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시끄러운 길을 걷고 있어도, 제 스스로 발걸음을 조절해, 가만가만 내디디며 한참 걷다보면 그 길은 조용하다. 아무도 보이지 않고, 또 보인다 해도 크게 나를 방해하지 않으니 분주함 속에서도 홀로 자유로워지는 법이 의외로 간단하다 싶을 때가 있다. 원일이 작곡한 ‘달빛항해’(‘아수라’, E&E 미디어)를 듣다보면 꼭 그런 기분이 든다.
영화 ‘꽃잎’의 작곡가로 널리 알려진 원일의 작품 ‘달빛항해’는 민요 ‘몽금포타령’을 주제로 한 노래인데, 노래를 구성한 방법이 좀 독특하다. 먼저 징 같은 타악기 리듬이 울리는 가운데 아주 조용하고 몽환적인 목소리의 여인이 ‘ A blue moon…”으로 시작하는 영시(英詩)를 낭송한다. 이때 본래의 큰 소리를 죽이고 가만 가만 울리는 징 소리(본래 징은 소리가 크고 여운이 긴 악기인데, 울림판을 한 손으로 막고 치면 크게 울릴 때와 달리 묘하게 가슴을 파고드는 특징이 있다. 시나위합주를 할 때도 이런 주법이 쓰인다)와 영어 나레이션은 많이 낯설긴 하지만, 신선한 느낌이어서 나쁘지 않다.
영시 독백을 구음(口音)같은 허밍으로 마무리하면 비로소 ‘장산곶 마루에 북소리 나더니…’하는, 귀에 익숙한 몽금포타령의 선율이 나온다. 가수 이상은이 ‘힘을 뺀 듯한’ 창법, 제각기 독특한 음색을 지닌 보컬리스트들이 피아노와 해금, 더블베이스, 클레이 드럼 등의 악기반주에 맞춰 소리와 함께 제 식대로 몽금포타령의 가락을 흥얼거리면서 이내 조촐하면서도 자유로움이 충만해지며 저절로 음악에 몰입하게 된다.
소리가 큰 금속 타악기 징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번도 큰 소리를 내지 않고 가만가만 울린다. 서로 다른 음색을 지닌 해금과 더블베이스는 그게 뭐 대수냐는 듯 의좋은 사람들처럼
잘 어울린다. 악기를 연주하다가 제풀에 흥겨워 노래하며 하나가 되는 이들을 생각하면 큰 소리 내지 않고도, 또 흐드러지게 뒤섞이지 않고도 조용히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법을 터득한 사람들 같아 참 부럽고, 이런 음악을 만들어내는 작곡가들이 참 대단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