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가족이 모두 사진관에 가서 찍는 사진은 더 더욱 좋아하지 않았다.
온가족이 시간을 맞춰 새 옷을 갖추어 입고, 머리를 반듯이 빗고, 일렬로 강렬하고 뜨거운 밝은 불빛아래 부동자세로 서 있어야하는 그 순간도 싫었고, 마치 동굴처럼 움푹한 카메라 렌즈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어야하는 일도 참기 어려웠다. 몇 번이나 "이제 찍습니다. 가만히 계세요. 가만히.. 여길 여기를 보세요" 하며 커다란 카메라를 받침대위에 세워 놓고 금새 찍지도 못하면서 시커먼 보자기를 몇 번씩 뒤집어썼다 벗었다하는 사진관 아저씨의 모습을 보는 일도, 또한 언제 찍힐지 몰라 가슴 졸이며 숨까지 멈춘 채 보고 있어야하는 순간도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찍는 순간 터지는 '펑'하는 소리는 내 심장을 땅바닥까지 내려앉게 하곤 했다.
대학교 3학년 때쯤 일인 것 같다. 서울로 대학 간 언니와 동생도, 춘천에 있던 나도 모두 모인 여름 방학이라 우리 가족은 가족 사진 찍기 좋아하시는 아버지에 이끌려 사진관엘 갔었다. 그 시절 우리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다른 집에 비해 유난히 가족 사진을 자주 찍으셨다. 지금은 이미 없어졌지만 그 때 우리 가족이 갔던 사진관은 원주의 가장 중심도로인 A도로 이층에 있었다. 이층에 있는 그 사진관은 좁은 나무계단을 올라 가야했는데 어찌나 좁고 가파른지 한사람 한사람씩 올라가야 했다. 우리 가족은 앞장 서 올라가시는 아버지 뒤를 따라 한 줄로 차례차례 계단을 올라갔다. 아버지와 안면이 있는지 사진관 아저씨는 우리 가족을 무척이나 반겼고, 우리를 곧 사진 찍은 대열로 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내가 가장 견디기 어려워하는 숨막히는 순간이 왔다. 예외 없이 나는 가족과 함께 펼쳐진 여러 개의 검은 우산아래 최고의 명도로 밝게 켜진 불빛을 받고 꼼짝없이 서 있어야 했다. 그리고 난 뒤 한 번 찍고, 두 번 찍고 또 찍고 하는 동안 나는 숨을 거의 멈춘 채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사진관 아저씨는 그 무엇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한번 더 찍습니다. 다시 한번만 더요. 여길 보세요. 여기"를 연방 외쳐대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넓적한 검은 판을 갈아 끼우며 소리치는 아저씨의 소리가 갑자기 내 귀에 웅웅거리더니 이내 어딘 가로 멀어지며 아득해졌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 날 집으로 돌아 와서야 내 옆에 서있던 바로 밑 남동생이 나를 업고 계단을 내려왔고, 나는 그래도 곧 정신을 차렸지만 온 가족은 난리가 났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마 나는 분명 몇 번이나 사진을 찍는 순간인가보다 라는 생각에 계속 숨을 멈추고 있는 사이 정신을 잃고 말았던 것 같다. 아주 짧은 순간 정신을 잃었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 때를 잊지 못한다.
그 뒤 나는 사진 찍을 때 혼절한 징크스에 시달려 사진관 사진 찍기를 달가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이상히도 지금도 사실 어쩌다 할 수 없이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게 될 때면 유난히 긴장하곤 한다. 그러나 그 때 온 가족을 놀라게 한 그 사진에 나는 버젓이 동생 옆에 서 있었다. 아마 '펑' 소리가 나며 후레쉬가 터지고 셔터를 누른 바로 직후 내가 정신을 잃었던 모양이었다.
나에게는 금쪽같이 아끼는 사진이 한 장 있다. 그 사진 하단에는 단기 4329년이라고 적혀 있는 아주 오래된 흑백 사진이다. 사진 속에는 6명의 가족이 함께 있다. 아버지와 막내 작은 아버지 그리고 나는 한번도 보았다는 기억이 없는 친할머니와 어머니와 언니와 나.
교직에 계신 아버지와 이제 막 사범학교를 졸업한 막내 작은 아버지께서는 단정히 양복을 입으시고 차렷 자세로 뒤에 서 계시고, 앞에는 얌전히 무릎 위에 두 손을 모아 얹고 앉아 계신 할머니 곁에 어머니께서 어린 나를 안고 계시다. 할머니와 어머니 사이에 서있는 언니는 아주 똘똘하고 영리한 얼굴이다. 나는 이 사진을 아주 좋아한다. 그리고 소중히 생각한다.
나의 아주 어릴 때 부모님이 찍으신 유일한 가족사진,
사실 나는 그 사진에 함께 찍으신 친할머니를 보았다는 기억이 전혀 없다. 분명 내가 태어났을 때 살아 계셨다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채 3살이 되지 않을 때라 지금 기억에 남아 있을 리 없다. 하지만 그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할머니를 모두 기억하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또 하나 역시 내 기억력으로는 도저히 하나도 기억에 없는 아주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진짜처럼 본다는 사실도 기쁘고 즐겁다. 이제 세월이 많이 흘렀다. 지금의 나는 그 사진 속의 나의 어머니보다 훨씬 많은 나이에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있다. 나도 우리 아이들 어릴 때 함께 가족 사진을 찍어 두었더라면 지금쯤 아이들의 추억이 되어 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가 된다.
이제라도 지난 시절 아버지처럼 열심히 가족을 데리고 1년에 한번씩 가족 사진을 찍어야겠다. '펑' 소리도 없이 사진 찍는 기술이 발달했다지만 나는 비록 '펑'소리가 나더라도 이제는 혼절 안 할 자신도 있고, 오래 세워두어도 쓰러지지 않을 자신도 있다.
4329라고 쓰여져 있는 가족 사진.
가족의 산 역사 같아 좋고, 과거의 한 순간을 정지시켜주어 지난날을 아련히 회상할 수 있게 해주어 좋다.
세월이 많이 흐른 뒤, 정지된 지난날을 보는 일은 즐거운 일이겠지.
정말 올해가 가기 전 아이들 앞세우고 가족 사진 한번 찍으리라.
고운 옷 갈아입고 사진관에 가서 활짝 웃으며 찍어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