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이 오르면 더 비싼 값에 팔 수 있으리란 기대가 커지면서 378평 규모 펜트하우스는 9150만 달러에 매각이 됐고, 1억 달러가 넘는 매매가 성사되기도 했다.
현존하는 주거용 타워 가운데 가장 키가 큰 아파트는 뉴욕 맨해튼 56~57번가와 파크애비뉴 사이에 위치한 '432파크애비뉴'다. 가로세로 28미터에 높이 426미터, 96층 건물이다. 정사각형 건물 면적을 반으로 나눠 한 층에 '동편'과 '서편'형 콘도가 1개씩 있는 데 가격은 조망권에 따라 1750만 달러(약 204억 원)에서 3800만 달러(약 443억 원)까지 천차만별이다. 96층 꼭대기 최고가 펜트하우스는 9500만 달러(약 1107억원)에 팔렸다.
지진 한 방 또는 미사일 한 방이면 쓰러질 것 같은 슈퍼 슬림 초고층들이 뉴욕에 등장한 이유는 간단하다. 최첨단 엔지니어링 기술에다 초고강도 시멘트 등 건축비가 많이 드는 데도 빼어난 조망에다 희소성 때문에 러시아, 중국, 중동에서 몰려든 슈퍼리치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뉴욕에는 용적률과 건폐율 같은 까다로운 도시 규제가 적다. 땅이 좁다고 해서 건물을 못 짓는 게 아니다. 하늘에는 한계가 없다.
◇ 초고가 아파트 공급이 늘면
[사진출처: 매경DB, 뉴욕 맨해튼 432파크애비뉴] |
세계에서 가장 높은 아파트라는 432파크애비뉴 자존심은 2019년이 되면 뭉개진다. 지척에 높이 541미터, 95층 규모 센트럴파크타워 신축 공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123층, 555미터 높이의 잠실 롯데월드타워와 맞먹는다. 원래 부촌인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 서쪽에는 건설 중이거나 설계 단계인 초고층 주거용 빌딩만 20여 개에 달해 억만장자 거리(billionaire's row)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물량이 없을 때만 해도 부르는 게 값이었는데 신축 러시와 함께 수요가 주춤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뉴욕 맨해튼의 경우 1년에 거래되는 초고가 주택 판매량이 1400채 남짓이다. 하지만 올해 쌓인 미매각 물량이 1만2300채 이상이고 내년이 되면 1만5000가구에 육박하는 수준이 된다.
이 때문에 디벨로퍼들 사이에선 비상이 걸렸다. 올 들어 맨해튼 고가주택 가격은 평균 10% 넘게 하락했다. 2011년부터 분양한 One 57은 여전히 미분양 물량이 남아 있고 432 파크애비뉴 88층의 경우 최초 매도 희망가격에서 20% 하락한 6090만 달러에 올해 팔렸다. 분양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판단한 대형 PEF 등 투자자들이 잇따라 투자 철회를 검토하거나 보유 지분을 내다팔고 있다. 이때문에 초고층 아파트를 현재 짓고 있는 디벨로퍼들은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차질이 빚어질까 노심초사다.
[사진출처: 486애비뉴 실내 전경. <432parkavenue.com>] |
하지만 덕택에 뉴욕 주택 사정은 나쁘지 않다. 새 주택공급도 늘고 기존 주택 거래량도 늘어났다. 땅값 비싼 센트럴파크는 물론 브루클린, 허드슨 야드, 롱아일랜드 레일야드 등 뉴욕 곳곳 슬럼가와 버려진 땅을 활용해 도시재생사업이 전개되고 있다. 뉴욕 전체 주거용 건축물 허가건수는 2013년 24.9%, 2013년 48.9%, 2014년 20.5%씩 증가했고 2015년에는 80.1% 늘었다.
뉴욕의 주택 가격은 2013년 이후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지만 탄력적인 공급으로 인해 금융위기 이전 전고점 대비 88% 수준에 불과하다. 까다로운 공급 규제 탓에 샌프란시스코 평균 집값이 80만 달러를 넘어설 때 뉴욕 평균 주택 가격은 50만 달러를 밑돌았다. 수요 등을 감안한 적정 집값은 뉴욕이 샌프란시스코보다 높은데도 말이다.
◇ 소셜 하우징(social housing)을 허하라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수요가 몰리는 곳, 다시 말해 사람들이 살기를 원하는 곳에 사람들이 살기 원하는 새 집을 더 많이 공급하는 것이 이득이다. 문제는 주택 규제 완화에 따른 사회적 편익이 유권자들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불만이 커지면 표심을 의식한 정치인들은 건물 신축을 제한하고 규제를 강화하게 되고 그 와중에 인허가권을 딴 디벨로퍼나 재건축 조합원 등 소수가 거둬들이는 이익은 더 커진다. 덩달아 사회 불만도 더 높아지는 악순환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같은 악순환 구조를 바꿔야 한다. 사람들이 새 집에 살고 싶다면 투기라고 때려잡을 게 아니라 공급 확대를 통해 시장을 안정시키면서 서민들도 주거 불안 걱정을 덜 수 있도록 부동산 시장 인센티브 구조를 바꾸는 게 우선이다. 집값 불안을 이유로 서울을 도시재생지역에서 제외하고 재건축 시장에 제동을 걸고 주거용 아파트 높이를 35층으로 제한하고, 서울 4대문안에 주거용 건물을 못 짓게 하면 강남에 새 아파트를 이미 보유하고 있는 사람만 혜택을 보게 하는 꼴이 된다.
4차산업혁명시대에 사람들이 갈수록 대도시로 몰리는 것은 글로벌 트렌드다. 도심 집값 급등도 한국만 겪는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은 뒤쳐진채 따라가는 형상이다. 집값이 오를 대로 오른 캐나다 밴쿠버, 일본 도쿄 등에서는 소셜 하우징(social housing) 정책이 속속 채택되고 있다. 도심 초고층 빌딩 허가 과정에서 용적률과 건폐율을 파격적으로 높여주고 기존 건축 규제를 풀어주는 대가로 사회적 기여를 받아내서 그 돈으로 도시 유휴 부지에 서민용 임대아파트를 짓는 개념이다.
2014년 취임한 블라지오 뉴욕시장은 서민들의 주택난 해결을 위해 410억 달러를 투입해 2024년까지 저렴주택 20만 가구를 공급하는 10년 장기 주택 계획을 착착 실행에 옮기고 있다. 최근에는 200만 달러 이상의 고가주택 구입에 맨션세(mansion tax) 도입을 의회에 촉구하고 있다. 고가 주택에 세금을 더 걷어서 서민임대아파트를 더 짓겠다는 논리다. 이렇게 되면 432파크애비뉴와 같은 초고가 콘도 62채만 팔리면 저소득층 2000명의 일년치 렌트를 대줄 수 있다.
그리고 재건축 용적률 상향의 대가로 공원부지, 공공용지 등을 기부체납 받을 게 아니라 서민용 임대 아파트를 더 짓도록 유도해야 한다. 층수를 높여주는 대신 땅을 기부받아서 공원으로 만들어주면 그 동네 사람들만 이득이 아닌가.
굳이 도심 비싼 땅에 소형 임대 비율을 높여라고 강제하지 말고 그 돈으로 교통 접근성 좋은 공공택지에 공공임대 공급을 확 늘리면 될 일이다. 반포 주공1단지 재건축 사업비만 8조원 대에 달한다. 이중에 2000억 원만 있어도 수도권에 서민용 공공임대 아파트 2000개를 국민 혈세 없이 지을 수 있다. 집값이 오르고 투기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초고층 빌딩 건축을 제한하고 규제를 때리는 것은 도시 경쟁력을 강화하는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하는 처사다.
첫댓글 부동산시장을 공간시장과 자산시장으로 구분하는 시각에서, 다주택자는 공간의 공급자이자 투자자이지, 집을 부족하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