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온 순간, 미열(微熱) 7
황급히 난 몸을 일으켜 욕탕에서 빠져나왔다. 큰일 날 뻔했다. 찰나 잃어버리는 이성에 돌아오는 건 후회뿐이겠지. 실낱같은 의지를 붙잡고 한 걸음 한 걸음 바닥을 내딛지만 쉽게 마음이 진정되질 않는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이토록 애타게 만들었을까.
“문제 있나봐?”
한증막에 앉아있는데 필립 형이 들어온다.
“없어요.”
나는 온몸에 흥건한 땀을 걷어낸다.
“너랑 철호 말이야.”
그가 내 옆에 걸터앉으며 의미심장한 말을 꺼낸다.
“그럴 리가요.”
난 수긍하지 않으며 고개를 젓는다.
「오래됐잖아, 8년이면. 그쯤이면 누구나 알 수 있어. 예상하니까. 사람 마음 다르면 얼마나 다르다고. 인지상정이지.」
정녕 그 말이 내게 위로가 되고 있나. 심장이 고동친다. 온몸의 혈관이 맥박치고 호흡이 거칠어진다.
「성욕에 대한 허덕임은 끝이 없어. 탈출구도 없어. 열 가지 넘쳐도 그 한 가지 부족한 게 관계를 망치는 법이니까.」
요즘 부쩍 염두에 두게 되는 걱정.
「하고 싶어.」
그의 손이 내 허벅지에 올라온다.
「너랑.」
나도.
「이리와. 이게 방법이 된다면.」
그럴 수 있다면……
그도 알아챘겠지. 시야가 흐려지는 건 내 눈이 풀렸다는 증거.
나는 가슴을 들썩이며 심호흡을 해보지만 그럴수록 그의 머리카락에서 떨어지는 땀방울이 내 가슴에 맺힐 뿐.
그는 어째서 이렇게 노련한 걸까.
그가 내 등을 끌어당기며 뜨거운 손이 내 가슴을 어루만진다. 손가락이 천천히 돌아갈수록 가슴은 점점 탄탄해지고, 애써 신음을 참아보지만 겨우 참았다고 했던 순간에 손가락이 돌기를 건드린다.
“하아……”
애타는 신음이 터졌다. 이렇게 되면 거부할 수도 없다. 어차피 그나 나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 감추려 해도 드러날 수밖에 없고, ‘그럴 수 없다’는 마음은 이미 몸으로 들켜버린 상태.
그의 육신 또한 브레이크 없이 발동이 걸려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극도로 치솟은 그의 페니스는 당장이라도 육신을 관통해야만 직성이 풀릴 기세였다.
그렇담 여기서 내 대답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침묵하는 게 곧 수긍이겠지.
“형……”
하지만.
“알아.”
그가 내 말을 자르며 다리 사이로 들어온다.
‘헉!’
가깝지도 않은데 벌써 그의 페니스가 내 뒤에 와 닿는다. 손으로 느끼는 감각이 아닌 몸으로 느끼는 감각이 훨씬 더 강렬한 건지. 난 아랫배에 힘이 바짝 실리며 ‘아차’하는 느낌으로 아래를 내려다본다. 묽고 끈적이는 프리컴이 팽팽해진 기둥을 타고 흘러내린다. 난 영문을 몰라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쉽게 반응할 줄은 나조차.
“아프지 않을 거야.”
그는 낮은 음성으로 날 안심시킨다. 서서히 입술이 다가온다. 닿을 듯 말 듯 아주 가까이에. 몸도 다가온다. 들어올 듯 말 듯 힘을 실으며.
애끓는 마음에 난 입을 꾹 다물고 그의 눈을 들여다본다.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을까.
한번이면 허탈하겠지만 사랑이면 큰일이야.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는 동안 그는 두 손으로 내 엉덩이를 움켜잡고 천천히 벌린다. 그럴수록 점점 그가 들어오는 느낌에 아래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워진다.
“인성……”
순간 그가 몸을 멈춘다. 어느 정도 들어왔는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 그는 한 번 더 내게 묻고 있는 듯했다.
괜찮겠냐고.
마치 그런 눈빛.
난 양심을 버렸는데, 죄책감을 짊어진 심경인데, 내게 동의를 구하는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바로 앞에서 사람 애만 태우고 머뭇거리는 그가 이토록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이미 느껴지는 걸, 이만큼 벌어진 걸 나더러 어떻게 수습하라고.
이 와중에도 내 몸은 그의 움직임을 갈구하며 그의 전부를 갈망하며 허리에 힘을 주고 있었다. 그의 침묵이 길어지는 동안 내 생각과 몸은 이율배반으로 뒤엉키고 있었다.
1분 뒤면, 10분 뒤면, 1시간 후에는……
그와 사정을 치른 순간이 끝나면 내가 어떻게 될지 두렵다. 모든 게 망가지겠지. 어느 것 하나 정상적일 수 없게 될 거야.
너무나 두려운데도 멈추지 않고 끓어오르는 것은 역시 견딜 수 없는 기대감.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영영 돌이킬 수 없게 돼.
7화 오랜만에 형이랑 미니데이트
“컷!” 내가 그랬다. “하데스 감정이 너무 건조해요. 제가 느끼기에도 마음이 흔들릴 정도로 최대한 로맨틱하게 감미롭게 대사표현 해주세요.” 나도 놀랐다. 내가 이렇게 프로페셔널 할 줄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체질인 것 같았다. 얼굴에 철판 깔고, 눈에 힘주고, 목소리를 똑똑 부러뜨리면 된다. 아무렴 내가 시나리오를 썼으니 중간에 한번쯤 컷! 외치는 건 봐줘야지.
그런데 도일 씨는 아닌가 보다. 나더러 가만히 있으라는 표정이다.
“왜요! 내가 쓴 건데! 내가 썼으니 내가 제일 잘 알지!”
라고 소리치진 않았다. 그럴 배짱까진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한 일곱 번쯤 끼어든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죄송해요. 이제 가만히 있을게요.”
라고 사과하진 않았지만 속으로 그랬다. 이런 내 맘을 몰라주는 도일 씨가 야속할 뿐.
지금 별자리 애니메이션을 더빙하고 있다. 홍대에 위치한 아카데미 스튜디오에서 작업 중인데 시설도 시설이지만 성우진이 아주 빵빵하다. 튜브기획사와 프리 계약을 맺은 신성을 비롯하여 투니버스, 챔프, 애니플러스 채널의 톡톡 튀는 캐릭터들을 몽땅 섭외했다. 문짜 와쪄요~
「언제 끝나? 홍대로 갈게」
형이다. 우리 형.
「이제 봄철별자리 시작했으니 두어 시간쯤. 아무것도 먹고 오면 앙대. 아라찌?」
나는 답장에 애교를 부렸다. 간만에.
「왜 그래?????」
뭐야. 우리 형이 이렇게 멋없어졌다니까. 물음표를 다섯 개씩이나 붙이고. 두 개까지는 나도 이해하려고 했어.
「왜긴, 중간계약금 받아서 형 맛있는 거 사주려고. 오랜만에 우리 데이또도 하긍. 우휫우휫~」
보내고 나서 후회되었다. 그만 할걸. 왠지 질린다는 답장이 올 것 같다. 그렇담 받아들이는 수밖에. 형이 무슨 죄야. 세월이 원수지.
「앙~♡」
허걱! 웬일이래?
하트 좋다.
난 자리에 앉았다 일어났다, 넥타이를 조였다 풀었다 안절부절 못했다.
‘아, 진짜 저건 아닌데…….’
아프로디테와 아레스의 불륜을 완전 사랑과 전쟁처럼 해버리고 있다. 애절하고 절실하고 눈물겨운 장면이 천박해지고 말았어. 키프로스의 샘에 들어가 숫처녀가 되는 장면 또한 어찌나 저속해져 버렸는지. 내 처녀작을 이렇게 희롱해버린 도일 씨가 미울 뿐.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모든 더빙이 끝나자 난 성우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넸다.
드디어 1단계 끝!! 나 자신이 이렇게 대견하고 뿌듯할 수가 없다. 하면 할수록 이 일이 너무 매력적이다. 내가 구성하고, 초안잡고, 현장답사 후에 탈고하면, 일러스트레이터가 캐릭터를 만들고 콘티를 그린다. 그 후에 서너 명의 애니메이터가 플래시로 애니메이션을 돌리고, 아트디렉터가 스튜디오와 성우를 섭외하여 지금처럼 더빙을 마치면 한 편의 작품 완성!
이거 봐봐, 왠지 중요한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모여 힘을 합치는 게 꼭 어벤져스 같잖아. 그럼 난 토르 할래. 크리스 헴스워스 너무 좋아.
“인성아, 같이 점심 먹을래?”
신성이 다가오며 말했다. 보니까 도일 씨와 같이 가려나 보다.
“난 약속 있어. 미안.”
참! 신성은 나와 동갑내기라 친구 먹기로 했는데 누가 성우 아니랄까 목소리가 장난 아니다.
“그럼 회식 땐 올 거지?”
“글쎄.”
난 스마트폰 다이어리를 클릭한다. 오늘이 금요일이니까 다음주 화요일에 회식이면……
“꼭 와요. 오후에 시사회 있어요.”
도일 씨가 불쑥 끼어든다.
“아, 네. 알아요. 당연히 가야죠.” 난 스마트 폰을 보여준다. 화요일에 맥주스티커를 잔뜩 붙여 놓았다. “봐요, 진즉에 체크해놨죠?”
“그러네요. 흠.”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묘한 눈짓을 한다. 맥주스티커 때문에 나름 웃고 있는 것 같다. 하기야 비로소 완성된 별자리 시사회에 맥주만 더덕더덕 붙여놨으니 내가 아마추어처럼 보이겠지. 문짜 와쪄요~
「아카데미 앞에 도착했어.」
앗! 왔나보다. 난 서둘러 가방에 시나리오를 넣는다. 프랭클린 플래너와 스타벅스 텀블러도 넣고, 맞다! 조만간에 핫트랙스 가야 되는데! 가서 신상 문구 있으면 싹쓸이해버릴 거야. 물티슈도 넣고, 어느새 굴러다니는 필기도구도 모아서 필통에 넣고, 토토로 책받침도 넣고, 토토로는 내가 왜 꺼냈지? 행여 나의 이런 패티쉬를 들킬까 재빨리 넣는다.
“저 먼저 갈게요!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신성아, 화요일에 보자~”
난 씩씩하게 가방을 둘러메고 밖으로 뛰어나간다.
어우, 이 날씨 좋은 거 봐! 저만치 차에 기대어 서있는 우리 형 머리 위로 황금빛 햇살이 반짝반짝 쏟아진다. 도대체 누구 애인인지 후광이 찬란하네!
“혀엉!!!”
난 손을 흔들며 후다닥 뛰어가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호흡을 크게 한다. 차근차근 하나씩. 오늘은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데이트할 거야.
형이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네, 갑니다. 난 여유 있게 걸으며 머리를 쓸어 올린다. 형은 이런 내 모습을 좋아했다. 좋아했다? 웬 과거형. 형은 이런 내 모습을 좋아한다. 앞머리 쓸어 올리는 거. 근데 조금 잘라야겠다. 코 아래까지 내려온다.
순간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머리칼을 흩트린다. 오늘 여러모로 도움을 주는군. 난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고개만 휙 젖혀 앞머리를 넘긴다. 형이 이런 것도 좋아했던 것 같다.
“오늘 녹음 잘했어?”
“글쎄, 나는 별로 맘에 안 드는데 아트디렉터가 너무 방관하잖아. 내가 무슨 힘이 있어야지. 암튼 편집된 거 시사회 보고 수정할 거 있음 요청하려고.”
“그래, 타자.”
형이 차 문을 열어주고, 운전석으로 간다.
“인성아!!”
그때 신성이가 우리 쪽으로 달려온다. 아이패드를 들고. 연두색 스마트커버를 씌운 게 내꺼랑 똑같다.
“응, 왜?”
난 차창을 내리고 말한다.
“너 아이패드 두고 갔어.”
그가 내게 건넨다.
“헉! 고마워.” 어쩐지 내꺼랑 똑같더라. “참! 인사해. 우리 형이야.”
“안녕하세요? 신성입니다.”
역시 애가 목소리야.
“안녕하세요. 최철호에요.”
우리 형도 인사한다. 내 친구한테 존칭을 쓰니 느낌이 새롭다.
“나랑 같이 프리로 일하는 성우인데 동갑이라 친구했어.”
난 형에게 신성의 소개를 덧붙였다. 그런데 갑자기 형의 표정이 좀 그렇다. 애가 맘에 안 드나. 설마 이상한 생각해서 질투하는 건 아닐 테고. 도대체 왜 그런담.
내가 괜히 미안해서 신성을 보는데 그 뒤편으로 저 멀리 도일 씨가 보인다. 이내 그는 돌아섰지만 왠지 형의 시선이 도일 씨의 뒷모습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그럼 간다~”
신성이가 뒤돌아 도일 씨 쪽으로 걸어간다.
“패드 찾아줘서 고마워!”
앞으로 잘 챙겨야지. 난 커버를 열고 룰 더 스카이를 클릭한다. 빨리 1레벨 더 올려서 아라비안 궁전을 짓고 싶다.
그러는 동안 형은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한다.
‘이거 봐. 좀 이상해.’
음악을 안 틀고 운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쩌다 우리가 싸웠을 때만.
“내가 음악 틀어?”
“어? 응. 그래. 눌러.”
난 플레이를 누른다.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무슨 음악인지 귀에 들어오지가 않는다.
“형.”
난 룰스에 있는 도일 씨 사진을 클릭한다. 배가 하늘을 날아 그의 섬으로 향한다.
“응.”
형은 전방을 주시하며 우회전 깜빡이를 켠다.
“도일 씨라고 알아?”
그의 섬에 도착하여 하나하나 살펴본다. 혹시 여기에 뭔가 있을까.
“글쎄.”
“처음 들어봐?”
“그런 건 아닌데.”
그 말에 난 패드 위로 움직이던 손가락을 멈춘다.
“알아?”
“응, 내가 아는 도일이는……”
왜 이럴까. 예감이 안 좋다. 문득 필립 형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어쩌면 우리 형도 도일 씨를 알 거라고.
어쩐지 괜히 물어본 것 같다. 형의 대답이 듣고 싶지 않아.
“명탐정 코난.”
형이 대답했다.
“뭐?”
나는 되물었다.
“코난이 크면 도일이잖아.”
“아, 그 만화?”
“응.”
형이 미소를 짓는다.
“하하.”
난 웃는다.
그래, 도일이는 명탐정 코난이야.
우린 홍대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스시오’로 들어갔다. 하양과 빨강, 회와 밥의 색깔을 띤 젠 스타일의 초밥가게.
“형, 그때 생각나?” 난 자리에 앉으며 말한다. “대학교 때 형이 나 맛있는 거 사준다고 횟집 데려갔던 거.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나 그때 회 먹을 줄 몰랐어.”
“그래?” 형이 놀란다. “내 보기엔 맛있게 먹던 걸로 기억하는데. 서울역 근처 말하는 거지?”
“응, 거기. 근데 나 먹을 줄 몰랐어.”
“그럼 내 기억이 틀린 건가?”
형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회전판에서 보리새우를 가져온다.
“기억은 맞아. 내가 맛있게 먹는 척했으니까. 몇 점은 물 삼켜서 먹고, 몇 점은 몰래 뱉다가 매운탕 나와서야 겨우 샤브샤브 해먹었어.”
“지금은?”
“지금은 잘 먹어.”
난 회전판에서 연어초밥을 가져온다.
“미처 몰랐네. 얘기하지 그랬어?”
“좋아서 못했어. 너무 좋으니까 조심스러워서.”
“지금은?”
“지금은 잘 먹는다고.” 난 가져다놓은 연어를 가리킨다. “이거 봐.”
“아니, 네 감정.”
“아~”
난 또 회 얘긴 줄 알고.
“어떤데?”
“좋아.”
형이 좋아서 회를 배웠다. 이젠 맛있게 먹으려고.
“좋아?”
“좋지 그럼.”
난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그냥 좋아?”
“너무 좋아. 왜, 형은?”
“나도.”
“나도 뭐?”
“좋다고.”
“그냥?”
“하하, 많이.”
형이 푸근하게 웃는다.
“휴우, 새삼 확인하는 때라니. 우리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됐어.”
“확인한 거 아니야. 듣고 싶었을 뿐이야.”
“나는 자주 하잖아. 형이 안 해서 그렇지.”
“안 해도 넌 알잖아. 나는 안 하면 몰라.”
형이 일부러 고개를 저으며 보리새우를 입에 넣는다.
“그러는 게 어디 있어? 다 알면서. 형이 더 키 크고 잘생겼으니까 지금 나보고 찬양하고 숭배하라는 것 같네.”
“푸웁-” 형의 입에서 밥알이 하나 튀어나온다. “누가 누굴 찬양하고 숭배해. 너야말로 그런 게 어디 있냐.”
“그러니까 내 말이.”
“이거 맛있다.”
형은 보리새우를 마저 먹더니 또 한 접시 가져온다. 저거 자꾸 먹으면 밤에 힘쓴다는데.
“아무튼 그때 얘기로 돌아가면, 그날 내가 진짜 많이 취했어. 안주 없이 술만 먹어서. 그런데 안 취했음 아마 형이랑 안했을 걸?”
옛날얘기 하니까 닭살 돋는다. 하지만 꺼냈다. 처음으로 가야하니까.
“고맙다 그래. 나랑 해줘서.”
형이 웃는다.
“참!” 맞다, 형한테 얘기해야지. “맞춰봐. 나 중간계약금 얼마 받았게?”
“얼마? 오백?”
“아니! 천만 원! 원래 별자리는 칠백짜린데 계좌 확인하니까 천이 들어왔더라고. 이상해서 물어보니 커미션이래. 아직 3D 애니 두 건이나 남았으니 이러다 우리 금방 부자 되겠어.”
“그래도 유월이면 끝나잖아. 그 후에 일거리는 있어?”
“구하면 돼. 내가 수완이 좋잖아.”
두말하면 잔소리. 형처럼 멋있는 사람이 내 애인인데 무슨 수완이 더 필요할까.
“그렇담 진짜 벼락부자 되겠다. 어째 불안한데, 네가 돈 버니까?”
“불안하긴. 이 돈 다 형한테 쓸 거야. 나 지프 가방 하나만 사고. 저기, 나이키 신발 하나 하고. 나머진 형이 다 가져. 난 필요 없어. 아, 맞다! 나 문구…….”
“나 다 준다며?”
“응……”
먼저 살 것 다 사고 얘기할걸.
“훗, 안 줘도 돼. 너 다 써.”
“싫어. 형 줄 거야.”
난 날치 알 롤을 가져온다.
“그럼 가방이랑 신발이랑 문구는 못 사잖아.”
“형이 사주면 되지.”
“내가?”
형이 눈을 치켜뜬다.
“사줄 거잖아.”
“내가?”
“응.”
“내가?”
“아, 진짜 왜 그래?”
난 앞니로 날치 알을 잘근잘근 톡톡 터뜨린다. 안 사주면 어쩌나 불안해서. 사실 그동안 집에서 돈을 부쳐줬는데 이젠 사회생활 시작했으니 안 받겠다고 효도를 선언한 터.
“난 안 사줄 건데?”
“뭐야, 너무해.”
“농담이야. 먹고 나가자. 사줄게.”
형이 기분 좋은지 찡긋 윙크한다. 참 간만에.
“그렇담 지금 형 계좌에 쏴줄게.”
난 아이패드를 꺼내 은행을 터치하고 인터넷뱅킹 완료.
“진짜 다 주는 거야?”
형이 놀란다.
“그렇다니까.”
못 믿겠으면 윙크 값이라고 해.
형이 열 접시. 그 중 두 개짜리 보리새우가 세 접시니까 여섯 개. 거기에 낙지랑 굴이랑 해서 다 정력제 최음제 그런 것들로 먹었다. 밤에 뭘 하려고 그러는지 은근히 사람 기대하게 만든다.
나는 일곱 접시. 담백한 걸로만 먹었다. 요즘 통 운동을 못해서 살찔까 그랬다. 실은 대학졸업을 앞두고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살이 잠깐 쪘었는데, 내가 원하는 허벅지, 가슴, 등 근육, 팔뚝 이런 데는 안찌고 배만 나와서 완전 별로였다. 주위에서도 내 배를 보면 형이 아깝다고 어찌나 뭐라고들 하던지.
솔직히 배는 좀 나오라는 거 있는 거 아냐? 안 나오면 그게 배냐고. 너무 그러면 정 없어 보여.
“소화도 시킬 겸 조금 걸을까?”
형이 배를 툭툭 치며 말한다. 그렇게 먹었는데도 하나도 안 나왔다. 역시 사람은 배 나오면 안돼. 알잖아?
“네, 걸어요.”
난 배에 힘을 준다. 조금만 먹었는데 왜 나왔지?
“왜 갑자기 존대?”
“오늘은 그러려고요.”
세월이 흘러 형이 서른하나, 내가 스물일곱.
형의 눈엔 내가 어떻게 비칠지 모르겠지만,
내 눈엔 형이 갈수록 더 멋있어지는 것 같다.
왠지 형은 어른이 더 잘 어울린다고 해야 할까?
문짜 와쪄요~
「오늘 도일이가 철호 봤다고 하던데, 서로 아는 척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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