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브레이드의 시간/정재희-
바퀴와 만나는 순간
달려야 하는 자는 가장 최적화가 된다
120mm 휠 위에 몸을 싣고
두 팔을 휙휙 내젓다 보면
열세 살은 곧 바로 열세 살을 뛰어 넘는다
무릎 각도를 접었다 펴며
멀리 다리를 뻗는다
속도는 고요 속에서 거침없이 자란다
저녁시간이 다가갈수록
기다릴 사람이 없다는 생각은
뒤에 남는다
안양천 트랙 옆
물오리의 날개짓과 함께
비행이 돋아난다
토성의 아득한 고리 같은
트랙을 공전하는 소년의 방식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하며 달리다 보면
몸 안에 달아나고 싶었던 것들
한 곳으로 쏠린다
어둠은 알고있어도 모른 척한다
수십 바퀴를 돌아도
이탈하지 않는 구심력
공복 속에 덩그러니 놓인 채
끝까지 생각을 붙들고 있다
불 꺼진 풍경과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되새김질하고 있는 걸까
어느새 돋아난 개밥바라기
온 빛을 다해 소년을 어루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