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술년의 첫 산행 도봉산에서 도를 깨우치다?
노중평
2006년 1월 15일 일요일 박공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음날인 월요일 아침 10시에 돈암동 성신여대 전철역 2번 출구에서 만나 도봉산으로 산행을 가자는 것이었다. 작년 12월 말일에 박소헌, 박공수, 이종환, 나 네 사람이 4시간 반 동안 관악산의 열 봉우리를 밟은 후로 금년의 첫 산행이다. 이때 이형행과 정숭녕이 빠졌다.
만나기로 약속한 15분 전에 전철역에 도착하니 박공수와 박소헌 두 박씨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나 다음에 정숭녕이 평택에서 와서 합세 했다. 시간이 임박하여 이형행이 일산에서 도착했다. 지난번 산행에서 빠졌던 이형행과 정숭녕이 이번에 나오고, 지난번에 나왔던 이종환이 빠졌다. 옛날 직장에서 만나 인연을 맺게 된 노인들을 모시고 산행을 가야 할 처지가 되어 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돈암동 버스정류장에서 도봉산행 버스를 타고 도봉산 입구에 있는 버스종점에서 내리는데 1시간이나 걸렸다. 산행을 시작한 시간은 11:00시였다. 도봉산 매표소를 출발하여, 올라가다가 우이바위에서 좌측으로 돌아 수유동 쪽으로 하산하는 코스였다.
“이번 시간은 얼마나 걸리지?”
내가 산악회 회장인 박공수에게 물었다.
“3시간”
3시간이라면 적당한 시간일 것 같았다.
“설악산에 갔을 때 숭녕이가 날 혹독하게 훈련시켰지. 말도 못했다고.”
이형행이가 슬쩍 10년도 더 넘은 옛날이야기를 끄집어낸다. 그때 이무송이가 함께 갔고, 나는 빠졌는데, 지금 이무송이는 고인이 되었다.
“의료대란이 무송이를 죽인 거야.”
이형행이 말한다.
“그 친구 평생 마셔야 할 술을 몽땅 다 마시더니 간 거야.”
공수가 말한다.
“살려냈어도 사람구실은 못하지.”
또 이형행이 말한다.
먼저 죽은 사람의 행적을 더듬어 보면 유난스러운 돌출행동이 눈에 뜨인다. 그런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자기 앞날에 대한 자기암시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우이바위를 향하여 올라가는데 오른쪽으로 절을 하나 크게 짓고 있고, 그 위쪽으로 큰 절이 또 하나 더 있다. 위쪽에 있는 절의 벽에는 <심우도尋牛圖>로 불리는 불화가 그려져 있다. 불도의 깨우침을 단계별로 깨우치는 순서에 따라 10폭의 그림으로 그린 것인데, <심우도>에는 소와 동자가 나타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잃어버린 소를 찾는 그림이다.
불가에서는 소를 불법이나 불도에 비유하여, 소를 찾는 것을 불법이나 불도를 찾는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불가에서는 법과 도에 대한 구별이 없다. 내게 <심우도>는 야생소를 잡아서 길을 들이기 시작 한 배달나라의 역사를 그림으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지금으로부터 5900년 전에, 한웅천왕이 배달나라를 세웠을 때, 농사를 관장하는 농관農官이라는 관직을 만들고, 첫 농관에 임명한 사람이 고시高矢였다. 그의 성이 고高이므로 고성高姓의 조상이다. 이름에 화살을 의미하는 시矢자를 썼으므로, 화살을 만들던 집안의 사람이다. 그러나 수렵을 상징하는 화살을 버리고 농사를 상징하는 소를 얻었으므로, <심우도>는 고시가 야생소를 잡아서 길들이는 그림으로 보아야 한다고 본다.
고시의 후예로 농사를 지은 복희伏羲가 있는데, 그가 소를 기르면서 이름 희羲에 소를 의미하는 우牛를 붙여 희犧로 쓰기 시작하였다. 이 희犧에는 그가 소를 잡아 세사지내는 제관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의 후손에 신농神農이 있다. 신농은 농사를 잘 지어 신격화된 사람이다. 신농의 후손에 소전少典이 있다. 그가 제사지내는 축관이라는 뜻이다. 그의 아들에 유망과 황제가 있다. 유망의 첫째 아들의 이름이 희화羲和인데, 희羲는 복희를 계승했다는 뜻이고, 화和는 벼농사를 지어 먹게 하였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희화 대에 와서 고시의 집안이 벼농사로 크게 번성했음을 알 수 있다.
유망의 셋째 아들에 희熙가 있는데, 희는 풍이족의 신하로서 불을 써서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사巳는 그가 뱀을 인종 아이콘으로 쓰는 풍이족風夷族임을 의미한다. 신臣은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하늘을 살핀다는 뜻이다. 화灬는 그가 불을 써서 제물을 삶았음을 나타낸다.
그에게서 제사를 계승한 사람이 중여곤衆艅鯀이다. 중衆에는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천기를 살피는 사람이라는 뜻이 있다. 유망국楡罔國의 첫 일관日官이었던 희화羲和를 계승한 것이다. 여艅는 그의 이름이 여余(나라는 뜻)이고, 주舟는 배 모양의 술잔을 의미하는데, 제사지낼 때 술을 딸아 올리는데 쓴다. 그러므로 여는 제관이라는 뜻이다. 곤鯀은 제상에 올리는 북어와 실이다. 북어는 제사의 방위인 북쪽에서 잡은 물고기라는 뜻이고, 실(糸)은 이를 하나(一)가 되게 잡아맸다는 뜻이다. 고사지낼 때 떡과 북어와 실과 술을 올리는 의미가 이 문자에서 나온다.
여艅자는 제사지낼 조朝자로 변하고, 곤鯀자는 물고기를 인종 아이콘으로 쓰는 희화羲和와 양羊을 인종 아이콘으로 쓰는 전욱고양顓頊高陽이 결합했다는 뜻의 선鮮자가 된다. 이리하여 중여곤이 제사지내면서 제관을 의미하는 조선朝鮮이라는 문자가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이 설을 제기한 사람은 중국인 금문학자 낙빈기이다.
고시가 야생소를 잡아서 길들였고, 제사를 시작하였고, 제사를 지내던 중여곤에게서 조선이라는 문자가 생겨났고, 단군왕검이 조선을 건국하였다는 불가사의한 이야기가 문자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실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중여곤으로부터 조선朝鮮이라는 국호를 계승한 단군왕검 역시 고시의 후예로 볼 수 있다. 단군왕검은 조선을 건국하면서 고시례高矢禮를 농관으로 임명하였다. 고시례가 고시의 후예임을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가 산과 들에 가면 고시례를 하는데, 우리 농사의 역사를 환기하기 위하여 생겨난 것이다.
불교에서는 <심우도>의 우牛를 이데올로기로 만들었다. 그래서 우를 도道라고 하였다. <심우도>에서는 도를 천문의 이치와 우주의 섭리로 해석한다. 우牛가 천문에서 축丑이므로 축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축은 12월을 의미하고, 12월은 1년으로 본다. 1년 안에 4계절과 24절기가 있는데, 4계절과 24절기의 변화를 도라고 하였다. 4계절의 변화는 지구가 태양의 궤도를 공전하면서 1년 동안에 생겨나는 계절적인 변화이다. 24절기의 변화는 지구의 공전궤도에서 해와 달이 만나면서 생겨난다.
증산도의 도전道典에서는 도(우주의 4계절이 생성하는 섭리)를 신神(변화하는 조화)으로 보고 있다. 불가에서 도를 법으로 보는 것과는 다르다. 무교에서는 인人을 신(조정자調停者)으로 본다. 이러한 다양한 관점에서 보면 <심우도>의 소는 도로 보이기도 하고. 신으로 보이기도 하고, 인으로 보이기도 한다.
오늘날 사람들이 신이라고 할 때는 하나님을 말한다. 불자는 법으로 설명되는 도를 하나님으로 보고, 증산도에서는 도로 설명되는 신을 하나님으로 보고, 무교에서는 인으로 설명되는 도를 하나님으로 본다. 그러므로 동자가 소를 찾는 그림은 인이 하나님을 찾는 그림으로 설명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심우도 1번은 동자가 보이지 않는 소를 찾는 그림이다.
심우도 2번은 동자가 소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그림이다.
심우도 3번은 동자가 소의 뒷모습이나 꼬리를 발견한다.
심우도 4번은 동자가 소를 얻다.
심우도 5번은 동자가 소를 길들인다.
심우도 6번은 동자가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심우도 7번은 동자가 소를 잃고도 안심한다.
심우도 8번은 동자도 소도 空을 깨닫는다.
심우도 9번은 동자는 반본환원返本還源을 깨닫는다.
심우도 10번은 동자가 중생제도를 위하여 거리로 나선다.
원래 심우도는 8폭으로 그려진 것이다. 마고가 태어난 팔여八呂의 음音을 기초로 하여 8단계로 나뉜 소의 획득 단계를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소의 뒤에는 마고가 보인다. 마고는 하늘에서 직녀로 표현된다. 칠월칠석날 견우는 은하수 건너편에서 천제天帝로부터 천우天牛(하늘소, 야생소)를 한 마리 받아 끌고 그가 떠나온 곳으로 돌아간다. 이 일을 주선해 주는 이가 직녀이다. 고구려 덕흥리 고분벽화에 이런 의미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견우직녀도>가 그려져 있다. 그러므로 덕흥리 고분벽화보다 오래 전에 완성된 <견우직녀도>의 원본이 어디엔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처음 야생소를 잡은 사람들은 배달나라시대의 우가牛加 사람들일 것으로 본다.
<심우도>에 그려진 동자는 마고의 후손을 의미하고, 반본환원返本還源이라는 메시지는 마고가 후손에게 전한 해혹복본解惑復本의 변형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동자는 무교에서 물아기씨와 함께 앞으로 인류에게 현신할 미륵불이나 재림예수, 노스트라다무스가 말한 앙골모아에대왕에 해당하는 분으로 볼 수 있는 분이다. 그러므로 무신도에 그려진 물아기씨나 할아버지신상 옆에 세우는 동자신상에는 무엇인가 숨겨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절의 벽에 그려진 <심우도>를 보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다가 오른쪽을 보니 장엄한 도봉산의 모습이 말없이 나를 압도한다. 나는 언젠가 도봉문화원의 사무국장이 도봉동에는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고 한탄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도봉산의 도를 1로 보고 삼각산의 3이라는 숫자를 연결시켜 <천부경>의 핵심이 되는 일석삼극一析三極으로 풀이해 준 바가 있다. 그는 내 말에 그대로 뒤집어지고 말았다. 지금 말한 것을 원고로 써 달라고 하여 원고로 정리하여 주었더니, <도봉문화>에 실었다.
우리는 도봉산을 곁에 두고 그 앞으로 난 길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 아무도 방향을 바꾸어 도봉산 쪽으로 가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산행 코스를 도봉산을 향하여 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그쪽으로 가고 싶어도 방향을 변경하지 않는 한 다가가지지 않는 것이다. 우이바위 앞에서 방향을 틀어 하산하면 거기가 우이동이다.
소를 잡아서 길을 들이고, 종교의 옷을 입히고, 교묘한 언설로 꾸며보았자, 그 소가, 소의 주인인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다면, 종교에서 들려주는 말이 아무리 교묘하다 해도 다 부질없는 말임을 도봉산과 우이바위가 말없이 가르쳐주고 있다.
하나님이 도봉산처럼 우리가 지나가는 오른쪽에 계신데, 모든 종교가 이를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기독교 일각에서, "예수님이 오신다고 해도 교회법은 고칠 수 없다"고 하는 개그가 떠도는 것으로 보아서, 종교의 앞날에 대하여 무엇인가 불길한 일이 있게 될 것을 눈치를 챈 교인들이 내뱉은 말로 들리기도 한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하산하니 4시간이나 걸렸다. 금년의 첫 산행은 종교적인 생각으로 시간을 다 보냈다. 이제 남은 일은 친구들과 헤어지기 전에 소주나 한 잔 마실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