠데? 나야말로 바~로 지금 방구 뀌러 가야되거든? 지금 지상 십층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는 것도 끔찍했지만, 더 큰 압박이 복부와 엉치에 전달된다. 할 수
없이 난 바닥이 털썩 앉았다. 누르면 어떻게 좀 되겠지. 왜 누르다 보면, 다시 뽀르륵 하고
장속으로 들어가지 않는가? 그 효과를 한 번 볼까 하고 열심히 누르는데도 잘 안된다.
아무래도 이 대롱대롱 시츄에이션이 어느정도 작용을 한 것 같다. 배 한 가득히 가스가
찼는지, 애니멀적으로 더 이상 참을수가 없을 것 같아서, 그래도 한 배를 탔는데, 동료에게
미안하단 한마디, 아니, 지금부터 뀐다는 얘길 해서 경계태세를 갖추도록 하는게 예의인거
같아서 말을 걸었다.
“야, 동호.”
“왜?”
“저기…”
“왜에?”
“나 지금… 좀 급하다.”
“화장실?”
“아니, 그게 아니구.. “
“그럼 뭐?”
“그게 아니구…. (에이씨 모르겠다) ..나 방구 나올라고 그래.”
“푸하하. 야, 참어! 나 코 민감하단 말이야.”
“그게, 안될거 같단 말이다, 짜~쌰. 나도 얼마나 급하면 이렇게 미리 양해를 구하겠냐.
그러니까 니가 좀 이해해라, 응? 지금이라도 당장에 뀔 거 같아.”
“푸하하. 좋아. 나도 마침 마렵던 참이니까, 우리, 한 번씩만 할까?”
“어? 너도? 야, 잘됐다 친구야. 우린 정말 몸과 맘이 하나구나. 프로젝트도 성공할 것 같은
이 팀 웍. 눈물난다. 그럼…. 니가 먼저 해.”
“아니야, 너가 먼저 해도 돼.”
이런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사투의 현장에서도 서로 방구를 양보하는 이 아름다운 미덕.
두두두두두두두
동호가 먼저 뀌었다. 푸웁. 난 웃음을 억지로 참다가 그만 또 불충분한 근육조임으로 인해
나또한 푸쉬쉭 방구를 발사하고 말았다. 순간, 승강기 안 공기가 뿌옇게 탁해지면서 시야가
가려졌다. 난 손을 휘저어 우선 시야를 확보했다.
그런데, 승강기 한 구석에 동호가 픽 쓰러져 있는 걸 발견. 얼른 다가가서
“야! 괜찮아? 왜 그래! 정신 차려! “
하면서 마구 흔들었다. 그랬더니 게슴츠레 눈을 뜬 동호가
“어…어… 여기가 어디야? “한다.
“어디긴? 승강기 안이지. “
“어….머리가 띵해…. 숨을 쉴 수가 없어….”
보아하니 이 놈이 연극을 하고 있군.
“야! 방구는 누가 껴 놓고, 누구 보고 숨을 못 쉬겠대?”
“야! 난 따발총 방구긴 했지만 냄새는 안났다?”
“야! 웃기시네. 너도 났다? 내가 좀 심했을 진 몰라도. 흠.흠.”
“도대체 뭘 먹으면 그런 냄새가 나냐?”
“너도 꽁보리밥 세끼 먹어봐라. 걸어다니는 생화학 무기 된다.”
“왜? 너네 지금 보릿고개 넘냐? “
“그래. 추억의 보릿고개 재연 한다, 왜?”
“그래? 어머니랑? “
“어..”
딸깍 딸깍… 밖에서 소리가 들린다.
“안에 계십니까?”
수위 아저씨 목소리도 들린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아저씨. 여기 있어요. 빨리 꺼내주세요.”
나는 문을 탕탕 두드리며 소리쳤다.
“잠시만요.”
문이 쓰윽 열리면서 정비사와 수위 아저씨 얼굴이 보였다. 승강기는 윗층과 밑층의 중간에
걸쳐있는 모양으로, 우린 폴짝 뛰어내려야 할 형편이었다. 그런데, 승강기 문이 열리면서
정비사와 수위 아저씨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어헉…이게 무슨 냄새야?”
“(동호를 보며) 아이씨. 자식. 꽁보리밥 좀 그만 먹으라니까는. 에이씨 스컹크같은 자식.”
나는 승강기에서 폴짝 뛰어내려서 마구 꽁무니를 내뺐다.
“야! 야! “
뒤에서 동호가 마구 불렀지만 난 나몰라 패밀리하면서 내뺐다.
퇴근후, 내 방에 도착하자마자 언니한테 전화를 했다. 따르르릉…
“언니, 나, 요원이”
“어, 너가 먼저 웬 일?”
“그냥….”
“뭐 고민 있냐? 혹시…….남자문제?”
이 언닌 아무래도 어디 가서 돗자리 깔고 쪽집게 도사 해야 되는 인간인가보다. 내 얘길 다
한 후에 난 침을 꼴깍 삼켰다. 언니는 과연 뭐라고 할 것인가.
“간단하네”
“어? 간단?”
“어, 사귀면 되겠네.”
푹..나 쓰러졌다. 내가 그 소릴 들으려고 이 귀한 시간 쪼개서 언니한테 전화한게 아닌데…
“됐다, 됐어. 끊을게”
“끊긴, 왜? ”
“내가 상담소를 잘못 찾은거 같다. 다른데 가서 알아보려고”
“다른데 가도 아마 대답은 같을걸?”
이 말은 좀 흥미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답이 같을거라고?
“너도 이제 좀 더 나이 먹으면 알겠지만, 여자는, 그저 나 좋다는 남자 따라가는게 최고야.”
그거였나? 형부가 언니 좋다 그래서, 그래서 따라간거야? 결혼한거냐고?
“솔직히, 대학교 다닐 때만해도 그래도 조금은 낭만이나 로맨스 이런거 꿈꿨다, 나도.
그리고, 내가 빨리 성공해서 우리 엄마 편하게 해드려야 겠다는 생각도 변함은 없었어.
근데…어느 순간 모든게 다 귀찮아 지더라. 굳이 쉬운 길 놔두고 멀리 돌아갈 필요 있냐는
생각이 들더라구. ”
그 언니가 말한 쉬운길이 결혼인거야? 결국, 나보고 나 좋다는, 괜찮은 남자 하나 잡아서
결혼이라 하라는 거야?
“그리고 얘기 들어보니, 현준이란 애. 괜찮은 애 같은데 뭘. 지금까지 몇년이냐 ? 장장…그
세월을 너 하나만 보고 기다린 거잖아 결국.”
글쎄. 나 하나만 본건지, 도중에 여기 저기 들렀는 지는 아직 모르지만. 언니의 말은 계속
됐다.
“그리고, 어차피 사람이 살다보면, 죽기 전에 또 한 번 어디서 우연히 만날 수도 있고
그런데, 굳이 옛날에 개네 형이랑 좀 썸씽 있었다고 해서, 그걸 이유로 현준이까지
부정하는 건 좀 불쌍하다, 야. 그냥 좀 사귀어 봐. 사귀어 봐야, 좋은 앤지 어떤지 알거
아니야? 헤어지는 건 그 다음에 해도 괜찮잖아.”
그 말도 맞긴 맞지. 하지만 난, 그 만났다 헤어졌다 하는 그런 것들이 더 부담스럽고
귀찮다.
“어차피 한 달은 만날거라며? 그러니까 잘 해봐.”
후우….그다지 큰 진전은 없었으나, 이것을 내 운명으로 알고 받아 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아니, 그것 자체가 큰 진전일까. 어쨌든 난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 한달간
현준이와 진지하게 사귀기로 했다. 진지하게라고 해서 진짜 심각하게 라는 뜻은 아니다.
그냥…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데이트는 언제부턴데? “
“어..그게…당장 오늘부터..”
“오늘? 지금이 몇신데?”
“그러게 말이야. 벌써7신데. 나중에 퇴근하고 부르든지, 우리집 앞으로 오겠지 뭐.”
“야, 그러지 말고 지금 나와”
“어? 어딜?”
“음…삼성역에 코엑스몰로 나와. 거기서 우리 밥 먹으면서 얘기 좀 더 하자. 그리고
현준이란 친구도 여기로 나오라고 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먼 발치에서 봐줄게”
출처:죠이꼬의 소설카페
첫댓글 일빠!!!
앗, 이빠입니다. 담편 원츄!
재밌어요.빨랑 올려 주면 더더더 이뻐해주죠^^
시연이 활약 기대!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