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료 | |||||||
구분 | 성인 | 중,고등 | 초등 | 2019년 4월 15일부터 인상 신용카드결재 가능 | |||
개인 | 2,000 | 1,500 | 1,000 | ||||
단체(30) | 1,800 | 1,300 | 800 | ||||
주차료 | |||||||
경차 | 승용 | 소형버스 | 대형버스 | ||||
2,000 | 3,000 | 4,500 | 6,000 |
→ 소수서원, 선비촌
▶ 소수서원: 경북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40, ☎ 054-639-7691, 홈페이지
조선 중종 38년(1543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워 서원의 효시이자 최초의 사액서원이 된 이 서원은 수많은 명현거유 배출은 물론 학문탐구의 소중한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소수서원은 건립 당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으로 불렸는데 그 후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한 후 조정에 건의하여 소수서원으로 사액되었습니다. 사액서원이라 함은 나라로부터 책, 토지, 노비를 하사받아 면세, 면역의 특권을 가진 서원을 말합니다. '소수(紹修)'라 함은 '이미 무너진 교학을 닦게 하였음'이란 뜻으로 학문 부흥에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당시 명종임금은 손수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편액 글씨를 써서 하사하였다고 합니다.
이 서원은 풍기군수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선생이 고려 말 유현(儒賢)인 회헌 안향(安珦 )선생께서 공부하시던 곳에 중종 37년(1542) 사묘(祠廟)를 세우기 시작하여 다음해에는 안향 선생의 영정을 봉안하고 학사(學舍)를 세워 주자(朱子)의 백록동서원을 본받아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창건한 데서 비롯되었다. 중종 39년(1544)에는 안축(安軸)선생과 안보(安輔)선생을 배향하였으며, 명종원년(1546) 안향 선생의 후손 안현이 경상감사가 되어 서원의 사당을 참배하고 각종 경비를 지원하였다.
소수서원 가을풍경 소수서원 경렴정
명종 3년(1548) 퇴계 이황선생이 풍기군수로 부임하여 경상감사 심통원(沈通源)에게 서원의 편액과 토지·노비를 하사해 주도록 계청(啓請)하자, 감사 심통원이 조정에 계청함으로써 이듬해 명종5년(1550) 4월 왕명으로 대제학 신광한(申光漢)이 서원의 이름을 『소수紹修』라 지었으니, "이미 무너진 교학을 다시 이어 닦게 하였음"(기폐지학 소이수지旣廢之學 紹而修之)이란 뜻이다. 명종임금이 손수 『紹修書院』편액 글씨를 써서 하사 하였으니, 곧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자 공인된 사립 고등교육기관(私立高等敎育機關)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인조 11년(1633)에는 서원을 창건한 주세붕 선생을 추향(追享)하였다. 회헌 안향(1243∼1306)선생은 고려 원종 원년(1260) 진사과에 급제한 후 우사의(右司議)등을 거치면서 문교진흥에 진력한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朱子學者)이다.
신재 주세붕(1495∼1554)선생은 많은 저서를 남겼고 황해도 관찰사,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면서 청백리에 녹선(錄選)되었다. 경내에는 강학당(보물 제1403호), 일신재 · 직방재, 학구재, 지락재, 장서각, 문성공묘(보물 제1402호)등이 있고, 안향 초상(국보 제111호),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보물 제485호)등 중요유물과 각종 전적(典籍)이 소장되어 있다. 또한 경내에는 이곳이 통일신라시대의 사찰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숙수사지당간지주(宿水寺址幢竿支柱, 보물 제59호) 등의 불적(佛蹟)이 남아 있다.
[출처: 영주 문화관광 홈페이지]
입장료, 주차료 | ||||
소수서원 선비촌 소수박물관 | 구분 | 어른 | 청소년, 군인 | 어린이 |
개인 | 3,000 | 2,000 | 1,000 | |
단체(30) | 2,500 | 1,500 | 800 | |
영주시민은 50% 감면 - 주차료: 무료 |
→ 죽계구곡
▶ 경북 영주시 순흥면 배점리
죽계구곡은 고려후기의 명현이자, 문장가인 근재 안축의 "죽계별곡"이며, 이퇴계와 주세붕 등 조선시대 유현들이 유상하던 자취들이있어 잘 알려진 계곡이다. 죽계구곡은 초암사 앞에서 제1곡으로 시작되어, 시냇물을 따라내려 삼괴정을 못미쳐있는 제9곡에 이르기까지 약5리 사이에 분포되어 있다. 이 죽계구곡은 영조초에 순흥부사를 지낸 신필하가 처음 정한 바인데 옛 초암법당 앞 바위벽에 "죽계1곡(竹溪一曲)"이라 커다랗게 새겨있고, 시냇물이 넓게 고여 흐르는 물밑 반석에 행서로 세겨진 "제일수석(第一水石)" 4자는 아주 힘차고 활달한 글씨인데 오랜 세월에 갈려 겨우 알아볼 지경이다.
지금 우리가 죽계구곡으로 발길을 돌리면 옛 선현들이 그곳에서 받은 감흥을 고스란히 늘낄 수 있다. 아니 늘 콘크리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은 자연이 주는 감동을 뛰어넘어 보이지 않은 더 큰 위안과 치료를 받을 수도 있다.
계곡 밑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은 물, 울창한 푸르른 숲, 그사이로 보이는 하얀 바위들, 이들이 모여 빚어놓은 죽계구곡은 현대인들의 지친 심신을 편안하게 잠시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곳으로 여름에는 더위를 피해 죽계구곡을 찾고, 가을에는 계곡물 위에 떠도는 한잎의 붉은 낙엽을 잊지 못해 죽계구곡으로 간다. 겨울의 등산객은 살짝 얼어붙은 계곡물 밑으로 느껴지는 생명력을 배운다. 사철 어느 때라도 찾고 싶은 소백산 죽계구곡 한마디로 ‘산 좋고 물맑고, 하늘 높은 곳이다.
죽계구곡은 자연경관만 빼어난 곳이 아니라, 계곡을 따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이 있어 역사의 향기도 함께 느낄 수 있다.
[출처: 영주 문화관광 홈페이지]
- 주차료 소형 2,000원, 승용 4,000원, 소형버스 4,500원, 대형버스 6,000원
→ 영주 인삼박물관
▶ 영주시 풍기읍 죽령로 1378 (창락리 452), ☎ 054-639-7686, 홈페이지
박물관 안내
ㄱ. 1층 로비, 인삼전시실
하늘이 내린 생명의 뿌리
1층 로비에는 아리랑위성 2호에서 촬영한 한반도 지형의 위성사진의 바닥연출과 함께 인삼의 전파경로를 소개하였고, 인삼전시실에는 풍기인삼 재배의 기원이 된 조선시대 주세봉 군수의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과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ㄱ. 1층 기획전시실
시간을 이어온 생명의 숨결, 풍기인삼
기획전시실은 다양한 테마를 정기적으로 교체전시하며 박물관 관람객의 꾸준한 관심을 유도하는 공간입니다.
ㄱ. 죽령옛길(1층→2층통로)
삼을 캐기위해 소백산에 오르다
1층과 2층의 연결통로에는 과거 경상도 동북지방과 서울 지역을 이어주던 길인 죽령옛길(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30호)을 연출하여 관람객이 삼을 캐기위해 산속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해 볼수 있도록 연출하였습니다. 인삼무역 이야기와 소백산 동삼전설 애니메이션은 죽령옛길을 걷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ㄱ. 2층 인삼전시실
풍기인삼의 기운을 발견하다
인삼전시실은 인삼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알려주는 공간입니다. 인삼의 생육, 인삼재배 농기구, 풍기인삼실, 1930년대 인삼가게 재현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연출공간에 관련 유물과 영상을 배치하여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ㄱ. 인삼나라(어린이 체험관)
호기심 쑥쑥! 상상력은 쭉쭉!
2층 인삼나라는 눈높이에 맞는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어린이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증신 시키는데 목적을 둔 체험학습 공간입니다. 인삼나라는 인삼캐기체험, 산삼캐기체험, 어린이도서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연출공간에 놀이 형태의 전시물을 통해 어린이들이 박물관에 친숙해 질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 관람안내
연중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 설, 추석
만 6세 이하 어린이는 보호자를 동반
- 관람시간: 평일/주말 09:00~18:00
- 관람료: 무료
- 주차장: 무료
→ 희방사, 희방폭포
▶ 희방사: 풍기읍 죽령로 1720번길 278, ☎ 054-638-2400
희방사 입장료 | |||
구분 | 성인 | 청소년 및 군경 | 어린이 |
개인 | 2,000 | 1,000 | 600 |
단체(30) | 2,000 | 900 | 500 |
희방사 주차료 | |||
소형승용 | 승용 | 소형버스 | 대형버스 |
2,000 | 4,000 | 4,500 | 6,000 |
2020년 06월 정보: 주차료는 없고 사찰관람료만 내고 입장 한다고 합니다.
- 희방사
풍기에서 죽령을 향하여 차로 10분쯤 달리면, 소백산 희방사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이 길로 접어들면 아름다운 계곡이 펼쳐지는데 바로 희방계곡이다. 여기서 다시 30분쯤 걸어 올라가면 높이 28m의 웅장한 희방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희방폭포는 소백산 연화봉 밑 깊은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몇천 구비를 돌아돌아 흐르다 이곳에 멈춰, 천지를 진동시키는 듯한 소리와 함께 웅장한 폭포를 이룬다.무더운 여름철, 우거진 잡목과 시원한 폭포가 어우러진 희방폭포는 일등 피서지가 되고 있다. 폭포를 뒤로 하고 한구비 오르면 고요한 정적속에 희방사가자리잡고 있다. 희방사는 643년(신라 선덕여왕 12)에 두운조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어느날 두운조사가 산길을 가다 신음하는 호랑이를 발견했다. 그 호랑이는 사람을 먹고 목에 비녀가 걸렸는데, 두운조사가 비녀를 빼주고 호랑이를 살려줬다. 그 후 호랑이는 두운 조사의 은혜를 갚고자, 어느 양가집 규수를 물어다 주었다.
그 규수는 바로 경주호장(慶州戶長)의 무남독녀였다. 경주호장 딸을 살려준 두운조사의 은혜에 보답코져 이 절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절 이름도 은혜를 갚게되어 기쁘다는 뜻의 희(喜), 두운조사의 참선방이란 것을 상징하는 방(方)을 써서 희방사(喜方寺)라 이름지었다.
희방사는 6.25 전란으로 법당과 훈민정음의 원판과 월인보등 귀중한 문화유산이 소실되었다. 그 후, 1953년에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은은한 종소리로 유명한 희방사 동종이 보관되어 있다.
- 희방폭포
폭포는 소백산 연화봉 밑 깊은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몇 천 구비를 돌아돌아 다 이곳에 멈춰, 천지를 진동시키는 듯한 소리와 함께 웅장한 폭포를 이룬다.
무더운 여름철, 우거진 잡목과 시원한 폭포가 어우러진 희방폭포는 일등 피서지가 되고 있다.
[출처: 영주 문화관광 홈페이지]
→ 옥순봉, 옥순대교
▶ 충북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 산 8, ☎ 043-653-3250(국립공원관리공단 월악산사무소)
* 제천 10경과 단양 8경에 속하는 절경, 옥순봉 *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옥순봉(玉筍峯)은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에 있다. 제천 10경 중 8경에 속하는 옥순봉은 지리적인 이유로 구담봉과 함께 단양 8경에 속하기도 한다. 경관이 뛰어나 소금강이라고도 한다. 희고 푸른 여러 개의 봉우리가 마치 대나무 싹과 같다고 하여 옥순봉이라고 이름 붙였다.
옥순봉의 산세는 청풍호와 어우러져 뛰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해발 283미터의 낮은 산이지만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함마저 느낀다. 확 트인 정상부는 너른 안부와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어 쉬어가기 좋다. 또한 노송이 운치를 더해주니 그 옛날 선계가 부럽지 않을 곳이 바로 이 곳이라 하겠다. 산행과 더불어 유람선을 타고 옥순봉과 구담봉의 멋들어진 석벽을 조망하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옥순봉은 높이가 낮은데다 등산로도 정비가 잘 되어 있어 쉽게 오를 수 있으니 1시간 산행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구담봉을 연결해 산행할 경우에는 약 4시간은 잡아야 한다. 구담봉으로 가려면 옥순봉 정상에서 되내려와 왼쪽으로 난 길로 가야 한다. 정상부까지는 깎아지른 바위산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옥순봉-구담봉 산행 중에는 식수를 구할 수 없으므로 산행 시작전 미리 준비해야 한다.
* 퇴계, 김홍도, 김일손 등이 극찬한 옥순봉의 아름다움 *
옥순봉은 조선 초 청풍군(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해 있었다. 단양 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 선생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단양 태생의 기녀 두향이 아름다운 옥순봉의 절경을 보고 단양군에 속하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그러나 청풍군수가 이를 허락지 않았다. 그러자 이황 선생이 단애를 이룬 석벽이 마치 대나무 순이 솟아 오른 것과 같다하여 옥순봉(玉筍峰)이라 이름 짓고, 석벽에 <단구동문>이라 새겨 단양의 관문이 되었다고 전한다.
이 외에도 조선시대 문신 탁영 김일손은 <여지승람>에서, 청화자 이중환은 <산수록>에서 옥순봉의 아름다움을 극찬하였다. 또한 구한말 의병장 유인석과 함께 왜군 소탕에 앞장섰던 정운호는 당시 제천 8경을 노래하며 이 곳 옥순봉을 제7경으로 꼽았다. 단원 김홍도는 정조의 초상화를 잘 그린 공로로 충청도 연풍의 현감에 임명되었다. 이 때, 1796년 <옥순봉도(玉筍峯圖)>를 남겼다. 이 그림은 김홍도의 대표작인 <병진년화첩 (丙辰年畵帖)> 중의 한 폭으로, 현재 보물 제782호로 지정되어 있다.
[출처: 대한민국 구석구석]
이 곳은 옥순봉과 구담봉이 있습니다. 코스를 보면 옥순봉은 경사가 완반하지만 구담봉은 코스 중 마지막의 경사가 매우 가파릅니다.
옥순봉 : 2.3km, 왕복 2시간소요
구담봉 : 2.0km, 왕복 2시간소요
- 주차: 옥순봉구담봉 주차장 - 비수기 4,000월, 성수기 5,000월(5월~11월)
- 이용시간: 상시 개방
→ 청풍문화재단지(비봉산)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 ☎ 043-647-7003/ 문화예술과 043-641-5531~3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청풍은 선사시대 문화의 중심지로서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곳곳에서 발견되었으며, 삼국시대에는 고구려화 신라의 세력 쟁탈지로 찬란한 중원문화를 이루었던 곳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지방의 중심지로 수운을 이용한 상업과 문물이 크게 발달했다. 그러나 1978년부터 시작된 충주다목적댐 건설로 제천시 청풍면을 중심으로 한 5개면 61개 마을이 수몰되자, 이곳에 있던 각종 문화재을 한 곳에 모아 문화재단지를 조성했다. 단지 내에는 보물 2점(한벽루, 석조여래입상), 지방유형문화재 9점(팔영루, 금남루, 금병헌, 응청각, 청풍향교, 고가4동), 지석묘, 문인석, 비석 등 42점과 생활유물 2천여 점이 원형대로 이전 복원되어 있어 짧은 시간 내에 많은 문화재를 관람할 수 있으며, 명실상부한 옛 남한강 상류의 화려했던 문화의 산실로 자리 잡아 ‘청풍호반의 작은 민속촌’으로 불린다.
문화재단지에서 바라다보이는 청풍호는 충주 다목적댐 건설로 생성된 호수로 뱃길 130리 중 볼거리가 가장 많고 풍경이 뛰어난 곳으로 내륙의 바다라고 한다. 작은 민속촌 청풍문화재단지를 정점으로써 주위로 봉황이 호수 위를 나르는 형상의 비봉산, 어머니 품속과 같이 편안하고 포근함을 느끼게 하는 금수산을 배경으로 한 청풍호반은 가히 절경이라 할 수 있다.
특히 2000. 4. 15에 개장된 수경분수(162m)에서 쏘아 올리는 시원한 물줄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단지에서 가까운 청풍랜드에는 현재 1개 타워에 3종의 시설을 설치하는 번지점프장(번지점프 50m, 자이언트스윙 36m, 번지라이트 36m)√및 수상레저시설 등이 완비되어 주위의 청풍리조트 호텔 및 E.S 리조트와 함께 종합휴양시설을 이용한 체류형 관광지로 각광받게 되어 그야말로 청풍호반은 보고, 즐기며, 체험하는 종합적인 국제적 관광명소로 급부상하고 있다.
[출처: 제천 문화관광 홈페이지]
입장료 | ||||
구분 | 성인 | 청소년 및 군인 | 어린이 | 비고 |
개인 | 3,000 | 2,000 | 1,000 | |
단체(30) | 2,500 | 1,500 | 800 | |
면제: 초등학생 미만 어린이, 65세 이상, 장애인(1, 2, 3급 장애인은 동반 1인 면제), 국가유공자 문화가 있는날(매월 마지막주 수요일) 50%할인 / 대상사: 일반관람객 및 단체 |
- 주차시설: 무료
- 이용시간: 3~10월(09:00~18:00), 11~2월(09:00~17:00)
- 쉬는날: 연중무휴
→ 금월봉관광지
▶ 충북 제천시 금성면 월굴리 산 15-1, ☎ 043-641-6701
금강산을 닮은 산, 금월봉 * 금월봉은 지난 1993년 아세아시멘트주식회사 영월공장에서 시멘트 제조용 점토 채취장으로 사용되어 오던 산이다. 그러던 중 기암괴석군이 발견되었는데 그 모형이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그대로 빼어닮아 작은 금강산으로 불리우고 있다. 현재 어린이 영화와 무술 영화 촬영장소로 각광받고 있으며, 최근에는 KBS대하드라마 태조왕건의 촬영장소로도 이용되었다. 바라만 보아도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신령스런 바위산 금월봉. 금월봉은 뛰어난 풍경과 더불어 태조왕건, 명성황후, 이제마, 장길산 등 TV 및 영화촬영장소로 알려져 있으며 수년에 걸친 작업 끝에 예전의 평범한 야산에서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신령스런 바위산으로 변모하였다. * 야산에서 종합관광지로 변모한 금월봉 * 제천시가 명칭공모를 통해 금월봉이라 명명하여 개발을 시작하여 금월봉관광지를 조성하였다. 이렇게 조성된 관광지는 작은 금강산이라 불리우는 석산과 청풍호반을 자원으로 최적의 수상레포츠 활동 조건과 뛰어난 전망 및 휴양조건을 활용한 종합관광지로 개발하는 지역이다.
[출처: 대한민국 구석구석]
- 주차: 금월봉유준리조트 주차장1 이용
→ 교동민화마을, 제천향교
▶ 민화마을: 충청북도 제천시 용두천로20길 18(교동 94-2), ☎ 010-7353-2882
▶ 향교: 충청북도 제천시 칠성로 117(교동), ☎ 043-647-4101
호랑이민화아름답고 익살스러운 우리의 민화를 벽화로 만나는 ‘교동민화마을’
‘교동민화마을’이 위치한 교동은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 1년에 세워진 지방유형문화재 105호 향교가 이름의 유래이다.
우리나라의 산업화 시기인 196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들어선 도농복합지구 형태의 거주지였으나 최근 들어 빈 가옥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를 바라본 지역의 문화, 예술인들이 2009년부터 담장에 민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민화 마을로 탈바꿈 하게 된다.
대부분 단층으로 지어진 가옥의 벽에는 호랑이, 사슴 등 민화 속의 동물은 물론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이 교동 일대의 담장을 장식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100여 점이 넘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교동민화마을’의 벽화는 다른 지역의 벽화와는 다른 점이 하나 있는데, 벽화의 주제가 ‘어변성룡(魚變成龍)’이라는 점이다. ‘물고기가 용으로 변한다’는 뜻을 가진 이 말은 합격이나 출세를 상징하고 민초들의 애환과 소망을 정성으로 담은 민화로 방문자들의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명소로 소문나고 있다.
벽화 테마길 안내도에 따라 골목길에 학업성취길(어변성룡도길), 장생길, 평생길, 추억의 골목길, 소망길, 출세길(출세의 계단), 장원급제길(한양길, 정도전길), 골목 미술관의 벽화 감상을 할 수 있다.
마을을 둘러보고 '교동 골목 공방촌'을 방문하면 민화외에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출처: 제천 문화관광 홈페이지]
교동민화마을에선 여러가지 체험이 가격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민화부채, 캐리컬쳐(호랑이) 민화그리기체험, 쿠키체험, 도자기 목걸이체험, 다육 도자기 체험, 리폼공예체험 등 구성되어 있스며 민화관련 액자, 용용이빵, 행운의 목걸이 등 판매 상품들도 있으니 즐거운 구경을 하실 수 있습니다.
- 이용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 주차장: 주차시설이 없습니다. 공영주차장 이용
→ 의림지
▶ 충청북도 제천시 의림지로 33, ☎ 043-651-7101(의림지 관광안내소)
제천10경 중 제1경인 의림지는 삼한시대에 축조된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 최고의 저수지로 본래 ‘임지’라 하였다. 고려 성종 11년(992)에 군현의 명칭을 개정할 때 제천을 ‘의원현’ 또는 ‘의천’이라 하였는데 그 첫 글자인 ‘의’자를 붙여 의림지라 부르게 되었다. 축조된 명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구전에는 신라 진흥왕(540~575) 때 악성 우륵이 용두산(871m)에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을 막아 둑을 만든 것이 이 못의 시초라 한다.
그 후 700년이 지나 현감 ‘박의림’이 4개 군민을 동원하여 연못 주위에 돌을 3층으로 쌓아 물이 새는 것을 막는 한편 배수구 밑바닥 수문은 수백 관이 넘을 정도의 큰 돌을 네모로 다듬어 여러 층으로 쌓아 올려 수문 기둥을 삼았고 돌바닥에는 박의림 현감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
현재는 수리시설보다는 유원지로서 그 명성을 더해가고 있는데, 2006년 국가명승 제20호로 지정된 경승지로 호수 주변에 순조 7년(1807)에 새워진 '영호정'과 1948년에 건립된 ‘경호루’ 그리고 수백 년을 자란 소나무와 수양버들, 30m의 자연폭포 ‘용추폭포’ 등이 어우러져 풍치를 더하며, 호수 주변에 목책 길과 분수와 인공폭포를 설치하여 의림지를 관망하며 산책하기에 좋다. 특히, 겨울철 및 해빙기에 잡히는 공어(빙어) 회와 튀김은 담백한 맛으로 각광받고 있으며, 의림지에서 자생했던 순채는 임금의 수라상에 올릴 만큼 유명한 요리재료였다.
그리고 우리나라 3대 악성의 한 분이며 가야금의 대가인 '우륵' 선생이 노후에 여생을 보낸 곳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가야금을 타던 바위 우륵대(일명 제비바위, 연암, 용바위)와 마시던 '우륵정'이 남아 있다.
[출처: 제천 문화관광 홈페이지]
- 이용시간: 연중 상시 개방
- 입장료: 없음
- 주차시설: 통나무휴게소(의림지 전용 주차장) 무료
- 쉬는날: 연중 무휴
→ 탁사정
▶ 충북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 224-1, ☎ 043-641-6731~3(관광정보센터)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물이 더러우면 내 발을 씻으리” 탁사정
원주에서 제천으로 들어오는 국도변에 한 폭의 그림처럼 자리 잡은 탁사정은 조선 선조 19년(1568) 제주 수사로 있던 임응룡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 해송 여덟 그루를 가져와 심고 이곳을 팔송이라 하였다. 그의 후손 윤근이 1925년 선조를 기리어 정자를 지었다. 솔숲 사이사이 수줍게 얼굴 내민 진달래꽃 향기로 탁사정은 겨우내 움츠렸던 기운을 펴기 시작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이 빚어낸 아름답고 강건한 바위들 사이로 시원한 물살이 기세 좋게 흘러내리고, 일렁이는 바람결을 따라 산벚꽃 이파리들이 점점이 흩날리며 떨어진다. 일상의 짐을 내려놓고, 바위 한쪽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온종일 흘러내리는 계곡의 물소리를 듣고만 있어도 좋다. 낚싯대 하나 드리우고 있으면 예기치 않은 기쁨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여름의 탁사정은 가족들이 함께 물놀이하거나 단체로 야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계곡 아래로 아담한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키 큰 소나무들이 허리를 굽혀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며 강바닥의 돌 틈에서 맨손으로 다슬기를 잡는 재미도 그만이다.
그런데 탁사정에 다녀왔다면서 정작 탁사정(濯斯亭)은 보지 못하고 온 사람들이 많다. 강 아래서 올려다보면, 깎아지른 절벽 위에 마치 하늘을 떠받치는 경천지세(擎天之勢)의 모양새로 탁사정이 서 있다. 그 주변을 에워싼 울창한 솔숲이 탁사정의 고고한 풍치를 더해 준다.
탁사정에 오르는 길은, 원주 방향으로 다리를 건너서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바로 있다. 강 쪽에서는 한없이 높고 가팔라 보이지만 실제로 3∼5분 정도 걸어가면 탁사정을 볼 수 있다. 산길도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걸을 수 있을 만큼 매우 순하다.
‘탁사정’은 중국 초나라의 굴원이 지은 어부사에 나오는 '창랑지수청혜 가이탁아영(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지수탁혜 가이탁아족창랑의 (물이 더러우면 내 발을 씻는다)'에서 유래 하였다고 전해진다. 세상의 먼지를 깨끗하게 씻고 고고한 인격을 지키며 세상일로 너무 지쳐있다고 느낄 때 탁사정에 오르면, 가슴 깊이 파고드는 시원한 솔바람 소리와 웅장하게 뻗어 나간 산맥들과 발밑을 휘감아 흐르는 깊고 푸른 강물이 지친 마음을 씻어내고, 새로운 삶의 지혜와 의지가 솟아오르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여유가 있으면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배론성지에 들러, 깊은 골에서 흘러나온 샘물을 마시며 몸과 마음에 정한 기운을 가득 채워도 좋다.
*탁사정 정자는 사유지라 입장이 제한될 수 있다.
[출처: 제천 문화관광 홈페이지]
- 이용시간: 상시 개방
- 입장료: 없음
- 주차시설: 탁사정휴게소 무료주차
- 쉬는날: 연중무휴
→ 배론성지
▶ 충북 제천시 봉양읍 배론성지길 296, ☎ 043-651-4527
제천, 원주간의 국도변에 위치한 배론성지는 한국 천주교 전파의 진원지로 천주 교회사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곳은 한국 초대교회의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와 화전과 옹기를 구워서 생계를 유지하며 신앙을 키워 나간 교우촌이다. 배론성지는 지리적으로 치악산 동남기슭에 우뚝 솟은 구학산과 백운산의 연봉이 둘러싼 험준한 산악지대로 외부와 차단된 산골이면서도 산길로 10리만 가면 박달재 마루턱에 오르고, 이어 충주, 청주를 거쳐 전라도와 통하고, 제천에서 죽령을 넘으면 경상도와 통하며 원주를 거쳐서 강원도와도 통할 수 있는 교통의 길목으로 배론이란 지명은 이 마을이 재한 산골짝 지형이 배 밑바닥 모양이기 때문에 유래한 것으로 한자 새김으로 주론(舟論) 또는 음대로 배론(徘論)이라고도 한다.
* 배론성지의 유래와 걸어온 길 *
조선시대의 행정지명으로 제천현 근우면 팔송정리 도점촌으로 옹기를 굽던 곳이다. 배론에 천주교신자들이 본격적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1791년에(정조15) 일어난 신해박해 이후로 추정되는데 탄압을 피하기 위하여 숨어든 교우들의 은신처가 되었다.1801년 신유박해 때 황사영이 당시의 박해상황과 신앙의 자유와 교회의 재건을 요청하는 백서를 토굴 속에 숨어 집필한 지역이며, 1855년(철종6년)에서 1866년(고종3년)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배론 신학교가 소재했던 지역이다. 또한 1861년 별세한 우리나라 최초의 유학생이며 김대건 신부에 이어 두 번째 신부가 된 최양업의 분묘가 소재한 지역인 동시에 1866년 병인박해의 순교자인 남종삼의 생가가 있는 지역(산넘어 묘재)이다. 배론성지는 1911년 경성교구에 속해 있다가 1968년 원주교구에 속하였으며 1970년대 들어 개발되어 오늘에 이른다.
[출처: 대한민국 구석구석]
- 주차: 무료
- 쉬는날: 연중 무휴
- 애완동물 동반: 불가능
→ 박달재
▶ 충북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
천등산 박달재라고도 하며, 천등산과 지등산이 연이은 마루라는 뜻에서 이등령아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해발 453m, 길이 500m로 예로부터 제천에서 서울에 이르는 관행길이 나 있으나, 첩첩산중으로 크고 작은 연봉이 4면을 에워싸고 있어 험준한 계곡을 이룹니다.
2차선 도로길을 오르면 만나는 박달재는 박달재 표지석이 있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박달재 목각 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박달이와 금붕이 이야기와 박달재 노래비가 있습니다.
울고 넘는 박달재
작사: 박야월
작교: 김교성
노래: 박재홍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 비에 젖는구려
왕 거미 집을 짓는 고개 마다 구비 마다
울었소 소리쳤고 이 가슴이 터지도록
부엉이 우는 산 골 나를 두고 가신 님아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 가소
도토리 묵을 써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에 금봉이야
- 입장료: 무료
- 주차: 무료
- 쉬는날: 연중 무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