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사상에서 가져온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김병로 교수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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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통일선교의 비전과 전략
* 기독교통일포럼(Christian Unification Forum)이 설립 2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의 통일선교 비전과 전략”이라는 주제로 기념포럼을 열었다.(2023년 6월 22일,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 이 글은 기념포럼 발제를 맡은 김병로 박사의 원고이다.-편집자
현 한반도 상황
현 한반도 상황을 북한, 주변국, 국내의 세 차원에서 살펴보자. 우선 북한은 남한과 미국을 향해 ‘강대강 정면승부의 대적 투쟁’을 선언하고 나섰다. 2023년 1월 1일에 공개한 조선노동당 제8기 6차 전원회의 결과 보도문에서 북한은 격앙된 어조로 남한과 미국을 향해 ‘대적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선언했다. 미중 갈등의 신냉전이 한반도에도 악영향을 미쳐 북한 비핵화에 난관을 초래한 데다, 2022년에는 남한에 새로운 보수정부가 들어서 대북정책이 달라졌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핵 사용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북한에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북한은 2022년 4월 25일 핵무기의 선제적 사용을 천명하고, 9월에는 이러한 내용을 법제화하는 핵무력정책법을 채택하였다.
북한은 사회주의 정상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일부 제거하고, 정치국 회의 등 각종 회의를 정례적으로 개최하며, 당 위원장 호칭도 총비서로 환원하고, 직제도 비서국 체제로 전환했다. ‘김일성-김정일청년동맹’의 명칭도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이라는 보편적 명칭으로 수정했다. 이러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경제의 주된 목표가 ‘정비보강계획을 기본적으로 끝내는 것’ 정도에 그치고 있어 여러 면에서 다급하다. 대신 전술핵무기를 다량으로 생산하고 핵탄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것을 천명하며 군사위성도 빠른 시일 안에 발사하겠다고 하면서 ICBM의 개발도 지속할 것을 과시했다.
‘강대강, 정면승부의 대적 투쟁원칙’에서 미국과 남한에 대한 대응을 전개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은 윤석열 정부의 공세적 대북정책에 대한 반응이다. 선제타격으로 전환한 한국의 ‘작계5015’의 연장선에서 2022년 다시 선제타격 논의가 가시화됨으로써 정면충돌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윤석열 정부가 제안한 ‘담대한 구상’에 대해서도 극렬히 비난하며 2-3년간 남북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북한 내 코로나19 발생 원인도 대북전단에 의한 것으로 결론을 내리며, 한국을 적으로 규정하는 대적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하여 한반도 상황은 긴장되고 불안하다.
둘째, 주변 정세는 미중 패권 경쟁으로 동북아 신냉전이 진행 중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면서 핵전쟁 위험이 높아지고 있고, 이는 미중 패권 경쟁을 심화시키고 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는 패권 교체기에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이론을 주장하고 있는바, 세계는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쇠퇴 과정에서 무력충돌로 치달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버드대학의 그레이엄 엘리슨 교수, 시카고대학의 존 미어샤이머 교수 등 대부분의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들은 이러한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펴고 있다. 특히 중국이 경제적으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전통적으로 반미 국가인 이란 등 이슬람 국가와의 경제협력을 증대하고 있는데, 이것이 군사협력으로까지 진전하여 중국과 중동국가가 연대하여 반미 연합전선을 펴면 미국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그 시기는 경제적 측면에서 중국의 GDP가 미국을 추월하는 2032년 혹은 2029년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실질 GDP는 2019년에 이미 미국을 추월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바, 이런 추세라면 향후 10년 동안 대만과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의 불안이 매우 높다. 중국의 부상과 한반도 개입은 한국의 통일·대북정책에 심각한 장애물로 작용한다. 이러한 불안정한 정세를 완화하고 미중 사이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신북방, 신남방 전략을 확장해야 한다. 특히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협력을 강화하는 일은 가장 우선해야 할 과제다.
셋째, 국내적으로 진보-보수의 갈등이 심각하다. 20대 대선 결과(48.6% vs 47.8%)가 보여주듯 한국 사회는 진보/보수 양 세력이 팽팽히 맞서 있으며, 대북·통일정책에서도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과 통일의 방향성 및 대북정책에 관해 상당한 의견 차이가 존재한다.1 여기에 여야 정치권 갈등과 진보/보수 정부 간 정책 단절과 연속성 부재는 심각한 문제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 교계가 사회 내 이념 갈등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진보와 보수는 모두 상대 집단이 변화된 남북관계와 통일환경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과거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비판한다. 진보는, 보수가 북한과의 교류에 소극적이며 냉전기 대결·반북적 사고에 갇혀 있다고 비판한다. 반면 보수는, 진보가 과거 냉전기 편향된 이념 잣대로 북한을 보던 낡은 사고에 갇혀 있다고 비판한다. 또한 보편가치와 한반도 특수성에 대한 관점에서도 차이가 크다. 진보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북한을 다루어야 한다고 보는 반면, 보수는 보편적 가치를 기준으로 북한 인권과 대북전단 등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반도 정세가 이처럼 불안한 상황에서 남북 간에 이렇다 할 대화채널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남북 관계는 역사상 가장 위험하고 적대적인 국면에 봉착해 있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이산가족 교류, 남북연락사무소 등 그간 수많은 왕래와 교류가 무의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남북교류의 경험은 국민들의 기억에 남아 있고 언제든지 다시 동원될 수 있는 복원력이 있다고 믿는다. 극단적으로 폐쇄적인 북한을 상대로 어떻게 협력을 유인하고 평화를 실현하여 한반도를 번영하는 나라로 만들어갈 수 있을까. 이러한 중요한 시점에 한국교회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국교회 통일선교의 과제(1): 북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진단 북한관: 북한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현재 남한이 안고 있는 북한 문제는 북핵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북핵 문제는 국가적으로 해결해야 할 주제이며 현 정부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설정하고 대북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2023년 4월 워싱턴선언으로 한미확장억제협의체인 NCG를 창설하고 북한의 핵공격에 대비하며,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형 3축체제(Kill Chain, KWMD, KMPR) 구축 등 여러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이러한 주제가 국가적으로 중요한 과제이기는 하나, 한국교회가 직접 정책을 제시할 주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와 시민사회가 논의하는 내용을 파악하고 견해를 표명하는 정도로 충분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보다 더 큰 주제인 북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북핵 문제 자체도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주제이나, 북한 문제는 더더욱 해결하는 데 시일이 많이 필요한 주제다. 북한 문제는 정치와 경제, 사회문화 등 북한체제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지칭하는 것으로, 북핵 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주제다.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 문제를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하며, 한국교회는 이러한 관점에서 ‘북한을 어떻게 바라보며 통일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라는 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주제를 다루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주의 국가의 체제 전환이라는 시각에서 정치 민주화, 경제 시장화, 사회문화 개방화 등 학술적 논의에 관심을 갖고 변화를 추적하는 일도 필요하겠지만, 북한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관점, 즉 북한관을 갖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북한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북한관은 대단히 중요하다. 북한을 보는 관점은 전통적으로 전체주의로 보는 시각이 다수이며, 비교 사회주의 시각에서 분석하는 경우가 많다. 이후 사회학이나 경제학에서는 사회체계론이나 발전론의 시각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연구도 이루어졌다. 이러한 여러 방법론에 의거하여 북한을 사회주의, 제3세계, 동아시아, 분단국, 체제 전환국 등의 역사적 맥락에서 들여다보기도 하고, 그러한 관점을 구체적으로 적용하여 유격대 국가, 극장 국가, 유사종교 국가, 봉건 국가, 신민 국가 등 다양한 관점으로 북한을 조망했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사회과학적 접근을 넘어서서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북한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공산주의 국가를 기독교에 대항하는 사탄으로 보는 관점에 따라 북한을 기독교에 대항하는 공산주의로 보고 사탄으로 배척해야 한다는 극단적 견해도 강한 편이다. 이러한 관행은 냉전시기 반공주의 교육에도 많은 부분 기인한다고 보는데, 이러한 논의는 기독교와 공산주의에 관한 신학적 논쟁과도 맞닿아 있어 자칫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사실 기독교 공산주의도 가능할 수 있기 때문에 공산주의와 기독교를 무조건 적대적으로 간주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나, 포이어바흐의 기독교 비판에서 볼 수 있듯이 공산주의가 워낙 기독교를 비판하면서 근대화 비전을 제시했기 때문에 공산주의가 반기독교적 맥락에서 태동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반공주의와 기독교의 입장에서 한동안 북한 문제에 관하여 ‘북한 붕괴론’이 회자되었다. 북한 붕괴론은 “북한이 붕괴할 것이다”라는 판단에서부터 “북한을 붕괴시켜야 한다”는 정책적 선택까지 다양하다. 북한 붕괴론은 과학적·객관적 근거가 없는 ‘희망 사항’(wishful thinking)일 뿐이며, 또 북한을 붕괴시킬 수 있느냐 하는 주제도 여전히 논쟁적이다. 과학적·객관적으로 판단하자면, 북한은 70년 동안 극단적 폐쇄국가로 지속되어 외부 환경과의 단절 속에서도 붕괴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내구력이 일정 정도 형성되어 있다. 이뿐만 아니라 6·25전쟁 이후 전시를 대비하여 전국을 200개 지역으로 분할하여 지역자력갱생 체제를 추구한 결과 사회주의권 붕괴와 식량난 시기도 버텨냈다. 따라서 북한 붕괴론에 입각하여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북 압박·봉쇄 정책(containment policy)은 바로 이러한 북한 붕괴론에 입각하여 추진되어 왔다. 대북 압박·봉쇄 정책의 목표는 표면적으로는 북한을 압박하여 대화의 테이블로 나오게 하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북한을 붕괴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추진된다. 그런데 문제는 압박·봉쇄 정책으로 북한이 항복을 하느냐 하는 것이다. 대북 압박·봉쇄 정책으로 희생되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이며 집권층은 항복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북한 붕괴론과 대북 압박·봉쇄 정책에 대해 냉철하게 따져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북한을 압박·봉쇄하여 지도부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북한 내 정치적 변화를 도모하려는 구상은 그다지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
처방 폐쇄체제를 변화시키는 세계적 수준의 대북 관여 정책, 북한 국제화 필요
대북 압박·봉쇄가 해결책이 아니라면, 반대로 북한 문제에 개입하고 북한을 끌어내는 관여 정책(engagement policy)은 북한의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가? 햇볕정책으로 북한이 변화했느냐 변하지 않았느냐에 대한 평가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으나, 대체로 북한 지도층의 입장을 바꾸어 놓지는 못했지만 사회 저변의 변화와 의식구조를 바꾸어 놓는 데는 일정 정도 성과를 거둔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시장화와 같은 정책변화를 이끌어 냈던 요인이 교류협력의 결과가 아니라 식량난으로 인한 대규모 기아사태 등 체제의 한계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에서 관여 정책의 효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시장체제가 가동된 이후 경제교류와 인적 왕래를 통해 시장이 활성화되고 사회관계와 의식구조가 변화된 것은 남한과의 교류협력에 힘입은 바 크다.
특히 한류와 같은 문화접촉과 교류가 촉발한 의식구조의 변화는 심대하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43%의 주민들이 한국 문화를 접촉한 경험이 있고, 문화접촉 빈도가 높을수록 주체사상 의식과 지도자에 대한 지지도가 약화된다는 사실이 경험적으로 확인될 정도로 문화접변의 효과는 대단히 크다. 북한 당국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반동사상문화배격법과 청년교양보장법을 제정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따라서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은 북한을 봉쇄하는 것보다 반대로 개방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북한 문제 자체가 극도로 폐쇄된 사회로부터 야기되는 것이므로 그 해결책은 더 봉쇄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단절된 사회를 연결시키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70여 년간 극단적 폐쇄노선을 추구한 결과 국제사회와의 교류가 단절되어 있고 소통에 큰 문제가 있다. 70년 주체의 추진으로 폐쇄체제의 경직성이 심각하다. 유럽에서 조기유학을 한 김정은 위원장에게는 이러한 현상들이 주체적이기보다는 극단적 폐쇄성과 편협성으로 인식될 뿐이다. 폐쇄사회 안에서 더 폐쇄된 정책을 추구하는 것을 ‘주체’적인 것으로 학습해 왔기 때문에 외부세계와 단절하는 정책을 추구할수록 지지를 받는다. 그러한 구조에서는 외부세계와 연결하고 개방하는 정책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북한 내부적으로 이러한 경직된 의식을 바꾸기 위한 정책을 심도 있게 추진하고 있다. 지난 70년간 주체의 이름으로 추진한 여러 정책으로 극단적 폐쇄주의 내지 국수주의 경향이 북한의 발전을 저해하는 심각한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은 ‘새로운 혁신’이라는 구호 아래 이러한 관행을 타파하고 변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제교류가 필요한 곳에서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제거하고 당 규약에서도 ‘김일성-김정일주의’ 언급을 제외하고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 대한 개별 이름을 삭제하는 등 기존 관행을 ‘혁신’하였다. 김일성·김정일주의나 초상화 부착, 휘장 착용 등은 대내의 정치적 결속을 위해서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국제적으로는 조롱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며 국가 간 교류에 많은 어려움을 초래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집권 초기인 2015년 12월 중국과 교환공연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는 2009년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로 시작된 북한식 세계화는 유럽 유학 경험을 가진 김정은 시대에 더 적극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6년 9월 27일 김일성종합대학 70주년에 즈음하여 “주체혁명의 새 시대 김일성종합대학의 기본임무에 대하여”라는 서한을 통해 세계 일류급 대학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외국대학 및 연구기관과 적극적인 교류를 추진했다. 국제학술회의에 참가한 북한학자들이 북한대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높이기 위해 해외 연구기관과의 교류·협력 필요성을 거듭 강조한 데서도 국제화에 대한 강렬한 의지와 태도가 확연히 드러난다. 향후 변화 중에는 해외여행자나 외교관계에서는 김 부자 초상화 대신 북한 국기를 착용할 가능성도 예상된다.
통일을 위해 북한의 경제력을 일정 수준으로 끌어올린 다음 통합을 추진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서는 북한을 지금보다 훨씬 개방체제로 변화시켜야 한다.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바로 극도로 폐쇄된 북한체제를 개방체제로 바꾸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체제를 개방시켜야 하는데, 그 방향과 전략이 바로 ‘북한 국제화’(Globalization of North Korea)라 생각한다. 북한 국제화 정책이란 북한이 국제사회의 규범에 맞게 행동할 수 있도록 국제적 경험 기회를 제공하고 인적 자원 역량 강화를 지원하는 정책을 말한다.2 비핵화와 평화체제 실현을 위해서는 북한이 현재보다 더 유연하고 개방적이어야 하므로 북한 국제화가 필요하다. 향후 10-20년 동안 북한의 개방에 초점을 맞춘 북한 국제화 정책을 전면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북한 국제화는 분단 70년 동안 달라진 남북한의 이질성을 좁히는 역할을 할 것이다. 남북은 국가와 민족 정체성이 상당히 달라졌다. 경제 격차와 정치적 차이, 문화적 이질성의 심화로 남북은 이제 한국과 조선으로 다른 나라가 되었다. 같은 말을 사용하지만 세계관과 가치가 다르다. 한국과 조선의 결정적인 차이 중의 하나는 역사와 민족의식이다. 한민족과 조선민족으로 분열되어 있는 현실은 통합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남북의 통합을 촉진하는 측면에서도 북한 국제화가 필요하다.
이뿐만 아니라 현재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과거와 달리 남한이나 북한 모두 민족보다 국가주의 패러다임이 강화됨으로써 상호협력보다 자국의 국가건설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남북 교류협력 과정에서 비판적 대북의식과 감정이 형성되어 북한 피로감과 반북 현상이 커지고 있으며, 북한 인권 개선 등 보편적 가치를 정책에 접목해야 한다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한계상황에 이른 한국의 발전동력 확보 차원에서 북한과의 교류와 협력이 필요하지만 북한에 대한 피로감은 심각한 장애물이 되고 있다. 북한도 국가제일주의의 기치 아래 남북협력보다 국제적 진출과 국제경쟁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북한 국제화를 위해 특히 북한이 필요로 하는 경제 분야의 인력양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국제협력의 공간을 활용하여 북한 개혁과 발전을 주도할 수 있는 인적 역량 강화를 위한 지식협력사업(Knowledge Sharing Project)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김정은 정권도 국제적 진출을 희망하고 있으므로 향후 5-10년 동안 북한이 경제, 학술, 문화, 외교 국제네트워크를 확장함으로써 북한이 국제사회에 편입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대북 지식협력사업이 상류층의 국제화를 위한 것이라면, 중산층을 위해서는 시장확대 정책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북한은 2002년 이후 최근까지 486개의 종합시장을 개설했고, 전문적으로 활동하는 상인은 120만 명을 넘어섰으며, 신흥 자본가인 ‘돈주’도 10만 명으로 증가하여 북한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이들 상업형 중산층의 성장은 기득권 상류층에 심각한 우려와 불만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지도부는 상류층에 주택 배분을 통해 불만을 달래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협력과 교류를 통해 북한의 시장화를 촉진하는 정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시장화와 더불어 외부의 정보와 문화가 자연스럽게 유입될 수 있으며 선교공간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인도주의 대북지원을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일이 필요하다. 주지하다시피 북한의 빈곤층 중에는 북한 당국의 보호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많으며 이들의 건강상태는 매우 열악하다. 국제보건기구에 수차례 보고된 북한 주민의 영양실조와 두뇌발달의 저하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부분이다. 이들을 위해서는 직접적인 식량과 의약품 지원이 필요하다. 분배의 투명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으나 기독교 신앙과 가치에 입각하여 인도주의 지원을 중단 없이 실시함으로써 선교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 인도주의 지원에 수반되는 불가피한 누수 현상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체제를 변화시키는 긍정적 요소로 작용한다는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한국교회 통일선교의 과제(2): 북한교회 세우기
진단 북한교회, 어떻게 보아야 하나
하나님께서 한반도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하나님의 선교라는 관점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1866년 대동강변에 뿌려진 토마스(Robert J. Thomas) 목사의 순교의 피가 그를 무참하게 죽인 조선인을 감동시킴으로써 이 땅에 기독교 복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874년 존 로스(John Ross) 목사가 중국 단동지역에서 조선 청년에게 전한 복음이 결실을 맺어 1880년대 성서 번역과 교회 개척의 부흥이 일어났고, 1883년 마침내 서상륜과 서경조에 의해 한국 최초의 교회인 소래교회가 세워졌으며, 1885년 한국에 첫발을 내딛은 언더우드(Underwood)와 아펜젤러(Appenzeller)에 의해 새문안교회(1887년)와 정동교회(1885년)가 각각 세워졌다. 한국교회는 복음전도와 함께 교육, 구제, 의료, 복지 등 여러 분야에서 사랑으로 봉사하였고, 일제의 암울한 시기에는 소망을 제시해 주었으며, 근대화·민주화 시기에는 확고한 믿음을 심어줌으로써 한국 사회의 발전과 중흥을 선도하였다.
이처럼 선교 초기에 역동적으로 성장한 한국교회는 1945년 8월 해방과 함께 한반도가 분단됨으로써 남쪽과 북쪽에 불균형적으로 분포되었다. 해방 직후 북한교회는 3,000교회, 30만 성도 규모가 되었고, 남한교회는 1,000교회, 12만 성도로 분할되었다. 그러나 북한의 공식자료는 1949년 북한지역에 20만 명의 개신교인과 5만 3,000여 명의 천주교인이 존재하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3 북한교회는 한국전쟁과 전후 종교탄압을 받으면서 극도로 침체되었다. 1958년 5월 30일 당 중앙위 상무위원회는 “반혁명분자와의 투쟁을 전군중적으로 전개할 데 대하여”를 결의하고 기독교인에 대한 대대적인 처형과 추방사업을 단행했다. 1958년 12월-1960년 12월에는 중앙당 집중지도를 실시하여 “종교인과 그 가족”을 분류했다. 이때 파악된 종교인과 그 가족의 숫자는 약 10만 가구, 45만 명으로 집계되었다.4 북한 당국은 1960년대에 조직적인 반종교 정책을 전개했다. 반종교 활동이 정당, 직장, 학교, 근로단체 등 공공기관을 통해 공적으로 행해졌으며, 공식적인 종교의식은 사라졌다.
1972년 북한 당국은 정치적 목적으로 북한식 교회재건을 시작했다.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의 활동과 3년제 평양신학원 운영 재개 등 체제협력적 기독교 활동이 시작되었고, 신약성서와 찬송가(1983년), 구약성서(1984년)를 발간하였으며, 1992년에는 신구약성서를 합한 성경전서를 출판하였다. 북한은 1980년대 들어 평양에 봉수교회(1988년)와 칠골교회(1992년)를 설립하였다. 1995년 대홍수와 식량난 이후 ‘고난의 행군’을 전개하면서 30만 명의 북한인이 중국으로 탈출하여 중국교회와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생존을 유지하며 기독교에 관한 소식과 복음을 접하였다. 그중 20만 명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으며 이들이 잠재적 기독교인으로 간주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현재 북한의 교회, 혹은 북한의 기독교인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5 하나는 과거 종교인(기독교인) 가족으로 분류되는 그루터기 공동체이고, 다른 하나는 식량난 이후 중국에서 복음을 받아 개종한 기독교인이다. 이러한 분류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북한의 기독교인을 구분해본 것이다. 해방 전 30만 명의 기독교인 가운데 현재 남은 그루터기 규모를 5만 명, 식량난 이후 탈출한 30만 명 가운데 복음을 받아 돌아온 20만 명의 탈북자 중 5만 명이 잠재적 지하교회 성도들이라고 보면, 북한에 현재 약 10만 명의 기독교인이 있는 셈이다. 잠재적 지하교회 성도들 가운데 그루터기 가족들로 중복된 인원을 빼면 숫자가 조금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북한의 기독교인 규모를 7만 명으로 추산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북한교회의 실체와 성격에 관해 상반된 주장들이 대립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북한 당국이 허용한 공인교회와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통제 바깥에서 활동하는 지하교회로 구분해 볼 때 공인교회와 지하교회에 대해 한국교회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공인교회는 무의미한가’, ‘지하교회는 진실된 교회인가’를 두고 많은 논의를 할 수 있다. 지하교회로 활동하고 있는 조직도 대부분 북한의 국가보위부의 정보망에 장악되어 있고, 심지어 국가보위부에서 직접 운영하는 지하교회도 있는 상황이다. 지하교회의 종교활동은 1997년부터 정보 요원들의 침투공작에 상당 부분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황장엽 씨의 망명 이후 보위사령부(1996년 조직)에 탈북자 침투반을 운영하면서 탈북자에 대한 선교 정보를 조직적으로 입수하고 있다. 중국의 선교사들이 비밀스럽게 운영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부분까지도 거의 대부분 북한 정보기관의 정보망에 들어가 있다. 북한의 정보기관은 이러한 루트를 역이용하여 지하교회 조직을 통해 정보도 얻고 외화벌이도 하는 등의 문제점이 있다.
이런 점에서 지하교회의 규모나 실체가 실제보다 과장되게 알려져 있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 활동에 대해서도 보도되는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교회는 북한에 실제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전달할 수 있는 강력한 통로가 되고 있고, 또 그루터기 신앙인들에게 기대와 희망을 줌으로써 이들을 격려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신중하고 지혜로운 판단과 접근이 요구된다.
공인교회에 대해서도 북한 당국이 동원한 어용조직이라는 측면을 넘어서는 진지한 관심이 필요하다.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을 지도하는 목사와 전도사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에 소속된 일군들로 공인교회는 통제하에 활동하고 있고, 성도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 당국의 통제를 받고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하지만 이 공인교회에 다수의 그루터기 신앙인들이 포함되어 있고, 또 동원된 사람들 사이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교회에 나오는 신자들 가운데는 선대 신앙인들의 후손들로 가족·친지 관계 때문에 종교인 가족으로 동원되어 나온 사람들도 섞여 있다. 이들은 이른바 그루터기 신앙인 가운데 일부다. 봉수교회와 칠골교회, 가정예배소에서 활동하고 있는 많은 북한 성도들은 기독교 집안의 후손들이라는 점에서 이들을 선교적 관점에서 중요하게 보아야 한다.
처방 북한교회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
따라서 북한교회 세우기를 두 번째 선교방향으로 정할 때 북한교회에 대한 평가를 수렴해볼 필요가 있으며, 어떻게 이들을 믿음의 공동체로 세울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며 적극적인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 공산주의와 기독교의 화해를 어떻게 이룰 수 있을지 준비해야 한다. 강렬한 전쟁체험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기독교에 대한 원한의 감정과 미제/선교사들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한 방법으로 경제적 궁핍으로 고통받는 북한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실천이 필요하다. 진정한 화해가 필요한 대목인데 어떻게 과거의 부정적 경험을 치유할 수 있을지, 그들의 실질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방법이 아니고서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가 하면, 북한의 공인교회와 지하교회를 어떻게 세워나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은 감시와 통제의 상황에서도 신앙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북한의 그루터기 신앙 가족들과 공인교회 및 지하교회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복음에 대한 직간접 접촉을 하고 있는 이 신앙인들은 북한 내에서 복음의 수용성이 가장 높은 집단이며 이런 점에서 선교적 의미도 크기 때문이다.
동독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북한의 공인교회와 지하교회까지도 정보 당국의 관리하에 놓여 있을 것이므로, 개방 시 북한교회 내부에서 공인교회와 지하교회 간에 정치적 갈등이 심화될 우려가 크다. 만약 남한교회가 이러한 갈등을 통합하려고 하지 않고 근본주의적 신념에 사로잡혀 공인교회와 지하교회의 진위 논쟁을 부추긴다면 갈등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교회는 두 그룹의 북한교회 구성원들을 이념이나 흑백논리로 접근하지 말고 각 그룹 안에서 신실한 성도들을 중심으로 서로 연합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와주어야 한다. 이러한 신실한 성도들을 중심으로 북한교회를 책임질 수 있는 지도자들을 세워 북한이 개방될 때 북한교회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협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연합적 리더십을 구축하면 자연스럽게 북한교회를 단일 교단으로 세워나갈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북한에 단일 교단이 세워질 수 있을지, 그리고 단일 교단을 세우는 것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북한교회가 단일 교단을 형성하면 남한의 분열된 교단을 대상으로 엄청난 권력을 행사할 우려도 없지 않다. 그러나 현재 남한의 여러 교파들이 경쟁적이고 소모적으로 선교활동을 펼칠 경우, 이단이나 타 종교에 비해 효과적인 전도활동이 어렵게 되므로 이러한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연합적 노력은 필요하다. 분파적이고 분열된 모습으로 선교활동을 펼친다면 북한 주민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종교로 다가가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북한교회를 지도해 나갈 지도력이 필요하고 연합교회를 세운다는 전략적 목표를 공유하는 남한 사역자들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선교를 전문으로 하는 사역자를 양성하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연합선교교육기관 설립이 필수적이다. 남한 내 교파를 초월하여 북한교회 지도자를 세우고 북한교회와 협력하여 선교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선교전문인력을 길러내는 일은 매우 시급하다. 이를 위해 최소한 주요 교단만이라도 교단 차원의 연합과 협력을 구체적으로 도모할 필요가 있다. 각 교단의 북한선교 책임자들이 포럼의 형태로 기구를 결성한다거나, 교파연합의 통일선교기관을 운영하여 개방 시기를 대비한 북한선교를 실질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보다 구체적인 내용들, 예컨대 효과적인 전도방법과 복음화 전략과 같은 것들은 연합선교교육기관을 통해 준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 통일선교의 과제(3): 진보-보수 갈등 해소를 위한 통합역량 강화
진단 진보-보수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20대 대선 결과(48.6% vs 47.8%)가 보여주듯 한국 사회는 진보와 보수 양 세력이 팽팽히 맞서 있는 상황으로, 대북·통일정책에서도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과 통일의 방향성 및 대북정책에 관해 상당한 의견 차이가 존재한다.6 여기에 더해 여야 정치권 갈등과 진보/보수 정부 간 정책단절과 연속성 부재는 더 심각한 문제다.
대립의 핵심 쟁점은 무엇보다 교류·대화 우선이냐, 북한 변화 우선이냐의 시각 차이다. 진보 담론의 핵심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교류와 대화가 우선이라는 입장, 즉 통일보다 대화·교류를 통한 관계 개선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관계 유지에 집중하다 보니, 북한 인권을 소홀히한다는 지적과 경제협력에 치중한 나머지 퍼주기 논란을 야기하고, 교류를 우선하다 보니 북한 인권 문제나 통일을 소홀히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반면, 보수 담론의 핵심은 정상적인 남북관계 수립을 위해 북한이 바뀌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왜 항상 저자세로 대화·교류를 해야 하나’, ‘북한의 요구에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 ‘북한에 대해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통일부는 필요하지 않다는 통일부 무용론까지 대두했다.(이명박 정부 초기 2008년 2월, 이준석 대표 2021년 7월 10일)
통일에 대한 관점도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보수의 통일은 변화되지 않은 현재의 북한을 통일의 상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통일의 목표를 자유민주적 질서와 가치에 두고 있으므로 사회주의와 주체사상을 추구하는 북한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반면 진보는 통일보다 공존 우선이므로 설령 북한이 남한과 다른 체제의 목표와 가치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공존의 대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로 다른 체제가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것을 우선적 목표로 하고, 나아가서는 공존 그 자체를 통일의 또 다른 유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작금의 한국 사회는 통일에 대한 관점이 냉전기와는 확연하게 달라지고 있다. 남북한이 하나의 국가를 구성하는 통일보다 두 국가가 공존하는 방식의 통일, 즉 통일보다 평화공존을 선호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의 ‘2022 통일의식조사’에 따르면, 우선시 되어야 하는 정부의 대북정책 목표로 ‘통일’을 선택한 여론은 전년 대비 18.6%→16.8%로 1.8%p 감소했고, ‘평화공존 및 한반도 평화정착’ 여론은 56.8%→62.7%로 5.9%p 증가했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서 주장하는 ‘연성복합통일론’은 이러한 달라진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는 실용주의 통일론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달라진 현실에도 불구하고 진보와 보수는 모두 상대 진영이 탈냉전 30년 동안 변화된 남북관계와 한반도 상황 및 주변국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냉전적 사고에 갇혀 있다고 비판한다. 진보는 북한과의 교류에 소극적인 보수 진영의 태도 및 입장에 대해 과거 냉전시기 대결적·반북적 사고에 갇혀 있다고 비판하며 북한과의 대화와 교류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한다. 반면 보수는, 진보가 객관적으로 달라진 남북관계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과거 냉전시기 편향된 이념 잣대로 북한을 보던 낡은 사고에 갇혀 있다고 비판한다.
또한 보편가치와 한반도 특수성에 대한 관점에서도 차이가 크다. 분단으로 적대적 대립을 지속해 온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북한을 다루어야 한다는 진보적 입장과 인권과 표현의 자유 등 보편적 가치를 기준으로 북한 인권과 대북전단 등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보수적 입장이 대립한다. 분단이라는 역사적 맥락과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여 남북관계를 해석하고 북한을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보편적 가치의 관점에서 북한과 남북관계를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시각의 차이 때문이다.
처방 진보-보수를 어떻게 통합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진보-보수의 관점 차이는 인간이 추구하는 근본적인 가치의 다름 때문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는 실체적 변화를 추구하는 정의(Justice)와 진실(Truth), 관계를 중시하는 평화(Peace)와 자비(Mercy)로 나뉘어 있어, 상호충돌적이고 불완전하다. 그럼에도 실체와 관계, 보편과 특수, 이상과 현실, 실익과 감정 등 철학적 물음과 근본 가치를 종합적으로 사유하고 판단하는 역량은 대다수 사람들에게서 미흡한 편이다. 교류협력을 우선하자는 진보 정책은 평화와 자비의 관계 중심적 가치에 비중을 두며, 북한 인권 문제와 북한 변화를 추구하는 보수 정책은 정의와 진실의 실체 중심적 가치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다. 불완전한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보다는 상대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 태도가 고착화되어 있어 통일 관련 전략 수립과 실행에서 그 유연성은 부족해진다. 대북정책에서 철학적 물음과 근본 가치를 종합적으로 사유하고 판단하는 역량은 대다수 사람들에게서 미흡하다.
이 두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려면 창의적 발상이 필요하다. 남북관계 개선과 북한 변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사고를 가져야 한다. 인간이 추구하는 근본적인 가치는 실체지향적 정의/진실과 관계지향적 평화/자비로 나뉘어 있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 둘을 어떻게 융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통일·대북 정책 추진에서 가장 먼저 성찰해야 하는 것은 실체적 변화와 관계 유지라는 두 가치를 모두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철학적 사유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대립적 가치를 조화롭게 조정하는 것이 정치적 역량이므로 이러한 역량을 발휘하여 철학과 가치에 기반한 통합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 이론은 이런 점에서 의미 있는 시사점을 준다. 정의를 세워야 한다는 절대적 목표를 잃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관계를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 목표를 실현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에 도움이 되는 대북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철학과 가치의 기반으로 회복적 정의 이론이 추구하는 균형 있는 정책과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에서도 진보정부는 남북관계 개선과 교류협력을 최우선으로 추진한 반면, 보수정부는 교류협력보다는 북한의 변화와 남북관계 정상화를 주장하였다. 과거 정부를 바라보는 관점도 이 둘의 가치를 융합하는 차원에서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그래야만 과거의 성과와 정신을 계승하여 그 경험을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관계를 고려하여 인적 접촉(human contacts) 분야로부터 인권 문제(human rights)로 점진적 이행을 하는 헬싱키 프로세스 모델을 차용해 볼 수 있다. 앞에서 제시한 북한 국제화 정책도 바로 북한의 변화와 관계유지를 동시에 달성하고자 하는 맥락에서 창안된 것이다. 근본적으로 충돌하는 가치를 융합하는 자세로 문제를 접근하는 회복적 정의 이론의 정신과 입장에서 해법을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방법과 전략에 담아야 할 평화·화해의 영성
위에서 세 가지 과제를 제시했는데, 이것을 추진하는 전략과 방법이 매우 중요하다. 위에서 제시한 세 과제 모두 현상을 진단하고 분석하는 차원과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과 전략이라는 두 차원을 담고 있다. 현상을 진단·분석하는 과정에서는 가능한 한 극단의 시각을 지양하고 종합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북한을 보는 관점, 북한교회를 보는 관점, 진보-보수를 보는 관점이 양극화되지 않고 수렴할 수 있도록 한국교회의 진단·분석을 정리해야 한다.
그런 후 대책과 대안을 제시하는 곳에서는 평화와 화해의 가치를 담아 문제해결을 도모해야 한다. 북한 문제를 풀기 위해 북한 국제화를 추진하고, 북한교회에 대해 의견을 모으며, 진보-보수 갈등을 해소하는 통합전략을 구사할 때, ‘평화와 화해의 영성’을 견지하는 일은 과제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평화와 화해는 기독교의 가장 본질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다. 평화와 화해의 방법으로 과제와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만 그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기독교적 가치를 사회에 확산하고 사회를 선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1) 평화의 복합구상
북한에 대한 정책, 북한교회에 대한 정책, 진보-보수 통합정책을 추진하는 일에서 중요한 것은 문제를 단선적으로 보지 않고 입체적·종합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 모든 과제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기독교의 가장 본질적 가치인 평화를 깊이 사유하고 평화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평화는 가장 본질적인 기독교 가치다. 하나님 나라가 평화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평화다. 이 평화를 실천하고 사회와 소통하며 선도해 나가기 위해서는 평화의 이론과 방법론을 좀 더 천착할 필요가 있다. 평화를 종합적으로 사고해야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평화가 추상적이거나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실제로 논의되는 국가와 사회의 현장에서 통용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특히 평화의 단선적 해법을 넘어서 복합적 사유와 전략이 필요하다. 평화는 힘으로 지키는 평화유지(Peace-keeping)에서 출발하나,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평화를 만들고 세워나가는 평화조성(Peace-making)과 평화구축(Peace-building)의 복합적 사유와 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특히 교회와 기독교NGO 같은 시민사회는 농업과 식량, 교육과 보건을 비롯한 다양한 영역에서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평화구축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이 대립적·복합적 가치를 동시에 실현하려면 요한 갈퉁(Johan Galtung)이 설파하는 트랜센드(Transcend)와 같은 창의적 아이디어가 아니고서는 어렵다.
과거 서독은 균형 잡힌 대동독 정책을 추진하였다. 1979년 소련의 동독지역 핵미사일 배치에 대응하여 서독은 미국과 협력하여 서독지역에 1983년 핵미사일을 배치하여 핵에 맞대응하는 공포의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지속적인 평화협상과 경제협력, 연간 수백만 명의 인적 왕래를 중단하지 않았다. 헬싱키 프로세스 또한 안보-경제-인권 바스켓을 연계하는 정책을 구사하여 유럽의 냉전 갈등을 해결하였다.
남북한도 제재 해제와 안보 이슈를 연계하고 평화선언과 평화협정, 경제협력과 인도주의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구상하는 복합전략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들의 뛰어난 사고력,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활용하는 지략도 필요하다. 신포 경수로와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은 복합적 평화구상의 한국적 해법의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2) 화해의 영성
남북한 대립 상황에서 화해만큼 절실한 주제는 없다. 200만 명이 목숨을 잃은 한국전쟁은 남북 주민의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주었고, 그 참상의 기억은 지난 70년간 남북갈등의 근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의 대립은 남과 북이 서로 요구하고 있는 갈등의 실질적 내용과 감정이라는 두 차원으로 구성되는데, 여기서 화해란 감정적 문제를 어떻게 해소하느냐 하는 주제를 다룬다.7 즉 화해는 과거의 부정적 경험을 다루는 문제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연결하며 존중하는 것이다. 화해는 사과로 시작하여 용서로 마무리되는데, 이를 위해서는 포용과 관용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그간 남북이 화해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7·4남북공동성명부터 기본합의서, 6·15공동선언, 10·4선언, 4·27판문점선언, 9·19평양선언까지 남과 북은 화해를 실천하기 위해 여러 제안을 하고 협력을 추진하였다. 하지만 남북한은 아직 과거의 문제를 꺼내 진지하게 논의한 경험이 전무하다. 화해의 9단계 과정에서 보면 첫 단계에도 진입하지 못한 것이다. 화해를 위해서는 남과 북이 서로 분단의 피해자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피해자의 관점에서 화해를 시작해야 할 텐데, 그 부분에 관하여 아직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화해를 위해서는 남북한이 전쟁으로 어떤 피해를 겪었는지 각자 피해자의 입장에서 진술하고 경청함으로 공감하며 진지한 사과를 해야 한다. 6·25전쟁을 필두로 남북 간 감정이 쌓여 있는 여러 사건에 대해 화해를 촉구하는 선언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 물론 한국적 상황에서 과거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짚고 넘어가는 것이 화해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대량학살과 같은 잔인한 폭력에 대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하지 않으면 정의가 깨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실화해위원회를 통해 진실을 밝히고 용서하는 방식을 통해 화해를 촉진하는 회복적 정의가 더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사람은 한편으로는 응당한 처벌을 통해 범죄에 상응하는 보복을 하기를 원하는 마음과 다른 한편으로는 용서해야 한다는 두 마음이 동시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의 진보-보수 갈등을 해소하는 데도 화해는 필요하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이념 갈등은 앞에서 설명했듯이 인간이 추구하는 근본적인 가치가 충돌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러한 가치의 충돌은 사실 공의와 사랑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가치가 충돌하는 것이다. 이 땅에서 이러한 가치를 함께 실현하기 위해 자기희생을 바탕으로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 기독교의 신앙이자 가치이다. 남북문제만 아니라 진보-보수 갈등 이슈에 대해서도 모순된 두 가치와 입장을 융합하는 화해 영성을 실천함으로써 기독교적 가치를 확산해야 나가야 한다.
이와 같은 화해를 실행할 수 있는 개인적, 집단적, 제도적 역량강화는 매우 중요하다.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기존의 질서나 구조를 파괴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하다. 폭력으로 사회관계가 깨지고 갈등이 증폭되는 것은 쉽지만, 다시 관계를 회복하고 재건하는 화해의 과정은 매우 어렵다. 화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폭력을 가한 집단에 어느 만큼의 처벌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보편적인 기준이나 해결책은 없다. 그러나 화해는 필요하며 진실을 밝히는 작업과 그러한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화해의 역량, 레더라크(John Paul Lederach)가 주장하는 ‘도덕적 상상력’(moral imagination)과 같은 화해의 역량은 평화로운 미래의 관계를 위해 더없이 필요하다.
통일 너머의 비전을 보여주는 한국교회
국제정세가 신냉전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비핵화나 한반도의 통일·대북정책 추진 환경은 매우 불리해졌다. 이러한 국제정세 속에서 북한은 한국과 미국을 향해 ‘강대강 정면승부 대적 투쟁’을 전개하겠다며 핵무기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겠다고 한다. 국내적으로는 대북정책과 통일문제를 두고 진보-보수 간 갈등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집중해고 적극 추진해야 할 정책의 방향은 극단적으로 폐쇄된 북한을 현재보다 훨씬 개방된 형태로 바꾸기 위한 ‘북한 국제화’이다. 북한 내부 개혁과 경제발전을 주도할 수 있는 인적 자원 양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북한도 ‘세계적 수준으로의 발전’을 목표로 국제화를 추진하고 있어서 북한 개방을 통해 선교의 공간을 확장해나갈 필요가 있다. 또 하나님 나라의 모형인 북한교회에 대한 관심과 이에 관한 연구와 실천적 노력, 국내의 진보-보수 간 갈등을 해소하고 통합하기 위한 기독교의 역할이 시급히 필요한 때다. 대북·통일정책을 둘러싼 교계 내의 진보-보수 간 차이를 어떻게 조정하며 통합해낼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과제를 실행하기 위해 기독교는 핵심 가치인 평화와 화해의 영성을 견지하며 한반도 문제해결에 적용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평화와 화해의 이론과 방법론을 학습하여 대북·통일정책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평화와 화해의 가치를 확산함으로써 한반도형 평화모델을 창조해 나가야 한다. 그럴 때 한반도 통일에 기여할 뿐 아니라 통일 너머의 비전과 가치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주(註)
1 김범수·김병로·김병연·김학재 외, 『2021 통일의식조사』(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2022).
2 박명규·전재성·김병연 외, 『북한국제화 2017』(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2013).
3 조선로동당출판사, 『조선중앙년감 1950』(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50), 365.
4 이항구, “북한의 종교탄압과 신앙생활,” 「현실초점」(1990년 여름): 111.
5 김병로·윤현기·이원영·천지혁, 『그루터기: 북한종교인 가족의 삶과 신앙의 궤적을 찾아서』(박영사, 2020).
6 김범수·김병로·김병연·김학재 외, 앞의 책.
7 화해의 구체적 내용과 방법에 대해서는 김병로, 『한반도발 평화학: 통일이 평화를 만나다』(박영사, 2021) 참조.
김병로|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주립대학교(Indiana St. Univ.)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 럿거스대학교(Rutgers-The State Univ. of New Jersey) 대학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북한, 조선으로 다시 읽다』, 『북한의 지역자립체제』 등이 있다.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및 북한연구실장, 아신대학교 교수 및 북한연구소장을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