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21.08.17. 화요일
계속되는 코로나19 확산세로 인해 거리두기 4단계가 연장되고 있습니다. 만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단톡방에서 활발히 책을 읽고 후기를 나누는 우리 보물들, 멋지십니다^^
늘 다독여주시는 최명심 회장님, 감사합니다~^^
이번 책은 [분노의 포도 -존 스타인 벡] 입니다.
총 2권으로 되어있는데 시간을 들여 나눠서 읽습니다.
이번 1회차는 1권 중 1장~5장까지 내용입니다.
☆김효숙
문체가 간결하고 쉬워서 잘 읽힌다. 농촌에서 태어났고 다양한 노동을 경험해서인지 인물과 지역에 대한 묘사가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메마른 땅, 소작인과 지주 대리인의 대립과 마찰 배경지식이 없어도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 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3장부터 등장하는 거북이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묵묵히 꿋꿋이 제 갈길을 가는 모습이 앞으로 주인공과 농부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먹먹하기도 하고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다. 1939년 작품이 왜 여전히 진행형으로 다가올까.
1장
-오클라호마 시골의 붉은색 땅과 회색 땅에 마지막 비가 부드럽게 내렸다.
-흙먼지는 아침에도 안개처럼 허공에 떠 있었다. 태양은 선혈처럼 붉었다.
-여자와 아이들은 남자들이 건강하기만 하다면 그 어떤 불행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알고 있었다.
2장
-나아가 서른이 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의 눈은 아주 짙은 갈색이었는데, 흰자도 약간 갈색을 띠었다. 광대뼈는 높고 널찍했으며, 강인하게 보이는 깊은 주름살이 뺨을 베듯이 입 옆에서 휘어져 있었다. 윗입술은 길었다.~~그의 손은 단단했으며, 손가락은 널찍했고, 손톱은 작은 조개껍질처럼 구불구불 홈이 파이고 두꺼웠다.(톰 조드)
-남자의 옷은 새것이었다. 그가 몸에 걸친 모든 것은 비록 싸구려였지만 새것이었다.
-여덟 시간이나 열 시간, 아니면 열네 시간 동안 여기 앉아 있기만 하면 뵈니 쉬워 보이겠지만, 이놈의 길이 사람을 먹어 들어오거든.(트럭운전수)
3장
-길가의 풀잎 위에서는 땅거북 한 마리가 기어가다가 괜히 옆길로 새더니 둥근 지붕처럼 생긴 높다란 등딱지를 질질 끌었다. ~~녀석은 발톱이 달린 앞발을 앞으로 뻗었지만 둑에 닿지 않았다. 뒷발이 발길질을 하듯이 움직이며 등딱지를 전진시키자 등딱지가 풀잎과 자갈에 닿아 긁히는 소리를 냈다.
-거북은 앞발로 석영 조각을 움켜쥐고 조금씩 등딱지를 뒤집어 똑바로 섰다. 야생 귀리 줄기가 녀석의 다리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창끝처럼 생긴 씨앗 세 개가 땅에 박혔다. 거북이 둑을 기어 내려가는 동안 등딱지에 끌려온 흙이 씨앗을 덮었다.
4장
-울타리 너머로는 바람과 더위와 가뭄에 녹초가 된 옥수수밭이 펼쳐졌다.
-기다란 머리는 마치 뼈에다 가죽을 씌워 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갈색으로 빛나는 뺨에는 수염이 전혀 없었고, 도톰한 입술은 우습기도 하고 관능적이긱도 했다. 단단한 매부리코 위의 피부는 한껏 당겨져 있어서 콧잔등이 하얗게 보였다.~~그가 입고 있는 옷은 파란색 셔츠와 위아래가 붙은 작업복 바지였다. 놋쇠 단추가 달린 데님 상의와 돼지고기 파이처럼 구겨진 얼룩덜룩한 갈색 모자가 땅바닥에 놓여 있었다. 캔버스로 만든 운동화는 먼지 때문에 회색으로 변한 채 그가 벗어 던진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목사님이시군요. 지금은 그냥 짐 케이시야.)
-‘우리가 왜 그걸 하느님이나 예수님에게 걸어야 하나? 어쩌면 우리가 사랑하는 건 모든 남자와 모든 여자인지도 몰라. 어쩌면 그게 바로 성령인지도 몰라. 어쩌면 모든 사람이 하나의 커다란 영혼을 갖고 있어서 모두가 그 영혼의 일부인지도 몰라’(짐 케이시)
-거북이 옷 속에서 빠져나와 처음 조드와 만났을 때 가고 있던 방향으로 서둘러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조드는 녀석을 잠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일어나서 녀석을 집어 들어 다시 옷으로 쌌다.
-“저는 맥알레스터 교도소에 사 년 동안 있었습니다.”(톰 조드)
-“저는 또 그런 상황이 되면 같은 짓을 할 겁니다. 싸우다가 사람을 죽였어요. 춤을 추러 갔다가 다들 술에 취했는데, 그놈이 저한테 칼을 찔러 넣기에 저는 거기 있던 삽으로 그 놈을 죽였습니다.”
-큰아버지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돼지를 먹고 싶다면 한 마리를 통째로 앞에 갖다 놓아야 하고, 일단 실컷 먹은 다음에는 눈앞에 돼지가 있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큰아버지가 가버린 다음에 아버지가 남은 고기를 소금에 절였습니다.”
5장
-그들은 지붕이 달린 자동차를 타고 와서 손가락으로 바싹 마른 흙을 만져보았다. ~~마침내 지주의 대리인들이 앞마당으로 차를 몰고 들어와서 차 안에 앉은 채 창문 너머로 뭐라고 이야기를 했다.
-여자들과 아이들은 남자들이 지주의 대리인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말없이.
-지주의 대리인들 중 몇 명은 상냥했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을 싫어했기 때문에. 또 몇 명은 잔인하게 굴어야 한다는 사실이 싫어서 화가 나 있었다. 그리고 또 몇 명은 차갑게 굴지 않으면 지주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아차렸기 때문에 차갑게 굴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붙들려 있었다.
-은행이나 회사는 그럴 수가 없어요. 그놈들은 공기를 호흡하지도 않고 고기를 먹지도 않거든요. 그놈들은 이윤이 있어야 숨을 쉰단 말입니다.
-트랙터를 이리로 보낸 그 괴물이 운전사의 손과 머리와 근육 속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보안경을 씌우고 입에 마개를 씌웠기 때문에. 그의 입을 막고, 그의 인식을 무디게 만들고, 항의의 목소리를 막아 버렸기 때문에. 그는 있는 그대로의 땅을 보지 못하고, 땅의 냄새를 맡지 못했다.
-파종기가 기어의 움직임에 따라 오르가슴을 느끼며 기계적으로 땅을 강간했다. 열정과 흥분이 없는 강간이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기르지도 않은 곡식으로 만들어진 빵을 먹으며 아무런 교감도 느끼지 못했다.
-트랙터는 계속 한가로이 배기가스를 내뿜었다. 연료가 아주 싸기 때문에 시동을 껐다가 다시 걸기위해 디젤 엔진을 가열하는 것보다 계속 엔진을 켜 두는 편이 더 효율적이었다.
-자네가 하루에 3달러를 벌기 때문에 열다섯이나 스무 집 식구들이 쫄쫄 굶고 있어. 자네가 하루에 3달러를 벌기 때문에 거의 100명이 되는 사람이 외지로 나가서 길거리를 헤매고 있다고.”
-“참 웃기는 일이구먼. 사람이 땅뙈기라도 조금 갖고 있으면, 그 땅이 바로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의 일부고, 그 사람을 닮아가는 법인데.~~ 농사가 잘 안되더라도 땅이 있어서 사람이 크게 느껴지는 법인데. 원래 그런 건에.”
-“하지만 사람이 땅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땅을 직접 보지 않거나, 시간이 없어서 땅을 손으로 만져 보지 못하거나, 땅 위를 걸어 볼 수 없다면, 그래도 그 땅은 그 사람을 닮아 가지.~~그 사람은 커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작아져. 그냥 재산이 많을 뿐이지. 그 사람은 땅의 하인일 뿐이야.”
-알라딘 eBook <분노의 포도 1> (존 스타인벡 지음, 김승욱 옮김) 중에서
☆최명심
★오클라호마 시골의 오랜 가뭄 끝에, 농사가 황폐화 되어버렸지만, 다시 일어나야 하는 것을 알기에, 여자들과 아이들은 남자들의 눈치를 보고 있으며, 남자들에게서 어떤 희망을 발견하고서야 제 할 일들을 한다. 아무래도, 남자의 역할이 크기 때문이겠지. 농사 자체가 육체적인 노동이 필수적이니까.
★모든 등장 인물들의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있게 묘사를 한다.
트럭운전사, 매점의 웨이트리스, 그리고 톰 조드까지.
그들의 대화가 재미있다.
★계속되는 긴 장마에도, “모두들 수동적으로 가만히 있었지만 움직일 수 있는 도구를 갖추었고, 움직일 수 있는 소질도 있었다.”처럼, 모두들 영리한 전략가들이다.
★짐 케이시, 예전에 조드에게 세례를 줬던 목사와의 만남. 짐 케이시의 캐릭터도 굉장히 독특하다. 한 사람 한 사람 등장인물들 모두 개성 넘치고,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다. 작가의 등장인물 캐릭터가 모두들 개성만점이다.
★소작인들의 비애. 트랙터로 대표되는 기계화, 자본화, 자동화의 물결. 소작인들과의 싸움 자체가 안 된다. 그러한 물결에 어찌 대항하고 감당할 것인지....
그 트랙터로 대비되는 산업사회 속에서, 역시 조 데이비스의 아들인 운전사는 하루에 3달러를 벌기 위해서, 이웃들의 고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트랙터를 몰고 있다.
이미 트랙터라는 기계화의 하나의 부품 역할 밖에 못하는 인간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허미진
이 책이 쓰여진 시대적 배경은 1930년대 초반 대공황속에서 벌어지는 처참한 일반 미국인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존스타인 백이 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82년이 지난 지금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무엇이 있을지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1회차 : 1장~5장
쓰러진 옥수수 줄기 위에서 바람이 구슬프게 울어 댔다. 망가져버린 옥수수밭을 멍하니 바라보는 남자들, 이번에야말로 남자들이 주저앉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여자들, 맨발로 흙에 그림을 그리면서 어른들이 주저앉는 것은 아닌지 안색을 살피는 아이들. 한참 후, 이를 지켜보던 남자들의 얼굴에서 망연한 표정이 사라지고 강인함과 분노와 저항이 나타났다.
태양은 먼지 담요를 쓴 땅 위에서 이글거렸다. 남자들은 자기 집 문간에 앉아 막대기와 작은 돌멩이를 쥔 손을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남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하고 있었다. P1~14
살인으로 감옥에 갔다가 출소. 몸에 걸친 모든 것이 싸구려지만 제공받았을 새옷을 입은 조드는 ‘아무도 태우지 않음’이라고 스티커가 붙은 트럭을 얻어타고 고향 집으로 향한다. 그의 아버지는 40에이커의 땅을 부쳐먹는 소작인이다. 그 운전사로부터 가뭄과 트렉터로 인하여 정신없이 사라지는 소작인들의 상황을 전해 듣지만 실감은 못한 듯하다. 차주와 고용인의 관계에대한 애로사항 이야기. 조심성과 술과 자격지심으로 트럭운전사와 언쟁이 붙을 때 조마조마했으나 다행히 사고없이 내림.
‘되게 하는’조드의 성향과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 적성에는 맞지 않지만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 몸부림치며 성공하고자 하는 이들에 대한 스케치가 있다. “저는 또 그런 상황이 되면 같은 짓을 할 겁니다.”라는 조드의 방어적 공격성에 대한 것은 아찔하지만.
곤충과 식물들, 거북이도 다니는 미국 시골 풍경을 나도 같이 감상하며 태양이 풀밭 위에 누워 풀을 데우는 거리를 지나 걷는다. 아버지 집을 향해 조드는 먼지구름을 꽁무니에 매단 채 터벅터벅 걸었다
가다가 스스로 말하기를 “목사였다”는 사람을 만나는데, 그의 말이 내 마음의 인상을 찌푸리게 한다
번역이 잘못 된건가? 아니면 정말 존스타인백이 그렇게 알고 믿고 있는 건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목사라는 인물의 뿌리가 궁금하고 의심스럽다.
“...내가 자네한테 성령을 주었을 때” 는 비성경적인 말이기 때문이다. “... 나를 통해 성령님이 임하셨을 때”가 맞다.
“사람들을 이끌고 갈 데가 없어....나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데...”
항존직인 목사라는 직분도 그렇다. 소명에 의해 임직을 받은 사람도 있고 세상 직업처럼 직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소명을 받았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사단의 밥이 되어 타락되어버린 이도 있다. 소명을 받기 전에 이미 있었어야 할 인격적 신과의 만남이 없어서 헤매고 있는 자도 있고.
케이시 목사라는 인물을 등장시켜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하나님 아버지 말씀인 진리를 현실세계에서 구현해 가는 것에 대한 문제와 영생에 관한 구원의 확신 여부에 대한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떤 것일까? 둘 다인가? 아니면 제 3의 방법을 말할 것인가?
p46~47에 의하면 그는 사이비 종교자다. 그리고 목사를 빙자한 목사 짓을 한 것이다. 성령으로 가득한, 충만한 자가 그 즉시 절대 그렇게 될 수가 없다. 성령님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보혜사(성령님)가 너희에게 오실 것이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성령님은 이런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는 그냥 기분, 감정이 가득하게 그렇게 채워졌던지 악령에 의해서 양신이 역사했던지 한 것이다.
82년 전의 그 시기에도 인간의 죄성과 무지, 기독교와 종교지도자들의 타락이 팽배했음을 존스타인 백은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인가보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므로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호세아 4:6) ”,“은혜가 더한 곳에 사단의 역사도 그 만큼 있으며, 그래서 선줄로 안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린도전서10:12)”는 말씀을 하셨다.
도대체 이 글 내용의 글쓰기 자료의 근거는 어디일까? 의심스럽다. 사이비 이단 종교일까? 아니면 정통교회일까? 혼재되어있는 것 같기도 하다. 괴테가 한 말이 떠오른다. “허약한 영혼을 두려움에 떨게 만듦으로써 그들의 올바른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마침내는 그들의 가련한 삶을 정신 병원에서 마치게 만드는 것. 신자들 마음속에 해롭기만 한 의심의 씨앗을 뿌려 결국 죽음밖에 탈출구가 없는 미로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게 했다” 케이시 그가 하는 작태는 예수님의 사랑을 빙자한 자기 욕정채우기였다. 맹신자가 되게 하고,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 같은 짓이다.
케이시를 통해 내보이는 존스타인 백의 시각을 짐작할 수 있다. 인간은 본인이 잘못하고 결국 타락의 삶을 살아놓고 어디서 떨어졌나? 말씀의 거울로 바르게 비춰보지 않고 하나님 탓을 한다. 자식이 저절로 큰지 알거나 잘못되면 부모 탓을 하고 등 돌리는 이가 있듯이. 그러고선 내 뜻대로 해보겠다며 인류는 인간의 정신, 인간의 힘으로 해보자고 한다. 바벨탑을 쌓듯이 말이다.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의 문제를 왜 흑백논리, 양자 택일의 문제로 보는가. 치우치면 안되고 둘 다 함께 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계는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로새서1:16)“ 만물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3)” 하였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셨기 때문이다.
계속 가보자
조드네를 들를 참이었던 짐케이시는 조드와 함께 동행한다.
“소작제도는 이제 소용이 없다. 트렉터만 있으면 한 사람이 열두 가구나 열네 가구 몫을 해낼 수가 있는 시대다. 지주들, 은행은 오직 이윤을 위해서 존재한다. 그들은 괴물과 같다.” 시대의 흐름이 변화를 읽고 준비하지 못하고 소작인들은 과거의 사고방식에 잡혀있기도 하고, 사실 그 변화를 따를 수 있는 입장도 능력도 없다. 흉년이 들고 다시 농사를 짖기 위해 돈을 빌리고 그 돈을 갚을 만큼 수확이 발생하지 않고를 반복하다 결국 농업방식의 전환(기계화, 기업화)의 시기와 맞물려 파산하다 결국 쫓겨나야 하는 신세다.
트렉터를 모는 사람은 괴물의 일부이며 로봇! 사람이 도구화되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산업혁명시대에 인간은 부속화 되었다. 이러한 일은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사람들의 자리에 로봇이 대신하니 일자리를 잃게 되고 앞으로도 인공지능의 시대에 그 현상은 더해질 것인데 느끼고 있고 알고 있지만, 준비 할 수 없는 개인들이 많다. 땅은 숨 쉬는 곳이요 품는 것이었던 대상, 땅이 바로 그 사람이요 일부여서 그 사람을 닮아가는 대상에서 이제 강간당하고 지금 당장의 이윤을 위해서 소수의 누군가에게 귀속되어 기업화 되고 갈취의 대상으로 취급 되어지게 됐다. 몬산토와 글리포세이트가 생각난다. 에코사이트의 시작이다.
“자네가 3달러를 벌게 되는 대신에 열다섯이나 스무 명 가족들이 쫄쫄 굶고 있고 자네가 3달러를 벌기 때문에 거의 100명이나 되는 사람이 외지로 나가서 길거리를 헤매고 있다.”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비굴한 짓까지 했는데도 굶어야 하는 생활에 신물이 나서 식구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트렉터 모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선택만 잘못하고 있다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소작인이 외치듯이 그 책임의 끝은 어디인가? 사람들의 의식( 농지는 이제 우리처럼 하찮은 사람들의 것이 아니에요 P77)과 구조적인 문제 둘 다이다.
동남아 국가 중 어느 나라는 세계의류공장이 된 나라도 있다. 그런데 공장의 폐기물에 대한 시설비용은 사용하지 않아서 조각천은 들에 널부러져 있고 염색오폐수가 그대로 강에 흘러가서 물이 썩어 물고기가 살 수 없어 어부는 잡을 물고기가 없고, 소들은 풀 대신 천조각을 씹고 되새김질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금 우리는 플라스틱 천지인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라 1인 1일 1카드를 섭취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이 상황을 어찌 개인이 분리수거 잘하고 용기(그릇) 맨이 되는 것으로만 해결할 수 있겠는가
지금은 자연재해도 인간의 손에 의해 발생되고 있는 것이 많다. 이 또한 인간의 손으로 지연시키거나 멈추게 할 수 있다.
“이건 벼락하고 지진하고 달라 이건 인간이 저지른 짓이라 틀림없이 우리가 막을 수 있을거야.” 코로나 19펜대믹도 환경위기도 인간의 손, 무분별한 개발, 욕심 등 에 의한 것이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서 1:15) ”말씀이 딱 맞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회개(메타노이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이는 아예 가룟유다나,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자베르 경사처럼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었구나! 잘못 살았구나! 깨달았지만, 죽어버리던지. 이윤을 위해 또 다른 술수를 쓴다. 코로나 19라고 명명된 바이러스도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이 책은 강인함과 분노와 저항, 생각하는 남자들 그리고 소작인이 “ 인간이 저지른 짓이라 틀림없이 우리가 막을 수 있을거야”라는 말로 존스타인백은 희망의 의지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그들의 삶을 어떻게 풀어나가게 될지 궁금하다.
☆조지은
메마른 땅과 바람, 옥수수, 사람들 그리고 동물들....
비는 스쳐가고 다시 흙바람.
삶의 팍팍함과 더불어 남자들에 대한 여자와 아이들의 눈치봄이 서글펐다.
등장인물이나 자연환경에 대한 자세한 묘사로 인해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거북의 등장과 귀리 씨앗도 영화 도입부의 한 장면인 듯 익숙하다.
트랙터와 농부들의 대립. 트랙터는 단지 눈에 보이는 대상일 뿐이고 이는 자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소규모 농부들의 대립이라 보인다.
농부들이 부르짖는 말들.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가 땅을 지키고 가꾸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가. 인디언에게 총을 쏘고, 씨를 뿌리고, 집을 짓고... 나는 왠지 이러한 말들이 허망하게만 들린다. 자신들이 기존의 원주민들을 내쫓고 차지한 땅을 결국 유사한 방법으로 빼앗기게 되는 것이 뺏고 빼앗기는 돌고 도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느껴졌다. 원래 자기네 것도 아니지 않았나...
주인공 톰 포드의 등장과 그의 근황을 독자에게 알려주는 방식이 독특하다. 서술형이 아닌 상황과 대화를 통해 궁금증을 유발함과 동시에 해결까지 해 주는 것에 감탄하며 읽게 된다. 앞으로의 내용에 대해 흥미로운 거라는 기대를 해 본다.
☆이정미
존 스타인벡 1902~68/ 1939년 발표작
1~5장
-가뭄으로 옥수수농사는 흉년인 오클라호마.
-징역살이 4년만에 가석방된 조드. 귀향길에 목사였던 짐 케이시를 만나 함께 아버지집으로 향하는데...집은 이상하게도 비워있다...아마도 내몰렸겠지...
-은행은 경제공황으로 인한 손실을 트랙터를 이용한 농사로 만회하고자 소작인과 집을 내몰아 쓸어버림
-이윤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대표인 은행의 행태를 괴물에 비유한듯.
75. 파종기가 기어의 움직임에 따라 오르가슴을 느끼며 기계적으로 땅을 강간했다. 열정과 흥분이 없는 강간이었다.
76. 사람들은 자기가 기르지도 않은 곡식으로 만들어진 빵을 먹으며 아무런 교감도 느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