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밥상을 지키는 사람들] (21)보성군 보성읍 쾌상2리 평촌마을 임삼숙 씨
남도매일신문 2023. 08.15(화)
독특한 가죽향 풍미…“여름 밥반찬으로 딱이다!”
‘가죽부각&가죽장’ 가족의 情 오롯이…세월 흘러도 몸이 기억하는 추억의 맛
보리밥에 고추장 넣고 가죽장 쓱쓱 비벼먹으면 탄성 절로
참죽나무 새순으로 만든 향토 별미 가죽부각과 가죽장
2011년 식물학자 김진석, 김태영이 펴낸 ‘한국의 나무’에는 참죽나무와 가죽나무를 비교할 수 있는 내용이 실려 있다. 참죽나무(참중나무, 학명 Toona sinensis(Juss.) M.Roem.)는 종 모양의 백색 꽃이 모여 피고 잎은 10-22개 소엽으로 이루어진 우상복엽으로 열매는 길이 1.5-3㎝ 도란상 원형의 5갈래로 갈라지는 멀구슬나무과이다. 가죽나무(가중나무, 학명 Ailanthus altissima(Mill.) Swingle)는 녹백색의 꽃이 모여 피고 13-27개 작은 잎으로 이뤄진 우상복엽으로, 길이 3-4.5㎝의 좁은 타원형의 열매를 맺는 소태나무과이다.
이와 관련해 할머니, 어머니 세대의 ‘가죽부각’이라는 먹거리가 있는데, 참죽나무와 가죽나무 중에 어떤 걸로 만들까? 가죽부각이라는 이름에서 유추해 볼 때, 누구나 가죽나무를 재료로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가죽부각의 재료는 참죽나무이다.
참죽나무
참죽나무
가죽나무
가죽나무 <전남도 산림자원연구소 제공>
그 근거는 2010년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에서 발간한 ‘전통향토음식 용어사전’의 ‘가죽부각’ 편에서 찾을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가죽은 참죽나무의 어린잎 (새순)을 말하며, 참죽순이라고도 불린다. 가죽부각을 서울, 경기, 충북에서는 ‘가죽잎부각’, 경북에서는 ‘가죽자반튀김’, 경남에서는 ‘가죽자반’이라고 하며, 가죽잎에 바르는 찹쌀풀 또한 지역마다 양념하는 방법이 다르다.
‘가죽’이라는 명칭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료를 소태나무과 가죽나무로 혼동하지만 가죽부각은 참죽나무로 만든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다. 서울, 경기, 충북, 경북, 전남 등 가죽부각은 우리 식생활에서 친숙한 음식이 된 지 오래다.
2015년 자원식물연구회가 편찬한 ‘식물의 쓰임새 백과 전2권’에서는 조선 후기 농촌의 살림살이에 관한 서적 ‘임원경제지’를 인용하며 “참죽나무(椿樹)는 눈(嫩), 싹(芽)을 채취해 삶아서 익히고 물에 담가 깨끗이 씻어 기름과 소금으로 조리해서 먹는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옛 시절, 농가 뒤뜰이나 전국 민가에 흔하게 식재됐던 참죽나무는 우리 선조들에게 좋은 식재료가 되어왔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날 참죽나무를 쉽게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가죽부각은 우리의 밥상에서 서서히 밀려나 기억 속에서 잊혀가는 먹거리가 되고 있다.
맛의 고장, 남도에서 가죽부각의 옛 손맛을 이어받아 지켜가는 이가 있다. 보성군 보성읍 쾌상2리 평촌마을의 올해 나이 72세인 임삼숙 씨가 그 주인공이다. 봄빛이 화사한 올 4월 말, 취재진은 평촌과 이웃한 동암마을에서 참죽나무의 잎을 채취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대문 한 귀퉁이에 자리한 참죽나무는 그 수령이 비록 십수 년에 불과했지만 곧게 뻗어서 하늘을 찌르듯 자라고 있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가죽나무라고 듣고 자랐던 그는 취재진을 만나면서 실은 가죽나무가 아니라 참죽나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가 말하는 가죽나무는 바로 ‘참죽나무’였다. 어른 팔뚝만한 길이로, 앞면은 녹색, 뒷면은 약간 불그스름한 가죽잎의 채취는 4월이 적기이다. 나뭇가지에 붙은 가죽잎을 뚝뚝 따면서 임 씨는 추억담을 꺼낸다.
보성군 전통향토음식연구회 1대와 2대 회장을 역임한 임삼숙 씨가 가죽부각에 얽힌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친정집 뒤뜰에 가죽나무 두 그루가 심어져 있었는데 일직선으로 높이 자라요. 저 위에 있는 잎은 딸 수가 없으니까 마을의 일꾼인 ‘동지기’가 긴 장대에다가 낫을 달아서 묶어요. 그 낫으로 베면 우리는 밑에서 떨어진 가죽을 주워요. 음력 3월15일이 할아버지 제사였는데 항상 이 제사 끝나고 가죽을 땄던 기억이 나요. 친정 동네 사람들은 못 해 먹고 버리니까 끊어다가 해 묵으라고 우리 엄마한테 주고 그랬어요.”
보성 복내면에서 태어난 그는 26살에 결혼한 이후 평촌마을의 시댁에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동네 어귀에서 바라보면, 유난히 드넓은 농토가 펼쳐져 있는 풍경이 인상적이다. 1990년 보성군에서 펴낸 ‘마을 유래지’에는 지명의 유래와 마을 형성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평촌(坪村)은 “하매봉(鷹峰)을 지고 유독 수목이 울창하고 그 앞은 넓은 들이 펼쳐진 곳”이라는 의미로 지어진 지명이다.
1639년경 진주 강씨, 김해 김씨 등은 당대 천석(千石)과 백대(百代)자손으로 번창할 것이라는 어느 도승의 점지를 받아 최초로 이 마을에 들어왔다. 이들은 농사짓기에 좋은 넓은 평야가 있었기 때문에 정착할 수 있었고 연이어 보성 선씨, 죽산 안씨, 하동 정씨 등이 입촌하며 오늘에 이른다.
보성읍 쾌상2리 평촌마을은 하매봉(鷹峰)을 지고 유독 수목이 울창하고 그 앞은 넓은 들이 펼쳐진 곳이라는 유래를 지니고 있다. 마을 표지석(사진 上)과 마을 입구에 자리한 정자.
1970-80년대 이 동네에 뽕나무가 가득 심어져서 잠업이 성행했으나 이제는 옛이야기에 불과하다. 임삼숙 씨도 과거 양잠을 한 적이 있지만 고된 일이라 오래하지 못했고 지금은 소를 키우며 농사를 짓고 있다. 과거 30여 년간 시어머니를 모시며 집안일, 농촌 일에 여념이 없는 와중에도 향토 음식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그는 보성군 전통향토음식연구회 1대와 2대 회장을 역임했었다.
손맛 좋은 친정엄마의 솜씨를 물려받은 영향이 컸다. 친정아버지 집이 대종가라서 1년 열두 달 동안 제사, 절기, 명절 등의 음식들이 모두 그의 어머니의 야무진 손끝에서 나왔다. 그중에 가죽부각과 가죽장은 그 특별함에 있어서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다. 산과 들에서 제철 산물들이 풍족하게 나는 시댁 동네에는 참죽나무가 있었으며, 그는 친정엄마로부터 배운 손맛을 제대로 낼 줄 아는 솜씨가 있다. 갓 따 온 가죽잎을 데치고 말리며 엄마의 가르침을 회상한다.
“가죽잎은 씻지도 않고 바로 데치는데 소금을 안 넣어요. 끓는 물에 막 넣으면 파란데, 녹색으로 변해지려고 할 때 찬물에 헹구지 않고 그냥 말려요. 이것을 햇빛에 말리면 잎이 하얗게 변해버리니까 바람이 통하고 그늘진 곳에 말려야 해요. 그전에 어머니는 이걸 항상 처마에 널어요. 그러면 내가 ‘햇빛 날 때 빨리 좀 널어’ 그랑께 엄마가 ‘이거야 햇빛에 말리면 가죽이 하얘져 가지고 너무 볼품이 없어’ 그러셨어요.”
그때 많은 양의 가죽잎을 데치고 말리는 일은 여러 일손이 필요했다. 큰 가마솥에 반 정도 채운 물이 팔팔 끓으면 옆에서 가죽을 들어주는 사람, 데친 가죽잎을 큰 소쿠리에 담아 옮겨주는 사람, 멍석에 깔고 앉아서 2개 묶음씩 짚으로 엮은 후 처마에 달아매는 사람, 이렇게 일손들이 호흡을 척척 맞춰서 해야 하는 힘든 작업이다.
이제 그늘에서 일주일 정도 말린 가죽잎으로 ‘부각’을 만들어보자. 먼저 맛의 기본인 육수는 찬물에 다시마와 표고버섯을 넣고 20여 분간 우려낸다. 친정엄마처럼 건보리새우와 한번 볶은 멸치 대가리로 우려낸 육수를 사용해도 좋으나 더 깊은 맛을 내기 위해서 그가 고안한 방법이다. 육수에 찹쌀가루를 넣어 풀을 쑨 다음, 조선간장, 외간장을 3대 1 비율로 넣어 간을 맞춘다.
이 집 조선간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 메주를 건져내 장을 끓일 때 말린 황태 두세 마리를 넣어 100일 정도 숙성시키기 때문에 색향미가 남다르다. 말린 가죽잎을 결대로 고르게 편 다음, 양념이 된 찹쌀풀을 손으로 골고루 펴서 바른다. 손으로 해야 가죽잎이 엉키지 않고 양념 맛이 잘 배어든다. 이후 고명으로, 한쪽 면에 봄철에 나는 풋마늘의 흰 대와 초록 잎을 곱게 썰어 올리고, 화룡점정으로 가늘게 썬 빨간 실고추를 장식한다.
가죽부각은 마치 수를 놓은 듯 예쁜 작품 같다. 그의 엄마는 생밤을 채 썰어 올리거나 통깨와 대파를 놓기도 했단다. 이렇게 해서 소쿠리에 담아 꾸덕꾸덕 말린다. 고명을 하지 않는 면을 숯불이나 가스불로 구워내면 가죽부각 완성. 손으로 뜯어서 한입 맛보면 간간하면서 구수하고 씹을수록 특유의 가죽 향이 입안 가득히 퍼지기에 두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맛있다. 누구라도 특별한 맛을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가죽부각이다.
말린 가죽잎을 결대로 고르게 편 다음, 양념이 된 찹쌀풀을 손으로 골고루 펴서 바른 후 고명으로 풋마늘의 흰 대와 초록 잎을 곱게 썰어 올리고, 화룡점정으로 가늘게 썬 빨간 실고추를 장식한다. 소쿠리에 담아 봄볕에 꾸덕꾸덕 말린 다음 고명을 하지 않는 면을 숯불로 구워내면 가죽부각이 완성된다.
가죽부각에 이어 그가 자랑하는 별미가 또 있으니 바로 ‘가죽장’이다. 먼저, 말린 가죽잎을 후라이팬에 적당히 볶은 다음, 손으로 비벼서 망에 곱게 걸러낸다. 여기에 1대1로 섞은 조선간장과 다시마 우려낸 육수를 부어 넣는다. 한편, 밥 지을 때 빈 그릇을 솥에 넣어두고는 그릇에 뜨끈한 밥물이 담아지면, 짜디짠 조선간장과 섞어서 맛을 냈는데, 이는 어머니의 슬기가 담긴 유산인 셈이다.
젓가락으로 빙빙 돌리며 골고루 섞어준 후, 가죽향의 풍미를 더 살리기 위해 참기름을 조금 넣고 참깨를 으깨어 넣으면 가죽장이 완성된다. 그의 친어머니는 가죽장을 1년 내내 가족들 밥반찬으로 내놓았다고 한다. 말린 가죽잎을 빻은 후, 습기가 차지 않도록 항아리에 담아 한지로 눌러 입구를 솔잎으로 막아놓으면, 오래 보관해 두고 먹을 수 있었다.
말린 가죽잎을 후라이팬에 적당히 볶은 다음, 손으로 비벼서 망에 곱게 걸러낸다. 여기에 1대1로 섞은 조선간장과 다시마 우려낸 육수를 부어 넣는다. 젓가락으로 빙빙 돌리며 골고루 섞어준 후, 가죽향의 풍미를 더 살리기 위해 참기름을 조금 넣고 참깨를 으깨어 넣으면 가죽장이 완성된다.
한꺼번에 많이 만들기보다는 한 끼 먹을 양만 바로 해서 먹어야 제맛이라는 가죽장. 즉석에서 조리해 밥상에 올리자, 가죽 특유의 향과 함께 고소한 향기가 코를 진동시킨다. 흰 쌀밥 위에 가죽장을 올리니 장은 밑으로 쏙 스며들고 가죽잎은 위에 남는데, 쓱쓱 비벼 먹으면 탄성이 절로 나며 어느 산해진미가 부럽지 않다. 임 씨는 가죽장을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이 가죽장은 쌀밥보다 보리밥에 먹으면 더 맛있어. 고추장을 조금 넣어 비비면 진짜 더 맛있어요.” 오랜 세월이 흘러도 몸이 기억하는 이 추억의 맛은 그의 가슴속에 머무는 어머니에 대한 정이다.
가족 사랑을 향한 어머니의 세심한 손길과 정성이 오롯이 담겨진 가죽부각과 가죽장. 가죽향에는 친엄마의 진한 그리움이 배어 있다. 돌아가신 친정엄마의 손맛을 이은 그의 가죽 음식은 오늘날 찾아보기 힘든 귀하고 소중한 전통이 됐다. 무더위에 입맛이 떨어지는 여름날, 가죽부각과 가죽장을 먹어본 보성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함께 외치는 최고의 찬사가 있다.
“여름 밥반찬으로 딱이다!”
<남도밥상탐험대=최지영·남정자·박기순·조장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