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래빠의 십만송
가르마 첸치창이 옮긴 영역본을
이정섭 풀어 옮김
2568.5.30
제1부 시험받는 미라래빠
18. 지팡이의 노래
부자의 가슴속에는 큰 신심이 일어났다. 그는 미라래빠의 발 앞에 엎드려 예배드린 뒤 말씀드렸다.
“존경하는 스승이시여, 지금 부터 저는 죽는 날까지 선생님께 봉사하고 싶습니다. 저희 집에 오셔서 영원히 사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미라래빠와 쎄완래빠는 거기서 일 주일 이상 머무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답하였다.
“우리들은 세속적인 예물을 그처럼 오래도록 받고 싶지는 않소.”
그들이 부자의 집에 머문 뒤 떠나려 하자 보시자는 크게 낙담하여 이렇게 말했다.
“이미 떠나려고 결심하셨으니 선생님을 밀릴 수는 없군요. 하지만 떠나기 전에 명상의 깨달음과 체험을 비유로 말씀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이리하여 스승과 제자는 함께 노래불렀다.
신실한 보시자여,
재물은 많지만
진리를 꿰뚫는 눈 없는 자여, 들으렴.
진리는 말하기 쉬우나 실천하기 어렵네.
어리석은 세상 사람들
허송 세월 보내면서도
‘진리대로 살리라’ 생각뿐이네.
지금 수행에 나설 때가 왔음을 모르네.
험산 준령의 청량한 생수는
허풍쟁이의 질병을 고치네.
그곳은 뇌조(雷鳥)와 산새들만 닿는 곳,
골짜기 아래 들짐승들은 마시지 못하네.
하늘의 유성검(流星劍)은 번개칠 때 떨어지니
원수들 멸하는 훌륭한 무기이네.
하지만 지상을 수호하는 위대한 코끼리만이 마음껏 휘두를 뿐
작은 코끼리들은 들어 올리지도 못하네.
천상의 감로수는
몸을 강건케 하는 불로장수약.
하지만 성스러운 용수대사(龍樹大師)만이
마실 수 있네.
영락(永樂)을 베푸는 황금 궤짝은
가난을 다스리는 보물함이네.
하지만 월광 왕자(月光王子)만이
가질 수 있네.
저 깊은 대양 속의 경이로운 진주는
모든 욕망 채워주는 불가사의.
하지만 지복의 용왕만이 지닐 수 있으니
지상인은 얻을 수 없다네.
지복의 천상 궁궐 장엄하네.
하지만 무착(無着)대사만이
향유할 수 있네.
뭇 인간들은 도달하지 못하네.
육공덕(六功德)의 신약(辛藥)은
감기와 열병을 고치네.
하지만 짠딴 향목(香木)으로만 제조하나니
다른 나무들은 소용 없네.
열 가지 선업[十善]을 지으면
천상 세계 태어나네.
하지만 선덕(善德)쌓은 자만이 갈 수 있고
악업인은 거기 이르지 못하네.
스승들의 교의는
가장 수승한 깨달음을 얻게 하네.
하지만 까르마의 인연이 깊은 자들만이 배우고 행하나니
그릇이 되지 못하면 기회도 주어지지 않으리.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귀중한 핵심 교의는
붓다를 성취하게 하네.
하지만 확고 부동한 수행자들만이 그를 따르나니
그대처럼 쾌락에 탐닉하는 자는 이루지 못하네.
양식과 재물은 가난을 치료하고
영리한 자는 부를 빨리 모으네.
하지만 구두쇠는 향유하지 못하네.
그대, 갠종의 부자는 관대한 마음씨 지녔지만
모든 부자들이 다 그렇게 관대한 것은 아니네.
나, 미라와 그대는 전생에 인연이 있어
이레 동안이나 즐겁게 지냈지만
이제 우리는 가야 하네.
부자여, 가족들과 더불어 건강하고 오래오래 살기를!
보리심 사경 합장 _()_
미라래빠의 십만송
가르마 첸치장이 옮긴 영역본을
이정섭 풀어 옮김
2568.5.31
제1부 시험받는 미라래빠
18. 지팡이의 노래
노래를 마친 뒤 미라래빠는 그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우리에게 음식과 숙소를 제공하였고, 우리는 그대를 위하여 법을 설하였소. 이는 참으로 의미 깊은 일이오. 항상 진리에 대한 신심을 지니고 진리를 존중하며 기뻐하는 사람은 진리의 씨앗을 심는 사람이오. 그 씨앗이 성장하여 본래 지닌 대지혜의 꽃을 피우는 것이오. 바른 서원을 지닌 사람에게는 많은 가르침을 베풀 필요가 없소. 만약에 외적인 조건[緣]과 자신의 내적인 씨앗[因]이 만난다면 일시적으로는 잘못될지 모르지만, 결국은 서원의 힘으로 바른 길로 인도 되는 것이오. 나아가서, 신실과 열성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오.
지금의 사람들은 공덕을 쌓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내적 공덕을 보지 못하고 작고 사소한 외적 결점만 보고 험담하는데, 이는 경계할 것이오.
그대가 나에게 신심을 지니고 있다면 내가 가까이 살든 먼 곳에 머물든 상관 없는 일이오. 우리가 가까이 살아 지나치게 친밀해진다면, 그것이 도리어 불화와 다툼의 원인이 될 수도 있소. 그대를 보건대 지금 당장 진리의 문을 활짝 열기는 어려운 일인 듯하오. 그대는 먼저 그대 자신의 습관적인 사고 방식을 관(觀)하도록 힘써야 하오.
그대가 잘 되길 원하오. 그대도 나를 믿고 기도하시오. 그대가 지금 덕행을 실천하고 진리에 대한 신심을 지니면, 내생에는 좋은 장소에서 수행하기 좋은 여건을 지니고 태어날 것이오. 진리를 구하는 자라면 이곳 저곳을 기웃거릴 필요가 없소. 다른 사람들의 결점을 많이 보게 되면 도리어 자신의 결점에는 무지하게 되기가 쉽기 때문이오.
그대와 같은 세속의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고향땅이 종교의식을 행하기에 좋은 곳이오. 하지만 단 한 사람의 거지에게라도 선의를 가지고 아낌없이 음식을 베푸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오.
또한 ‘이분의 가르침은 뛰어나고, 저분의 가르침은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오. 그대는 결코 종파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오.
그대가 나와 같이 행동하기는 어렵소. 사자가 뛰어다니는 곳을 여우가 갈 수는 없소. 사자의 흉내를 내다가 도리어 등뼈가 부러지는 수도 있소.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는 하나 나의 수행길을 따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오. 그대 부자여, 부디 진리에 대한 신심을 잃지 않기를!”
부자에게 이렇게 말한 후, 미라래빠와 쎄완래빠는 다시 보시를 구하러 떠났다.
보리심 사경 합장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