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7번째 편지 - 벚꽃에 물들다
지난주 벚꽃 구경하셨나요? 1주일 정도 개화 시기가 앞당겨진 벚꽃은 서울시 전역에 만개했습니다. 봄에 피는 꽃이 참 많은데 그중 유독 벚꽃에만 특별한 감정이 실리는 것은 저만의 감성일까요?
1년이 52주이니 월요편지도 52번 쓰게 됩니다. 그런데 요즘처럼 벚꽃이 피는 주간이 되면 저도 모르게 월요편지는 벚꽃 주변을 맴돌게 됩니다. 그러다가 결국 벚꽃을 소재로 월요편지를 쓰게 됩니다.
월요편지를 보니 3번째 월요편지(2008년 4월 7일)에 맨 처음 벚꽃이 등장합니다. “벌써 대전은 벚꽃이 만개하고 잎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주말에 서울에 올라가 보니 벚꽃이 핀 지역도 있고 산기슭에는 이제 피기 시작하더군요.” 그해에는 4월 7일 무렵 피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몇 년 후 85번째 월요편지(2011년 4월 25일)에 다시 벚꽃이 나타납니다. “법무연수원에 벚꽃이 뒤늦게 활짝 폈습니다. 서울 시내의 벚꽃나무는 키가 야트막한데 연수원의 벚꽃나무는 장대보다도 더 큽니다. 산책로 양쪽 길가의 벚꽃나무는 하늘에서 서로 손을 잡아 자연스레 높다란 벚꽃 터널을 만들어 줍니다. 이 길을 걷다가 보면 벚꽃 부대가 벚꽃 가지로 만든 칼을 높이 들고 사열해 주는 듯합니다.”
경기도 용인시 구성동에 있는 법무연수원은 4월 말이 되어 벚꽃이 피었습니다. 벚꽃은 참 여러 종류가 있나 봅니다. 벚꽃 나무는 장미과의 벚나무속(Prunus)에 속하는 나무입니다. 한국어 명칭은 벚나무, 영어 명칭은 Cherry blossom tree, 일본어 명칭은 さくらぎ입니다. 벚꽃 나무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라고 합니다. 벚나무에 피는 꽃이 벚꽃입니다. 벚나무와 벚꽃을 적재적소에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저에게 벚꽃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초속 5센티미터>입니다. 그 이야기도 월요편지(2019년 4월 16일)에 실려 있습니다. 전 직원과 함께 일본 오사카를 찾았을 때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방문지로 찾은 오사카성은 벚꽃이 만발해 있었습니다. 벚꽃 아래에서 서로 사진 찍어 주고 웃고 떠드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충분하였습니다. 저는 신입 사원에게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가 얼마나 될까?" 하고 물었습니다. 머뭇거리는 그녀에게 "초속 5센티미터래."라고 이야기하였더니 그녀가 "아! 대표님,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영화 제목이네요." 하고 화답해 옵니다.”
실제로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는 초속 10센티미터 이상이라고 합니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말하는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초속 5센티미터>는 어린 남녀 주인공이 서로에게 다가가는 속도를 의미합니다. 어느 작가는 아주 느리지만 상대에게 서서히 물들어가는 속도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벚꽃이 흩날리는 이 계절, 서로에게 물들어가면 좋겠습니다.
벚꽃 하면 일본의 정형시 하이쿠가 떠오릅니다. 그 하이쿠에 저의 감성을 덧붙인 글을 모아 월요편지(2021년 5월 3일)를 쓴 적이 있습니다. 굵은 글씨가 하이쿠 원문입니다.
“도둑처럼/ 몰래 피었다가 / 작별 인사도 없이/ 어느새 가버린 벚꽃/ 벚꽃 일생 고작 일주일/ 지는 벚꽃도 남은 벚꽃도 내일이면 지는 벚꽃/ 석양 같은 노년이나/ 이제 활짝 핀 청춘이나/ 100년도 못 돼 사라질 운명(2021년 4월 7일 씀)
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벚꽃을 한 잎도 남김없이/ 다 데려가려는 듯/ 지난주 핀 벚꽃/ 창문을 통해 본 벚꽃/ 그리고 밤에 핀 벚꽃/ 모두 사라진 오늘/ 오늘 또한 옛날이 되어버렸네/ 벚꽃이 없는 360일/ 나는 견딜 힘이 있을까(2021년 4월 13일 씀)”
벚꽃을 소재로 한 하이쿠의 압권은 일본 승려 잇큐(1394-1481)의 시입니다.
“벚나무 가지를/ 부러뜨려 봐도/ 그 속엔 벚꽃이 없네/ 그러나 보라/ 봄이 되면/ 얼마나 많은/ 벚꽃이 피는가”
벚꽃이 없는(無) 벚나무에서 벚꽃이 생겨나는(有) 이치를 절묘하게 표현하며 선승의 깨달음을 압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벚꽃 하면 떠오르는 가장 애틋한 추억은 몇 년간 어머님을 모시고 기흥 골드CC 앞 벚꽃 터널을 찾은 추억입니다. 늘 이맘때면 어머님을 모시고 갔었습니다. 그 추억도 월요편지(2022년 4월 4일)는 담고 있습니다.
“작년 이맘때 어머님을 모시고 벚꽃 구경을 한 후 이런 생각을 하였다. 어머님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100세까지 6년. 하루하루 날을 셀 수 있을 만큼의 적은 시간. 벚꽃이 여섯 번 피고 지는 시간. 내년에도 어머님을 모시고 벚꽃 구경을 할 수 있을까? 그 걱정이 현실이 되어 가고 있습다. 병원에 누워 계시는 어머님”
2021년 벚꽃 구경이 어머님에게는 마지막 벚꽃 구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2022년 벚꽃이 만개했지만, 어머님은 병원에서 그 소식을 들으시고 두 달 후 영원히 벚꽃이 피는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어제 어머님과 같이 걷던 그 벚꽃 터널을 다시 찾았습니다. 여전히 벚꽃은 만개하였지만, 어머님은 안 계셨습니다. 우리 모두 이 벚꽃을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요?
봄꽃은 많지만 벚꽃만큼 저의 추억에 뚜렷하게 각인된 꽃은 없습니다. 내년 이맘때 벚꽃이 피면 월요편지는 또 벚꽃 주위를 서성일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벚꽃은 어떤 추억을 담고 있나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3.4.3. 조근호 드림
<조근호의 월요편지>
첫댓글 이렇게 여러종류의 벚꽃이 존재하는 봄,
겹보다는 홋이
진함 보담 연한
수채화색 🌸 벚꽃이
이렇게도 제맘을 홀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