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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나의 '롤 모델'은 글렌 크로스- 《고도를 기다리며》<오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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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 18. 오후 5:13 (9일 전) | |||
홍순일 코리어타임스 편집국장 별세
김명식
김승웅 방장 귀하:
새해도 벌써 셋째 주가 다 지나가는군요. 지난 주에 전 코리아 타임스
편집국장 홍순일선배<사진>가 별세했습니다. 92세이시니 말하자면 노환이신데
사인은 폐렴이라고 합니다.
고 홍순일
여러 해 전에 저에게 부탁하시기를 당신께서
돌아가시게 되면 제가 코리아 타임스에 Obituary를 써 달라고
하셨습니다. 부음을 받고 코리아 타임스 오영진 사장에게 전화해서
그런 사연을 알리고 선배의 명을 이행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국일보사
출신 언론인들의 소식지인 한우회보에 따로 추모의 글을 보냈습니다. 하나의
고결한 인간상으로 기억할 만한 분이라고 믿기에 여기 같은 글을 보내드립니다.
2014.1.18
김명식
.........................................
존경만으로는 다 차지 않는 마음
김명식
세상에 불가능한 것이 있다면
그 중 한가지는 홍순일이라는 사람에게서 나쁜 것을 찾아내는 일이다.
2024년이 시작하고 12일에 홍국장님의 부음을 접하고
다음날 신촌 세브란스병원 빈소에 모인 후배들의 회고담의 주제는
결국 이 희한한 불가능에 모아졌다. 누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홍국장을 대하면서 단 한 번도 무슨 일에 화내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했고
또 다른 사람은 그분이 누구의 나쁜 얘기를 옮기는 걸
들어보지 못했다고 거들었다. 비판을 사명으로 하는 언론인 외길을 걸어온
사람에게 이런 스타일의 인성은 결격사유일 수밖에 없겠는데
그러면 홍순일 씨는 무능한 신문기자일까?
1932년생 홍순일은 1954년 장기영 씨가 한국일보를 창간하던 때
그가 그보다 먼저 인수해 발행하던 영어신문 The Korea Times에
소년사원으로 입사해 20년을 근속했는데 후반 7년간은 편집국장직을 맡았다.
그리고는 한국일보 순회특파원으로, 논설위원으로 또 한국일보그룹이 운영하는
Time-Life 한국어판 출판사의 상임이사로 언론인 신분을 유지하면서
관훈클럽 총무(대표), 이어서 관훈클럽 신영연구기금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경기고, 서울공대 조선공학과에서 시작하는 홍순일의 이력서는
비교적 단촐하고 무슨 공직의 장 같은 것은 들어있지 않다.
하지만 긴 세월 동안 언론계 안팎에서 그는 오직 무흠한 인품으로 인해
깊은 신뢰와 존경을 자그마한 몸에 담았다.
우리 후배들에게는 인간 홍순일에 대해 할 말이 한없이 많지만
또한 긁어모을 스토리들이 그렇게 많지도 않은 것이 그가 주로 일한
분야가 특수 언론이라 할 영문 매체였기 때문이다.
그중 두어 사건은 70년대 소위 유신체제라는 엄혹한 상황 속에서
벌어졌다. 코리아 타임스는 Thoughts of The Times라는 자유기고가들의
일일 칼럼을 실어왔는데 다양한 주제에 내외국인들의 자유분방한 시각이
독자들에게 크게 환영 받았다. 1973년 외국인 필자 두 사람이
연속으로 당시 사회적 비판에 오른 기생관광에 대하여서 아예 외화획득 사업으로
정부가 공개적으로 장려, 추진하는 게 어떻겠는가 하고
풍자적 필치의 글을 올렸다.
이 칼럼들의 내용을 일부 국문 일간지들이 번역 인용하자
당국이 국위 손상을 이유로 문제를 삼고 코리아 타임스 편집책임자들을 불러들였다.
홍순일 편집국장과 편집부 기자 한 사람이 남산 정보부 분실에 구금되어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의 고초를 겪고 풀려나왔는데
두 가지 조건이 따라왔다. 하나는 으레 그렇듯이 조사과정에서 당한 일을
일체 발설하지 않는 것과 다른 하나는 편집국장 교체였다.
결국 홍국장은 한국일보 논설위원으로 옮겨갔고
장기영 사주는 곧 그를 빼내어 동남아시아 순회특파원 격으로
당시 장기화한 월남전에다 각국에 태동하는 민주화 운동 그리고
산업화 과정에로 돌입하는 이 지역을 돌며
국가원수들을 인터뷰하라는 중대한 미션을 부여했다.
준비기간은 짧았는데도 홍순일 특파원은 단 3주 동안에
동남아 여덟 나라의 정상급 지도자들을 차례로 단독회견하여
한국일보와 코리아 타임스에 장문의 리포트를 올렸다.
그 대상은 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싱가포르의 리콴유,
말레이시아의 리 타우딘 수상대리, 태국의 쿠크릿 프라모지 수상 지명자,
캄보디아의 론 놀 원수, 라오스의 파테트 라오 제2인자 수티 착,
그리고 월남의 구엔 반 티유 대통령이었다.
이런 전무후무한 국가원수 인터뷰 시리스를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언론인은 흔치 않을 터인데 홍순일은 그의 탁월한 외국어 능력과
해박한 국제정세 지식으로 이를 무난히 해내어 한국 언론사에
굵은 자취를 남겼다. 그런데 시리즈를 끝맺는 종합해설 기사에서
당시 티유 대통령 정부의 독재와 부패상 그리고 군부의 무능력율 해부,
비판한 것이 또다시 유신 정권의 신경을 건드렸다.
국내 상황을 월남에 빗대어 고발했다는 의혹을 씌워서
한국일보 편집국장 및 간부들을 데려가 당시 일상화되어온 언론사 길들이기를
했고 한국일보 기자들은 철야농성으로 저항했다.
이러한 폭거는 당시 진행 중이던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들의
언론자유 회복 운동에 기름을 부었다. 필자 홍순일 순회특파원은 동경에 머물면서
상황이 가라앉기를 기다려야 했는데 그동안에도 그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사토 에이사쿠 직전 총리를 인터뷰했다.
이후 홍순일 논설위원은 하버드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CFIA) 펠로우십에
초청되어 1년간 연수차 다녀오고 이어 코리아 타임스 논설주간,
한국일보 타임-라이프 상임이사, 국제교류재단발행 Korea Focus와
Koreana 편집주간으로 일하며 한편으로는 관훈클럽 운영에
여러 해 힘을 보탰다. 은퇴 후 그는 무욕의 평화가 얼마나 큰 복인가를
보여주었다.
특별한 운동이나 취미생활에 빠지지도 않고 기독교인으로
소망교회에 이어 분당 구미교회에 적을 두었지만 종교활동에 매이지도 않았고
오직 유별난 것이라면 홀로되신 모친에 대한 극진한 효도와
고교시절 시작한 동갑내기 부인과의 고전적 로맨스
그리고 훌륭한 자식 농사이다.
아마도 아들과 사위가 같은 때 나라의 장관직을 가졌던 가정의 예는
다시 없었을 듯한데 아들 홍용표 한양대 교수는 통일부 장관으로,
사위 서승환 전 연세대 총장은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한동안 국무회의에 함께 참석했다.
홍국장님 돌아가시고 시시로 그분의 단아한 모습이 뇌리에 감도는데
존경이라는 흔한 말로는 아무래도 뜻이 모자란다고 스스로 되뇌인다.
<김명식/(현)코리어 헤럴드 칼럼니스트/한국일보 견습 17기/코리아타임스
편집국장, 김대중정부 해외홍보원장, 아리랑TV 이사장 역임/광주일고~
서울법대(58학번)졸/康津 産>
오피니언 신복룡의 신 영웅전
‘로켓 공학 아버지’ 폰 브라운의 탄식
중앙일보
입력 2024.01.18 00:15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로켓 공학의 아버지’ 베르너 마그누스 폰 브라운(1912~1970)은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폴란드 농무부 장관이었고 어머니는 영국 왕실 출신이다. 음악을 공부했으나 꿈은 우주에 있었다. 거리에서 폭약을 실험하다가 경찰에 잡혀간 적도 있다.
베를린공대에서 액체연료를 전공한 그는 병기국에 배속돼 히틀러의 명령으로 영국을 공격한 V-2를 제작했다. 그는 자기의 꿈이 살상용으로 이용되는 것을 괴로워했다. 전쟁이 끝나자 브라운을 체포한 미국은 그를 전범으로 처벌하지 않고 미국으로 데려갔다. 시민권을 주고 국가항공우주국(NASA)에 배속해 로켓 연구에 전념하도록 배려했다. 그가 연구에 몰두할 무렵이던 1959년 소련이 먼저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발사했고, 1961년엔 유리 가가린이 최초로 유인 우주선을 타고 비행에 성공했다.
소련을 늘 한 수 아래로 생각하던 미국은 우주 경쟁에서 선수를 빼앗겼다. 언론사와 과학자들이 폰 브라운을 힐난하면서 장차 어떻게 소련을 따라잡을 수 있느냐며 다그쳤다. 그때 브라운은 담담하게 이렇게 대답했다. “미국의 초등학교에서 수학 공부를 너무 소홀히 한 탓이었습니다.” 그 대답에 기자들이 놀랐고 교육계는 더 놀랐다. 그 당시 나는 ‘타임’지의 이 대목에서 그다음 문장을 읽지 못하고 멍하니 하늘만 쳐다본 기억이 지금도 선연하다.
교육부는 대입 수능에서 미적분Ⅱ와 기하를 뺀다고 한다. 철학을 가르치던 플라톤도 그의 아카데미 입시에 기하학을 모르는 학생을 받지 않았다. 이제 『삼국유사』를 몰라도 사학과를 졸업하는 시대가 오나 보다. 자연과학도인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을 노비로 쓰다가 나라를 망친 유생의 망령이 지금 다시 어른거린다. 인문학이 자연과학을 핍박하는 시대에는 재앙이 온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잘못 가고 있다. 아직도 우리는 ‘갈릴레오의 시대’에 살고 있나.
<신복룡/건국대에서 「동학사상(東學思想)과 한국 민족주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교수, 건국대 중앙도서관장·대학원장,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표 저서로 『한국분단사 연구:1943∼1953』(한울, 2001, 한국정치학회 저술상 수상), 『동학사상과 갑오농민혁명』(선인, 2006),『한국정치사상사』(지식산업사, 2011, 한국정치학회 인재 윤천주상 수상), 『해방정국의 풍경』(지식산업사, 2017), 『전봉준평전』(들녁, 2019), 『군주론』,『삼국지』, 『플루타크 영웅전』(2023), 등이 있다.>
설레는 늙음, 서글픈 낡음
이우근
새뮤얼 얼먼 <청춘>
“젊음이란 인생의 어느 한 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젊음은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장밋빛 뺨, 앵두 같은 입술, 유연한 무릎이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이며, 생명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이다."(새뮤얼 얼먼 <청춘>)
새해가 되고 나이 한 살 또 들면 더 늙었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저들의 한탄은 늙어가는 한탄이 아니라 낡아가는 한탄이다. 늙어도 낡지 않는 삶은
나이 드는 것을 한탄하지 않는다. 그 늙음 속에는 낡음이 있지 않고 이채로운 새로움이 있다.
늙음과 낡음은 글자로는 불과 한 획의 차이밖에 없지만,
그 품은 뜻은 북극과 남극 사이만큼이나 서로 멀다.
늙음이 낡음뿐이라면, 삶은 죽어감 곧 허무나 다름없을 터… 늙으면서 낡아만 간다면,
그 끝에는 절망 밖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낡은 것 꼭 거머쥔 주먹을 끝내 펴지 못한 채 꾀죄죄한 인습(因習)의 구멍에서
손을 빼내지 못하는 노추(老醜), 거세게 불어닥치는 새 시대 새 바람을 애써 눈 감고
외면하는 옹고집… 수구(守舊)의 마지막 몸부림일 따름이다.
늙어가는 나이에도 젊디젊은 마음이 있다.
옛것과 새것을 한 품에 아우르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은은한 지혜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어설픈 잣대를 들이대고 함부로 폄훼의 혀끝을 놀리지 못한다.
연면히 흘러온 역사의 가치, 애환(哀歡)의 삶 속에 켜켜이 박힌 연륜(年輪)의 무게를
가볍디가벼운 젊음의 짧은 삶으로 어찌 감히 비웃을 수 있으랴.
젊은 나이에도 낡디낡은 마음이 있다. 오랜 풍파를 겪어온 삶의 지혜에
두 귀 꽉 막아버린 젊음, 경직된 도그마의 사슬에 질끈 묶여버린 청춘,
우상의 손짓이 연출하는 현란한 상징조작에 넋을 잃은 청년은 나이는 젊어도
낡아빠진 퇴행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자유를 갈구하면서도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한갓 정신적 노예일 따름이다.
낡고 닳아빠진 늙음이나 닫히고 막힌 젊음에게는 보수도 진보도, 전통도 개혁도
모두 헛된 우상일 뿐… 우상이 제공하는 자유 속에는 흐려진 노안(老眼)이나
철없는 젊은 눈이 쉬 알아채지 못하는 새로운 억압 장치의 속임수가 감춰져 있기 일쑤다.
늙어도 낡지 않는 삶은 나날이 신선한 숨결로 살아간다.
껍데기 진보보다 더 앞선 깨우침, 입술의 개혁보다 더 싱그러운 에너지가
삶의 물길에 풍성히 출렁인다. 겉은 낡아가도 속은 날로 새로워지는 것이 아름다운 늙음이요,
겉이 늙어갈수록 속은 더욱 낡아가는 것이 추한 늙음이다.
기껏해야 시대의 한 단면을 서로 찢어 피 터지게 영역 다툼하는 보수와 진보의 칼날들을
유장(悠長)한 역사의 물줄기는 한낱 웃음거리로 휩쓸어갈 뿐이다.
어제의 진보가 오늘의 보수로 쇠락하고, 오늘의 보수가 내일엔 개혁의 새 날갯짓을 하다가,
어느새 다시금 끝 모를 수구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역사의 눈길은 숱하게 지켜봐 왔다.
아니, 지금도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역사를 들먹이되 역사를 알지 못하는
서로의 덧없는 삿대질을… 옛것이 늘 옛것 아니고 새것이 언제나 새것 아니니,
서로 다툰들 무슨 보람 있으랴. 이해와 소통으로 서로 감싸 안느니만 못한 것을…
지난해 세상을 떠난 이들이 그토록 만나기를 바랐지만 끝내 만나지 못한 새해 새날들을
어찌 탄식하며 어영부영 맞을 수 있겠는가. 늙어감은 은총이요 감사할 일이다.
그 감사가 바로 ’늙어도 낡지 않는‘ 새해의 삶이리라.
낡지 않는 늙음은 은총으로 받은 새해의 삶을 한탄하며 맞지 않는다. 감동과 설렘으로 맞는다.
탄식하며 맞이하는 새해는 서글픈 낡음이요 죽어가는 나날이다.
새뮤얼 얼먼의 <청춘>처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의 설렘으로
이 한 해의 삶을 맞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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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 18. 오후 5:13 (9일 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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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김승웅"<swkim4311@naver.com>
Sent: 2024-01-19 (금) 10:12:31 (GMT+09:00)
Subject: 미래 나의 '롤 모델'은 글렌 크로스- 《고도를 기다리며》<오지명>
홍순일 코리어타임스 편집국장 별세
김명식
김승웅 방장 귀하:
새해도 벌써 셋째 주가 다 지나가는군요. 지난 주에 전 코리아 타임스
편집국장 홍순일선배<사진>가 별세했습니다. 92세이시니 말하자면 노환이신데
사인은 폐렴이라고 합니다.
고 홍순일
여러 해 전에 저에게 부탁하시기를 당신께서
돌아가시게 되면 제가 코리아 타임스에 Obituary를 써 달라고
하셨습니다. 부음을 받고 코리아 타임스 오영진 사장에게 전화해서
그런 사연을 알리고 선배의 명을 이행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국일보사
출신 언론인들의 소식지인 한우회보에 따로 추모의 글을 보냈습니다. 하나의
고결한 인간상으로 기억할 만한 분이라고 믿기에 여기 같은 글을 보내드립니다.
2014.1.18
김명식
.........................................
존경만으로는 다 차지 않는 마음
김명식
세상에 불가능한 것이 있다면
그 중 한가지는 홍순일이라는 사람에게서 나쁜 것을 찾아내는 일이다.
2024년이 시작하고 12일에 홍국장님의 부음을 접하고
다음날 신촌 세브란스병원 빈소에 모인 후배들의 회고담의 주제는
결국 이 희한한 불가능에 모아졌다. 누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홍국장을 대하면서 단 한 번도 무슨 일에 화내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했고
또 다른 사람은 그분이 누구의 나쁜 얘기를 옮기는 걸
들어보지 못했다고 거들었다. 비판을 사명으로 하는 언론인 외길을 걸어온
사람에게 이런 스타일의 인성은 결격사유일 수밖에 없겠는데
그러면 홍순일 씨는 무능한 신문기자일까?
1932년생 홍순일은 1954년 장기영 씨가 한국일보를 창간하던 때
그가 그보다 먼저 인수해 발행하던 영어신문 The Korea Times에
소년사원으로 입사해 20년을 근속했는데 후반 7년간은 편집국장직을 맡았다.
그리고는 한국일보 순회특파원으로, 논설위원으로 또 한국일보그룹이 운영하는
Time-Life 한국어판 출판사의 상임이사로 언론인 신분을 유지하면서
관훈클럽 총무(대표), 이어서 관훈클럽 신영연구기금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경기고, 서울공대 조선공학과에서 시작하는 홍순일의 이력서는
비교적 단촐하고 무슨 공직의 장 같은 것은 들어있지 않다.
하지만 긴 세월 동안 언론계 안팎에서 그는 오직 무흠한 인품으로 인해
깊은 신뢰와 존경을 자그마한 몸에 담았다.
우리 후배들에게는 인간 홍순일에 대해 할 말이 한없이 많지만
또한 긁어모을 스토리들이 그렇게 많지도 않은 것이 그가 주로 일한
분야가 특수 언론이라 할 영문 매체였기 때문이다.
그중 두어 사건은 70년대 소위 유신체제라는 엄혹한 상황 속에서
벌어졌다. 코리아 타임스는 Thoughts of The Times라는 자유기고가들의
일일 칼럼을 실어왔는데 다양한 주제에 내외국인들의 자유분방한 시각이
독자들에게 크게 환영 받았다. 1973년 외국인 필자 두 사람이
연속으로 당시 사회적 비판에 오른 기생관광에 대하여서 아예 외화획득 사업으로
정부가 공개적으로 장려, 추진하는 게 어떻겠는가 하고
풍자적 필치의 글을 올렸다.
이 칼럼들의 내용을 일부 국문 일간지들이 번역 인용하자
당국이 국위 손상을 이유로 문제를 삼고 코리아 타임스 편집책임자들을 불러들였다.
홍순일 편집국장과 편집부 기자 한 사람이 남산 정보부 분실에 구금되어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의 고초를 겪고 풀려나왔는데
두 가지 조건이 따라왔다. 하나는 으레 그렇듯이 조사과정에서 당한 일을
일체 발설하지 않는 것과 다른 하나는 편집국장 교체였다.
결국 홍국장은 한국일보 논설위원으로 옮겨갔고
장기영 사주는 곧 그를 빼내어 동남아시아 순회특파원 격으로
당시 장기화한 월남전에다 각국에 태동하는 민주화 운동 그리고
산업화 과정에로 돌입하는 이 지역을 돌며
국가원수들을 인터뷰하라는 중대한 미션을 부여했다.
준비기간은 짧았는데도 홍순일 특파원은 단 3주 동안에
동남아 여덟 나라의 정상급 지도자들을 차례로 단독회견하여
한국일보와 코리아 타임스에 장문의 리포트를 올렸다.
그 대상은 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싱가포르의 리콴유,
말레이시아의 리 타우딘 수상대리, 태국의 쿠크릿 프라모지 수상 지명자,
캄보디아의 론 놀 원수, 라오스의 파테트 라오 제2인자 수티 착,
그리고 월남의 구엔 반 티유 대통령이었다.
이런 전무후무한 국가원수 인터뷰 시리스를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언론인은 흔치 않을 터인데 홍순일은 그의 탁월한 외국어 능력과
해박한 국제정세 지식으로 이를 무난히 해내어 한국 언론사에
굵은 자취를 남겼다. 그런데 시리즈를 끝맺는 종합해설 기사에서
당시 티유 대통령 정부의 독재와 부패상 그리고 군부의 무능력율 해부,
비판한 것이 또다시 유신 정권의 신경을 건드렸다.
국내 상황을 월남에 빗대어 고발했다는 의혹을 씌워서
한국일보 편집국장 및 간부들을 데려가 당시 일상화되어온 언론사 길들이기를
했고 한국일보 기자들은 철야농성으로 저항했다.
이러한 폭거는 당시 진행 중이던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들의
언론자유 회복 운동에 기름을 부었다. 필자 홍순일 순회특파원은 동경에 머물면서
상황이 가라앉기를 기다려야 했는데 그동안에도 그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사토 에이사쿠 직전 총리를 인터뷰했다.
이후 홍순일 논설위원은 하버드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CFIA) 펠로우십에
초청되어 1년간 연수차 다녀오고 이어 코리아 타임스 논설주간,
한국일보 타임-라이프 상임이사, 국제교류재단발행 Korea Focus와
Koreana 편집주간으로 일하며 한편으로는 관훈클럽 운영에
여러 해 힘을 보탰다. 은퇴 후 그는 무욕의 평화가 얼마나 큰 복인가를
보여주었다.
특별한 운동이나 취미생활에 빠지지도 않고 기독교인으로
소망교회에 이어 분당 구미교회에 적을 두었지만 종교활동에 매이지도 않았고
오직 유별난 것이라면 홀로되신 모친에 대한 극진한 효도와
고교시절 시작한 동갑내기 부인과의 고전적 로맨스
그리고 훌륭한 자식 농사이다.
아마도 아들과 사위가 같은 때 나라의 장관직을 가졌던 가정의 예는
다시 없었을 듯한데 아들 홍용표 한양대 교수는 통일부 장관으로,
사위 서승환 전 연세대 총장은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한동안 국무회의에 함께 참석했다.
홍국장님 돌아가시고 시시로 그분의 단아한 모습이 뇌리에 감도는데
존경이라는 흔한 말로는 아무래도 뜻이 모자란다고 스스로 되뇌인다.
<김명식/(현)코리어 헤럴드 칼럼니스트/한국일보 견습 17기/코리아타임스
편집국장, 김대중정부 해외홍보원장, 아리랑TV 이사장 역임/광주일고~
서울법대(58학번)졸/康津 産>
오피니언 신복룡의 신 영웅전
‘로켓 공학 아버지’ 폰 브라운의 탄식
중앙일보
입력 2024.01.18 00:15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로켓 공학의 아버지’ 베르너 마그누스 폰 브라운(1912~1970)은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폴란드 농무부 장관이었고 어머니는 영국 왕실 출신이다. 음악을 공부했으나 꿈은 우주에 있었다. 거리에서 폭약을 실험하다가 경찰에 잡혀간 적도 있다.
베를린공대에서 액체연료를 전공한 그는 병기국에 배속돼 히틀러의 명령으로 영국을 공격한 V-2를 제작했다. 그는 자기의 꿈이 살상용으로 이용되는 것을 괴로워했다. 전쟁이 끝나자 브라운을 체포한 미국은 그를 전범으로 처벌하지 않고 미국으로 데려갔다. 시민권을 주고 국가항공우주국(NASA)에 배속해 로켓 연구에 전념하도록 배려했다. 그가 연구에 몰두할 무렵이던 1959년 소련이 먼저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발사했고, 1961년엔 유리 가가린이 최초로 유인 우주선을 타고 비행에 성공했다.
소련을 늘 한 수 아래로 생각하던 미국은 우주 경쟁에서 선수를 빼앗겼다. 언론사와 과학자들이 폰 브라운을 힐난하면서 장차 어떻게 소련을 따라잡을 수 있느냐며 다그쳤다. 그때 브라운은 담담하게 이렇게 대답했다. “미국의 초등학교에서 수학 공부를 너무 소홀히 한 탓이었습니다.” 그 대답에 기자들이 놀랐고 교육계는 더 놀랐다. 그 당시 나는 ‘타임’지의 이 대목에서 그다음 문장을 읽지 못하고 멍하니 하늘만 쳐다본 기억이 지금도 선연하다.
교육부는 대입 수능에서 미적분Ⅱ와 기하를 뺀다고 한다. 철학을 가르치던 플라톤도 그의 아카데미 입시에 기하학을 모르는 학생을 받지 않았다. 이제 『삼국유사』를 몰라도 사학과를 졸업하는 시대가 오나 보다. 자연과학도인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을 노비로 쓰다가 나라를 망친 유생의 망령이 지금 다시 어른거린다. 인문학이 자연과학을 핍박하는 시대에는 재앙이 온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잘못 가고 있다. 아직도 우리는 ‘갈릴레오의 시대’에 살고 있나.
<신복룡/건국대에서 「동학사상(東學思想)과 한국 민족주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교수, 건국대 중앙도서관장·대학원장,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표 저서로 『한국분단사 연구:1943∼1953』(한울, 2001, 한국정치학회 저술상 수상), 『동학사상과 갑오농민혁명』(선인, 2006),『한국정치사상사』(지식산업사, 2011, 한국정치학회 인재 윤천주상 수상), 『해방정국의 풍경』(지식산업사, 2017), 『전봉준평전』(들녁, 2019), 『군주론』,『삼국지』, 『플루타크 영웅전』(2023), 등이 있다.>
설레는 늙음, 서글픈 낡음
이우근
새뮤얼 얼먼 <청춘>
“젊음이란 인생의 어느 한 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젊음은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장밋빛 뺨, 앵두 같은 입술, 유연한 무릎이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이며, 생명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이다."(새뮤얼 얼먼 <청춘>)
새해가 되고 나이 한 살 또 들면 더 늙었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저들의 한탄은 늙어가는 한탄이 아니라 낡아가는 한탄이다. 늙어도 낡지 않는 삶은
나이 드는 것을 한탄하지 않는다. 그 늙음 속에는 낡음이 있지 않고 이채로운 새로움이 있다.
늙음과 낡음은 글자로는 불과 한 획의 차이밖에 없지만,
그 품은 뜻은 북극과 남극 사이만큼이나 서로 멀다.
늙음이 낡음뿐이라면, 삶은 죽어감 곧 허무나 다름없을 터… 늙으면서 낡아만 간다면,
그 끝에는 절망 밖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낡은 것 꼭 거머쥔 주먹을 끝내 펴지 못한 채 꾀죄죄한 인습(因習)의 구멍에서
손을 빼내지 못하는 노추(老醜), 거세게 불어닥치는 새 시대 새 바람을 애써 눈 감고
외면하는 옹고집… 수구(守舊)의 마지막 몸부림일 따름이다.
늙어가는 나이에도 젊디젊은 마음이 있다.
옛것과 새것을 한 품에 아우르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은은한 지혜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어설픈 잣대를 들이대고 함부로 폄훼의 혀끝을 놀리지 못한다.
연면히 흘러온 역사의 가치, 애환(哀歡)의 삶 속에 켜켜이 박힌 연륜(年輪)의 무게를
가볍디가벼운 젊음의 짧은 삶으로 어찌 감히 비웃을 수 있으랴.
젊은 나이에도 낡디낡은 마음이 있다. 오랜 풍파를 겪어온 삶의 지혜에
두 귀 꽉 막아버린 젊음, 경직된 도그마의 사슬에 질끈 묶여버린 청춘,
우상의 손짓이 연출하는 현란한 상징조작에 넋을 잃은 청년은 나이는 젊어도
낡아빠진 퇴행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자유를 갈구하면서도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한갓 정신적 노예일 따름이다.
낡고 닳아빠진 늙음이나 닫히고 막힌 젊음에게는 보수도 진보도, 전통도 개혁도
모두 헛된 우상일 뿐… 우상이 제공하는 자유 속에는 흐려진 노안(老眼)이나
철없는 젊은 눈이 쉬 알아채지 못하는 새로운 억압 장치의 속임수가 감춰져 있기 일쑤다.
늙어도 낡지 않는 삶은 나날이 신선한 숨결로 살아간다.
껍데기 진보보다 더 앞선 깨우침, 입술의 개혁보다 더 싱그러운 에너지가
삶의 물길에 풍성히 출렁인다. 겉은 낡아가도 속은 날로 새로워지는 것이 아름다운 늙음이요,
겉이 늙어갈수록 속은 더욱 낡아가는 것이 추한 늙음이다.
기껏해야 시대의 한 단면을 서로 찢어 피 터지게 영역 다툼하는 보수와 진보의 칼날들을
유장(悠長)한 역사의 물줄기는 한낱 웃음거리로 휩쓸어갈 뿐이다.
어제의 진보가 오늘의 보수로 쇠락하고, 오늘의 보수가 내일엔 개혁의 새 날갯짓을 하다가,
어느새 다시금 끝 모를 수구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역사의 눈길은 숱하게 지켜봐 왔다.
아니, 지금도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역사를 들먹이되 역사를 알지 못하는
서로의 덧없는 삿대질을… 옛것이 늘 옛것 아니고 새것이 언제나 새것 아니니,
서로 다툰들 무슨 보람 있으랴. 이해와 소통으로 서로 감싸 안느니만 못한 것을…
지난해 세상을 떠난 이들이 그토록 만나기를 바랐지만 끝내 만나지 못한 새해 새날들을
어찌 탄식하며 어영부영 맞을 수 있겠는가. 늙어감은 은총이요 감사할 일이다.
그 감사가 바로 ’늙어도 낡지 않는‘ 새해의 삶이리라.
낡지 않는 늙음은 은총으로 받은 새해의 삶을 한탄하며 맞지 않는다. 감동과 설렘으로 맞는다.
탄식하며 맞이하는 새해는 서글픈 낡음이요 죽어가는 나날이다.
새뮤얼 얼먼의 <청춘>처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의 설렘으로
이 한 해의 삶을 맞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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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나의 '롤 모델'은 글렌 크로스- 《고도를 기다리며》<오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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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 18. 오후 5:13 (9일 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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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 Message-----
From: "김승웅"<swkim4311@naver.com>
Sent: 2024-01-19 (금) 10:12:31 (GMT+09:00)
Subject: 미래 나의 '롤 모델'은 글렌 크로스- 《고도를 기다리며》<오지명>
홍순일 코리어타임스 편집국장 별세
김명식
김승웅 방장 귀하:
새해도 벌써 셋째 주가 다 지나가는군요. 지난 주에 전 코리아 타임스
편집국장 홍순일선배<사진>가 별세했습니다. 92세이시니 말하자면 노환이신데
사인은 폐렴이라고 합니다.
고 홍순일
여러 해 전에 저에게 부탁하시기를 당신께서
돌아가시게 되면 제가 코리아 타임스에 Obituary를 써 달라고
하셨습니다. 부음을 받고 코리아 타임스 오영진 사장에게 전화해서
그런 사연을 알리고 선배의 명을 이행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국일보사
출신 언론인들의 소식지인 한우회보에 따로 추모의 글을 보냈습니다. 하나의
고결한 인간상으로 기억할 만한 분이라고 믿기에 여기 같은 글을 보내드립니다.
2014.1.18
김명식
.........................................
존경만으로는 다 차지 않는 마음
김명식
세상에 불가능한 것이 있다면
그 중 한가지는 홍순일이라는 사람에게서 나쁜 것을 찾아내는 일이다.
2024년이 시작하고 12일에 홍국장님의 부음을 접하고
다음날 신촌 세브란스병원 빈소에 모인 후배들의 회고담의 주제는
결국 이 희한한 불가능에 모아졌다. 누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홍국장을 대하면서 단 한 번도 무슨 일에 화내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했고
또 다른 사람은 그분이 누구의 나쁜 얘기를 옮기는 걸
들어보지 못했다고 거들었다. 비판을 사명으로 하는 언론인 외길을 걸어온
사람에게 이런 스타일의 인성은 결격사유일 수밖에 없겠는데
그러면 홍순일 씨는 무능한 신문기자일까?
1932년생 홍순일은 1954년 장기영 씨가 한국일보를 창간하던 때
그가 그보다 먼저 인수해 발행하던 영어신문 The Korea Times에
소년사원으로 입사해 20년을 근속했는데 후반 7년간은 편집국장직을 맡았다.
그리고는 한국일보 순회특파원으로, 논설위원으로 또 한국일보그룹이 운영하는
Time-Life 한국어판 출판사의 상임이사로 언론인 신분을 유지하면서
관훈클럽 총무(대표), 이어서 관훈클럽 신영연구기금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경기고, 서울공대 조선공학과에서 시작하는 홍순일의 이력서는
비교적 단촐하고 무슨 공직의 장 같은 것은 들어있지 않다.
하지만 긴 세월 동안 언론계 안팎에서 그는 오직 무흠한 인품으로 인해
깊은 신뢰와 존경을 자그마한 몸에 담았다.
우리 후배들에게는 인간 홍순일에 대해 할 말이 한없이 많지만
또한 긁어모을 스토리들이 그렇게 많지도 않은 것이 그가 주로 일한
분야가 특수 언론이라 할 영문 매체였기 때문이다.
그중 두어 사건은 70년대 소위 유신체제라는 엄혹한 상황 속에서
벌어졌다. 코리아 타임스는 Thoughts of The Times라는 자유기고가들의
일일 칼럼을 실어왔는데 다양한 주제에 내외국인들의 자유분방한 시각이
독자들에게 크게 환영 받았다. 1973년 외국인 필자 두 사람이
연속으로 당시 사회적 비판에 오른 기생관광에 대하여서 아예 외화획득 사업으로
정부가 공개적으로 장려, 추진하는 게 어떻겠는가 하고
풍자적 필치의 글을 올렸다.
이 칼럼들의 내용을 일부 국문 일간지들이 번역 인용하자
당국이 국위 손상을 이유로 문제를 삼고 코리아 타임스 편집책임자들을 불러들였다.
홍순일 편집국장과 편집부 기자 한 사람이 남산 정보부 분실에 구금되어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의 고초를 겪고 풀려나왔는데
두 가지 조건이 따라왔다. 하나는 으레 그렇듯이 조사과정에서 당한 일을
일체 발설하지 않는 것과 다른 하나는 편집국장 교체였다.
결국 홍국장은 한국일보 논설위원으로 옮겨갔고
장기영 사주는 곧 그를 빼내어 동남아시아 순회특파원 격으로
당시 장기화한 월남전에다 각국에 태동하는 민주화 운동 그리고
산업화 과정에로 돌입하는 이 지역을 돌며
국가원수들을 인터뷰하라는 중대한 미션을 부여했다.
준비기간은 짧았는데도 홍순일 특파원은 단 3주 동안에
동남아 여덟 나라의 정상급 지도자들을 차례로 단독회견하여
한국일보와 코리아 타임스에 장문의 리포트를 올렸다.
그 대상은 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싱가포르의 리콴유,
말레이시아의 리 타우딘 수상대리, 태국의 쿠크릿 프라모지 수상 지명자,
캄보디아의 론 놀 원수, 라오스의 파테트 라오 제2인자 수티 착,
그리고 월남의 구엔 반 티유 대통령이었다.
이런 전무후무한 국가원수 인터뷰 시리스를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언론인은 흔치 않을 터인데 홍순일은 그의 탁월한 외국어 능력과
해박한 국제정세 지식으로 이를 무난히 해내어 한국 언론사에
굵은 자취를 남겼다. 그런데 시리즈를 끝맺는 종합해설 기사에서
당시 티유 대통령 정부의 독재와 부패상 그리고 군부의 무능력율 해부,
비판한 것이 또다시 유신 정권의 신경을 건드렸다.
국내 상황을 월남에 빗대어 고발했다는 의혹을 씌워서
한국일보 편집국장 및 간부들을 데려가 당시 일상화되어온 언론사 길들이기를
했고 한국일보 기자들은 철야농성으로 저항했다.
이러한 폭거는 당시 진행 중이던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들의
언론자유 회복 운동에 기름을 부었다. 필자 홍순일 순회특파원은 동경에 머물면서
상황이 가라앉기를 기다려야 했는데 그동안에도 그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사토 에이사쿠 직전 총리를 인터뷰했다.
이후 홍순일 논설위원은 하버드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CFIA) 펠로우십에
초청되어 1년간 연수차 다녀오고 이어 코리아 타임스 논설주간,
한국일보 타임-라이프 상임이사, 국제교류재단발행 Korea Focus와
Koreana 편집주간으로 일하며 한편으로는 관훈클럽 운영에
여러 해 힘을 보탰다. 은퇴 후 그는 무욕의 평화가 얼마나 큰 복인가를
보여주었다.
특별한 운동이나 취미생활에 빠지지도 않고 기독교인으로
소망교회에 이어 분당 구미교회에 적을 두었지만 종교활동에 매이지도 않았고
오직 유별난 것이라면 홀로되신 모친에 대한 극진한 효도와
고교시절 시작한 동갑내기 부인과의 고전적 로맨스
그리고 훌륭한 자식 농사이다.
아마도 아들과 사위가 같은 때 나라의 장관직을 가졌던 가정의 예는
다시 없었을 듯한데 아들 홍용표 한양대 교수는 통일부 장관으로,
사위 서승환 전 연세대 총장은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한동안 국무회의에 함께 참석했다.
홍국장님 돌아가시고 시시로 그분의 단아한 모습이 뇌리에 감도는데
존경이라는 흔한 말로는 아무래도 뜻이 모자란다고 스스로 되뇌인다.
<김명식/(현)코리어 헤럴드 칼럼니스트/한국일보 견습 17기/코리아타임스
편집국장, 김대중정부 해외홍보원장, 아리랑TV 이사장 역임/광주일고~
서울법대(58학번)졸/康津 産>
오피니언 신복룡의 신 영웅전
‘로켓 공학 아버지’ 폰 브라운의 탄식
중앙일보
입력 2024.01.18 00:15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로켓 공학의 아버지’ 베르너 마그누스 폰 브라운(1912~1970)은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폴란드 농무부 장관이었고 어머니는 영국 왕실 출신이다. 음악을 공부했으나 꿈은 우주에 있었다. 거리에서 폭약을 실험하다가 경찰에 잡혀간 적도 있다.
베를린공대에서 액체연료를 전공한 그는 병기국에 배속돼 히틀러의 명령으로 영국을 공격한 V-2를 제작했다. 그는 자기의 꿈이 살상용으로 이용되는 것을 괴로워했다. 전쟁이 끝나자 브라운을 체포한 미국은 그를 전범으로 처벌하지 않고 미국으로 데려갔다. 시민권을 주고 국가항공우주국(NASA)에 배속해 로켓 연구에 전념하도록 배려했다. 그가 연구에 몰두할 무렵이던 1959년 소련이 먼저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발사했고, 1961년엔 유리 가가린이 최초로 유인 우주선을 타고 비행에 성공했다.
소련을 늘 한 수 아래로 생각하던 미국은 우주 경쟁에서 선수를 빼앗겼다. 언론사와 과학자들이 폰 브라운을 힐난하면서 장차 어떻게 소련을 따라잡을 수 있느냐며 다그쳤다. 그때 브라운은 담담하게 이렇게 대답했다. “미국의 초등학교에서 수학 공부를 너무 소홀히 한 탓이었습니다.” 그 대답에 기자들이 놀랐고 교육계는 더 놀랐다. 그 당시 나는 ‘타임’지의 이 대목에서 그다음 문장을 읽지 못하고 멍하니 하늘만 쳐다본 기억이 지금도 선연하다.
교육부는 대입 수능에서 미적분Ⅱ와 기하를 뺀다고 한다. 철학을 가르치던 플라톤도 그의 아카데미 입시에 기하학을 모르는 학생을 받지 않았다. 이제 『삼국유사』를 몰라도 사학과를 졸업하는 시대가 오나 보다. 자연과학도인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을 노비로 쓰다가 나라를 망친 유생의 망령이 지금 다시 어른거린다. 인문학이 자연과학을 핍박하는 시대에는 재앙이 온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잘못 가고 있다. 아직도 우리는 ‘갈릴레오의 시대’에 살고 있나.
<신복룡/건국대에서 「동학사상(東學思想)과 한국 민족주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교수, 건국대 중앙도서관장·대학원장,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표 저서로 『한국분단사 연구:1943∼1953』(한울, 2001, 한국정치학회 저술상 수상), 『동학사상과 갑오농민혁명』(선인, 2006),『한국정치사상사』(지식산업사, 2011, 한국정치학회 인재 윤천주상 수상), 『해방정국의 풍경』(지식산업사, 2017), 『전봉준평전』(들녁, 2019), 『군주론』,『삼국지』, 『플루타크 영웅전』(2023), 등이 있다.>
설레는 늙음, 서글픈 낡음
이우근
새뮤얼 얼먼 <청춘>
“젊음이란 인생의 어느 한 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젊음은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장밋빛 뺨, 앵두 같은 입술, 유연한 무릎이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이며, 생명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이다."(새뮤얼 얼먼 <청춘>)
새해가 되고 나이 한 살 또 들면 더 늙었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저들의 한탄은 늙어가는 한탄이 아니라 낡아가는 한탄이다. 늙어도 낡지 않는 삶은
나이 드는 것을 한탄하지 않는다. 그 늙음 속에는 낡음이 있지 않고 이채로운 새로움이 있다.
늙음과 낡음은 글자로는 불과 한 획의 차이밖에 없지만,
그 품은 뜻은 북극과 남극 사이만큼이나 서로 멀다.
늙음이 낡음뿐이라면, 삶은 죽어감 곧 허무나 다름없을 터… 늙으면서 낡아만 간다면,
그 끝에는 절망 밖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낡은 것 꼭 거머쥔 주먹을 끝내 펴지 못한 채 꾀죄죄한 인습(因習)의 구멍에서
손을 빼내지 못하는 노추(老醜), 거세게 불어닥치는 새 시대 새 바람을 애써 눈 감고
외면하는 옹고집… 수구(守舊)의 마지막 몸부림일 따름이다.
늙어가는 나이에도 젊디젊은 마음이 있다.
옛것과 새것을 한 품에 아우르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은은한 지혜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어설픈 잣대를 들이대고 함부로 폄훼의 혀끝을 놀리지 못한다.
연면히 흘러온 역사의 가치, 애환(哀歡)의 삶 속에 켜켜이 박힌 연륜(年輪)의 무게를
가볍디가벼운 젊음의 짧은 삶으로 어찌 감히 비웃을 수 있으랴.
젊은 나이에도 낡디낡은 마음이 있다. 오랜 풍파를 겪어온 삶의 지혜에
두 귀 꽉 막아버린 젊음, 경직된 도그마의 사슬에 질끈 묶여버린 청춘,
우상의 손짓이 연출하는 현란한 상징조작에 넋을 잃은 청년은 나이는 젊어도
낡아빠진 퇴행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자유를 갈구하면서도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한갓 정신적 노예일 따름이다.
낡고 닳아빠진 늙음이나 닫히고 막힌 젊음에게는 보수도 진보도, 전통도 개혁도
모두 헛된 우상일 뿐… 우상이 제공하는 자유 속에는 흐려진 노안(老眼)이나
철없는 젊은 눈이 쉬 알아채지 못하는 새로운 억압 장치의 속임수가 감춰져 있기 일쑤다.
늙어도 낡지 않는 삶은 나날이 신선한 숨결로 살아간다.
껍데기 진보보다 더 앞선 깨우침, 입술의 개혁보다 더 싱그러운 에너지가
삶의 물길에 풍성히 출렁인다. 겉은 낡아가도 속은 날로 새로워지는 것이 아름다운 늙음이요,
겉이 늙어갈수록 속은 더욱 낡아가는 것이 추한 늙음이다.
기껏해야 시대의 한 단면을 서로 찢어 피 터지게 영역 다툼하는 보수와 진보의 칼날들을
유장(悠長)한 역사의 물줄기는 한낱 웃음거리로 휩쓸어갈 뿐이다.
어제의 진보가 오늘의 보수로 쇠락하고, 오늘의 보수가 내일엔 개혁의 새 날갯짓을 하다가,
어느새 다시금 끝 모를 수구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역사의 눈길은 숱하게 지켜봐 왔다.
아니, 지금도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역사를 들먹이되 역사를 알지 못하는
서로의 덧없는 삿대질을… 옛것이 늘 옛것 아니고 새것이 언제나 새것 아니니,
서로 다툰들 무슨 보람 있으랴. 이해와 소통으로 서로 감싸 안느니만 못한 것을…
지난해 세상을 떠난 이들이 그토록 만나기를 바랐지만 끝내 만나지 못한 새해 새날들을
어찌 탄식하며 어영부영 맞을 수 있겠는가. 늙어감은 은총이요 감사할 일이다.
그 감사가 바로 ’늙어도 낡지 않는‘ 새해의 삶이리라.
낡지 않는 늙음은 은총으로 받은 새해의 삶을 한탄하며 맞지 않는다. 감동과 설렘으로 맞는다.
탄식하며 맞이하는 새해는 서글픈 낡음이요 죽어가는 나날이다.
새뮤얼 얼먼의 <청춘>처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의 설렘으로
이 한 해의 삶을 맞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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