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을 추기 위해 만든 음악, 또는 춤을 추기 좋은 음악을 통칭하는 단어.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일렉트로닉 뮤직과의 접점을 갖고 있고 영향을 주고 받았으나, 사운드가 어떤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지에 무관하다는 점에서 일렉트로닉 뮤직과 구별된다. 같은 춤을 추기 위해 만든 음악이라도, 대중음악이 아니라 고전음악의 경우는 춤곡이라고 부른다. 왈츠, 사라방드, 마주르카 등의 용어는 춤 곡의 양삭과 추는 춤 그 자체를 모두 의미한다. 대중음악에서도 음악장르와 춤이 이름을 공유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디스코가 대표적인데, 음악 장르 이름으로 사용되던 디스코는 어느샌가 그 음악에 맞춰 추는 (손가락 찌르기 같은) 독특한 춤을 의미하는 경향도 생기게 되었는데, 그래서 '디스코를 춘다.' 같은 말이 자주 사용된다. 테크토닉은 반대의 경우라고 볼 수 있는데 팔을 휘젓는 독특한 춤사위를 테크토닉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그래서 이런 춤을 추기 좋은 음악도 테크토닉이라고 자주 보른다. 다만 이러한 용례들은 예외적인 경우에 가깝고, 대중음악에서는 댄스뮤직의 장르와 춤의 이름이 별개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영어로는 Dance Music으로 모두 통일되나, 고전음악은 일반적으로 춤 곡이라고 번역해서 사용하고 대중음악에서는 댄스 뮤직 내지는 댄스 음악이라고 사용하므로 구별해서 쓰겠다.
19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 초반에 유행한 펑크(Funk)에서 파생된 댄스 음악의 장르로 빠르고 경쾌한 리듬이 특징. 펑크 음악이 점점 업비트가 강해지면서 더 이상 펑크의 범주에 엮을 수 없게 되자, 이러한 업비트의 빠른 펑크 음악을 "디스코"라고 칭하게 되었다. 단어 자체는 디스코텍에서 파생되었다.
디스코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 형성된 것으로 보여지며, 미국 동부의 뉴욕과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당시 미국의 지배적인 음악은 록 음악이었는데, 디스코는 이러한 록 음악의 지배적인 분위기와 댄스뮤직에 대한 지나친 멸시에 대한 반작용으로 출현한 점도 있다.
당시 미국은 1960년대 후반의 혁신적인 분위기로 인해 보다 쾌락적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더 이상 금기가 되지 않았고, 디스코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잘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아이작 헤이즈[1]나 배리 화이트같은 뮤지션들은 초기 디스코 음악의 확립에 기여했다.
디스코는 소울, 펑크, 라틴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디스코 밴드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인원을 자랑하기도 한다. 드럼, 베이스, 기타, 보컬과 같은 밴드이 기본적인 구성이며, 그 외에는 오르간(때로는 오르간이 두명), 브라스 섹션(트럼펫, 트롬본, 색소폰 등등등), 타악기주자(봉고, 우드블럭, 카우벨 등등), 여성 코러스을 포함하기도 한다.
음악적으로도 당시 점점 세분화되고 복잡해져가고 있던 프로그레시브 록 등 대중음악의 흐름에서 일부만 차용했다. 비트는 분명 세분화 되어서 드럼 자체는 엄청나게 그루브해졌지만, 나머지 멜로디를 담당하는 악기가 다소 단조로워지는 경향이 있다. 당시로서는 그렇게 많이 쓰이지 않았던 16비트를 많이 사용한 것도 특징 중 하나이다. 또한 음악 자체가 일종의 공식화가 되어있어서 16비트 드럼비트에 업비트 베이스라인을 끼워 맞추면 어떤 곡이든 디스코로 변형시킬 수 있는 마법의 음악이기도 하다. 노래방에 가서 리모콘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반주를 디스코로 바꿔주는 버튼이 있는데, 이걸 켜보면 마법을 체험할 수 있다.
일단 이 음악은 당시의 사회분위기에 비해 "지나치게" 말초적인 음악이었고, 댄스 뮤직에 대한 당대의 거부감도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게이 클럽이나 일부 제한된 사이키델릭 클럽, 히피 클럽의 플레이리스트에 오르곤 했다. 이러한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주목을 받게 되고 나서 메인스트림으로 부상하게 된 것은 1974년경이나 되어서의 이야기다.[2] [3] 그리고 당시로서 당연한 반응이지만, 평론가들은 이 음악을 저속하다고 엄청나게 깠다. 그러나, 30년 뒤에 디스코는 힙합 문화로 인해 재조명이 된다.
이전에는 위의 이유들로 인해 이래저래 "경박하고 품위없다"는 이미지가 강해서 하는 사람만 하는 비주류 문화였으나, 1977년 12월 개봉된 '토요일 밤의 열기 (Saturday Night Fever)'라는 영화와 동시기에 발매된 사운드 트랙이 베스트 셀러를 기록하며 '디스코'라는 장르가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하게 된다.
흑인들이 유행을 시킨 음악 중 하나이고 위에 써있는 내용대로, 게이 문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었다. 1979년도에 디스코 폭파의 밤 사건이 일어나 디스코 관련 상품을 불태우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고, 점점 인기를 잃어갔지만 음악 자체의 영향력은 시대가 지나면서 일종의 복고 열풍으로 인해 재조명되었다. 현재는 록 음악과 댄스뮤직이 섞이면서 디스코의 소스를 많이 차용한 곡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는 독자적으로 발전하여서, 나중에 Nu-NRG, Hi-NRG, 해피 하우스, 유로비트 등의 장르로 발전하였다. 이탈로 하우스가 유로비트의 조상이라고 하면 믿겠는가? 사실 유로비트를 느리게 하면, 후기 이탈로 하우스와 비슷해진다.
디스코 복고 열풍 이전에 디스코 시대 이후의 Hi-NRG와 쌍벽을 이루는 과도기적 음악으로 포스트 디스코(후기 디스코)라는 음악 장르가 존재했었다. 하지만 포스트 디스코는 소울과 재즈를 강조함으로서 [4]현대 R&B나 네오소울, 소울풀 하우스와도 비슷한 느낌이다.
디스코를 불렀던 여자 가수들은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자타가 공인하는 디스코 퀸으로 군림했던 여자 가수는 아만다 리어와 도나 서머가 있다. 특히 도나 서머의 Hot Stuff는 대한민국에 디스코 열풍을 불어넣었다.
대한민국에서 유행한 시기는 1978년부터이다. 원래 1975년경부터 비지스를 비롯한 다양한 디스코 그룹들이 소개되었으나 당시 일명 "다운타운 디제이"[5]들 사이에서 유행했을 뿐, 대중적인 인기는 없었지만 1978년 존 트라볼타의 토요일 밤의 열기가 유행한 이후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유행도 한 때, 80년대 중반 이후엔 디스코는 구닥다리 음악이 되어 내세우는 팀이 없게 되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2012년 크레용팝이 제목도 디스코 영화와 비슷한 Saturday Night로 디스코를 들고 나왔다. 결과는 실패. 하지만 후에 락을 디스코로 편곡한 빠빠빠로 대 히트를 기록하고, 다시 낸 싱글 앨범 제목은 Street go disco. 심지어 EDM 버전까지 내고 있으며, 이후 2016년까지 쭉 복고풍 디스코 댄스 곡을 내고 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디스코 열풍은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어지다가 디스코 폭파의 밤 이후, 90년대 부터는 인기가 사그러들었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 다양한 음악가(특히, 하우스나 일렉트로닉 뮤지션들)들이 디스코로 회귀의식을 보이고 있다. 다프트 펑크의 Random Access Memories나, EDM 씬에서도 누 디스코(Nu-Disco)나, 퓨처 펑크 등이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