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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 왜가리 번식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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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읍 용월리 상동 마을은 백로와 왜가리가 주종을 이루는 집단 서식지이다.
해마다 3~4월이면 동남아지역에서 월동한 백로와 왜가리가 이곳을 찾아와 집단을 이루어 번식하고 10월이면 동남아의 월동지역으로 다시금 남하 이동해 가곤 한다.
청용산에는 4,000여 수가 장관을 이룬다.
인근 용연저수지에 조성된 작은 인공섬과 한가롭게 노는 백로. 왜가리의 모습이 어우러져 더욱 신비를 자아내고 있다.
마을에서는 백로가 찾아와 집단 번식을 하면 풍년과 행운을 안겨다 준다고 해서 백로를 길조로 여겨 오늘날까지 잘 보호해 오고 있다.
마을에서는 백로가 찾아와 집단 번식을 하면 풍년과 행운을 안겨다 준다고 해서 백로를 길조로 여겨 오늘날까지 잘 보호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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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오시는 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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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공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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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고속도로(무안-목포간) 건설공사 구간내에서 발굴된 지석묘 8기를 무안읍 고절리 산73-34번지 1,518㎡ 에 옮겨와 복원하여 공원을 조성 교육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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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갑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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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갑사는 『문화유적총람』에 의하면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나 사찰의 연혁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어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현재 원갑사에는 강산사에 관한 현판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이 내용에 의하면 세월이 오래되어 사찰 건물이 무너지자 현 몽탄면에 있는 목우암의 불권계원들이 이를 중수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여 1908년 중수하였다고 기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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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갑사는 지금까지 세 번에 걸쳐 절을 옮겼는데 『무안군지 』(1922년간)를 보면 해제에 강산사가 있다고 했으며, 『면성지』에도 원갑사가 해제 강산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위에서 본 기록들을 보면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원갑사는 옛날에는 「강산사」로 있다가 후에 오늘날의 원갑사」로 바뀌어진 듯하다.
현 건물은 해제, 지도, 영광, 법성포 등지의 주변 신도들이 합심하여 지은 것이다. 법당은 무량전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전퇴를 배치하였으며 창문은 띠살문으로 아주 작은 소규모의 건물이다.
원갑사는 다도해를 눈앞에 두고 있는 임해사찰로 지도, 임자도 등의 도서지역의 관문에 위치하고 있으며 법당 외에 요사채 1동과 고종 16년(1897)에 만들어진 탱화 1점이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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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머리 해수욕장 | |
▲ 톱머리해수욕장 전경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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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읍에서 서쪽으로 8㎞정도 떨어진 망운면 피서리에 소재한 톱머리 해수욕장은 간만의 차가 심하여 간조때 펼쳐지는 끝없이 넓은 백사장과 보호림으로 지정된 울창한 해송 숲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해수욕장 긴 백사장을 따라 횟집들이 자리잡고 있어 해수욕과 함께 싱싱한 생선회도 즐길 수 있다. 백사장 길이 2㎞, 폭100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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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편도 편리한 편으로 가족 단위 피서객이 많이 찾으며, 호젓하면서도 빼어난 경관과 인근 해안에는 돔, 숭어 등 어족이 풍부하여 낚시겸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또 이 지역에서는 선물용으로 인기가 좋은 단감이 많이 생산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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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우주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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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읍에서 동쪽으로4㎞ 떨어진 몽탄면 사창리에 호담항공우주과학전시장은 몽탄면 사창리 출신인 전공군 참모총장 옥만호장군이 고향사랑의 실천과 우리 공군의 발전과정을 소개하고 후세들의 교육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3000여평의 전시장에는 훈련기, 전투기, 북한기등 실물 항공기 12대가 전시되어 있고 250여평의 실내 전시관에는 우주항공분야의 발전상 등을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각종 실물, 모형, 사진등 다양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전국 초중고 학생들의 수학여행 코스는 물론 호국 보훈과 나라사랑의 교육장소로 활용하기에 매우 좋은 곳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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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번호 : 061)452 - 305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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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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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는 향초나 약초 등 향이 있으면서 인간에게 유용한 식물을 뜻하는 것으로 건강(Health), 식용(Edible) , 신선함(Refresh), 미용(Beauty) 의 약자이기도하다.
허브는 오래 전부터 식량이나 치료약 등으로 다양하게 이용되어 왔기 때문에 안정성이 높고 생리적,약리적 작용과 효과가 입증되어 있는 게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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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신경안정, 피부미용, 심신의 피로회복 및 긴장을 풀어주기 때문에 대체의학계에서는 허브가 머리를 맑게 하는 정신적 치유의 도구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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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볼만 한 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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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 농장 좋은 자연(파군교 저수지를 지나 나주방면으로 1분거리의 좋은 자연), 허브로 맛을 낸 장어요리(진한 맛을 가진 장어의 맛을 허브소스와 독특한 방법으로 요리하여 향긋한 허브 향을 즐길 수 있는 요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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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산백련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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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군 일로읍 복용리에 위치한 회산 백련지는 일제의 암울했던 시대에 조상들의 피와 땀으로 축조된 저수지이다.
대부분의 저수지는 골짜기나 계곡을 막아서 축조하는 데, 회산백련지는 평야지대를 삽과 가래로 파서 둑을 쌓아 만든 저수지 이다.
면적은 10만여평으로 두 개의 저수지가 합하여져 인근 250ha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농작물의 젖줄 역할을 하였으나 영산강 하구둑이 건설된후 풍부한 농업용수가 공급되면서 사실상 농업용 기능을 상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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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저수지 옆 덕애 부락에는 6세대가 살고 있었는데 이 마을에 사는 주민이 우물옆 저수지 가장자리에 백련12주를 구해다가 심은후 그 날밤 꿈에 하늘에서 학12마리가 내려와 앉은 모습이 흡사 백련이 피어있는 모습과 같아 그날 이후 매년 열과 성을 다해 연을 보호하고 가꾸었다.
그런 정성이 헛되지 않았음인지 해마나 번식을 거듭하여 지금은 동양최대의 백련 자생지가 되었다.
또한 이 곳 마을이름이 회산(回山)으로 "온 세상의 기운이 다시 모인다"는 의미로 유래되고 있어 앞을 내다보는 옛 선현들의 높은 안목과 슬기를 엿볼 수 있다.
연꽃은 흙탕물 속에서 맑은 꽃을 피운다.
뿌리는 더러운 진흙탕에 두어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고 깨끗한 꽃을 피우는 연꽃의 특성이 불교의 근본적인 가르침과 같다고 하여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다.
▲ 이른 아침의 회산백련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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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때 유학자 주돈이는 연꽃을 보면서
' 나는 연을 사랑하나니 연꽃은 진흙속에서 났지만 더러움에 물들이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않으며 속이 비고 밖이 곧으며 덩굴지지 않고 가지도 없다. 향기는 멀리 갈수록 맑으며 우뚝 서있는 모습은 멀리서 보아야 참 맛을 느끼게 하니 연은 꽃 가운데 군자이다. '
라고 애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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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은 씨주머니 속에 많은 씨앗을 담고 있으므로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며 그림이나 건축물, 의복, 자수등에 연꽃 문양을 많이 새기고 있다. 인도와 이집트가 원산지인 연꽃은 7월과 9월사이에 일시에 피지 않고 3개월동안 피고진다.
연꽃의 종류는 다양하나 홍연이 대부분이며 백련은 극히 희귀할 뿐만 아니라 꽃이 연잎사이에 수줍은 듯 피어나기 때문에 더욱 사랑받는 연꽃중에 꽃이다.
이곳 회산 백련지가 동양 최대의 백련서식지로 최근에는 충남이남 지방에서는 멸종 된 것으로 알려진 가시연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등 자연 생태계의 보고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자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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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산백련지 항공사진 [백련지의 목조 탐방로와 수상온실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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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요금 안내 |
문의전화 : 061) 285 - 1323
구 분 |
연꽃 개화기
7. 1 ∼ 9. 30 |
비 개화기
10. 1 ∼ 6. 30 |
개인 |
단체 |
개인 |
단체 |
성 인
(19세 이상) |
3,000원 |
2,000원 |
2,000원 |
1,000원 |
어린이/청소년
(6세 이상 19세 미만) |
2,000원 |
1,000원 |
1,000원 |
500원 |
6세 미만 영유아
65세 이상 어르신
국가 유공자
장애인 |
무료 |
무료 |
무료 |
무료 |
관람시간 및 개방시간 |
09 : 00 ∼ 18 : 00 |
09 : 00 ∼ 17 : 00 |
휴관일 안내사항 |
매일 개방 함
국경일, 공휴일 개방 |
- 매주 월요일 휴관
- 국경일 휴관 |
○ 무료관람 대상자는 해당 신분증을 제시해야 합니다. ○ 입장권은 당일에 한하여 유효합니다. ○ 위 입장료는『회산백련지관리운영조례 제4조』규정에 의해 징수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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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오시는 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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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달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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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높지 않은 산이지만 남도의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어서 해발고도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조망을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겨울에도 훈훈한 훈풍을 느낄수 있는 명산이다.
또한 토양이나 기후조건이 야생난이 자라기에 최적의 조건을 지니고 있어'난(蘭)'자생지로도 이름난 곳이다.
승달산이라는 명칭이 '고려 인종때 원나라 승려 원명이 이 산에 올라와 교세를 크게 떨쳤고 그를 찾아온 제자 500여명이 한꺼번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전설처럼 불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이며,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3천년에 이르도록 문무백관이 탄생한다는 호남의 4패 명혈 중의 제 1의 혈처를 안았다고 기록되어 있어 더욱 주목받는 산이다.
그 때문인지 3개 대학교가 소재하고 산 곳곳에 무덤들이 유달리 많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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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달산 등산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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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달산 산행은 목포대학교 정문을 기점으로 매봉∼ 깃봉∼ 하루재∼ 천지골을 거쳐 정문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 코스가 가장 인기가 높으며, 하루재를 지나 남쪽으로 더 내려가서 정상을 밟은 뒤 서쪽 능선을 타고 목포대 운동장 쪽으로 하산하는 코스도 애용된다.
반대로 무안군 청계 1리 속칭 구암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약 4㎞ 정도 더 나가면 감돈 저수지를 만나게 되는데, 이곳에서 다시 북쪽으로 원령동 마을을 지나 달산 저수지를 끼고 왼쪽 산길을 따라 법천사 쪽으로 오르는 방법도 있다.
또한 등산보다는 가벼운 산책을 원한다면 목포대 뒤편으로 난 길을 따라 올랐다가 목우암에 들러 약수에 목을 축인 후 잠시 숨을 돌렸다가 올랐던 길을 따라 되돌아오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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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등산코스 |
▶ 목포대학 ~ 도림마을 ~ 천치골 입구 ~ 하루재 ~ 목우암 ~ 법천사 ~ 정상 ~ 목포대 기숙사 (4. 18km)
▶ 청계제일교회 ~ 매봉 ~ 깃봉 ~ 하루재 ~ 노승봉 ~ 목포대학교 (7.4km)
▶ 목포대학교(정문) ~ 하루재 ~ 목우암 ~ 달산저수지 (4.6km)
▶ 월선리(월선제) ~ 수월동 ~ 노승봉 ~ 하루재 ~ 목우암 ~ 법천사 ~ 달산수원지 (4.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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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오시는 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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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상열 가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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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관리인 나상열의 조부나종만씨가 천석군의 지주일 당시 1912년 건립.
마을 뒷산 기슭에 서향하여 안채가 자리하며 2단 축대 아래에 직선축을 맞춰, 마당과 창고채가 마련되었다. 마당의 높이 차이로 안마당과 바깥마당을 구분할 뿐 집안에 다양한 공간구조를 연출하지는 못했다.
창고채 상량문에 「소화이년정묘음이월삼십일일정사병오시상량」이란 기록으로 보아 1927년에 지어진 것을 알 수 있으며, 안채 역시 비슷한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안채는 전면 7칸, 측면 3칸반의 겹집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중앙칸들은 전후퇴를 두었다. 칸살이는 중앙 칸에 대청을 배치하고 왼쪽에 큰방, 오른쪽에 작은방을 배열하여 앞뒤퇴에는 툇마루를 시설했다.
오른쪽 끝칸은 셋으로 나누어서 안쪽에 사랑큰방, 뒤로는 사랑샛방과 작은방이 상하로 놓이고 우측에는 툇마루가 시설되었다.
큰방 왼쪽의 좌우 2칸 앞쪽에는 샛방과 부엌방을 배열하고 뒤의 4칸 넓은 공간은 부엌이다. 구조는 2고주 7량이다. 기단은 2단 계단식으로 놓였는데 장대석으로써 잔다듬한 가공석이다.
주초는 낮은 둥근꼴로 가공한 화강암이다. 기둥은 전면과 측면 보이는 곳은 굵은 두리기둥을 쓰고 나머지는 네모기둥이다.
기둥머리에는 장혀를 얹어서 굴도리를 받쳤다. 지붕은 합각이고 홑처마인데 합각면은 붉은 벽돌과 회벽돌을 사용하였다.앞의 창고는 정면 6칸, 측면 3칸의 맞배기와 지붕집으로 한옥창고로는 그 규모가 꽤 크다.
벽체는 전래의 광채와 같이 판자를 사용했으며 문은 양판문으로 만들어졌다.
5량구조로서 기단은 잔다듬 가공한 외벌대 장대석으로 돌렸으며 초석은 낮은 덤벙주초 위에 네모기둥을 세웠다.
정원시설 가운데 인상적인 것을 얹고 기와를 엎어 만들었다. 벽 가운데에 숫기와를 이용하여 공기구멍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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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오시는 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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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선사 탄생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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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의선사 탄생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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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읍에서 목포방면으로 18km 떨어진 삼향면 왕산리는 초의선사의 출생지로 격동하는 조선후기 침체된 당시의 불교계에 새로운 선풍을 일으킨 선승으로, 근근히 그 명맥만 유지해 오던 한국의 다도를 중흥시킨 다성이었으며,깊고도 명징한 시ㆍ서ㆍ화를 남긴 한국문화에 깊이 각인된 초의선사가 지난 97년 5월 문화인물로 선정된 계기로 현창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여 생가, 추모각을 복원하고 기념전시관 등을 건립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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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草衣 1786 ~ 1866) 속가명 장의순(張意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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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선사는 조선 정조 10년인 1786년 4월 5일 무안군 삼향면 왕산리에서 태어나 15세에 출가한 후 해남 대둔사 일지암에서 40여년간 수행하면서 선사상과 차에 관한 저술에 몰두하여 큰 족적을 남기신 분입니다.
특히 당시 침체된 불교계에 새로운 선풍을 일으킨 대선사이자 명맥만 유지해 오던 한국 다도를 중흥시킨 다성으로서 지금까지 추앙을 받고 있으며 이밖에도 시ㆍ서ㆍ화에 능통하여 5절이라 일컬어 지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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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선사는 다산 정약용 선생과 추사 김정희 선생등 당대 최고의 거유 석학들과 깊은 교유를 통하여 도교는 물론 유교등 범서에도 능통한 분이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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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스님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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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6년 4월 5일(음) 전남 무안군 삼향면 석현리 (全南 務安郡 三鄕面 石峴里)에서 인동 장삼천(仁同 張三阡) 씨의 3남으로 태어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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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때 |
출가,
운흥사(雲興寺 나주군 다도면 덕용산)벽봉선사(碧峰禪師)로부터 수계(受戒)하였고, |
19세때 |
영암 월출산(月出山)에서 상봉에 떠오르는 둥근 달을 바라보며 크게 느꼈다고 한다. |
22세때 |
쌍봉사(梔峰寺)에서 토굴생활, |
24세때 |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선생과 백련사(白蓮寺)에서 초대면했고 |
30세때 |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선생과 서울에서 초대면, 이 세분이 이후 오고 간 시서화차(詩書畵茶)에 얽힌 인연은 선비 세계의 격을 최고의 경지까지 끌어 올렸다. |
32세때 |
불국사(佛國寺)에서 득도(得道). |
41세때 |
일지암(一枝庵) 결암 |
45세때 |
다신전(茶神傳) 정서(正書). |
48세때 |
추사선생 아버지 유당 김노경(酉堂 金魯敬) 선생 일지암 심방. |
50세때 |
소치 허유(小痴 許維룡선생이 찾아와 사사(師事 당시 27세). 일지암에서 수업했다. 초의스님과 소치 선생의 이 인연·다음에 추사선생에게 이어져 화가로서 대성 운림산방(雲林山房) 4대에 걸친 도도한 화맥의 원천 구실을 했다. |
52세때 |
우리나라 다도(茶道)의 성서격인 동다송(東茶頌) 저술 |
55세때 |
추사선생이 제주도 대정(大靜)에 유배되자 그곳까지 세 차례나 찾아갔다. |
56세때 |
추사의 유배지에서 쓴 글씨 일로향실(一爐香室)을 소치편에 보내왔는데 이 글씨는 현재 해남 대흥사 동국선원(東國禪院)에 각(刻)이 되어 걸려있다. |
58세때 |
고향인 무안군 삼향면 석현리에 들렀고 이 감회를 시(歸故鄕)로 읊었다. |
71세때 |
천상천하 둘도 없는 벗 추사 별세. 나이도 같은 이 두 사람의 우정은 눈물겹도록 뜨거웠다. |
81세때 |
8월 2일(음) 일지암에서 입적(入寂)하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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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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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시교, 초의선과, 동다송, 일지암문집, 선문사변만어, 다신전, 선문염층, 문자반야집, 진묵조사 유적고,일지암시교 4권 401수 여러 유학자와 화답한 60여수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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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볼만 한 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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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상열 가옥 (삼향면 유교리 중요민속자료 제 16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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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오시는 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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