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순 전 경제부총리가 94세 나이로 서세(逝世)를 하셨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는 토지공개념, 케인즈 경제학‘ 등 좌파 이론을 폈으나, 주류 경향은 자유주의 경제론에 더욱 무게를 두었다. 지금 ’노동의 유연화‘ 등 자유주의 문화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조선일보 류재민 기자(2022.06.24), 〈부총리·한은총재·서울시장 지낸 경제학계의 거목〉, “제자인 한덕수 국무총리도 빈소를 찾아 “시장에 대해 직접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교수님의 학자적 소신이었고, 저도 일생 동안 경제학을 하면서 머릿속에 많이 들어있던 말씀”이라고 했다. 고인의 비서관을 지낸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한민국 경제가 갈림길에 있을 때마다 기본에 충실하며 바르게 갈 수 있는 정책을 늘 고민하셨던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고 애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민주당에 입당해 1995년 제1회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취임 직전 일어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현장에서 시장 취임식을 열어 화제가 됐다. 아스팔트로 덮여 있던 여의도 광장을 여의도공원으로 조성한 것이 대표적 업적이다. 1997년 꼬마 민주당 대선 후보로 영입돼 대선에 도전했지만, 당시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와 단일화했다. 그 뒤 한나라당 총재를 맡았다. 한나라당이라는 당명을 손수 지었다. 1998년 강원 강릉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2000년 민주국민당 대표로 지휘한 16대 총선 참패 후 정계에서 은퇴했다. 이후엔 서울대, 명지대 명예교수와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한반도선진화재단 고문 등을 맡았다.”
중앙일보 조현숙 기자(06.24), 〈한국 경제학 기틀 다진 흰눈썹의 거목〉, “그가 육사 교관이던 때 제자였던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 의해 88년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고도 성장기와 맞물려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 그는 토지공개념을 제시했다. 특정 소수에 집중되는 부동산 개발 이익을 환수해 낙후 지역 개발 등에 써야 한다는 주장이다. 토지종합세 신설 등 토지공개념 3법을 추진했다. 이후 위헌 판정을 받으며 토지공개념법은 효력을 잃었지만 현행 부동산 세제, 개발부담금제의 토대가 됐다. 92년 그는 한은 총재로 임명됐다. 한은이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로 불리던 시절 그는 중앙은행 독립과 금리 자유화를 주장했다. 당시 경제 활성화를 위해 통화정책을 활용하려 했던 정부와 갈등을 빚었고, 결국 임기를 3년이나 남겨 놓고 한은 총재 자리에서 물러났다.”
노동의 유연화가 도마위에 오른다. 정부가 우선 문재인 청와대에서 주 52 노동제를 유연하게 한다고 발표했다. 주 12시간으로 제한된 연장근로 단위를 4주 48시간으로 늘리면서, 직무성과 임금체계 개편 방안을 시도하고 있다. 사실 재택근무를 늘리면서 주 52 시간 노동제가 별 의미가 없어졌다. 마르크스가 이야기하는 절대적·상대적 착취가 별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더욱이 노동 시간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질을 따지는 시대가 된 것이다. 사회분업은 세계적 차원에서 더욱 정교화하고, 전문화가 이뤄진다. 고도의 전문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세계는 아비규환의 장소로 바뀌게 된다. 엄청난 변화를 몰고올 전망이다.
김일성 방법의 빚나간 국가주의에 단죄를 할 것을 주문한다. 동아일보 이기홍 대기자(06.24), 〈386의 변종 586, 민주화 세대 먹칠 말고 퇴장해야〉, ““월북이냐 아니냐가 뭐가 중요하냐”고 열변을 토하는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의 모습은 정치가 사람을 얼마나 바꿔놓는지를 절감케 한다. 요즘의 우상호에게서 1987년 6월 항쟁 직후 이한열 열사 영결식에서 오열하던 청년을 연상하는 건 쉽지 않다. 사실 그의 변모를 더 적나라하게 드러낸 장면은 대선 직전인 2월 20일이었다.선대위 총괄본부장 우상호는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후보가 대장동 비리의 뒷배를 봐준 흑기사라고 볼 수 밖에 없다”며 대장동 녹취록을 공개했다. △(김만배) “윤석열 영장 들어오면 윤석열은 죽어.” △(정영학) “죽죠. 원래 죄가 많은 사람이긴 해. 윤석열은…” △(김만배) “되게 좋으신 분이야. 나한테도 꼭 잡으면서 ‘내가 우리 김 부장 잘 아는데, 위험하지 않게 해’”. 그런데 곧 녹취록의 실체가 드러났다. 편집돼 잘린 앞뒤 문맥을 복원하니 ‘윤 후보가 사법농단 수사로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에 뭐라도 걸리면 판사들에 의해 죽는다’는 취지였고, ‘좋으신 분’ ‘우리 김 부장’ 대목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것으로 봐야 마땅한 내용이었다....그런 모습은 이젠 정말 586들이 진보정치의 앞날을 위해 사라져 줘야 함을 웅변해 준다. 586에 해 흔히들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이 어떻게 저렇게 뻔뻔하고 내로남불일 수 있나”라고 비판한다....“
동아일보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06.24), 〈과학은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
대학 2학년 때 처음으로 컴퓨터를 배웠다. 1980년대 초반 당시는 개인용 컴퓨터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다. 1954년 IBM에서 개발한, 지금은 화석처럼 변한 ‘포트란’이라는 프로그램을 밤새워 공부한 후 연필로 작성해 제출하면, 전산실의 여직원이 한 줄 한 줄 타이핑해서 천공카드를 만들어줬다. 이 종이로 된 천공카드를 집어넣어 컴퓨터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그 결과를 도트프린터로 프린트된 문서로 얻을 수 있었다. 학교 컴퓨터는 미국 대학에서 폐기 처리된 컴퓨터를 가져와 조립한 물건이었다. 이 전산실을 처음으로 운영했던 분은 물리학과 교수님이었다. 고가의 컴퓨터를 이론물리학 연구에 활용하던 시기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전산실이 생긴 후 몇 년이 지나자 대학에 전산학과가 생겼다.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를 또 하나 더 하자면, 당시 물리학과 실험실에는 반도체 실리콘 웨이퍼를 제작할 수 있는 장치가 있었다. 국내에 존재하던 유일한 장치였다. 그땐 개발도상국을 도와주는 차관 프로그램을 통해 외국에서 고가의 장비를 살 수 있었는데, 당시 물리학과 교수님이 이 장비를 구매해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실 하나를 가득 채운 이 장비를 이용해 실리콘 웨이퍼를 길게 성장시킨 후 얇게 자르면, 그것으로 반도체 집적회로나 태양전지를 만들 수 있었다. 실리콘 웨이퍼를 생산하는 원리를 최초로 개발한 화학자는 폴란드 출신의 얀 초크랄스키(초흐랄스키)다. 그의 이름을 딴 초크랄스키 방법은 1916년 최초로 발견되었다. 실수로 금속 펜을 잉크병이 아닌 금속을 녹이는 도가니에 넣는 바람에 우연히 발견되었다고 한다. 단결정을 만드는 이 독보적인 기술을 꽃피운 곳은 미국이었다. 1948년 벨 랩의 물리학자 고든 키드 틸은 초크랄스키 방법을 이용해 순수한 실리콘 단결정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단결정은 반도체 연구에 시동을 걸었고 곧 트랜지스터의 개발로 이어졌다. 이 모든 일은 실리콘 단결정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최근 대학에 반도체 학과를 설립하는 것 자체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의 대학에서 오래된 컴퓨터를 버린다는 소문을 듣고 쏜살같이 달려가 직접 분해해 배에 싣고 온 원로 교수님의 기개를 생각한다면, 반도체 학과의 설립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분명하게 정답이 보인다. 40년 전 그와 같은 유연한 생각 덕분에 지금 우리가 반도체로 먹고살 수 있다는 것을 왜 우리는 망각하고 있는 것일까?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미래를 봤으면 좋겠다.“
시장경제에서 객관성, 공정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유와 동기가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SkyeDaily 임한상 기자(06.24),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 ‘모두 위한 하나 아닌 하나 위한 모두의 사회 돼야죠’〉, “최근 한국 경제가 심상치 않다....조 교수는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자유에 대한 이해 부족을 꼽았다. 그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타성처럼 굳어버린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복지 중독’ 슬로건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입장이다...‘거시경제보다는 산업의 구조를 튼튼히 하는 미시정책이 더 중요한 사점이다. 낭비 요소를 줄이는 구조개혁이 필요한 거죠.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거북한 것을 이제는 정리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물결을 일게 하는 바람을 보려고 노력해야 해요. 바람은 누구에게는 순풍이고 누구에게는 역풍이 이겠죠. 물결과 바람은 유능한 향해사의 편이라고 믿어요,. 우리 안에서 잠자는 거인을 깨우고 변화의 물결에 올라타야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첫댓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한때는 이회창 후보와도
정치계 발디뎌 바른정치
하시겠다는 생각납니다
학자님 영념하소서......
사무장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