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침투한 용공세력 즉 공산주의 자들은 해방이후부터 계속 존재해왔습니다.
WCC(world council of churches)산하 한국지부인 한국교회협의회(Korea National Council of Churches)에 가입한 교회들은 탈퇴를 촉구합니다. 지금은 몇몇 거대 교단들이 여기에 가입되있습니다. http://www.kncc.or.kr/ 를 보시면 그들의 실체가 보입니다. (좌파 종북세력이 계속 읊어대는 '세월호와 촛불, 국민주권시대' 를 운운합니다)
그리고 회개하십시다.
WCC는 기독단체를 가장한 기독교를 말살하고자 스탈린이 만든 단체입니다.
지금 정말 위험합니다. 한국교회가 이 배도의 길에 서 있습니다. 철저히 회개해야합니다.
지금 d-day를 향해 시간이 빠르게 달음질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선제타격을 한다해도 100%성공이 되게하는 데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금식과 눈물의 회개기도와 낮아짐에 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십시다. 소수의 사람들이라도 진실한 마음과 겸비함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한다면 이 환난이 변하여 구원이 날이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다음을 참고하세요.
근래 우리나라 교계는 생떼같은 거짓말이 나돈다. W.C.C는 용공도 아니고 용공일 수도 없다는 W.C.C 비공산계 이론이 바로 그것이다. 이 말이 오늘날 한국교회를 속이고 그 결과로 비록 일부이나 순진한 우리나라 기독교 신도와 교회를 붉은 손이 제맘대로 만질 수 있기까지 만들어진 것이 가슴 아픈 일이다.
일찌기 스탈린에 의하여 서방교회에 침투한 공산마수가 이제는 신흥교회에 속하는 전세계 교회들을 다 점령하고 우리나라 교회에도 예외없이 파고 들어와서 활동 독무대가 된지 오래다.
무산대중에게 복음을, 산업전사에게 신앙으로 회개와 구원을 전한다면서 민중(노동자 농민을 지칭, 망치와 낫) 조직을 이용하여 쉴새없이 산업선교 프로그램을 시대적 전도활동이라고 하던 도산은 꼬리가 잡혀 청천백일하에 본색이 드러나 붉은 짐승의 하수인 것이 밝혀지고 말았다.
이 무리들이 흩어져 없어진 것이 아니고 지금은 우리 생활과 관계가 깊은 환경, 경실 등 다른 단체에 침투하여 활동하고 있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W.C.C의 조직과정과 그들의 주의 주장을 성경말씀을 통하여 비쳐 보고자 한다.
W.C.C (World Council of Church) : 세계교회협의회
1) 서방교회가 국제사회 문제를 반영하기 위하여 설립.
2) 소련공산당이 침투하여 공산주의 노선 동조를 시킴.
K.N.C.C ( National Council of Church in Korea ) : 한국기독교협의회 W.C.C 의 영향 을 받으며 한국도산(KNCC-uim)과 한국 기독학생 총연(K.S.C.F)에 영향을 줌.
CCA (Council of Churches in ASIA): 아세아교회협의회
아세아지역교회협의회 WCC의 영향을 받음.
SCF(Student Christian Federation) : 기독학생총연맹
행동 강령을 ■ 세계를 새롭게 하소서 ■로 하고 있으며 대학 행정의 기업화, 관료화, 권위주의에 투쟁
WSCF(World Student Christian Federation) : 세계기독학생총연맹
ASCF(ASIA Student Christian Federation) : 아세아기독학생총연맹
KSCF(Korea Student Christian Federation) : 한국기독학생총연맹
행동강령을 ■한국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하고 있으며 대학 행정의 기업화, 관료화, 권위주의에 투쟁
UIM(URBAN Industrial Mision) : 산업선교 위원회
1961. 11. W.C.C 3차 회의 때 공산주의자 들이 노동운동을 펴기 위해 전도를 선교로 명칭을 바꾸고 선교신학 산업선교로 부름.
I.D.O.C (International Documentary of Church) : 현대교회 국제 기록
전 세계 기독교의 국제 정보센터 라 고 할 수 있는 출판사. 각국의 투쟁기록 호소문을 전세계로 무차별 배포한다.
3. 공산주의의 교회 침투
1) 서방교회 안에 침투하는 붉은말
서방교회라 하면 주로 영국, 불란서, 이태리 등 구라파 선진국 기독교회를 말하는데 그 침투와 공작전략을 보면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침투준비를 완료 하고 대전이후에 기독교 속에 들어가 활동하고 있다.
독.소전이 발발 하기 전 1939년 4월 스탈린은 프랑스 공산당 서기장 모리스 토레를 시켜 프랑스 카톨릭교회에 대하여 독일 나치에 대한 공동전선을 펴자 고 제안한 사실이 있고 2년후 1941년 9월 4일 전중 소위 스탈린의 내명서 라는 것을 전국에 발표하고 당시 KGB 두목 세르게이를 시켜서 그것을 찬성 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게 하는 등 전국에 스탈린 내명서에 동조 찬성케 하는 분위기를 조성케 했다.
동년 11월 6일 스탈린은 공산혁명 24주년 기념 붉은 광장에서 ■기독신도를 가장 양심적인 사람들■이라 찬사를 보내고 1943년 7월 4일 스탈린은 KGB 두목 세르게이와 알렉시와 니콜라이 등 3명을 크레뮬린 궁전에 초대하여 서방 교회 침투전략을 수립하고 1944년 8월 15일 KGB 두목을 시켜 스탈린 자신을 ■하나님이 명하신 지도자■라 떠들고 그가 기독교에 무자비하고 잔인하던 자신과 공산주의자들은 사실은 그렇지 않다 라는 인상을 서방 교회 에 주기 위한 위장전술이었다.
2) 세계대전 이후의 침투 공작
① 평화연맹조직으로 세계 교회협의회(W.C.C)의 조직준비위원들이 최종회의 를 끝내고 1946년 2월 드디어 발표하기를,
(■) WCC는 1948년 8월 13일부터 9월 2일까지 암스텔담에서 조직한다.
(■) 주제는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설계로 한다.
(■) 초대장은 1947년 여름까지 각국에 발송한다.
(■) 전쟁전 1939년 7월 암스텔담에서 모였다가 전쟁발발로 중단된 ■ 기독청년세계대회 ■를 오슬로에 소집하고 W.C.C 참가 동의를 묻는다.
(■) W.C.C 조직 이전에는 국제사회문제 교회 위원회(CCIA)를 조직 활동 하다가 W.C.C가 조직되면 국제사회문제를 반영한다.
(■) 제네바 근교 보세이에 에큐메니칼 훈련원을 설치하여 인재를 교육한다는 등 구체적 WCC 조직발표가 있자 스탈린은 이에 대비책과 영구적 세계 적화전략의 사령부격인 조직을 구상한 후 1947년 9월 폴란드 바르샤바에 주로 공산주의 지도자들과 위성국 공산주의자들 만으로서 소위 ■평화연맹■을 조직하고 회장에 니콜라이를 임명하여 수행케 했다.
동평화연맹 에서 위성국 공산주의자들을 1948년 8월 13일 WCC 제1회 총회에 60-70명을 파견시켜 서방교회 침투가 성공되어 서방교회내의 공작이 시작된 것이다.
그후 1948년 9월 소위 평화선언을 발표하고 10월에 스탈린의 ■평화공세■를 선언하고 1949년 2월 프랑스 공산당 서기장 카르디를 시켜 카톨릭 지도자들과 ■소위공산대회■를 모색케 하고 4월에 서방교회가 가담할 수 있는 ■세계평화회의■ 조직 준비위원 을 선출케 했다.
1949년 9월에 스탈린은 유엔대사 비스신스키 를 시켜 소위 ■국제평화결의안■을 제출케 하고 1949년 11월 전세계 공산당원들을 명하여 ■평화집운동■을 펴는 등 사람들이 전쟁을 기피하고 평화를 갈구하는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여 공산주의 확산운동의 수단으로 소위 스탈린의 ■공산평화전략■을 폈던 것이다.
이때부터 세계평화회의를 통한 공작활동이 전세계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제1차회의가 1950년 4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제2차회의가 1951년 5월 동백림에서 제3차회의가 1952년 4월 역시 동백림 에서 제4차는 1953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제5차회의는 1953년 6월 스탈린이 죽고 1954년에 스웨덴 스톡콜롬에서 제6차 회의는 1957년 콜롬보에서 열리고 그들은 서방교회 뿐만이 아니라 신흥교회까지 끌어들일 수단으로 ■평화회의■를 조직하기로 하고 준비위원을 선임한 뒤 공작이 시작된다.
이렇게 기독교 평화회의를 통한 공작활동을 전세계 기독교계를 미혹하기 위하여 1961년 6월 체코 프라하에서 600 여명이 참석한 서방교회 대표들이 목적과 강령으로
■ 기독교와 공산주의의 대화
■ 세계화해와 평화수립
■ 기독교와 공산주의 평화공존
■ 이때 후르시초프가 소위 동서공존이라는 말로 위장평화전략을 들고 나왔다. 제5회 회의가 1974. 9.2-9.9 쿠바에서 세계기독평화회의가 1975. 1.8. 인도 끌따얌 에서 아시아 기독교평화회의가 나왔다. 이것이 아시아 기독교 평화회의를 통한 공작이 점점 침투하여
1975.1.8-13 이것이 바로 1974년 초 모스크바 ■세계기독교평화회의■때 발의 했다가 1974년 9월 2일 쿠바 특별 ■세계기독평화회의■때 결의 한 것이다. 주제는 아시아 기독교에 의해 아시아의 평화문제 를 해결 하자.
참가국은 공산국가에서 북괴, 베트남, 베트콩, 소련 비공산국가로써 WCC, CCA 계열국가로 17개국 전부 W.C.C와 C.C.A 본부 실무자들 및 동독, 체코, 미국, N.C.C 등 여러나라에서 출석했다.
이때 북괴 대표는 ■ 조선 인민공화국 기독연맹■ 이라는 이름으로 부회장 김 성율 총무단으로 허성익 그외 1명, 통역 2명, 계 5명이 참석했다.
3) 세계교회협의회(WCC)를 통한 공작활동
제1회 총회 : 1948년 8월 암스텔담 창립총회
■ 위성국 교회 대표라는 이름으로 공산당원들이 60-70이 회원이 되고
■ 44개국 147교회 대표들이 모였다. 그중 체코의 죠셉후록막카와 폴란드 나즐로페트 2명이 WCC 국제사회문제교회위원회(CCIA)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부서에 부원으로 활약하게 되고 공산주의를 ■정의■라 말하고 2회때까지는 기독교 냄새만 풍겼다.
제2회 총회 : 1954. 8. 미국 에반스톤 총회
1954년초 제5회 ■세계평화회의■ 때의 전략대로 WCC 중앙위원회에 1명이 증가하여 3명이 되고 폴란드 C. J. 페트진이 WCC의 제3부장이 되고 제1회때 ■공산주의 불용납■을 뒤엎고 공산주의는 정의라고 발설한 것이 더 강화됐다. 또 ■스탈린의 평화공존■ 결의안을 통과하고, 현대정치적 정의는 공존이라는 것이다. 이때부터 붉은 짐승들이 양의 탈을 쓰고 WCC와 NCC, UIM, SCF 등을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조종하고 있었다.
이때 우리나라 보수진영대표로 명신홍 박사가 전기결의안에 반대하는 연설을 한후 퇴장한 사건과 이 회의에 우리나라 대표로 KNCC명으로 1명 각교단 1-2명씩 참석을 했다.
............. 더 자세한 내용은 http://www.mountainzion.co.kr 에 나와져 있습니다.
첫댓글 기독교불순분자들
망국으로가고 있다
21세기 종교는 퇴출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