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때마다 왜 앵무새를 죽이지 앵무새는 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을 즐겁게 해주는데 나뭇가지에 앉아있을때의 아름다움(예쁜 종류르만 봐서 인지도 모르지만) 흉내낼 수 있는 종의 흉내내는 모습, 날아갈때의 아름다움, 먹이 먹을때의 귀여움 등 이렇게 좋은 점이 많은 데 왜 죽이기일까 궁금했었다.
책의 마지막에 원래 앵무새가 아니었고 흉내쟁이지빠귀류라는 글을 보고 아하하며 어떤 것을 흉내내는 것일까 궁금해서 찾아보았으나 검색어를 다양하게 생각하지 못해서인지 사진만 많이 보았다. 너무 예쁜데 하필 제목이 그래서 억울 수 있을 것 같다.
처음 읽으면서 아이를 말하는 데 집안을 이야기하며 원래 그렇다, 우리 마을에선 다 고 있다라는 말을 해서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마지막의 문장에서 답을 찾았다.
고정관념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작가에게 고민을 많이 해서 적는 문장이 첫 문장인데 여기서는 오빠의 팔이 심하게 부러진 것으로 시작된다. 왜일까 이것도 제목이랑 관련이 있는 것일까 갑자기 김훈의 [칼의 노래] 겅렬했던 첫 문장이 떠올랐다.
다친 것으로 다른 부위도 아닌 팔인 이유는 어렵다. 다친 것만이라도 먼저 생각해보면 누구에게나 어떤 형태로든 고정관념은 있다. 어쩌면 이 부분이 나에겐 약점 아니면 다친 것이 아닐까 그런데 팔인 이유는 갈수록 태산이다.
무슨 진시황때 분서갱유 후 후대의 학자들이 사라진 서적을 찾아서 제대로 바르게 해석하는지 연구한 훈고학도 아니고 단어에 묶여서 고민하고 있는지 이번엔 갑자기 왜 이런 사소한 단어에 걸려서 넘어가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도 첫 문장에서 부터 예전에는 쉽게 읽었는데 책을 읽는 다는 것이 갈 수록 어렵다는 느낌이다.
다시 돌아와서 왜 팔일까 혼자서 해결할 수 있어서 다리인 경우는 도움이 필요하다. 어떤 고정관념이든 이것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사건으로 인해 다치면 그것은 어떤 방향으로든 바뀌게 된다. 성장을 하든 퇴보를 하든. 그것을 혼자하는 것이여서 일까 이렇게 생각하고 넘어가자 혼자 백날 생각해도 그 자리인데...
이렣게 정리하고 넘어가서 읽으니 테두리가 보였다.
p21 우리는 집 밖에서 놀 때는 우리 집에서 북쪽으로 두 번째 집인 헨리 라피엣 듀보스 할머니네 집과 남쪽으로 레들리 집까지가 행동반경이었습니다.
p29 결국 벙인은 바커스 에디 개울레 뛰어들어 자살한 미치광이 에디로 드러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처음에 품었던 혐의를 털어 버리지 못한 채 래들리 집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p31 얼마든지 인간을 유령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p40 메이콤군에 사는 아이들은 모두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p42 너희 아빠는 가르치는 방법을 잘 모르고 계신단다.
등 무수히 많이 나왔다.
이런것을 깨는것이 앵무새 죽이기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