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리그 클래식 전지훈련을 가다 (5) 전남 드래곤즈 in 태국 방콕
2015년의 전남 드래곤즈는 나쁜 의미에서의 극적인 반전을 경험했다. 6월과 7월 사이 6승 2무 1패를 챙기며 K리그 클래식에서 3위까지 치고 올라가며 상위 스플릿을 눈 앞에 뒀다. 홈에서 천적 제주를 3-1로 꺾고 최고참 김병지가 전무후무한 700경기 출전을 달성한 순간이 하이라이트였다. 하지만 그 뒤로 거짓말 같은 급락이 시작됐다. 시즌이 끝나기까지 15경기 동안 전남이 거둔 승리는 2승이었다. 그 2승도 마지막 3경기에서 나왔다. 그 사이 12경기에서 승리가 없었다는 얘기다.(5무 7패) 지상과제였던 상위 스플릿의 꿈도, 마지막에 걸었던 FA컵에 대한 희망도 모두 물거품이 됐다.
2016년의 전남 드래곤즈를 바라보는 시선은 애매하다. 2015년에 보여준 절반의 희망을 살리며 기업구단 중 유일하게 상위 스플릿에 가지 못했다는 역사에 종지부를 찍을 것인가? 아니면 이번에도 늘 그랬듯이 들쑥날쑥 한 경기력으로 중도에 무너질 것인가? 성적, 팀 컬러, 정책 면에서 창단 이후 일부 시기를 제외하면 따라다닌 이미지인 ‘애매함’과 올해야말로 작별하고 싶은 전남이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하는 전남은 과연 그 미션을 달성할 수 있을까? 이종호, 김병지 같은 핵심 전력과 작별한 그들이 2016년에 승천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팀 최초로 전남의 레전드라는 이력을 갖고 지휘봉을 잡은 부임 2년차인 노상래 감독, 그와 함께 하는 선수들을 방콕에서 만나 가능성을 확인해 봤다.
■ 창단 후 21년, 늘 애매모호했던 전남
노상래 감독은 누구보다 전남을 잘 아는 지도자다. 선수로서는 창단 멤버로 합류한 뒤 8년을 함께 했고, 지도자로서도 강원 코치 시절을 제외하면 8년을 있었다. 전남이 창단 후 21년 동안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그 자신도 인정할 정도로 잘 파악하고 있다. 노상래 감독이 소개한 전남의 21년사는 약팀은 아니지만 뭔가 늘 아쉬운 팀이었다.
“창단할 당시 선수들의 의지가 빛났던 팀이다. 1년차(8개팀 중 6위)하고 2년차(9개팀 중 7위)에는 적응단계였는데 3년차(10개팀 중 2위)부터는 상위권에 있었다. 팀에 대한 헌신, 희생, 애정이 강했던 팀이다. 1997년부터 1999년까지 3년 정도가 팀의 황금기였다. 그 뒤 부진하다가 2004년 다시 전성기가 왔다. 그때는 내가 없었지만 전남이 우승했어야 했던 때가 아닌가 싶다. 그 뒤로는 멤버도 조금씩 떨어지고, 유지는 어떻게 되는데 매년 조금씩 수준이 낮아지고 있다.”
전남이 리그 우승에 가장 근접했던 때는 준우승을 차지한 1997년, 그리고 모따, 이따마르, 김남일, 김태영 등 역대 가장 화려한 선수진을 갖추고 4강 플레이오프까지 간 2004년이다. 리그컵에서도 준우승만 3번이었다. FA컵 우승 3회가 팀이 내세울 수 있는 가장 큰 커리어지만 그나마도 2007년이 마지막이다. 2004년 이후 전남은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게 5차례였다. 2009년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서울을 꺾고 최종 4위를 진출한 뒤 성적은 10위, 7위, 11위, 10위, 7위, 9위다. 지난 시즌 강등이 된 부산마저도 올랐던 상위스플릿에 가지 못했다. 기업구단 중 유일하다.
이긴다는 것이 습관이 되고, 마지막 고비를 넘어 챔피언이 되면 그 뒤부터 정상에 오르기는 수월해진다. 이른 바 ‘우승 DNA’다. 기회가 왔을 때 우승을 해야 한다. 전남은 그 고비를 넘지 못했다. 성남, 수원, 전북이 챔피언에 익숙해질 때 전남은 점점 멀어졌다. 2012년에는 두 차례 0-6 대패를 당하며 강등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석주 전 감독이 시즌 중 부임하며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지만 그 뒤에는 중하위권이었다. 2014시즌과 2015시즌에는 전반기에 반짝했지만 기세를 잇지 못했다.
전남이 보유한 톱 클래스 외국인 공격수 스테보는 “큰 산을 넘지 못했다. 상위 스플릿은 물론이고 우승권에도 다가갈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데 그게 늘 그 상태로 끝났다”라고 말했다. 이어서는 “문제가 뭐라고 확실히 정의하지 못하겠다. 팀이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어 보인다. 올해는 그걸 깼으면 좋겠다”라며 애매모호한 문제를 분석했다.
성적이 나오지 않던 시점부터 전남은 육성에 아이덴티티를 뒀다. 형제 구단인 포항과 더불어 일찌감치 유스 시스템에 투자를 한만큼 리그에서 가장 먼저 그 과실도 땄다. 문제는 유스 출신 선수들이 전남에서 역사를 쓰지 못하고 더 큰 물로 나갔다는 점. 이규로, 윤석영, 지동원, 황도연 등이 그런 케이스다. 이번 겨울에는 유스 정책의 또 다른 상징이었던 이종호마저 전북으로 이적했다. 육성은 하고 있지만 그 선수를 오랫동안 지키지를 못하고, 그들이 본격적으로 빛나는 시기는 다른 팀에 가서 이뤄지니 결과를 내지 못한다. 전남의 감독들은 육성과 결과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그 또한 전남의 애매함이다.
■ 27명의 미니 스쿼드, 양 대신 질로
이런 현실에 대해 노상래 감독은 전남의 사령탑이면 감내해야 하는 무게라고 정의했다. 그는 “감독 한명이 팀의 정체성을 거부할 순 없다. 알다시피 모기업의 지원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에 육성을 통해 최대한 선수 영입 비용을 줄여야 한다”라며 현실을 부정하진 않았다. 올 시즌에도 노상래 감독은 상위 스플릿 진출이라는 성과에 도전하는 동시에 신예들을 팀의 주축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지난해 이슬찬, 이지민을 주력으로 끌어올린 것처럼 올해는 유스 출신으로 초고교급 미드필더라 평가받는 한찬희를 비롯해 허용준, 고태원 등을 성장시키는 게 목표다. 노상래 감독은 “선배들과의 경쟁을 통해 자기 능력을 증명하며 경험을 쌓는다면 팀의 든든한 자원이 될 거다”라고 말했다.
전남은 올 시즌 27명의 스쿼드로 시즌을 치른다. K리그 클래식 내에서 가장 적은 규모다. 골키퍼 3명을 빼면 필드 플레이어는 24명이다. 올해 부활하는 R리그(2군리그) 참가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스쿼드 규모는 점진적으로 줄고 있다. 2012년 35명이었지만 2013년 30명으로, 지난해부터 27명으로 가고 있다. 인건비 조정을 통한 효율성 확보가 목표지만 지도자 입장에서는 변수가 많은 한 시즌을 치르는 데 큰 난제를 안고 가게 된다. 노상래 감독은 “27명이 적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유럽처럼 멤버 구성 자체가 완벽하거나, 백업이 확실하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다. 일단 지도자들은 그렇게 되도록 준비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종호, 임종은, 김병지가 떠났지만 스테보, 오르샤, 안용우, 현영민, 최효진 등 주요 선수 다수는 건재하다. 관건은 새로 합류한 선수들이 얼마나 해 주느냐다. 배천석, 전우영(개명 전 전성찬), 조석재, 양준아, 유고비치, 이호승 같은 외부 영입 선수와 한찬희, 허용준, 한지원, 김경재 같은 신인 선수들의 몫이다. 그 밖에 뒤에서 준비하고 있는 선수들의 발전과 역량이 양 대신 질을 택한 전남의 운명을 가를 변수다. 노상래 감독은 경쟁 구단의 선수 명단을 수시로 체크하며 스쿼드를 비교하는 게 최근의 일상이라고 얘기했다. 그나마도 올림픽대표인 이슬찬, 19세 이하 대표인 한찬희가 수시로 차출이 될 가능성이 높아 그에 대한 부담도 짊어져야 한다.
27명의 스쿼드로 35명 내외의 타팀 스쿼드에 맞서는 마법은 멀티 플레이어 효과다. 노상래 감독은 두, 세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들을 활용해 수시로 생길 수 있는 주전들의 공백을 메우고자 한다. 유고비치(중앙, 측면 미드필더), 양준아(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이슬찬과 이지민(윙어, 풀백), 홍진기(수비 전 포지션)가 그 대상이다. 포메이션도 다양하게 가동할 예정이다. 4-4-2, 4-2-3-1, 4-3-3 등 가용할 수 있는 선수에 맞춘 팔색조 전술을 준비 중이다. 지난 시즌 백업 멤버가 없어 곤란을 겪었던 스테보를 뒷받침하기 위해 조석재, 배천석 등을 준비시키고 있다. 선수 활용폭도 최대한도로 끌어올린다. 지난 시즌 전남은 27명 중 25명이 그라운드를 밟았다. 노상래 감독은 올해 27명 모두 경기장에 투입시키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태국 전지훈련에서 처음 치른 충칭 리판과의 연습경기에서 전남은 가능성과 현실적 문제를 동시에 드러냈다. 조석재, 유고비치, 전우영, 양준아, 김경재, 고태원 등 신입과 신인 선수를 선발로 투입했을 때는 아직 부조화가 일어났다. 후반에 오르샤, 최효진, 현영민, 방대종, 이지남 등이 투입되면서 경기는 안정을 찾았다. 첫 경기에서 스테보를 투입하지 안고 조석재, 허용준을 번갈아가며 최전방에 세운 노상래 감독이었지만 전남은 결국 골을 뽑지 못하고 경기 초반 내 준 실점을 만회하지 못한 채 0-1로 패했다. 스테보는 이후 벌어진 연습경기에 출전해 공격을 이끌며 전남의 득점포는 터지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의존도 줄이기가 중요한 과제임이 다시 드러나고 있다. 주력 멤버과 백업 멤버 사이의 격차 줄이기 역시 고민이다.
■ 베테랑이 끌고, 젊은 피가 민다
창단 후 치른 시즌이 21번. 그렇다면 전남이 저 시간 동안 이룬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일까? 노상래 감독은 강산이 두번 바뀌는 동안 대개의 팀들이 그렇듯 전남도 자신들만의 팀 문화와 분위기를 형성했다고 자부했다. 그가 말하는 포인트는 “어떤 선수든 전남에 오면 빨리 적응을 한다. 운동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다. 선수들끼리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하나의 팀이 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였다.
현재 전남엔 과거의 노상래, 김태영, 김도근처럼 팀에 오랜 시간 머문 베테랑은 없다. 팀이 길러 낸 뛰어난 선수는 더 큰 팀으로 떠나 가고, 조금은 경력에 흠이 난 베테랑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오는 상황 때문이다. 현영민, 최효진(주장), 스테보, 이지남이 그런 케이스다. 하지만 이들은 이질감 없이 전남의 팀 문화에 빠르게 적응했고 현재 훌륭한 리더가 돼 주고 있다. 성실함과 헌신, 희생 정신을 지녔기 때문이다. 여기에 방대종, 김민식, 정석민(부주장), 김평래처럼 경험이 쌓인 중견이 뒤를 받친다. 안용우, 이슬찬, 오르샤, 이지민, 조석재 같은 2~3년차, 그리고 가능성 충만한 신인들까지 고루 선수층을 이루고 있다. 이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제 몫을 해주며 시너지 효과를 낸다면 전남은 지난 시즌 전반기처럼 예상을 뛰어넘는 위력을 보여줄 수 있다.
주장 최효진은 “전남의 장점이라면 역시 모든 선수들이 성실하다는 점이다. 나나 영민이 형, 스테보는 선수 생활을 더 오래 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다. 그 목표를 이루려면 개인 뿐만 아니라 팀에 열정을 쏟아야 한다. 후배들이 그런 선배들의 리드를 잘 따라온다”라고 말했다. 지난 시즌 K리그 챌린지 충주 험멜에서 놀라운 득점력을 선보이며 프로 무대에 연착륙, K리그 클래식에서 도전에 나서는 조석재는 “운동에 열중할 수 있는 분위기라서 정말 좋다. 영민이 형이 개인 운동을 할 때 나를 꼭 챙겨서 데리고 간다. 형들이 자기만 생각하지 않고 후배들까지 챙긴다. 이게 진짜 프로구나 싶어서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난다”라며 전남의 특별한 분위기를 높이 평가했다.
노상래 감독도 팀의 그런 특성을 이해하고 있다. 그는 “자리를 잡은 베테랑들에겐 믿음을 주고 체력적인 안배를 해 줘야 한다. 중견급 선수들은 더 책임감을 가져달라고 요청했다. 지난 시즌 가능성을 보여준 젊은 선수들은 올해 주축이 되어야 한다. 새로 합류한 선수들은 그런 분위기에 빨리 녹아들길 바란다. 그러면 전남의 문제라 할 수 있는 기복 심한 경기력은 해소가 될 것이다”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기복 없는 시즌을 위해 분발해야 할 대표적인 선수는 안용우다. 뛰어난 왼발을 이용해 측면을 유린하며 데뷔 첫 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안용우는 2년차인 지난 시즌엔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였다. 상대가 안용우를 견제했지만 안용우는 그 이상을 넘지 못했다. 3년차를 맞은 안용우는 “한 단계 더 올라서겠다는 절실함이 부족했던 것 같다. 기초군사훈련을 받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신인 시절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가 감독님과 팀의 기대에 부응하겠다”라고 말했다.
전남이 승천을 하기 위해 채워야 할 마지막 퍼즐은 노상래 감독의 몫이다. 지난 시즌 전남의 기나긴 무승 부진이 지속될 당시 팀은 외풍에 시달렸다. 초보 감독이었던 노상래 감독은 심지 굳게 그 외풍을 견디지 못했음을 인정했다. 그는 “작년에 감독을 시작하며 결과만 쫓았다. 1년을 겪고 보니 기본적인 게 갖춰지면 결과는 마지막에 따라온다는 걸 배웠다. 팀이 목표를 향해 꾸준히 제 길을 가기 위해선 내 역할이 중요하다. 밖에서 이런 저런 얘기로 흔들어도 나는 중심을 잡고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을 믿고 나가야 한다”라며 용의 승천을 위한 조건을 얘기했다.
“전남은 도깨비 팀이다.” 주장 최효진은 전남이라는 팀의 특징이자 문제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는 “지난 시즌이 끝나고 다른 팀 지도자 분들께 들었던 공통된 평가다. 잘할 땐 무서운데, 안 좋을 땐 정말 안 좋다는 뜻이었다. 강팀의 조건은 꾸준함이다. 올 시즌은 더 이상 들쭉날쭉하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노상래 감독도 마찬가지다. “뒷심이 부족하고 마무리가 안 된다는 평가는 이제 더 듣고 싶지 않다. 전남은 다시 한번 올라 갈 기회를 맞이했다. 전남의 색깔을 찾고 싶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축구, 홈에서는 누구도 무섭지 않은 그 색깔을 보여주겠다”라며 새 시즌 성공에 대한 각오를 밝혔다. 과연 전남은 더 이상 애매모호하지 않을 수 있을까?
글=서호정(태국 방콕)
사진=FAphotos
지난 10일 지병으로 별세한 전남의 초대 사령탑 정병탁 전 감독의 명복을 빕니다. 올 시즌 전남의 성공을 하늘에서 응원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