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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MBC를 보면 젊은 남자 아나운서는 오상진 아나운서 하나뿐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오상진 아나운서로서야 일이 많아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회사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것에 만족해할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아나운서 한 명이 <환상의 짝궁>, <일요일 일요일 밤에-경제야 놀자>, <찾아라 맛있는 TV>, <불만제로>, <네버엔딩 스토리> 등 다섯 개의 고정 프로그램에다가 틈나는 대로 온갖 다른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출연하는 건 문제이지 싶다. MBC는 불과 1년여 전 김성주 전 MBC 아나운서가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경제야 놀자’부터 MBC 라디오 <김성주의 굿모닝 FM>까지, MBC엔 김성주 밖에 없나 할 정도로 많은 프로그램을 맡았다 갑자기 프리랜서 선언을 하여 MBC 전체를 웅성거리게 했음을 잊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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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우연히 일본 TBS의 간판 아나운서인 아즈미 신이치로의 눈물어린 고백이 담긴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남들 보기엔 더 없이 부러울 위치인 스타 아나운서가 무슨 연유로 TV에 나와 눈물까지 흘렸던 걸까? 기무라 타쿠야와 드라마 <굿 럭>에 함께 출연하기도 했던 아즈미는 입사하자마자 바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힘에 부치도록 많은 프로그램을 맡아 왔다는 점에서 오상진 아나운서나 김성주 전 아나운서와 처지가 비슷하다.
그런 그가 한 프로그램을 통해 마치 365일 학예회를 치르는 듯 빡빡한 지금의 삶이 힘에 겨워 숨이 막힐 지경이라며 눈물을 보인 것이다. 인기 있다는 이유만으로 동료들에 비해 기절할 만큼 많은 일이 주어지고, 그렇다고 딱히 방송사로부터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은 것도 아니니 답답할 수밖에. 또한 그가 스타 아나운서가 된 뒤 오락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면 출연자들이 늘 그가 인기인 티를 낸다며 놀렸다고 하니 인기 있는 반면 실속은 별로 없는 이 아나운서의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쌓인 게 많았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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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행복주식회사>의 ‘만원의 행복’같은 프로그램에서 가끔씩 공개되는 아나운서들의 일상은 어지간한 연예인 이상으로 바쁘다. 그들은 밀려드는 스케줄로 인해 대기실에서 대충 군것질 거리로 끼니를 해결하고, 이른 아침 뉴스부터 종종 늦은 시간까지 계속되는 예능 프로그램 녹화까지 쉴 틈이 없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 대신 악역 노릇을 해줄 기획사나 매니저도 없다. 연예인들은 매니저들이 대신 섭외를 거절해 주지만, 아나운서는 책임 전가를 할 매니저도 없이 모든 걸 본인이 감당해야 한다. 그것이 칭찬이든 비난이든. 더구나 버라이어티쇼에 투입되어 노래에다 춤은 기본, 성대모사도, 몸개그도, 때론 연예정보 프로그램의 리포터 노릇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위에서 시키면 군말 없이 따라야 하는 방송사 직원이니까.
SBS 김주희 아나운서는 <X맨을 찾아라>에서 노출 의상과 섹시 콘셉트의 댄스로, MBC 서현진 아나운서는 ‘가요대제전’에서 박진영과 ‘엘리베이터’에 맞춰 춤을 췄다가 온갖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본인들의 의지가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녀들에게 그 공연은 개인이 아닌 공적인 회사 일이었다. 또한 MBC <지피지기>에 단체로 투입된 여자 아나운서들은 섹시 화보 촬영에다가 뿅망치로 머리를 맞기까지 하며 프로그램을 띄우려 애썼건만 <지피지기>는 시청률 하락으로 폐지 선고가 내려지고 말았다. 그 와중에 비호감이 된 아나운서들도 있으며, “아나운서가 출연하는 오락 프로그램은 잘 안 된다”는 식의 비난 또한 고스란히 아나운서들의 몫이 되었으니 아나운서들 입장에선 섭섭한 노릇이다. 아나운서 개인에게 모든 짐을 지우는 방송사의 아나테이너 만들기도 이제는 왔던 길을 되돌아봐야 할 때는 아닐는지. TV 출연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든다며 눈물을 흘리던 아즈미 아나운서는 그 후 몇 년이 흘렀지만 퇴사를 하지 않았다. 오상진은 어떤 길을 택할까? 김성주처럼 사표를 낼까, 아니면 아즈미처럼 참아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