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쑥국
하지 말라는 짓을 하면 더 재미가 있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은 하지마하는 말에는 눈치를 보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더 하고 싶어 한다. 보지 말라는 건 더 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보지마하는 소리에는 눈을 가린 손 바닥사이의 틈새로도 보고 싶어 한다. 남의 것을 훔치면 안 된다. 하지만 훔쳐 먹는 맛이 기가 막힌 걸 알기에 우리들의 기억 속엔 참외 서리 수박서리 같은 재미난 추억이 있다. 쑥국을 끓였다. 방금 남의 쑥으로 쑥국을 끓였다.
지난 화요일 까페에서 알게 된 마음이 아름다운 벗들과 짧은 여행을 했다.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참 많다. 의식적으로 자신을 포장하지도 않고 만나면 마냥 편하고 즐겁다.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 상대방의 허점도 단점도 모두 다 재미난 이야기 거리가 되어 서로가 서로의 단점을 즐겁게 공유한다. 1시간이 10분정도의 느낌으로 빨리 지나가 버린다.
우리가 간 곳은 김포군 대곶면에 소재한 덕포진이다. 이 곳 역시 얼마 전 왁짜방에 해주님이 올린 <구부러진 길>이란 제목의 사진속의 길을 보고 내가 택한 곳이다. 해안을 평행하며 굽이굽이 굽어진 길이 한참이나 계속되는 곳이다. 그 굽어진 길의 끝자락엔 억울하게 죽은 뱃사공 손돌의 설화를 안고 있는 손돌묘도 있었다.
그날 그 곳엔 비에 젖어 더욱 싱싱한 쑥이 많았다. 집에서 출발할 때 준비해 온 칼 세 자루가 맡은 바 소임을 할 차례다. 해주님은 쑥 같은덴 관심이 없었는지 우산을 쓰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대원샘은 또 남자체면 탓인지 쑥을 보고도 못 본 척 고개를 돌리셨다. 쑥에 정신이 빠져서 바닥에 널부러뜨려 놓은 영하님과 내 짐은 대원샘이 포터처럼 맡게 되었다.
남편과 금요일 날 외박 나올 둘째에게 쑥의 향긋한 봄기운을 맛보이겠다는 일념으로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영하님도 그 청정 쑥 앞에서 남편을 또 아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정말 열심히 캔 나의 봉지와 영하님의 봉지의 크기가 비슷했으니까. 얼마나 열심히 캤을꼬?
깔깔 낄낄 하하 호호 ....... 쌓여가는 우정 속에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행주산성의 보리밥 집에서 보리밥과 파전에 동동주를 조금씩 마시고 우리는 귀가를 서둘렀다. 마포의 전철역에서 세 친구들을 내려주면서 나는 분명히 말했다. 대원샘이 한 병씩 사 주신 칡즙도 있었기에 정말 분명히, 그리고 큰 소리로 친구들에게 주의를 주었었다. <차 안에 잊은 것 없도록 살펴 보세요 >라고....그것도 한번이 아닌 두 번이나 말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습관적으로 뒷자리를 보니 그 곳엔 횡재봉지가 하나 있었다. 바로 영하님이 깜빡하고 두고 간 쑥 봉지다. 안됐다는 생각보단 호호 쌤통!! 하며 횡재한 마음이 들었다. 남편에게 쑥을 캤다는 이야기와 함께 실컷 비 맞고 캔 영하님의 쑥 봉지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이건 내거라고 못 박았다.
착한 남편 같았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전화라도 해 주라고... 하지만 남편이나 나나 착한 것 하고는 거리가 멀다. 남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 전 해주쑥은?(해주라 불러서 미안허유) 왜 없어? 해주씬 쑥 안 캐고 그냥 우산 쓰고 돌아 댕겼어. 아니 남의 차를 탔으면 차비조로 쑥이라도 캐서 차에 두고 가야지.... 아이구 아저씨! 억울해 하지마! 모두 밥도 사고 차도 사고 당신 마누라만 공짜로 댕겼어.
이렇게 사연 많은 영하님이 캔 쑥을 넣어 방금 풋물을 살짝 걷어내고 멸치를 넣고 대파를 어슷썰기로 썰어 넣고 풀국을 약간 풀고 조선간장을 넣어 끓였다. 쑥향이 진하게 코를 자극한다. 아! 맛있겠다! 오늘 저녁이 기대된다.
미친 척 암말도 않고 먹고 치우려했지만 천성이 난 거짓말을 잘 못한다. 남의 쑥으로 국을 끓인 이 도둑 쑥국에 대해 이렇게 공개함으로써 지은 죄를 면죄 받았다고 공개하고 싶은 것이다. 한 식구라도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을 상상한다면 전화 한 통 안 해 준 내게 영하님도 그리 노여워하지 않을 줄 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얘기하는데도 삐진다면 영하님은 사람도 아니고 글 쓸 자질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2008년 4월 24일
첫댓글 지난 화요일 한달에 한번정도 만나는 글벗들과 여행을 했습니다. 만난지 얼마 안된 그들과 마음이 많이 통함은 우리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 더욱 그런것 같습니다. 이렇게 글이란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순식간에 좁혀주는 마력이 있는 것인가봅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처음 만나도 오래전에 만났던 사람처럼 정겹지요. ㅎㅎ저도 그렇답니다.
그런데 캐시님은 언제 뵐 수있나요? 이렇게 여기서 많이 뵙다가 오프라인에서도 꼭 한번 뵙기를 바래요.
세미나에 오시면 뵙지요.....
녜 케시님! 몇년간 건강상 개인 사정상 참석치 못했습니다. 이번엔 꼭 갈 생각입니다.
'내것 보다는 남의 것이 훨씬 맛있답니다.' 야생쑥은 향기도 그윽 하겠군요. 군침이 돕니다.
밥 한끼에 남편은 너무너무 맛있다면서 큰 국그릇으로 두 그릇이나 먹었습니다. 그래서 낼쯤 야외 좌판에서 쑥을 파는 아주머니보단 할머니의 쑥을 많이 사서 손을 본 뒤 냉동실에 넣어둘 생각입니다. 일년내내 쑥국 생각이 나면 자주 먹어보려구요
아쿠아님이 여기 올린 글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글입니다. '해주님 쑥은?' 남편이 아쿠아보다 더 재미 있습니다. "호호 쌤통!! 하며 횡재한 마음이 들었다." 와우~ 사랑스런 아쿠아!!! 나도 한 그릇 주시지요.
남편이 해주님이라고 하면 괜찮게요? 실은 전 해주(이름이 전해주입니다)쑥은?? 그랬답니다. 봄비님이나 한별님 들미소님이 가까이 계신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차로 산하정님이 계시는 북한산도 가보고 지존님도 그리 오시라하고 좋을텐데....
쑥향기가 물씬 풍기는 글입니다. 저도 봄비님과 동감. 좋은 글, 상큼한 맘으로 읽었어요. 청정 어성전계곡 따라 쑥이 지천인데 아직 쑥국을 끓일 줄 모르지요. 자세히 소개된 쑥꾹 끓이는 순서대로 따라 해 보겠습니다. 오늘 저녁 상에는 쑥국을....모두들 태우고 어성전에 오셔요. 숙박은 무료. 반찬은 쑥국으로........ㅎㅎㅎ
들미소님! 등잔밑이 어둡다더니..... 지천에 깔린게 쑥이라고 쑥이 얼마나 좋은지 오히려 모르시지요? 쑥국에 들깨 갈아서 일주일에 세번씩만 드시면 몸이 굉장히 좋아질걸요? 전 이번에 시골에 엄마 산소갈때 가져오려고 부탁을 해 놓았습니다. 쑥을 많이 뜯어서 손질 잘 한다음 냉동실에 보관 좀 해달라고요. 값은 다 치르주겠다고 그랬어요. 그걸 갖구와서 내년까지 자주 자주 먹을 생각입니다. 5만원어치 준비해달랬어요.
쑥을 얼마나 부탁했기에 5만원어치나? 취소 할 수 있으면 취소 하세요. 제가 공짜로 보내드릴께요. 요즘 논둑의 쑥은 못먹습니다. 농약 살포 때문에...(논둑 쑥은 아니겠지만)아쿠아님을 위해서라도 날마다 쑥을 뜯어야겠어요. 솔숲 길에서 청정 쑥을...(저는 말이 곧 실천입니다.ㅎㅎㅎ)
들미소님! 말씀만 들어도 감사합니다. 안그래도 친척 동생이 농약 뿌린것은 안좋다고 했어요. 안전한 곳에서 뜯는데요. 품삯조로 줄려구요. 말씀만 들어도 고마와서 두 눈에 눈물이 지금 주루룩 주루룩.... ㅋㅋㅋㅋㅋㅋ ㅎㅎㅎㅎㅎㅎ 고맙습니다.
재미 좀 있습니다. 쑥국은 저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싫지 않은 도둑!
밀가루물을 좀 풀고 들깨를 듬뿍 갈고 파를 썰어넣고 끓인 쑥국이 어찌나 맛있던지....바닷가 쑥이라 그런지 향이 더 진한 것 같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