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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의 효율성
“누구에게나 시간은 똑같이 주어져 있잖아요. 저는 그 시간을 잘 관리해서 최대한 학습에 투자했습니다. 학교에 오고 가는 시간마저 아까워서 학교에 거의 가지 않았고, 집에서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공부했습니다. 그 결과 좋은 성적으로 의대에 진학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현재 오클랜드대학교 의대를 다니고 있는 어느 학생의 대학교 1학년 때의 학습 경험담 중 일부이다.
이 학생과 인터뷰하면서 마치 기업에서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학습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습의 효율성’이란 학습을 하는 데 있어서 시간, 노력에 대비하여 얼마나 많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말한다.
오클랜드대학교는 학교에 출석해서 강의를 직접 들을 수도 있고, 그 강의를 집에서 온라인을 통해서 들을 수도 있다. 학교에서의 강의 중심으로만 진행되던 지금까지의 교육 방식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영향이다.
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실험 결과가 있는데,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교 노스리지(California State University Northridge)의 한 사회학 교수는 통계학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을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눠서 한 그룹은 강의실 강의를, 다른 한 그룹은 온라인 강의를 듣게 하는 실험이었다.
그 결과 온라인 강의 수강생의 성적이 20%나 우수하게 나왔다. 온라인 강의를 수강한 학생들이 더 많은 시간을 공부하는 데 투자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더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겠지만, 20%라는 성적 격차는 대단히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디지털 기술은 교육과 결합하여 학습의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데, 현재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범위가 온라인 강의를 제공하는 정도로 한정되어 있다는 점은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지식의 개념
학습의 효율성은 결국 지식의 습득에 관한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지식은 ‘개념적 체계’로 규정되어 왔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지식의 개념이 보다 확장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영어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이란 영문법, 단어 등을 열심히 공부해서 영어를 많이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영어권 국가인 뉴질랜드에서 오랫동안 살다 보면 영문법을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영어를 알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이 두 경우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서로 같은 것을 아는 것일까? 서로 다른 것을 아는 것일까?
한국을 포함하여 비영어권 국가에서 온 유학생들이 영어를 공부할 때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자신이 공부해서 알고 있는 영문법 지식을 말하기, 글쓰기 등 실제에 적용하지 못하는 문제이다. 사실 영문법을 완벽히 알고 있어도 실제로 영어를 구사하는 데에는 뉴질랜드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보다 못할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실제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그 지식을 몸에 배게 해야 하는데, 이 과정은 영어에 대한 지식이 많은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용이할 수는 있다. 반면에 뉴질랜드에서의 생활은 영어적인 지식을 통하지 않고도 영어가 몸에 배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지식의 변화
모든 지식은 실용화를 위해 존재한다.
건축학은 집을 지을 줄 아는 사람이 집 짓는 원리를 문자나 기호로 표현해서 개념화해 놓은 것이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학습을 통해 건축학을 공부하여 체득하게 한 다음 집을 지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지금까지 이런 방식으로 집 짓는 원리가 전수되어 내려왔다.
그런데 집을 짓기 위해서는 개념적으로 공부해서 알고 있는 지식 이외에 현장에서 보고 배워야 하는 것이 더 있다. 그것은 대학을 졸업한 이후 일정 기간의 인턴과정을 거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얼마 전부터 유튜브 영상으로 집 짓기를 배우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는 목조주택을 내 손으로 만들고 싶어서이다. 기초공사부터 지붕 만들기까지 건축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과정을 반복해서 배우고 있으며, 지금은 적어도 시뮬레이션을 통해 가상현실에서는 집을 지을 수 있을 정도로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다.
집을 지을 줄 아는 사람이 집 짓는 원리를 영상으로 표현해서 유튜브에 올려놓았고, 나는 그 영상을 통해 집 짓는 원리를 체득해 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식은 반드시 문자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반드시 개념적 체계로 규정할 필요도 없다. 지식은 아는 것이고, 그것을 표현하거나 정리하는 방법은 문자, 영상, 음향, 이미지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지식의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일방적인 강의 중심의 교육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다양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해 더욱 가능해졌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교육방식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는 머지않은 미래에 대학은 역사적 유물로 변할 것이라고 단언한 적이 있다. 고등교육에 들어가는 높은 비용에 비해서 교육의 질이나 내용에서의 개선이 없으며, 이미 많은 수업이 위성이나 쌍방향 화상을 통해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대학은 더 이상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이다.
드러커는 교육 비용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학교건물 등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성과가 너무 적고,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오늘날 지식 혁명으로 인해 훌륭한 강의만으로는 지식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으며, 교실에서의 강의 중심의 교육방식은 그 자체로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학생들을 오히려 수동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의 창시자인 마크 주커버그가 졸업한 미국의 기숙형 사립고등학교인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Philips Exeter Academy)의 교육방식은 매우 독특하다. 모든 수업은 ‘하크네스 테이블(Harkness table)’이라 불리는 원탁에서 토론 수업으로 진행한다. 이 토론 수업에서 강의는 전혀 없으며, 교사의 역할은 학생들의 준비 정도와 진행 상황에 따라 적절히 개입하여 토론의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다.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5명으로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교육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공교육으로 확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면 강의 중심의 교육방식에서 벗어나 이러한 새로운 교육방식을 현실적으로 다양하게 개발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미네르바 스쿨의 사례를 보면, 캠퍼스 없이 온라인으로만 수업하는 대학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네르바스쿨에서 사용하고 있는 ‘Active Learning Forum’이라는 온라인 화상 학습 플랫폼은 ‘하크네스 테이블’과 비슷해 보이지만, 수업 중의 여러 가지 기록 분석과 저장 등의 기능을 통해 훨씬 효과적으로 작동되고 있다. 또한, 교수의 강의 중심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의 과제 해결을 중심으로 하는 소규모 토론식 수업에 최적화되어 있는 프로그램이다.
교육은 본질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이다. 학교라는 건물이 없어도 커뮤니케이션만 가능하면 어떤 조건에서도 교육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 뉴질랜드 교육, 학교 커리큘럼, 자녀 학업, 진로 등 교육과 관련한 모든 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해주시면, 별도의 Q&A 코너에서 답변하겠습니다. 필자(newcan119@gmail.com)에게 보내주시면 됩니다.
전정훈_Edu-Kingdom College
North Shore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