繪畵的 傾向의 現代 時調作品들/유준호
시조는 어느 문학 장르보다 율격이 중시되는 문학이다. 그 율격을 소홀히 하면 시조의 본성(本性)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그렇다고 율격에 그저 말만 붙여 놓으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시조는 제약이 많아 쓰기에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시조 작품은 작품으로서의 작품성과 함께 백수(白水)정완영 시백이 밝혔듯이 “날고, 들이고, 후루루 감는” 물레질과도 같은 내용 및 형태 구조도 들어맞아야 한다. 이미 율격에 대하여는 여러 사람이 여러 곳에서 시대를 초월하여 언급하고 있기에 여기서는 부연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현대시조가 현대시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 마디로 현대시조는 전래의 전통(傳統)이 된 구(句) 및 장(章)의 상호 호응과 대립 등 팽팽한 긴장감 속에 시조의 틀이 짜여야 하며 신선(新鮮)한 여유와 운치가 있어야 하고 종장의 점층적 기법은 잘 살려주어야 한다. 여기서 이런 면을 고려하여 율격을 잘 지키면서도 이미지를 살려 정신적 그림을 오묘하게 표현해 내고 있는 시조 작품들이 있다. 이미지즘의 시를 회화시(繪畵詩)라고 하듯이 이런 시조는 회화시조(繪畵時調)라 할 수 있다. 회화시(繪畵詩)라는 말은 서기 5, 6세기경 그리스 서정시인인 시모니데스(Simonides of Ceos BC 556경~ BC 468경)가 “회화는 말없는 시요, 시는 말하는 그림이다.”라고 하여 시와 회화의 자매성(姉妹性)을 언급한 것이 효시(嚆矢)라고 알려져 있다. 이런 문학의 모습은 서양의 풍경화나 정물화 혹은 동양의 산수화(山水畵) 등의 회화의 표현방식과 유사한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실제의 풍물이나 산수가 아닌 마음과 상상 속의 그것이다. 회화의 중심 시학은 18, 19세기에 들어서면서 활발한 토론의 대상이 되면서 오늘날 현대시와 회화의 장을 풍요롭게 하는 소중한 토양으로 새로운 장르의 시와 예술을 꽃피우게 하였다.
이런 경향은 현대시조에도 영향을 미쳤다. 현대시조에서 이에 걸맞은 몇몇 작품을 여기에 소개하며 감상해 보기로 한다. 시조쓰기에서의 전개 기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주로 이미지즘의 시조 작품을 문제로 올려 이미지의 형상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그 전개 방식에 따라 선경후정의 원리가 적용된 작품과 상징과 생략의 묘도 빼놓을 수 없는 기법이기에 이런 작품도 만나보기로 한다. 아울러 요즘의 시조 형태는 대체적으로 세 가지 표현 유형을 보여 주고 있는데, 정격, 변격, 변형의 모습이 그것이다. 여기서 변형이란 말은 연형시조도 장형시조도 아닌 어정쩡한 형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조인지 시인지 그 형태가 불분명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런 변형시조는 엄격한 의미에서 시조가 아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이런 종류는 논의의 대상이 아니기에 제외하고, 이에 알맞은 보기가 되는 작품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미지 (image)란 본디 '그림자 '· '모조(模造)'라는 뜻을 가진 말인데 우리말로는 '심상(心象)' · '영상(映像)' 을 지칭한다. 이는 사람의 마음속에 그려지는 사물의 감각적 영상(映像)으로 주로 시각적인 것을 말한다. 하지만 시각 이외의 감각적 심상(心象)도 이미지라고 한다. 따라서 예술분야에서는 표현 대상을 감각적으로 호소하기 위하여 묘사 - 주로 은유적인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언어로서 시나 시조를 쓰고, 쓰인 시나 시조를 통해서 여러 가지 모습을 마음속에 복사(copy)하게 되는데 그것이 이미지이다. 즉, 우리의 지각이나 감각 작용으로 체득된 경험이 마음속에 잠재하여 있다가 새로운 모습으로 재생되어 표출되는 것이 이미지의 생성이다. 그래 그런지 프랑스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폴 발레리(Paul Valéry, 1871 ~ 1945)는 현대시는 80%가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1. 선경후정(先景後情)의 회화적 작품들
1-1. 선경후정(先景後情)의 시조 작품
일반적으로 이미지가 살아 숨 쉬는 작품은 대부분 선경후정(先景後情) 원리를 갖추고 있는 서정 시조이다. 초·중장에서는 경치(先景)를 묘사 표출하고, 종장에 이르러 그에 촉발된 작자(시인)의 정서(後情)를 표출해내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 때 이를 표현하는 이미지들은 대부분 시각적인 것이지만 시각적(視覺的) ․ 청각적(聽覺的) ․ 촉각적(觸覺的) 이미지가 결합되어 공감각적(共感覺的) 이미지로 표출되어 나타나는 것이 적지 않다. 이런 표현의 틀은 중국의 한시(漢詩)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짐작된다. 특히 두보(杜甫)의 시에 이런 모습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작품 속의 이미지는 하나의 정신적 그림을 뇌리(腦裏)에 그려준다. 그래서 이런 시조를 회화시조(繪畫時調)라 정의(定義)하고 있다.
정오의 빈 들녘에 핏빛 노을이 타오른다.
숨찬 경운기 부대 속속 읍내로 들어서고……
물 건너 몰려온 한파(寒波)
우짖고 있는 풀뿌리.
성난 쌀, 그 쌀 상여여.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만장이여.
무너진 상복 행렬 쇠장 터에 진을 치고………
한겨울 밤이 깊어도
들불 거푸 치솟는다.
어둡고 차운 고개 허위넘는 떼기침 소리
해진 농기(農旗) 몇 개 지쳐 쓰러진 마을 어귀로
뜻 모를 먼동이 튼다.
새벽닭이 홰를 친다.
송선영 시인의 “신 ‧ 귀성록(新‧歸省錄)”이다. 초, 중장은 장별(章別) 배행, 종장은 구별(句別) 배행을 시킨 작품이다. ‘들녘’, ‘노을’, ‘풀뿌리’, ‘만장’, ‘상복행렬’, ‘들불, ‘농기(農旗)’, ‘닭’의 시각적 이미지와 ‘우짖고’, ‘떼기침’, ‘(홰를)친다’의 청각적 이미지 그리고 ‘숨찬’, ‘한파’, ‘차운’, ‘허위’ 등의 촉각 이미지가 어울려 있는 공감각적 이미지로 비통함의 정서를 호소하는 풍경이 그려진 회화 시조이다. 즉, 여러 이미지를 동원하여 쌀 수입 개방에 따른 농촌의 위기 상황과 절박함을 표현해 주고 있다. 한낮에 피땀 흘려 가꿔 거둔 볏가리를 들녘에 쌓아놓고 불 질러 때 아닌 때 서글픈 노을을 만들어 놓고, 경운기를 몰고 항의 시위를 하려고 시내로 모여 외국산 농산물 수입 반대를 외치는 모습과 그에서 느끼는 처연(悽然)함이 첫 수에 그려져 있고, 둘째 수에서는 농민의 성난 인심이 서린 쌀가마를 상여에 얹어 싣고 상복 차림으로 쇠장 터에 모여 항의 글귀가 적힌 만장을 앞세워 횃불을 들고 데모하는 모습과 잠 못 드는 농심(農心)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마지막 수에서는 밤새워 얻은 것은 기침뿐인 몸을 추슬러 돌아온 황폐한 마을 모습을 그렸다. 삶을 알리는 무심한 닭울음소리가 오히려 을씨년스럽다. 이 작품은 주로 초, 중장에서 풍경을, 종장에서 정리(情理)를 표현하고 있다.
낮에는 연꽃들이 궁중무로 출렁이고
밤에는 반딧불이 귀신처럼 쏘다니고
세월도
쉼표로 앉아
구운몽을 펼치네.
김옥중 시인의 “우포늪-여름-”이란 작품인데 장별 배행과 음보별 배행으로 이루어진 시조이다. 초, 중장에 역동적 풍경을 감각적 이미지로 배치하여 시적 정경을 펼친 다음 정적(靜的)인 느낌을 종장에 두어 마무리한 선경후정(先景後情)의 시조이다. 초장 "궁중무로 출렁이고"와 중장의 "귀신처럼 쏘다니고"는 낮과 밤의 풍경을 전형적인 시조 형태인 대구법을 사용하여 여름날의 우포늪에 펼쳐진 정경을 파노라마로 보여주고 있다. 종장과 초, 중장과는 또 다른 표현상의 대를 이루고 있는데 역동적 경치(景致)에서 고요, 침잠(沈潛)의 감정 표출로 시적 변동을 일으키는 이미지즘이 되고 있다. 이 작품도 초' 중장이 선경(先景)에 해당되고, 종장이 후정(後情)에 해당하는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회화시조라 하겠다.
흙 묻은 호미 놓고
땀 밴 웃옷 벗어두고
느티나무 그늘에서
오수午睡에 깊이 든 이
꿈에선
어느 영토에
맹주로나 앉았을까.
이 작품은 김광수 시인의 “故鄕抒情․6”이란 구별 배행된 시조 전문이다. 호흡이 길지 않은 단형시조로 초, 중장에서는 한여름 땡볕 아래 호미로 논밭의 풀을 매다가 흥건히 땀이 밴 삼베 등걸이 웃옷을 벗어놓고 느티나무 밑에서 낮잠을 즐기는 시골 고향 사람들의 그리운 모습을 심상 삼아 선경(先景)을 펼쳐 보이고, 종장에서는 현실로는 더 없이 고달픈 존재이지만 꿈에서나마 당당한 영주의 모습으로 앉았을 것이라는 희망적 생각을 심상으로 후정(後情)을 표현하고 있다.
홍화 빛 햇살 한 줌
시린 눈을 비벼댄다.
노랗게 익은 들판
젖은 꿈을 말리었다.
가슴팍 헤집어대며
너울 이는 그리움
양명천 시인의 “석양”이란 구별 배행 시조이다. 이 작품도 전형적인 선경후정(先景後情)의 작품이다. 홍화는 잇꽃이라고도 하는데 여름에 붉은 꽃을 피우는 풀로 꽃은 말려 조혈 화혈(調血和血), 통경지통(通經止痛) 한약재로 쓰인다고 되어 있다. 여기서 ‘홍화 빛’은 붉게 타오르며 지는 석양(夕陽)의 모습이다.
종장의 ‘너울이는’은 ‘너울 이는’으로 띄어쓰기가 되어야 할 듯하여 그리 표기하였다. 초장에서는 서산에 넘어가는 눈부신 햇살을, 중장에서는 가을 들판의 여문 곡식들의 모습을 꿈에 젖어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선경(先景)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종장에서는 가슴을 파고드는 그리움이 너울처럼 몰려듦을 후정(後情)으로 표현하고 있다. 농부는 한 해의 꿈을 자기가 씨앗 뿌린 가을 들판에 둔다고 한다. 이 작품은 시적 화자가 빨갛게 노을 진 서녘 하늘을 바라보며 꿈이 서린 들판에 익어가는 곡식을 보며 가슴에 차오르는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길섶에 서성이던 바람들의 그림자
가느란 햇살 위에 적막으로 내리는데
빛바랜 낮달의 연가 낙엽처럼 떠돈다.
이건영 시인의 "만추(晩秋)"이다. 장별 배행으로 된 시조로 서정적인 정감이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바람들의 그림자’ ‘가느란 햇살에 적막으로 내리는데’는 시인이 추상적 사실을 이미지화하여 구상화한 인상적인 시적 영상 표현이다. 여기서 ‘가느란’은 시적 허용어이다. 이 작품도 초장과 중장에서 시적 정경을 종장에서 작자가 느끼는 정감을 진술하면서 끝을 맺어 선경후정(先景後情)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1-2. 선경후정(先景後情)이 혼용(混用), 교직(交織), 융합(融合)된 시조 작품
선경후정의 원리는 초·중장은 가시적 이미지를, 종장은 마음속에 포착된 심상적 이미지(작자의 내면의식)를 표현하는 것이 통례(通例)이다. 그러나 모든 시조가 다 똑같이 이 원리를 그대로 따르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 시적자아의 정감이 먼저 오고(後情), 서경 묘사가 뒤에 오는(先景) 경우도 있으며 이들을 섞이어 표현하기도 하고, 서경 속에 정을 숨는 경우도 있다. 표현을 엮어 짜느냐, 섞어 짜느냐, 정(情)을 앞에 두느냐, 뒤에 두느냐, 경(景)속에 정(情)을 숨기느냐, 이들이 서로 섞이느냐는 시인의 개성적 표현 특성이나 시조의 소재, 제재에 달라질 수 있다.
성근 숲
여윈 가지 끝에
죽지 접은 새처럼.
물에 뜬
젖빛 구름
물살에 밀린 가랑잎처럼.
겨울 해
종종걸음도
창살에 지는 그림자처럼.
김상옥 시인의 “근황(近況)”이란 음보별(音步別), 구별 배행 시조이다. ‘숲’. ‘새’ ‘물’ ‘구름’ ‘가랑잎’ ‘겨울 해’ ‘그림자’ 등의 구체적인 시각적 이미지는 이 작품이 암시(暗示)하는 “근황(近況)”이란 시적 자아의 심리 상황을 엿보게 한다. 현재 처(處)한 시적 자아의 상황을 세 개의 이미지 ‘새처럼’ ‘가랑잎처럼’ ‘그림자처럼’으로 내적 심리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여윈 가지 끝, 죽지 접는, 물살에 밀린, 창살에 지는 같은 하강적(악마적) 이미지 시어들이 쓸쓸하고 초췌한 삶의 모습을 연상시켜 주고 있다. 즉 시각적 풍경을 통하여 그 뒤에 숨은 시적 자아의 정서를 표출하고 있다. 경치와 삶의 사유(思惟)가 상보적(相補的)으로 어울린 작품이다.
눈앞에
다가서는
고향 마당 정자나무
그늘 아래 평상엔
바둑판
세월을 놓고
잎사귀
녹음 사이사이
풍악 걸린
새
소
리
이도현 시인의 “盆栽”이다. 이 작품은 경(景)만 보이고 정(情)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정(情)이 없는 게 아니라 경(景) 뒤에 숨어 있다. 이 작품을 대하면 고향 마을 정자나무 그늘 아래 바둑판을 놓고 새소리 벗 삼아 정담을 나누는 정경이 그려진다. 바둑을 신선놀음이라고 하지 않던가. 근심 걱정 다 버리고 정(淨)한 마음 속에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신선(神仙) 같은 평정무심(平靜無心)한 정리(情理)를 전편을 통하여 표출한 시조 작품이다.
앞에서도 말한 바 있지만 모든 시나 시조가 한결같이, 그리고 무슨 공식에 대입하는 것처럼 선경 후정의 원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情)이 먼저 오고 경(景)이 뒤쪽에 배치되는 수도 있다. 따라서 경(景)이나 정(情)의 어느 한 쪽이 무시되거나 생략되는 경우도 없지 않으나 그러한 표현 기법을 구사할 때는 고도의 테크닉과 완결구조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시의 자세에 대하여 선인(先人)들이 한 말 몇 마디를 새겨보자.
다산 정약용 선생은 해남 대둔사에서 혜장(蕙藏)스님을 불러 앉혀놓고 ‘진실한 글은 있는 그대로를 써야지. 핍박을 당하는 농민의 괴로움을 그대로 써야 산 글이 되는 게지. 그림도 마찬가지야. 뜻만 그리고 모습을 그리지 않으면 그것은 그림이 아닌 게야.’라고 타일렀다고 한다.
또 중국 청나라 때 시인 원매(Yuan Mei, 袁枚)는 ‘시는 말 밖의 말(言之外言), 뜻밖의 뜻(意之外意), 풍경 밖의 풍경(景之外景)을 담지 않으면 그 맛은 납을 씹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하고 또 중국 북송 때 소동파(蘇東坡)는 ‘시중유화(詩中有畵), 화중유시(畵中有詩)’라 하려 동양의 시화(詩畵)는 시 가운데 그림이 있고, 그림 가운데 시가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모두 선경후정(先景後情)의 원리이다. 그리고 프랑스의 상징주의(象徵主義) 시인이며 악마주의(惡魔主義) 시의 개척자로 알려진 "악의 꽃"의 시인 보들레르가 말한 상응의 원리나 한시(漢詩)에 보이는 자연에 대한 묘사가 나타나는 전대절(前大節)과 인간의 반응(詩的 話者)이 나타나는 후소절(後小節)의 원리 또한 이 선경후정(先景後情)의 원리와 같다.
2, 생략(省略)과 상징(象徵)의 회화적 작품들
2-1, 생략법(省略法)이 나타난 시조 작품
생략법은 문장을 간결하게 하여 언외지의(言外之意)나 여운(餘韻)·암시를 주어 독자가 이를 파악하게 하는 수사법을 말한다. 따라서 시적 변화를 유도하는 표현 방식인데 이런 작품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타나는데 어구를 생략하여 여운을 주는 방식이 그 하나이고, 행간을 통째로 비워 무한한 상상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행간 생략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다음에 말할 상징보다 덜 하지 않은 고도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생전에 지은 죄업 수미산에 이르는가.
큰스님 열반송은 퇴설당에 잦아들고
해인사 풍경소리에 절로 짓는 염화미소.
이영주 시인의 "해인사에서"란 장별 배행 시조로 행간을 통째로 비워 고도의 상상력을 요구하는 작품이다. 시조 보법이 남다르다. 행간에 숱한 말이 숨어 있다. 잡다한 언어의 군더더기를 대담하게 생략하여 간결하면서도 낭창거리는 리듬감을 살렸다. 그러면서 그 속에 인생의 무게가 실린 사상성까지 아우르고 있다. 이 작품을 읽으면 海印寺(해인사)의 고적(孤寂)함과 고요함 속에 깨달음의 미소(염화미소 : 拈華微笑)가 평생의 죄업을 씻어내는 큰스님 독경(讀經) 소리와 함께 골짝에 물처럼 흘러넘치는 풍경이 그려진다.
다 저문
강 마을에
매화
꽃,
떨어진다.
그 꽃을 받들기 위해 이 강물이 달려가고
다음 질,
꽃 다칠세라
저 강물이 달려오고…
이종문 시인의 “매화꽃, 떨어져서”이다. 어절별(語節)과 음보별 배행이 이루어진 시형의 시조로 어구를 생략하여 여운을 일으키는 작품이다. 이를 찬찬히 음미 감상해 보면 시조의 어절 사이에 잔잔한 이야기가 생략된 채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에 대해서 '낙조와 낙화의 모습과 강물의 움직임을 수직과 수평 방향의 형태 상징을 통해, 나아가 그 속도감의 대비마저 여실히 포착해 그려내고 있다'(정 재찬 청주대 교수)고 언급했는데 바로 본 것 같다. 이 작품은 형태만 보아도 떨어짐과 퍼짐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면서 많은 말을 그 속에 감추고 있다. 즉, 고도의 생략기법을 시용하고 있다.
(하루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날) ‘저문 강 마을에’ (희망과 꿈의 상징인) ‘매화꽃이 떨어지’고, ‘그 꽃잎 받들’러 가려고 ‘강물(근처의 세월)이 달려가고’ (아직은 남아 기쁨과 희망을 주는 매화꽃이) 다음에 질 텐데, (그 때 혹시 지다가) 다쳐서 흠집이라도 날까봐 (두려워) ‘저 멀리서 강물(오는 세월)이 달려와’ (그 꽃잎을 받들려고 애타게 주시하고 있다) 강 마을에 매화꽃이 피었다가 한 잎 두 잎 떨어져 강물에 실려가는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동양화 같은 회화성이 돋보이는 시조 작품이다. 여기서 ‘…’은 ‘달려가고, 달려오고’의 반복어구가 시간(時間)과 공간(空間) 속에 생략되어 있다.
2-2. 상징(象徵)이 나타난 시조 작품
상징의 영어 표기 ‘symbol’이란 말의 원뜻은 동사로 조립한다. 짝 맞추다의 뜻이고, 명사형으로는 표상, 표시, 기호를 뜻한다. 다시 말하면 상징은 두 가지의 연결, 결합의 복합 의미를 가진 말로 표상, 표시, 기호로 다른 것을 대신 표현하는 것이다. 이 상징에는 대나무(절개), 장미(사랑), 태양(희망), 뿌리(전통), 칼(무력)과 같이 이미 제도화하여 전래되는 상징인 관습적(제도적) 상징이 있고, 시에 주로 나타나는 문학적(개인적) 상징이 있는데 이는 심상의 일종으로 장미꽃이란 심상이 정렬. 영원한 사랑의 아름다움 등을 암시하고 있으면 이는 개인적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상징이란 추상적 사물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여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즉 A는 B다와 같은 등식(等式)을 가진 비유법인데 A가 깊이 숨어 있고 B만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상징을 두고 최고의 은유(隱喩)라고 한다. 만해 한용운(韓龍雲)의 시에 나타난 ‘님’은 불타(佛陀)나 조국 등 다양한 상징체계를 갖추고 있다. 또한 ‘사미인곡’ ‘속미인곡’등 주옥같은 가사 작품과 훈민가 같은 단가를 남긴 송강 정철과 기생 진옥 사이에 주고받은 농염한 ‘에로 단가’에 나오는 ‘송곳’과 ‘골불무’는 상징수법의 한 극치를 보여준다. 어쩌면 인간은 태생이 상징적인 동물이고 자연은 상징적 암호로 소리 없는 말을 한다. 시조에서의 상징 기법은 생략만큼이나 절제된 언어구사 수법이다. 여기서 고도의 문학적 상징수법을 구사한 시조작품 몇 편을 알아본다.
그대 앞에 나는 늘 새벽 여울입니다.
그 여울 소리 끝에 불 켜든 단청입니다.
다 삭은 풍경(風磬)입니다.
바람입니다. 춤입니다.
박기섭 시인의 “춤”이란 장별 배행과 구별 배행이 섞인 시조 작품이다. 상징적 이미지가 충만한 시조이다. 상징적 이미지란 최고의 낯선 상황을 표현하는 일종의 확장된 은유 이미지라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새벽 여울’이라는 물의 원형 상징에서 출발하여 ‘불 켜든 단청’, ‘삭은 풍경(風磬)’, ‘바람’이 다 ‘춤’에 연결되는 개인적 상징으로 시상을 펼치고 있다. 즉, 시적 자아의 생명의식이 행간에 상징으로 연결되어 신선하고 아름다운 정서를 환기시키는 한 폭의 동양화이다.
바닷물은 얼마나
공덕을 쌓은 걸까
활활 타는 불볕에
다비식을 치르니
사리가 수북이 쌓여
햇살 속에 반짝인다.
윤성의 시인의 “소금밭에서” 전문이다. 이 작품은 구별 배행 시조로 표현의 핵심이 초장에 있다. 소금물(바닷물)을 염전에 가두어 놓고 활활 타는 땡볕에 물을 증발(增發)시켜 소금을 만드는데 이런 일련의 작업을 ‘다비식’으로, 그렇게 하여 생성된 소금을 ‘사리’라고 상징 비유를 하고 있다. 세상사 다 공덕(功德)을 쌓지 않으면 이루어지는 일이 없음을 초장에서 설의법으로 강조하여 표현하고 있다. 염전에서 소금을 생산하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한 편의 그림이다.
둥근 가마솥에 끊어 오르는 팥 동지 죽
붉고 하얀 살들이 울룩불룩 화산인데
주걱에 둥둥 굴러 나오는
커다란 새알심 하나.
전학춘 시인의 “피겨의 김연아”란 시조로 초, 중장은 장별 배행을, 종장은 구별 배행을 시킨 작품이다 동지 팥죽 쑤는 일을 통하여 은반의 여왕 김연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대표적 작품이다.‘둥근 가마솥’은 얼음의 은반을 상징하고, ‘붉고 하얀 살’은 팥죽 속의 팥과 쌀을 상징이며 동시에 ‘붉고 하얀 살들이 울룩불룩 화산’은 김연아의 피겨 연기를 상징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화산’은 팥죽이 끓을 때의 울룩불룩 표면이 솟아오름을 상징한 것이다. 이 시조의 핵심인 ‘커다란 새알심 하나’는 김연아를 단적으로 상징한 표현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작품은 전체가 하나의 상징 덩어리로 되어 있다. 그러면서 전체적으로 은반 위에서 김연아가 펼쳐내는 피겨의 환상적 묘기를 눈에 보듯 그려낸 회화성이 강한 서정 시조이다.
어둠을 갈고 어둠을 갈다 보면
검은 먹빛 속에 피가 스밀 때가 있다.
백성의 타는 뜻일랑 붉은 먹으로 쓴다.
흰 창호지에 蘭도 山水도 붉은 빛깔이다
댓돌 밑에 엎드려 삼 년을 울어도
王朝의 크나큰 아픔을 누가 값하랴.
갓 쓴 놈, 벙거지 쓴 놈, 패랭이 쓴 놈
푸줏간 고기는 모두 한 斤씩이다.
흰 옷의 갈기를 세워 旗를 올려라.
장별(章別) 배행으로 이루어진 이근배 시인의 “朱墨畵”이다. 이 작품은 미개화(未開化)된 왕조시대를 시대 배경으로 하여 쓴 것으로 실학의 상징인 다산(茶山) 정약용이 백성의 타는 뜻을 강렬하게 표출하는 방법으로 주묵화(朱墨畵)를 많이 그렸다고 알려졌는데 이를 시화(詩化)한 것으로 보인다.
‘어둠’은 개화되지 않은 시대, ‘피’는 백성들의 한(恨)과 고난에 찬 삶을, ‘(핏물 도는)먹빛’과 ‘旗’는 다산의 뜻을 다의적(多義的)으로 표출한 개인적 상징어이다. 여기서 ‘흰 옷’은 우리 민족, 백성을 뜻하는 제도적 상징어로 이고, 갓을 쓴 놈이든, 벙거지와 패랭이를 쓴 놈이든 푸줏간 고기가 모든 한 근(斤)씩이듯 하늘 아래 모두 평등하다고 목청껏 외치고 있다. 신분 계급의 차이가 어디 있느냐.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깃발을 높이 올려라 하는 당시의 실학사상(實學思想)을 상징적 이미지로 쓴 시조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세 수 모두 초, 중장에서 조선의 풍정을 노래하고 종장에서 상황적 감흥(느낌)을 표현함으로써 한 폭의 그림과 정서를 우리 머릿속에 그려주고 있다.
쳐라, 가혹한 매여 무지개가 보일 때까지
나는 꼿꼿이 서서 너를 증언하리라
무수한 고통을 건너
피어나는 접시꽃 하나.
이우걸 시인의 "팽이"이다. 크게 보아 장별 배행 시조로 짧은 단형시조지만 담긴 내용은 넓다. ‘팽이’가 시인 자신을 상징한 것이라면 ‘매’는 시적자아의 상징이다. 색칠한 팽이가 팽이채에 맞아 돌아가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팽이는 돌아야 제 구실을 다한다. 팽이는 팽이가 되기 위하여 자아의 채찍을 온몸으로 견디며 꼿꼿이 몸을 세워 돌면서 고통 속에서 무지개를 꿈꾼다. 여기서의 무지개는 꿈의 세계가 아니다. 이 시조에 나타난 무지개는 고통을 겪으며 자학하는 자기 구원의 메시지이다. 탈출의 이상 세계이다. 그리고 ‘접시꽃’은 최고의 은유인 變換(변환) 이미지 상징어로 쓰였다. 시인은 팽이를 통하여 불의에 항거하고 증언하는 저항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이 작품은 팽이를 ‘무지개’ ‘접시꽃’으로 상징화한 회화시조이다.
이것은 꿈꾸다 깨어난 환한 눈빛
산사(山寺)의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風磬)소리
어쩌면 달빛에 기대
밤을 태운 촛불이리.
이것은 끝없는 세월의 메아리
길거리 바람에
날아다니는 하얀 아픔
몇 사흘 뼈 고아 달인
한 사발 진액(津液)이리.
졸시 “시(詩), 이것은”으로 구별 ‧ 장별 배행이 혼용된 작품이다. 이 작품 「<시(詩), 이것은>을 읽어보면 시(詩)란 무엇인가? 상징적 의미를 부여해 놓고 있다. 모든 독자들이 똑같이 공감하지는 못할지라도 작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시의 이미지(image)가 그런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이 생각하고 있는 시도 대부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에 언급한 시의 상징적 이미지를 열거해 보면 첫수에서 ‘꿈꾸다 깨어난 환한 눈빛’, ‘산사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소리’, ‘달빛에 기대어 밤을 태운 촛불’, 둘째 수에서 보면 끝없는 ‘세월의 메아리’, ‘하얀 아픔’, ‘몇 사흘 뼈 고아달인 한 사발 진액’ 등이다. 위에 열거한 사물의 겉만 생각하지 말고 그 맛, 냄새 모습등도 함께 생각해 보면 작자가 떠올린 상징적인 시의 맛을 공감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 이 작품에 상징어는 ‘환한 눈빛’, ‘풍경소리,’ ‘촛불’, ‘메아리’, ‘하얀 아픔’, ‘진액’ 등이다.
한 편의 시작품은 빛이며, 마음의 정경이고, 크나큰 삶의 메아리이며 아픔이다. 그리고 시인이 뿜어내 놓은 정신의 핵(核)이다. 한 편의 작품을 탄생시키기까지와 탄생된 모습을 자연물과 사상(寫像)에 의탁(依託)하여 정(情)과 경(景)을 버무려 순차적으로 묘사하였다.
木手가 밀고 있는
속살이
환한 角木
어느 古典의 숲에 호젓이 서 있었나
드러난
生涯의 무늬
물젖는 듯 선명하네.
어째 나는 자꾸 깎고 썰며 다듬는가.
톱밥
대팻밥이
쌓아가는 赤子 더미
결국은
곧은 뼈 하나
버려지듯 누웠네.
서벌 시인의 “어떤 經營 1”이다. 주로 어절(語節)과 음보별(音步別) 배행을 이뤄 행 배열이 현대시를 닮은 시조 작품이다. 이 시조에서 ‘뼈’를 각목(角木)으로 상징하고 있다고 한 이가 있지만 ‘각목(角木)’은 시조 작품의 좋은 소재 내지 제재의 상징이고, ‘뼈’는 시조로 탄생된 작품으로 보고 ‘木手’는 시인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 이런 상징은 모두 개인적 상징이다. 각목(角木)이 뼈가 되기까지의 생성과정을 실존의 의미어로 귀결(歸結)시킨 작품이다.
김제현도 지적했듯이이 작품은 시인 생애의 무늬와 적자(赤子)더미의 다의성(多義性)이 구체화된 구상어로 자아 인식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즉, 삶은 비록 적자 인생이 되더라도 부단히 깎고 썰고 다듬어 시조를 쓰며 사는 시인의 모습을 시화(詩化)하여 표현한 작품이다.
3. 마무리
현대시조는 모두 이런 회화성을 다 가지고 있다. 이 때 나타나는 표현기법에는 선경 후정의 방법, 선정 후경의 방법, 경(景)과 정(情)의 혼성 또는 경(景)속에 정(情)의 숨음 등과 상징, 생략의 기법 등 두루 쓰이고 있다. 한 마디로 회화시조는 머릿속에 그려지는 경(景)이 있는 작품이다. 이것이 현대적인 회화적 작품의 기질이 되고 있다. 마음속에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작품은 독자에게 감흥을 주지 못한다. 시조나 시에 있어서 표현 내용이나 방법은 여러 가지일 수 있고 내용도 다기(多岐)할 수 있으나 그 작품에서 정신적인 그림인 이미지에 의한 회화성이 배제되면 단순한 말의 나열로 무미건조한 작품이 된다. 이미지는 신체적 자각으로 일어나는 감각작용을 마음속에 재생하여 표현하는 것이다. 이미지는 감각의 종류에 따라 시각적, 청각적, 촉각적, 후각적, 공감각적 등으로 나누고, 내용적 측면에 따라 지각적, 정신적, 비유적, 상징적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한 편의 현대시조는 이런 이미지들이 서로 결합되어 이미저리(imagery)를 형성하여 표현되고 있다. 즉 현대시조의 표현상의 특성은 다양한 표현 기교를 사용하여 개성적이고 참신한 이미지를 제시하며, 현대시의 표현기교를 원용하여 긴밀한 구조를 이루며 회화성을 중시하고, 시어의 자연스러운 호흡을 중시한다.
[한밭시조문학 제2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