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적인 귀신
- 류성훈
그의 차에서 주기적으로 틱틱 소리가 났다 또 고장인가, 길에서 언제 멈춰 설
지 모르고 돈이 추가로 얼마나 들지도 모르는 공포 앞에서 나는 그냥 텐셔너 베
어링 마모일 거라고 했다 보닛을 열자
귀신이 모조리 물러갔다
오래된 집에 귀신이 사는 건 당연하잖아
사람은 벽 속에도 있고 지하 콘크리트 속에도 있는데
아파트 사람들은 아파트가 사람을 묻고 지어진 줄 모르고
모르니까 귀신인 거지
나는 옷장을 닫자마자 옷장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데
아직도 밤마다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
생각은 화학반응이니 앞으로는 화학적으로 생각하자 상실의 아픔에 누워 있는 이
를 위해 기도해 준다거나 허브차라도 한 잔 드세요, 하고 말하는 게 도움이 안 되는
건 방법의 문제뿐 아니라 신경안정 효과가 없기 때문이지
신경안정이 안정시키는 건 신경일까
아무것도 모르는 채 만나 조금씩 알아가며 살다』
다시 모름만을 대물림하던 내 옛집에서
좀 자라 열한 시다
그럼 재워 주세요
네가 어둠을 입지 않으면
어둠은 널 입지 않아
나 없는 방에서 내 귀신이 답한다
ㅡ계간 《가히》(2024,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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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파묘』 이후 귀신 이야기가 흥행 중입니다
현대 문명을 이끌어 온 과학의 발달에도 뿌리깊은 삶 속 미신은 사라질 줄 모르나 봅니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이야기'가 사회 곳곳에 넘쳐납니다
원인을 모르는 질병, 이해되지 않으며 인과응보 없는 세상사 모두가 귀신스럽게 나타납니다
명상과 신경안정제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심리상담이 대증요법으로 자리를 잡아 갑니다
세상사 모든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없는데 공연히 파고 들다가 귀신의 존재만 확인하게 됩니다
세상사가 제아무리 복잡다단하고 괴이하더라도 인명은 재천입니다
모르고 살아도 일생이고 알면서 살아도 일생입니다
나 없는 방에서 내 귀신은 그저 홀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