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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아데스의 성단의 형제들 전문 7
동물과 식물의 진실된 모습
동물들은 이 지구에서 그대들의 동료로 주어져 있어요. 동물들을 먹든지 먹지 않든지는
그대들에게 달려있지요. 만일 그것이 그대들과 자신들의 삶의 질을 더해준다면 동물은
스스로 그대의 먹이가 되는 것을 반대하진 않습니다.
아무튼, 현재 동물들은 생명의 평등에 대한 존중과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동물들은 살아있지도, 느끼지도 않은 듯이, 그리고 인류의 노예인 것처럼 취급받고 있지요.
동물들은 그대들의 동료가 되기 위해, 즉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보여주고 길을
공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계되고 창조되었습니다. 동물들은 많은 다른 태양계들과
행성들에서 모은 유전자에 근거한 유전생물학적인 창조물입니다.
그들이 창조됨으로 해서 그 시스템들의 대표자들은 지구와 유전적으로 연결되게 되어서
이 세계를 들여다보고 방송을 하는 능력을 지니게 됩니다. 창조의 이런 측면은 실제로
이해된 적이 없죠.
동물들은 서로서로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게 하는 어떤 직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동물들은 다양한 외계의 공동체에서 오고 그들의 조상들과 아주 비슷하게 생겼는데,
그 조상들은 다른 행성에서 의식 있는 존재들이지요.
그대들이 실존 세계에는 얼마나 많은 수백만, 수십억의 행성들이 있는지를 알게 되면,
이런 아이디어는 그대들에게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닐 겁니다. 그대들의 행성을 창조한
자들은 다른 지역들에서 다른 씨앗들을 요청했습니다.
이 씨앗들은 그대들의 동료를 만들어주고 지구에 씨를 뿌리도록 유전 공학적으로 처리되었지요.
여기선 일부 동물들은 송신기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대들의 고양이들은,
그대들을 감시하는 데 고양이들을 쓰는 의식을 지닌 종족에게 직접 정보를 송신하는
존재들 입니다.
고대에 그대들 행성에는 많은 문화권에서 사자나 다른 큰 고양이류 동물을
지배 계층 사람들 곁에 두는 것이 유행이었지요. 이 동물들은 늘 거기에 있었습니다.
행성 전역에 서 있는 고대 동상들을 보세요. 거기서 그대는 무엇을 보시나요?
사자들 입니다. 고양이 족은 고양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 빼고는 그대와
비슷한 모습을 한 종족의 유전생물학적 도구를 대표합니다.
고양이 족 내지 사자 족은 그대들의 행성에 이동해와서는 남미와 멕시코, 이집트와
일부 섬 문화에서 일했습니다. 그들을 기리기 위해서 동상들이 세워졌죠. 고양이 족이
인류를 가르쳤을 때,
즉 특히 이집트에서 고양이 족이 자기들의 종을 섞어서 여기서
지배자들을 만들었을 때, 그들은 지배자들이 별에서 온 종족들과 직접 교신할 수 있도록
정보를 송신하는 고양이들을 남겨놓았지요.
이런 식으로 많은 지배자들이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런 식으로 지배자들은 안내를 받은
거지요. 고양이는 지배자들에게 텔레파시로 전해지는 정보를 주었지요.
고양이는 전송장치 내지 우주 무전기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보다 최근에는 고양이를 마녀들이 소유했죠. 그대들은 마녀들이 바보라고 생각하나요?
고양이는 다른 영역으로 연결하는 선이었던 거지요.
그리 고양되지 않은 에너지들이 들어오면, 고양이가 가로채서는 진동을 바꿉니다.
이제 그대들 중 많은 사람은 그대들에게 많은 정보를 전달해주는 고양이들을
집에 별로 두고 있지 않지요. 그러나 이 시대에서는 일반적으로 그대들은
이런 종류의 정보로 일하지는 않습니다. 고양이는 그대의 안내자이자 조력자이며
위안을 주는 위대한 동료이죠.
그대가 고양이에게 알레르기 반응이 있다면, 그것은 많은 것을 가리키지요.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알레르기에 관해 공부해왔습니다.
고양이에게 알레르기 반응이 있다는 것이 가리키는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그대가 사랑이 그대 삶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허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겁니다.
그대는 사랑이 들어오게 할 수 없는 거지요. 야옹이가 그대에게 어느 정도 성실과 충직과
사랑을 보이며 그대에게 가까이 다가올 때, 그대는 다른 존재와의 이 깊은 연결을 받아들일
수 없을 지도 모르죠. 이것이 특정 동물에 대한 알레르기의 한 상징적 표시이지요.
각 종족은 그대 존재의 목적에 도움을 줍니다. 그대의 생활 주위에 널리 퍼져있는 바퀴벌레는,
그대가 직시하진 않지만 표면화되려고 하고 있는 문제들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대는 바퀴벌레들을 보고 이렇게 말하진 않잖아요.
아, 그대 아름다운 작은 바퀴벌레여. 오늘 아침 내 부엌 싱크대에서 그대를 보다니
너무나 반갑구나. 종종 그대는 그들을 밟아버리거나 살충제를 뿌리지요.
그럼에도 바퀴벌레들은 점점 더 강해지잖아요,
그렇죠? 바퀴들은 아주 튼튼한 종족이어서 독소들을 계속해서 해독해가는 법을
익히면서 많은 에너지 변화들을 겪으며 살아남아왔죠.
바퀴벌레들은 그대에게 장식으로 불필요하게 입혀져 있는 것을
-그대 내부 속에 있으면서 나올 필요가 있는 것을- 직시할 것을 일깨워주려고
여기 있는 겁니다. 그대 속에서 그대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대 인류들은 어떻게 해서 종(種)으로서 보다 튼튼해질 수 있을까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그대가 할 일 전부는
그대가 체험하기를 원하는 바로 그 대상과 텔레파시를 하는 거지요.
지구와 자연에게 마음속으로, 그리고 소리 내어 밖으로 말을 하세요.
자연의 생물들이 그대의 영역을 침범해 들어오거든 그저 이렇게 말하세요.
내가 이런 능력으로 나를 가르치다니, 나는 얼마나 영리한가! 조그만 생물이여,
나는 네가 나에게 뭔가를 보여주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 나는 내 자신에 관한 지혜를 모아서 내면을 보기 시작해야겠다.
그대는 자신이 누구인지와 직면할 필요가 없도록, 그대를 성가시게 하는 것을
베일로 감추고 장막으로 가리며 없애버리기를 좋아합니다.
그대가 자신이 누구인지 직시한다면, 그대는 변화할 필요가 있게 되고,
그 변화는 너무나 많은 것을 그 과정 속으로 끌어들일 지도 모르는 거죠.
종종 그대는 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을 직시하기보다는 그대를 계속 불행하게
하는 것에 매달립니다. 그대가 혼자가 아님을 부디 깨달으십시오.
그 생물들은 그대의 동반자로서 여기에 있는 겁니다.
여기선 그대 밖에서 그대를 넘어뜨리러 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사물들이 그대를 넘어뜨리려 밖에서 온다는 교육을 받아온지라,
그대는 그런 파장을 밖으로 내보냅니다. 그대의 현실을 창조해내는 것은 그대 자신입니다.
따라서 그대는 현실을 강요해서 그대에게 해를 끼치는 쪽으로 현실을 굽히려고
최선을 다하는 셈이지요. 아시다시피, 그대를 해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랍니다.
질병과 해악을 만들기 위해선 엄청난 양의 노력을 쏟아야 하는 거지요.
개선된 것 중 많은 것들이 실제로는 최선의 이익을 주는 쪽으로 흘러가지
않았다는 것은, 바로 과학계에선 잘 알려진 사실이랍니다.
그러나 경제와 돈이 항상 끼어들어선 두려움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거지요.
이런 과정을 멈추기 위해서 뭘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동물들은 지금 그대들이 심리적, 영적으로 그대자신을 발견하는 데서 나오는
고통을 거울처럼 비춰주고 있는 겁니다. 동물들은 이 고통을 떠맡고 질병도 떠맡을 것입니다.
동물을 식용으로 사육하는 것은 동물과 인간의 바른 관계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지금 많은 동물 가족들은 엄청난 불편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불편은 질병으로 바뀝니다.
이 동물들은 그대들을 가르치려고 여기 있습니다.
그들은 그대들에게 그대 자신을 보는 데 필요한 것을 비추어주고 있습니다.
그대들의 애완동물들은 위대한 충직과 사랑 때문에, 그대가 그대 자신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것을 아주 자주 떠맡게 됩니다.
그대가 동물에게 다가갈 때, 그 동물은 그대가 평화로이 다가오는지,
창으로 찔러 대려고 오는지를 분간합니다. 그대가 동물이라는 생명 형태들에게
그대와 평등한 자리에 앉도록 허용할 때, 그대는 높은 차원의 세계에 있는
평의회에 앉을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신의 힘이 실존 영역을 통해서 자신의 다양한 창조물 모두 속에서
변장하고 숨어 있는지를 그대는 깨닫게 될 것입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에는 지성이 있습니다. 인류가 자신을 가장 진화된 종족으로
일컫는 것은 아주 잘못된 발상입니다. 그런 관념은 완전히 틀렸습니다.
모든 것 속에 생명력, 즉 의식이 있기 때문에 비교란 있을 수 없는 거지요.
바위와 산은 때때로, 인류가 이해한 적이 있는 어떤 상태보다 자기 목적을
훨씬 더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독소가 없고 사랑에 차있는 환경에서 길러지고 말을 듣고 자란 식물들은 그런
대접에 반응을 내보내줍니다. 이웃집에 있는 식물들도 그렇게 하지요.
그 식물들도 같은 사랑을 바라고, 사랑이 표현되고 있는 방향으로 구부려서
움직여갈지도 모릅니다. 식물계는, 동물계가 그렇듯이, 아주 너그럽습니다.
식물과 동물은 공짜로 줍니다. 그대가 에너지를 불어넣은 식물과 동물은
그 에너지는 물론 자신들이 아는 모든 것을 함께 나눕니다.
그들은 호르몬 같은 물질을 분비하여, 즉시 한 식물이 알고 겪은 것은,
모든 다른 식물에게도 보내지지요.
섭취하는 즉시, 그대를 다른 형태의 자아와 다른 형태의 의식으로 연결시켜주는
식물들이 있습니다. 식물을 통해 의식을 바꾼다는 개념은 그대들의 서양 세계에서는,
마약이라 불리는 것과 결부되어, 호의적이지 못한 이름으로 불려져왔지요.
살아있는 도서관의 특정 식물들을 섭취해서 살아있는 도서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많은 거룩한 의례와 의식(儀式)에서는 이미 이해하고 있던 일이지요.
그러므로 그대가 마음먹기만 한다면 지구를 훨씬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해주는 것들을
지구가 길러내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을 여십시오. 그대들이 더 많은 정보를 얻거나
자유로워지는 것을 바라지 않은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대에게 어떤 것이 나쁘다고 말하지요. 그자들은, 아주 아름다운 어떤 것을,
경악하며 다가가지 않아야 할 것으로 바꿔버립니다.
실제로는 사람이 되는 목적은, 의도와 의지, 의례와 존중의 형태 속에 있는 행성의
선물에 의해서 의식(意識)을 바꾸는 것이고, 삶의 장엄함을 발견하는 데 있습니다.
그대 서양세계에 유익한 많은 재료들이 식물계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식물성 약물로
살아있는 도서관을 활용해왔던 지역이 있습니다.
그런 지역들을 파괴하려는 프로그램이 있었다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일이지요.
식물은 그대에게 그대의 행성과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열대림을 불태워서 의도적으로 살아있는 도서관의 부분들을 파괴하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때때로 딱정벌레의 더듬이나 나무껍질이나 줄기에는,
사람 몸을 균형 잡고 치유해서 고차원적인 의식 상태로 가는데 쓰이는 열쇠가 있습니다.
모든 것은 목적을 위해서 여기 있으며, 사람이 그것들을 탐색할 때, 그것들은
사람에게 보답하고 선물을 줄 것입니다. 실제로 지구는, 사람이 이 살아있는
기적을 발견하길 기다려왔습니다.
이제는 지구상에서 운동을 할 시기, 지구의 목적을 위한 요청에 일어설 수 있도록
용감하게 성장한 다수를 위한 시기입니다. 그대는 지구와 조화로이 일함으로써,
가능성을 꽃피우는 새로운 통로와 길들을 만들 것입니다.
의도와 계획, 청사진에 의해, 그대의 목적이 진화임을, 즉 사람 몸속에 글자 그대로
형태의 변환을 일으키는 것임을 그대들 모두는 알았습니다.
발전하고 있는 내면의 과정을 외부에서 가속시켜줄, 행성상의 에너지 장소들을
그대들은 찾을 것입니다.
그대가 아직 이해할 수 없었던 힘으로서 존재하는 사랑이 그 열쇠입니다.
그러므로 그대가 지금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변할 것입니다.
그대가 그대 내면에서부터 사랑을 발견할 때, 자신의 생각이 그대 삶을 꼴 지움에 따라,
그대 내면의 믿음들을 비쳐 줄 거울을 자신의 외부에 만들어낼 것입니다.
그대가 실존의 생명력인 사랑을 탐험하는 것은 행성에 영향을 미쳐서,
행성도 그런 울림(vibration)으로 될 것입니다. -신문의 헤드라인에서 뭐라고 떠들든 말이에요.
사랑이 주파수이며, 빛도 주파수임을 잊지 마십시오. 둘은 다 에너지의 전자기적
방송으로서 실존합니다. 온 행성이,
인간의 유전자 구조를 조정함으로써 활성화될 수 있는 살아있는 도서관입니다.
이는 인간인 그대들이 살아있는 도서관의 열쇠이기 때문이며, 정서(emotions)는
그대들로 하여금 정보를 읽어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대들의 행성을 소유한 자들, 즉 지구를 맡고 있는 신이라고 주장하곤 하는 자들은,
사랑에 관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사랑의 주파수를 긴 시대 동안 열어 둔 문명이
그대들의 행성 위에는 없었습니다. 각 문명은 한창때와 융성기를 거친 뒤,
그대들의 관점에선, 침략 당해서 파괴되었지요.
역사적인 시대를 통해서, 사랑의 주파수는 다른 문명들에 의해서 간직되었습니다.
여러 시대동안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은 사랑의 주파수를 간직하고 있어서,
살아있는 도서관은 토착의 고유한 문명들을 통해 줄곧 어느 정도 열려 있었지요.
그들이 집사 일을 맡는 시기가 완료되었을 때, 그 주파수는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습니다.
사랑의 주파수를 이 행성에 불어넣어서 계속 빛나도록 하려는 실험이,
플레이아데스에서 지구로 다수 보내졌습니다. 필요한 때가 되면 그대들이 지금 알고
있는 걸 모두 활성화시킬 수 있도록, 플레이아데스에서 온 존재들이 입구를 열고 사랑의
주파수를 간직 할 수 있었지요.
많은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해 보이겠지만 그대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우리 일입니다.
이상적인 상태에선, 그대는 스스로 우뚝 설 것입니다. 자신을 모든 창조물들과 평등한
존재로 보며 또한 다른 어떤 창조물도 숭배하지 않는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대는 이렇게 말하겠지요. 나를 보라. 이 모든 것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나는 내 자신의 타고난 권리로 기적적인 존재다.
나는 내 타고난 권리로서 근원이다. 나는 답을 찾아낼 수 있다. 나는 미래를 볼 수 있다.
나는 과거를 볼 수 있다. 나는 내 삶의 주인이다.
때때로 그대는 우리에게 성가심을 느끼고 이렇게 말할 지도 모릅니다.
아, 저 플레이아데스 사람들은 너무해. 너무 귀찮은 존재들이야. 언제쯤 우리를
가만 놔둘 건가?
나를 찌를 수 있는 곳은 다 찔러댄다니깐. 그럼에도 그대가 배경에 깔린 정서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 목적의 핵심으로 되돌아온다면, 우리가 그대를 그대 자신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일은 뭐든지 다 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때, 우리는 정보를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대로 하여금 그대에게로 되돌아가게 하고 있는 거지요.
우리는 그대들 모두 스스로 존엄한 주체성을 가지고 자립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려고 합니다. 그곳은 바로 자신의 존재 속에서 평화로이 스스로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곳입니다.
그 곳에서 그대는, 주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건 간에,
자신이 선택하는 대로의 삶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목적이지요.
다가오는 시대에는 이런 자질들이 그대의 가장 소중한 특질로서 쓰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에너지의 파수군 자격을 획득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입에 금 수저를 물고 태어난 이들 마냥 -즉 타고나면서 부자인 사람들처럼-
나면서부터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진화하며 배웠습니다.
우리는 그대들에게서 배웁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는 그대들이 누구인지에 관해
아주 많은 것을 배운 나머지, 우리가 우리의 현실 속에서 우리 자신을
다시 정의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는 유머와 쾌활함을, 아주 필요한 것이기에, 개발했지요. 우리가 일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그대들이 그러하듯이 우리도 끝을 맞이하겠지요.
그리되면 우리는 모두 요점을 놓치는 거죠. 일종의 호혜주의 원칙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플레이아데스에서는 그대들이 하는 일 모두를 통해서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요.
그대들이 그 점을 이해했으면 해요.
이것은 일방적인 사건이 아니라 일종의 교환이죠. 여기에는 끝이 열려있어
고정된 결말이 없답니다. 그대들이 명확한 의도와 에너지를 투자한 결과로서
일어나는 그대들 삶의 명확한 변화는, 다른 곳에 그에 상응하는 효과를 내는 겁니다.
그대들이 살아서 이 효과를 느끼는 것-지구와 플레이아데스 양쪽에 걸치는 그대들이
다차원적인 자아들을 아는 것-이 우리의 의도이며 깊은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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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것은 일방적인 사건이 아니라 일종의 교환이죠. 여기에는 끝이 열려있어
고정된 결말이 없답니다. 그대들이 명확한 의도와 에너지를 투자한 결과로서
일어나는 그대들 삶의 명확한 변화는, 다른 곳에 그에 상응하는 효과를 내는 겁니다.
그대들이 살아서 이 효과를 느끼는 것-지구와 플레이아데스 양쪽에 걸치는 그대들이
다차원적인 자아들을 아는 것-이 우리의 의도이며 깊은 바램입니다."
감사합니다.
신대천광자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