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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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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_정치/외교/안보 시오노 나나미와 조선식민지 근대화론..
zorbajk 추천 0 조회 378 12.03.11 05:13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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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3.11 09:12

    첫댓글 ㅎㅎㅎㅎ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나나미에 대한 비판은 알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나나미의 매력은 인간에 대하여 환상을 가지고 바라보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지적하신 바의 비판적 독해를 할 수 있는 이들이 다수가 차지하는 성숙함을 위하여 독서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독서인조차가 아닌 것이 다수인 상황인지라, 해서 나나미 정도면 그나마 그 자신의 가진 자의 시각이라는 보수적 관점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불완전성을 논파하는 점만은 읽을만 하다고 봅니다, ^^

  • 작성자 12.03.11 11:04

    진저리님 오랜만입니다.. 시오노의 책들을 읽다보면 오래전에 읽었던 산강장팔(일어 읽을줄을 몰라서 나는 저자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의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생각나더군요.. "대망"이라는 제목으로 읽었었지만.. 처음에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디선가 읽어본듯한 친숙한 느낌으로 다가오더군요.. 곰곰히 생각해보니 바로 대망의 아류라는 ..." 나나미의 매력은 인간에 대하여 환상을 가지고 바라보지는 않는다는 사실" "보수적 관점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불완전성을 논파하는 점" 님께서 말한 이것 저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지금 여기는 일요일 새벽이어서 부담없이 노네요.. 좋은 일요일 되시기를^^

  • 12.03.11 11:30

    ㅎㅎ여기도 일요일 점심때를 앞두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망>은 어렸을 때 읽었던 것을 후회하였던 책이기도 합니다, 33권(?)짜리였던 것을 거진 20권 정도를 읽었습니다만, 후회막급이었습니다, 해서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그 <대망>처럼 보시는 것도 어쩌면 가능한 비판일 것 같습니다,
    <대망>에서 오다 노부나가의 기괴함에 중독성을 느꼈듯....
    나나미의 사상을 더 알고 싶어 <침묵하는 소수>책을 읽었다가 실망하였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말씀하신대로 <대망>처럼 보시는 것에 그 실망스러운 나나미의 흔적이 배겨 있군요, 쩝.
    한데 이미 다 읽은 터라,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인지 저어됩니다,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꾸벅

  • 12.03.12 12:14

    <민중의 세계사>"흔히 도시 빈민은 부유한 원로원 의원들이 나눠 준 뇌물에 의지해 살았기 때문에 폭동이 일어나면 원로원의 편을 들었다. 그러나 이제 도시 빈민들은 국가의 식량 보조를 약속하는 정치인이나 야심있는 장군들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52년에 군중은 자신들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한 클로디우스가 살해당하자 거리로 나와 원로원을 불태우고 부자들을 살해하였다,
    이것이 기원전 49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 국경을 넘어 들어와 권력을 장악했을 당시의 상황이었다. 원로원의 부자들에게서 제국의 운영권을 빼앗은 것은 빈민이 아니라, 갈리아를 정복했을 때 1백만 명을 죽이거나 노예로 만든

  • 12.03.12 12:06

    귀족 출신의 부유한 장군이었다.-119쪽
    "아우구스투스는 부자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면서도. 정복지에서 들어오는 막대한 조공의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은 비용으로 옥수수를 빈민들에게 값싸게 또는 무료로 제공함으로써 로마 도시 빈민의 친구로 행세했다."-122쪽
    "빈민들은 황제가 원로원의 '탐욕'을 견제한다고 생각했다, 빈민들은 카이사르와 그의 후계자들이 퍼뜨린 데마고그와 값싼 곡식때문에 마음이 혹햇을지도 모른다, ...원로원 계급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때면 그들을 가차없이 도살해온 장본인이었다....키케로는 로마의 빈민을 '더럽고 불결한 자들', '굶주리고 있는 경멸스러운 폭도들', '도시의 쓰레기'

  • 12.03.12 12:07

    따위로 묘사했고, 빈민들이 급진적 성향을 나타낼 때면 그들을 '사악한 무리'라고 불렀다.
    '자유'에 관해 온갖 입발림을 늘어놓았지만, 황제 없이는 제국을 보존할 수도, 하층 계급을 제자리에 묶어둘 수도 없었다....부자들은 황제가 통치한 첫 2백 년 동안 과거보다 훨씬 더 번영을 누렸다,"-123쪽
    "그러나 위로부터의 안정은 공화국 시절과 마찬가지로 농민에 대한 약탈과 노예의 예속에 의존하고 있었다,"-124쪽
    "군사 용도로 건설한 도로는 같은 시기에 중국에서 건설된 운하, 도로와 달리 무거운 짐을 수송하는 데는 맞지 않았기 때문에 육상 운송은 매우 느렸고 비용도 많이 들었다."-125쪽
    이 부분은 확 깨는 진실이군요. 접

  • 12.03.11 12:04

    <로마인 이야기>를 처음 읽었던 연유가 만리장성에 비교하여 로마의 길을 선전한 10권이었기에 말입니다,
    해서 <민중의 세계사>를 읽는 것이 먼저^^
    해서 소수지배의 역사를 화려하게 치장한 나나미의 화장빨에 현혹되어서는 아니될 것이라는 점을 새삼 확인합니다, ㅎㅎㅎ

  • 12.03.12 12:08

    "제국을 세운 정복 전쟁이 끝나면서 새로운 노예의 유입이 중단되자 노예의 가격이 비싸졌다, ...일부 지주들은 높은 지대를 받고 소작인들에게 토지를 조금씩 나누어 줘서 경작하도록 하는 거이 더 싸고 간편하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그렇게 하면 감독할 필요도 없었고, 가족을 유지할 비용을 부담할 필요도 없었다. 노예제의 중요성은 이런 식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126쪽
    "노예제에 기반을 둔 제국의 농업 경제가 서부에서는 농노제에 기반을 둔 거의 자급자족적인 새로운 경제로 바뀌었다."-128쪽
    결국 그 역사의 변화란 부자들의 지배를 지속하는 수단의 변화일 뿐.
    해서 임금노예의 현재나 과거나 그리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 쩝

  • 12.03.11 12:20

    "1899-1902년 보어전쟁에 동원된 병사들의 체력이 유난히 허약했던 원인을 조사한 끝에 영국의 전쟁 수행 능력에 우려를 표시했고, 이에 대응해 자유당 정부는 학교무료급식을 도입했다, 이것은 훗날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단초가 될 최초의 제한적 조치였다."-491쪽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력 공급을 우려하여 지금 양육비 보조니 하면서 사립유치원들의 배만 불려주는 정책이 시행되는 것처럼 전쟁을 위한 준비로써의 복지, 부자들의 지배를 지속시키는 바의 복지정책,
    복지를 제대로 해야할 것입니다,
    역사를 다시 되톺아보는 기회가 되어 감사드립니다, ^^

  • 12.03.12 11:02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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