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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동네역사탐방 스크랩 대진...큰나루...평택항 칼럼 5부작
吾心竹(윤종일) 추천 0 조회 318 11.03.28 09:2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대진-大津..큰나루...평택항 >>>

 

***신라의 대당교역로...당항성로 //

 

***송고승전...해문 당주계(唐州界)

 

***당항성...평택항 주변의 사찰 //

 

***신라 당항성로...대당교역로, 코리안 실크로드 //

 

***1872년 수원부지도...서울대 규장각...//

 

 

 

 

***아산 영인산...대두산성에서 본 백제 위례성 //

 

***아산 영인산성 //

 

 

***사비 부여, 금동대향로 //

 

 

< 大津, 큰나루...평택항...차례> 

 

제1편. 평택항...마한~백제국 직산 하남위례성의 관문 

 

제2편. 평택항...코리아 실크로드 당항성인가? 

 

제3편. 평택항...당항성은 청북면 옹포(甕浦)부근 

 

제4편. 평택항...서해바다 포세이돈 영웅암 

 

제5편. 평택항...숭어(崇魚)...歷史의 수면을 펄떡 뛰다

 

 

 

 

 

<제1편> 평택항...마한~백제국 직산 하남위례성의 관문

 

평택(平澤)의 지명을 살펴보면 평평한 들판과 연못이 많은 지형임을 설명하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다. 팽성(彭城) 역시 이곳이 강과 하천, 바다가 인접한 땅임을 또한 알 수 있고, 소사평, 소사뜰 역시 이런 자연적 지명과 매우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소사벌(素沙伐)을 살펴보면 평평한 들판을 가로질러 안성천, 진위천의 하천유역에 넓게 발달한 복사토, 복새흙이 쌓이고, 억새와 갈대가 우거지고, 개펄과 조수(潮水)에 의해 물은 많지만 농사짓기 쉽지 않았던 것을 우린 기억한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물고기나 모두 천적(天敵)이 세상에 존재하기 마련인데 이러한 적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생명을 존속시키기 위해서는 적당한 은폐, 엄폐, 공격할 수 있는 지형조건이 필요하기 마련인데 평평한 드넓은 공간에서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기 쉽지 않은 것이 자연의 섭리일 것이다. 평택~안성~천안의 소사평(素沙坪) 역시 이러한 지형조건에서 예외일 수 없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편을 살펴보면 졸본 고구려를 떠나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기 위해 남행(南行)하던 비류와 온조, 소서노 그리고 그를 따르던 10명의 신하들도 이러한 천험(天險)의 이치(理致)를 설파(說破)한다.

북으로 한강을 끼고, 동으로 높은 산에 의지하고, 남으로 옥택을 바라보며, 서쪽으로 큰 바다에 막혔으니 가히 얻기 어려운 지세(地勢)라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남망옥택(南望玉澤-남으로 옥택을 바라보고)에 관심이 집중된다. 부아악(負兒岳, 용인 부아산, 삼각산 추정)의 위치는 아직도 미상지명이지만 한강이남의 옥택은 바로 진위천, 오산천, 황구지천, 안성천이 흐르는 평택유역의 소사평을 가리키는 말임은 우리는 알고 있다.

 

온조(溫祚)의 모친 소서노(召西奴)란 이름에는 무쇠를 다루던 <제철집단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소서노 일행은 뛰어난 <선진 제철기술의 이동>이며 고대 강력한 부족국가를 이끌던 세력의 이동임을 알 수 있다.

이들이 남행(南行)하며 마한 진왕(馬韓 辰王)으로부터 봉토(封土) 받은 100리 강역(疆域)이 바로 <천안 직산위례성>이며, 마한과 말갈의 접경지인 금북정맥 서쪽지역인 천안 직산~평택~안성~아산일대인 것이다.

 

마한의 진왕으로서는 북쪽의 말갈족의 침입을 간접적으로 방어할 집단이 필요했고, 천안 직산땅 백리강역을 온조 세력에게 내어줌과 동시에 은혜를 베풂으로서 한반도 삼한의 맹주(盟主) 지배세력임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일거양득의 효과를 마한의 진왕은 거둔셈이 된다. 즉 현재 위험이 상존하는 남북한의 막강 군사력이 대치한 <휴전선 비무장지대>를 온조, 비류세력에게 내준 셈이다. 이러한 위험지역을 초기백제 비류, 온조에게 방어케 함으로써 마한은 안정을 도모할 수 있었다. 그런 기록은 삼국사기 곳곳에 마한왕에게 충성을 보이는 초기백제 온조왕의 마한과 외교관계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당시 마한의 중심세력이 어디에 있었느냐의 문제는 아직도 연구의 대상이

된다. 최근 천안시 청당동, 용원리 유적 유물에서 초기철기시대 마한의 마구유물(馬具遺物)들이 많이 발견됨으로서 고고학적(考古學的)으로 천안지방이 마한의 초기세력 세거지로 보는 경향이 일고 있다. 마한의 세력 변천은

천안~내포(홍성,예산)~공주(웅진)~익산(금마저)~영산강 유역으로 백제

세력에 밀려 내려갔을 것으로 추정한다.

또한 일부 학자는 안성시 양성면 고성산 운수암(雲峀菴, 무한성) 아래 유물발굴에서 마한세력의 중심지 왕궁 터가 있었을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결국 평택의 소사벌과 아산만의 내륙 깊숙이 선박을 접안할 수 있는 지정학적 위치는 고대 마한 목지국(目支國,월지국-月支國)의 중심세력과 초기 백제 온조의 하남위례성의 도읍지로서 평택일대, 평택항 인근의 수많은 포구와 나루들은 이러한 선진문물(先進文物)의 이동창구(移動窓口)이자 고대 강력한 국가형성을 이끄는 근원임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안성천, 진위천 하천으로 밀려온 수많은 복사토(복새흙)와 금모래가 반짝이는 하얀 백사장(白沙場)의 소사벌은 국부의 원천을 이루는 사금(沙金-gold),은,동, 철(鐵), 자석(磁石), 유리(琉璃)등을 생산할 수 있는 삼국사기 온조왕편의 기록대로 가히 난득지세(難得地勢) 황금(黃金)의 땅이다.

 

금북정맥 부소산(扶蘇山) 위례성 일대에서 발원하는 금맥(金脈)을 발견함으로서 소서노와 온조 일행은 선진 제철기술력과 강력한 무기체계를 바탕으로 마한을 멸하고, 낙랑말갈과 대결함으로써 고대 국가의 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서해의 질 좋고 풍부한 어염(魚鹽)과 진천 내륙의 석장리 초기철기제철유적, 삼용리 백제초기 가마터의 질 좋은 점토질 흙은 기원전후를 대표하고 한성백제를 대표하던 타날문토기(打捺文土器)와 양질의 그릇 생산 최적지로 초기백제 위례성(慰禮城)의 국부(國富)를 이루는 근간임은 분명하다.

 

마한, 백제인들의 금맥(金脈)은 최근 일제시대(日帝時代)로 이어져 천안

직산, 입장, 성환지역의 사금채취(沙金採取)는 정점에 달하였다.

삼남대로(三南大路)의 중심에 위치한 평택지방의 역사는 직산현, 수원부,

진위현, 양성현의 변방에서 새롭게 <평택=백제 하남위례성...남망옥택>의

터전으로 풍요를 구가하는 기름진 땅으로 변모하고 있다.

 

평택의 지명은 비록 고려초기에 생겨났지만 평택항을 포함한 평택역사의

시원(始原)은 백제초도 직산 위례성~마한 목지국~청동기시대(자미산성)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명멸(明滅)한 역대 왕조(王朝)들의 해양관문(海洋關門) 역할을 수행했던

평택항 그 가슴속을 열고 들어가면 백가제해(百家濟海) 해양강국 22담로국(擔魯國)을 거느린 대백제(大百濟)의 다물항(多勿港) 제1관문(關門)이 바로 평택항(平澤港) 유역임을 우린 알게 된다. 

 

 

제2편. 평택항...코리아 실크로드 당항성(黨項城)인가?

 

중국대륙을 횡단하여 동양의 문명과 서역의 문물이 오가던 길을 실크로드라 합니다. 대백제국 하남위례성~한성백제의 다물항(多勿港) 평택항은 해류의 흐름이 경기만을 굽돌아 덕적도~중국 산동반도를 이어주던 고대 해양항로의 중요한 대양 관문입니다. 조수간만의 차이가 심한 한반도 조류의 흐름과 돛을 활용한 항해술은 연안 해안을 훌쩍 건너 대륙의 문명교역로입니다.

 

이러한 대중국의 관문이자 코리아 실크로드(Korea Silk Road)의 중심지 한 곳이 바로 경기만(京畿灣) 서해바다 평택항 유역입니다.

 

백제~고구려~신라의 각축장이며, 신라의 대당교역로(對唐交易路)였던

당항성(黨項城), 그런데 당항성(黨項城)이 어디냐? 물으면 속 시원히 그럴듯하게, 명쾌하게 <여기가 당항성이다>라고 답변한 사람이 없는 것이 맘 한 켠에 걸립니다. 또한 <당항성이 남양(南陽)의 화량진(花梁鎭)의 당성(唐城)이다, 평택항의 대진(大津)나루가 당항성이다>라고 주먹다짐과 싸움만 할 뿐 결론이 없어 답답합니다.

 

지면(紙面)이 많지 못하여 세세하게 다루진 못해도 고기록을 검토하고, 고지도를 찾아보고, 인공위성지도를 쳐다보고, 당항성은 무슨 의미이며, 당항성은 과연 어디를 지칭하는지 추정(推定)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당항성(黨項城) 비정(比定) 고기록(古記錄)

 

당항성이라는 곳은 신라가 당과 교통하던 길이다. 당시에 당과 통하려면 매번 남양의 바다를 거쳐야 했으니, 곧 당항성은 마땅히 남양에서 가까운 땅에 있었을 것이다. 『신라지지』에 의하면 현재의 안산군은 본래 장항구현이었다고 하는데, 당과 장은 음이 비슷하니 소위 당항이란 안산인 것 같다. (한진서,『해동역사』지리고)

 

(당항성은) 혹은 당항진이라고 한다. 중원에 조공하는 길목으로 백제가 일찍이 고구려와 함께 모의하여 당항성을 점거하여 (신라가) 중원과 왕래하는 길을 끊고자 하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소정방이 신라에 왔을 때, 태종이 행차한 남천은 지금의 이천이고, 세자 법민이 병선을 타고 소정방을 덕물도에서 영접하였다고 하였으니, 이로써 미루어 보건대 소위 당항진은 현재의 남양부에 있었던 것 같으나, 명쾌하게 밝히고 있는 글이 없으므로 감히 억지로 풀이할 수는 없다. (한백겸,『동국지리지』신라 당항성)

 

『동국지리지』에서는 당항성이 지금의 남양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내가 생각하건대 당성은 당항을 고쳐 부른 이름이다.

(김정호,『대동지지』남양 연혁)

 

우리는 그동안 당항성=남양(黨項城=唐城)이라 생각하였고, 지금의 대다수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의 견해는 다릅니다.

고구려의 당성군(唐城郡) > 당주(唐州) >당은군(唐恩郡)으로 한결같이 당나라와 관련된 <당-唐>이란 한자로 표기합니다.

당항성(黨項城)이라고 표기된 남양(화성)의 지명은 한 곳도 없습니다.

한자를 잘 몰라서 그렇게 표현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당주(唐州), 당은(唐恩)=고구려의 영류왕 640년 무렵의 당성(남양) 홍씨(홍천하) 당나라의 8학사들의 동래(東來)와 관련하여 생긴 지명이 분명해 보입니다. 唐城-백제의 옛땅을 빼앗은 고구려 역시 475년~553년 무렵의 한성백제가 항시 덕물도를 통해서 중국을 통래한 기록으로 보아도 백제~중국의 교류항이었던 이곳을 바로 <당성-唐城>이라 부른 것입니다.

 

당성(唐城) 당주(唐州) 당곶(唐串) 은수포(銀樹浦) 부포(釜浦)

남경도항(南京渡港) 당성백(唐城伯) 당신(唐臣) 태자태사(太子太師) 당성후(唐城候) 당은군(唐恩郡) 당은백(唐恩伯) 당은후(唐恩候) 당은포(唐恩浦)...남양 관련 지명

 

<황당선-荒唐船-표류한 외국의 배><황당객-荒唐客-표류한 외국인> <당인리-唐人里-당나라 사람들이 사는 마을> <당주-唐州> <당진-唐津-당나라의 웅진도독부의 나루터>들은 중국의 사신, 상인, 난민, 중국배들이 서해 아산만, 경기만에 많이 상륙하고, 정착하여 중국의 <신라방 -新羅坊> <백제방-百濟坊>처럼 한국의 <唐坊-唐州-唐城-China town / Foreigner town-외국인 마을>을 통칭하여 당성군(唐城郡)이라 고구려에서 지명을 개명, 혹인 백제지명을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판단 됩니다.

 

 

제3편. 평택항...당항성은 청북면 옹포(甕浦)부근

 

○ 송 고승전(宋 高僧傳)의 해문 당주계(唐州界)

 

해문 : 두 육지 사이 바다 통로에 있는 당(唐)이 설치한 주(州)경계

 

<해문-海門>은 당시 신라의 육상 교통로였던 평택의 용성(龍城)~화성시 우정읍 남양만~화성시 서신면~송산리~해문리 일대를 지칭합니다.

<해문 당주계(海門 唐州界)-당에서 설치한 5도독부의 주 (웅진도독부) 와의 경계 해문>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충남 당진(唐津)은 당나라가 웅진도독부를 설치하고, 당나라의 배들이 접안 곳입니다. 신라가 백제를 평정하고, 백제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물류이동이 편리한 건너편 한진나루(대진) 부근과 당진, 혜군(면천) 백제 수군창이 있던 가리저(加里沮) 옮긴 것 입니다.

 

○ 당은포...육로 700리를 가면 신라의 왕성(王城)

 

득물도(得勿島)를 경유하여 1000리를 가면 압록강과 당은포(唐恩浦)에 이르고, 이어 동남쪽으로 육로를 통해 700리를 가면 신라의 왕성(王城)에 도달한다. 《신당서(新唐書)》

 

<<< 신증 동국여승람 >>>의 각 현 경계거리 비교표...10리=4km기준

1) < 화성시 화량진~~~~~신라 경주 왕성 >-----------811리(약 324.4km)

2) < 대진 평택항~~~~~~~신라 경주 왕성 >-----------758리(약 303.2km)

3) < 화량진~용인~이천~충주~문경~신라 경주 왕성 >--889리(약 355.6km)

 

<<< 신증 동국여승람 >>>의 각 현 경계거리 비교표...10리=4.6km

1) < 화성시 화량진~~~~~신라 경주 왕성 >-----------705리(약 324.4km)

2) < 대진 평택항~~~~~~~신라 경주 왕성 >-----------659리(약 303.2km)

3) < 화량진~용인~이천~충주~문경~신라 경주 왕성 >--773리(약 355.6km)

 

*신당서: 당은포~경주 700리는 표2-1...705里와 일치합니다 (10리=4.6km)

* 조선시대 10리=4km, 4.6km, 5.6km 등 표준 해석이 없어 추정 난감함.

 

○ 고대 대중국 3대 항로

 

당나라의 역사책은 <구당서> <신당서> 2종류가 있는데 중국과 신라가 통교하는 공식 항로는 경기만~덕적도~산동반도이다.

황해도 장산곶~산동반도의 항로는 거리는 가깝지만 강화도 쪽은 조류가 빠르고, 암초가 많아 위 항로를 선호함. 당성은 6~10세기 400년간 한국의 중요 무역항이었다. <출처 : 당성-경기문화재단 / 윤명철, 한국해양사 >

 

* 충분한 수심 * 넓고 잔잔한 수면 * 적당한 해저지질 및 넓은 접안시설

평택항은 수심 11∼18m에 이르는 데다 아산만 깊숙히 자리를 잡고 있어 바람이나 파도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천혜의 항만이다.   <출처-경기평택 항만공사>

 

* 남양의 화량진(남경도항)의 포구는 평택항에 비하여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고, 수심이 얕아 대양을 건너던 무역선 큰 배의 접안이 쉽지 않은 단점이 있음.

 

신라 대아찬(大阿飡) 진공(眞功) 등을 보내어 옹포(甕浦)를 수비

 

동사강목 제4하 신미년 문무왕 11년(당 고종 함형 2년, 671년)

여름 6월 장군 죽지(竹旨) 등이 당병(唐兵)을 석성(石城)에서 크게 격파하였다. 왕이, 당병이 와서 백제를 구원한다는 소문을 듣고, 대아찬(大阿飡) 진공(眞功) 등을 보내어 옹포(甕浦)미상 를 수비하게 하고, 장군 죽지 등을 보내어 백제 가림성(加林城)지금의 임천군(林川郡)의 밭과 벼를 짓밟게 하고서 드디어 당병과 석성(石城)에서 싸웠는데 머리 5천 3백 급(級)을 베었고, 백제의 장군 두 사람, 당의 과의(果毅) 여섯 사람을 사로잡았다.

 

* 나당연합군이 백제, 고구려를 평정하고, 나당전쟁이 시작되고 당나라가 백제를 구원할 때 역시 평택시 청북면 옹포(甕浦-독개나루)로 선단을 보냅니다. 순암 안정복선생은 미상 지명이라고 했지만 중국~덕적도~당항성 옹포가 신라의 남천주(이천시)와 백제부흥군 최후의 격전지 임존산성과 연결된 요충지입니다.

6.25전쟁 때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작전 같은 것이죠. 바로 신라의 급소인 당항성(黨項城) 옹포(甕浦)를 빼앗으려는 전략을 구사한 것입니다.

 

○ 당항성(黨項城)의 어원(語源) 풀이

 

닭의 목(鷄項)>달기목>닥목>당목>당항(黨項, 唐項)

 

우리는 흔히 <길목><골목><병목><손목>등 폭이 넓은 곳에서 좁은 곳으로 들어설 때 인체의 목(목-項)에 자주 비유합니다. 이러한 지형은 예나 이제나 전략적 급소일 뿐 아니라 특히 해류를 타고 강이나 바다를 건널 때 쉽고 빠르게 건널 수 있는 요지에 해당됩니다. 때로는 섬과 육지 사이의 울돌목(명량), 노돌목(노량), 임진란의 당항포(唐項浦)등 물살이 빠른 곳에 이런 이름을 붙이기도 합니다. 위험이 상존하는 해류입니다.

 

당곶, 은수포 역시 부포(釜浦-가마솥 모양의 포구)라 기록되어 <당성>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넓은 의미의 당항성은 < 당나라로 가는 남양만~덕적도 긴 해협의 지형>을 말한 것이며, <신라 당항성로>는 진천~직산~평택~ 상홀~용성과 진천~안성~양성~진위~양감~상홀~용성의 대당 육상교통로를 말합니다.

<당항성-黨項城=무리(물=水) 목, 물길이 집단으로 만나는 길목의 성> 은 상홀=차홀=수릿골=정수리(首)=으뜸이 되는 성= 자미산성 (자미-북두칠성의 뜻) 부근을 부르는 말이며, 여기는 남양만=옹포(瓮浦, 독개나루), 신포~아산만=황구지천+오산천+진위천~토진(土津-톳나루), 항곶포, 다루지(다라고비진)+안성천+한천+청룡천+입장천+성환천의 8대 하천(하팔현)의 합수되는 길목으로 여러 물길의 병목지점이며,

황구지천의 항곶(項串)이 당항(黨項=닭의 목=계항-鷄項)에 해당됩니다.

물론 <닭의 머리>는 서해 아산만 평택호 배수갑문 위쪽의 계두진(鷄頭津), 계두산(鷄頭山- 달기머리산)입니다.

 

한남금북정맥은 한성백제와 위례성 백제의 분수령인 용인 부아산(負兒山)을 기점으로 하남(河南)의 하천 즉 진위천, 오산천, 황구지천이 항곶(項串)에서 만나는 곳이며, 병목(닭목>당항) 되는 자미산성(紫薇山城) 부근의 옹포(甕浦-독개나루)를 <당항성-黨項城>이라 합니다.

 

당성(唐城)>당은(唐恩),당진(唐津)...모두 당나라 당(唐)인데 당항(黨項)이라 잘못 표기한 것이 아닙니다.

<黨項=무리 목=물=수항(水項) ...석보상절...무리=물 >

<黨項=무리 목, 물길이 합수되는 길목>의 뜻인 자연지명을 부르는 말입니다. 삼국시대에는 상홀현(上忽縣) 혹은 차성현(車城縣), 고려에서는 용성현(龍城縣)으로 불린 지역의 치소(治所)가 지금의 경기 평택시 안중면 용성리(龍城里) 소재 비파산성(琵琶山城)이었음이 확인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신라의 육상교통로이며, 대중국 교역로인 <당항성-黨項城>은 우릿말 <닭의 목>을 한자로 바꿔서 표현한 것이며,

○ 아산만~덕적도의 긴 해협 수항(물목, 水項 - 충남 당진군 송악면 한진나루~경기도 포승읍 원정리 괴태곶)이며,

○ 평택시 자미산성(용성)부근의 평택시 청북면 토진리(土津, 톳나루)~청북면 삼계리 옹포(甕浦, 독개나루)지역 아산만 진위천~남양만 수로의 좁은 물목(水項), 항곶(項串-亢串) 항곶포(項串浦) 일대의 <닭목성=당항성=옹포>

자연지형을 부르는 순수한 우릿말을 한자로 바꿔서 표현한 것입니다. 

 

 

제4편. 평택항...서해바다 포세이돈 영웅바위

 

평택항 대진(大津) 영웅암 <직산현지 고적-稷山縣誌 古蹟>

 

<영웅암>은 직산현 외야곶면의 바다 가운데 있는데 즉 수원땅이다.

임진년(1592년)에 왜적의 배가 은밀히 바닷길을 따라 밤에 이 바다에 이르렀다. 달빛 아래에서 바위 모양이 마치 장군이 투구와 갑옷을 갖추어 입고 진을 치고 있는 형상을 깎아 세운듯한 것을 바라보고 왜군의 두목이 크게 놀라서 선박을 돌려 남쪽으로 돌아갔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 <영웅암>이라 부르고 포상의 표시를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英雄岩 在外也串面 海洋中 卽 水原地 壬辰倭船潛由海道 野抵此洋 月下望見岩 形削立如 將軍具凱甲?列陳之像 倭醜大驚遂回舶南下 勘亂後 號 英雄岩 有着表褒著之 命)

 

이런 경우를 두고 임진왜란이란 “시대가 영웅을 만들었다”할 수 있습니다.

평택항과 송악 한진나루 사이에 영웅바위가 지금도 당당히 세월을 견디며 우뚝 치솟아 있습니다. 수많은 조선의 선비들이 대진 큰나루를 건너며 영웅암을 칭송했고, 한시의 주제가 되어 대진나루의 아름다움을 노래했습니다.

 

영공암(令公巖)... 택당 이식 [澤堂 李植, 1584~1647]

 

영공암은 바로 대진 한복판에 있는 바위 / 파도가 밤낮으로 소리내며 부서지나

꼼짝 않고 끄떡없이 서 있는 모습 / 아~ 산의 바탕 굳세고 강함이여

대인이 우뚝 서서 하늘을 떠받치는 듯 / 뱃사람들 공경하여 제사 올리며

영공의 이름 붙인 것도 당연하다 하리로다 /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홍색 관복에 비단 안장 길거리 메우고 행차할 때 / 길 옆으로 썰물처럼 물러서는 행인들

누가 제대로 실적 따져 영공이란 이름 붙여 줬나 / 각종 재물 상납을 다반사로 여기면서

간혹 강도와 도적 붙잡아내기도 한다마는 / 이와 같은 영공의 역량 헤아릴 수 없는 속에

천작은 날로 마모되고 공름은 엉망되게 할 뿐 / 아 어떡하면 곽분양 불러내어

중서당에 앉아 스물네 번 고과(考課)하며 / 오랑캐 평정하고 민생 안정시킬꼬

 

대진-우리나라 건너는 나루 중 제일험한 곳이라. 커대란 바위가 있는데,

대진 건너는 중 서해바다 중류에 우뚝 솟아, 이름을 바다의 신(神) 영공암이라 한다. 이쪽저쪽을 왕래하는 배들은 이 바위를 지날 때에 근심 걱정없이 무사히 건너게 해달라고 기원하며 건너는 관례가 있다.

< 수원 대진주중-水原 大津舟中...이안눌(1571~1637) >

 

 

영웅암, 영공암...그리스 신화의 바다의신 포세이돈처럼 신령스러운 기운을 내뿜으며 사람들의 존경의 대상이된 평택항 영웅바위입니다. 그리스 신화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가까운 주변에 임진왜란의 영웅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땅에 살고 사람들 중에 영웅암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작년 어느날 평택시청을 방문했습니다. 시청 몇 층인지 알 수 없지만 커다란 사진 한 장이 발길을 멈추게 했습니다. 푸른바다에 우뚝 치솟은 영웅암. 영웅바위에 평소 관심이 많던 터에 반갑기가 동짓달 꽃 본 듯하였습니다. 그 후 송악의 한진나루에서 사진을 담으려 망원렌즈를 당겨도 맘에 들지 않고, 여름날 뭉게구름 좋은날 서항 부두공사 현장을 통해 만나본 영웅암은 바라보는 것 자체로 즐거움입니다. 만호리 평택항에 정박중인 중국 산동반도을 오가는 훼리호, 수많은 자동차를 선적중인 대형함선, 괴태길곶(槐台吉串)의 나지막한 스카이라인은 서해대교의 멋스러움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입니다.

 

< 대진강촌-大津江村 >...취흘 유숙(柳潚, 1564~1636) 詩

 

술 취해 모래섬에 편안히 누워보고

아득한 풀밭 길 한가롭게 거니네

멀리서 부는 바람 장삿배 들어오고

 해거름 저녁노을 어부의 집 찾아드네

쌀 일어 불 지펴 밥 짓는 향 그윽한데

어이해 저 물굽이 영웅암 치솟아 화려하네

참으로 즐거운 땅 강남의 어촌이여

모래섬 품은 강마을 시가 따로 필요없네

 

“음식은 맛으로 먹고, 사람은 멋으로 산다”는 말이 옛시인의 감성을 빌어 저절로 흥이 치밀어 오릅니다. 이곳 대진 큰나루에 한참을 서있노라니 마한,백제의 소금배와 어부들 노랫소리가 들리는듯 하고, 나당연합군의 대형 선단(船團)위 전쟁의 함성이 면천의 몽산, 송악의 숭학산, 당진의 창택산, 아산의 영인산, 도고산, 덕산의 가야산을 타고 넘는 듯하고, 백제의 미소 화엄10찰 보현사 서산마애불의 천년미소가 보이고, 당나라 사신들과 상인, 유학길에 오르는 신라 유학생들이 겹쳐 보이고, 항포구의 새우젓과 생선 비린내, 안중장 쇠전엔 당진 소장수들의 충청도 사투리도 들리듯 봄바람에 살랑 흔들리는 산수유꽃만이 예나 이제나 같을 뿐 영웅호걸, 갑남을녀, 초동목수 모든 인물은 사라졌습니다.

 

삼남대로 교통의 길목인 평택, 아시안 하이웨이의 기착점이며 코리아 실크로드의 관문인 대진 평택항...거기엔 오늘도 내일도 비바람과 눈보라를 견디며 서있을 <서해바다 평택의 포세이돈 영웅암>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각지에는 명승지도 많고,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수도권 배후에 있으며 스토리가 있고, 역사가 있고, 멋과 흥이 있는 평택입니다. 컨테이너 쌓인 야적장과 포승공단의 밀집된 공장들, 대규모 아파트단지는 평택을 뛰어 넘어 글로벌리더로 세계로 도약하는 예나 이제나 한국을 대표하는 항만으로 거듭 발전할 것입니다.

 

대진 영웅암 주변을 역사유적지로 만들고, 대진 평택항~용성~비파성~자미성~옹포(독개나루)~괴태길곶(우릿말, 홰대기곶)을 잇는 <평택항 탐방 둘레길>을 개발하고, 대진 만호리 일대의 포구의 멋을 살려 관광객이 음식도 먹으며, 쉬고 갈 수 있는 그리고 조선 당대의 내노라하는 선비들이 영웅암을 노래한 <大津 英雄岩 詩碑>를 건립하고, <대진 평택항 유래비-大津 平澤港 由來碑>도 조만간 세운다니 반가웁고 <평택항 홍보관> 주변을 새단장하여 <평택항 역사박물관> 관광지로 만들면 더없이 좋겠다는 생각을 항시 합니다.

 

 

제5편. 평택항...숭어(崇魚)...歷史의 수면을 펄떡 뛰다

 

평택을 읊은 시가 있어 먼저 감상하겠습니다.

 

   평택현...서거정(徐居正,1420~1488) 詩

 

한 언덕 약간 높게 사면이 편편한데

날 저물면 돌아와서 외로운 정자에 올라보네

이 지역 본래 바다와 가까워서 물고기 게가 풍부하고

들엔 이미 가을 깊어 벼농사로 가득 찼네

구름 한 점 없는 긴 창공(蒼空)엔 기러기 그림자 머금었고

조수 돌아온 옛 나루터선 용(龍) 비린내 풍기네

내 집에 수경(數頃) 황무(荒蕪)한 밭이 있으니

어느 날 찾아와서 백조(白鳥)와 맹약할꼬

 

<출처:신증동국여지승람 평택>

 

<옛나루터에서는 용 비린내 풍기네>...서거정의 직산 제원루기(濟源樓記)를 보면 평택항~안성천 유역 상류에 백제 온조왕의 하남위례성이 천안시 직산읍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평택항의 포구와 나루터에서 시인은 천년을 뛰어 넘어 백제, 신라의 어느 왕을 용으로 비유해 표현합니다.

 

옛나루터 대진, 옹포, 신포, 호구포, 고잔포, 신전포, 계두진, 신흥포, 계양포, 시포, 노산포, 둔포, 공세포 다라고비진, 항곶포, 군문포, 이포진, 통복포, 삽교포...무수히 많은 항포구와 나루들이 아산만, 진위천, 안성천에 있습니다. 물의 상류에는 용인,기흥의 부아산, 천안 부소산 위례성, 수원 광교산, 안성의 서운산, 칠장산이 해로와 육로를 이어주고 있습니다.

 

이 길들은 고대인들의 고속도로이며, 고속전철 같은 삼남대로 네크워크로 연결하며 한반도 문화문명사의 중심축을 수행한 것입니다. 그 길 위에 경부선철도, KTX고속철도, 경부고속도로, 1번국도 등 수많은 현대의 길들이 그 옛날의 찬란한 왕조의 부귀영화를 깨우듯 오늘도 무수한 사람들이 통행합니다.

 

평택항하면 먹거리 중에서 횟감을 빼놓을 수 없는데 그 중에서 숭어회가 입맛을 돋게 합니다. 우럭이나 꽃게도 많지만 숭어가 그립고 좋습니다.

비록 고급 어종은 아니어서 지갑이 두둑치 않아도 쉽게 먹을 수 있어 더욱 좋습니다. 1kg에 약 2만원 정도하죠. 슈베르트의 숭어란 음악도 있지만 아산만방조제가 막히고, 대진 10리 포구엔 방파제로 갯골이 막혀서 옛날 항포구의 정취는 사라졌지만 망둥이와 숭어가 많이 잡히던 곳입니다.

 

숭어의 한자어를 보면 높을 숭(崇), 빼어날 수(秀)...예사롭지 않습니다.

숭어(崇魚), 수어(秀魚),치어(?魚)는 최대 몸길이 120㎝, 몸무게 8㎏에 달하고 예부터 음식뿐만 아니라 약재로도 귀하게 여겼다하고, 고급 술안주로 이용하였다하고『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수어(水魚)라 하였고, “숭어를 먹으면 위가 편해지고 오장을 다스리며, 오래 먹으면 몸에 살이 붙고 튼튼해진다. 숭어는 진흙을 먹으므로 백약(百藥)에 어울린다.”라고 합니다. 값은 저렴하지만 알고 보면 귀하신 몸입니다.

 

평택항~아산만방조제의 도로변에는 해물칼국수, 조개구이집이 즐비하게 많아 여행객들의 입맛을 당기게 합니다. 갯뻘이 발달하여 이를 자양분으로 사는 해양생물 또한 다양합니다. 시대는 변하여 염전(鹽田)은 없어 졌지만 평택항 인근에 소금도 생산하였습니다.

 

서해바다 아산만 소사벌, 삽교천의 내포유역은 경기만(京畿灣) 깊숙이 긴 동굴처럼 해문(海門)이 뻗어 있어 풍랑을 피할 수 있고, 강물처럼 잔잔한 해수면은 연중 대형 선박의 접근이 용이하고, 조수간만의 차이로 인한 수심 또한 비교적 깊어서 세계적인 항구로 발돋음 할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내륙의 삼남대로는 전국을 바둑판처럼 연결하며 물류와 여행객, 관광자원의 인프라도 겸비한 천혜의 항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지정학적, 군사전략적으로도 삼한~삼국시대~고려~조선시대 까지도 국가의 재정을 채우던 조운선들이 아산 인주의 공세창, 팽성의 직산 하양창 (경앙창)은 전국 으뜸의 조운선이 정박하던 곳입니다. 근현대사의 청-일 전쟁의 전장(戰場) 터 또한 이곳 평택항이 입지한 아산만입니다.

“평택이 깨지나 아산이 무너지나”란 말이나, 백제 온조왕이 축성한 대두산성(大豆山城-큰머리성)이라 비정되는 아산 영인산의 별칭이 <평택성> 이라하고, 성환의 <청망 뜰>은 청일전쟁 때 청나라가 패해서 망했다하여 붙여진 지명입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정유재란의 최후의 전투가 평택~성환~안성의 맹간교 인근 소사벌에서 벌어져 일본군이 패퇴하여 역사의 숨결은 고대로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평택항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국제비즈니스 항구로 눈부시게 성장 발전합니다.

 

<평택시 실크로드 마라톤대회>, <안성시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 <아산시 충무공 이순신장군 축제>, <천안시 흥타령 축제>는 바로 백제 첫도읍지 온조왕의 하남위례성 강역의 축제이며, 한지붕 아래의 4가족처럼 같은 산하(山河)를 호흡하는 이웃입니다. 평택항이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하려면 이웃한 도시와 긴밀한 연계와 협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할 수 있습니다.

 

   <<< 오심죽...대진...큰나루...평택항 5부 끝 >>>

 

***당진 송악 맷돌포에서 본 대진 평택항...大百濟國  하남위례성의 제1관문(多勿港)  //

 

***평택항 국제여객 터미널...//

 

 

 

***평택시 포승읍 만호리...대진(솔개나루) //

 

***비파산성~용성의 홰나무...회화나무...대진 가는길 //

 

***무성산성~자미산성 //

 

***평택호...혜초기념비...왕오천축국전 //

 

***안성시 고성산에서 본 평택 //

 

***평택항 홍보관에서 본 대진 평택항의 노을 //

 

***안성시 양성...고성산 운수암...무한산성 //

 

 

* 일본의 백제식 견당선...12세기 추정 //

 

 

***직산현 부소산 부소령(扶蘇嶺, 부수문이고개, 부소치)...금북정맥-호서정맥 //

 

 

***천안시 입장면 부소산(扶蘇山)에서 본 소사벌 //

 

***위례성 직산현의 진산...사산성...여기가 위례성~!!!

 

 

***충북 보은 삼년산성의 모습 //

 

***경북 상주 북천전적비...활쏘는 병사 //

 

***소사(素沙) 유래비...대동법 시행비 //

 

***소사벌과 평택시 //

 

***안성천...성환 안궁리에서 본 소사벌 //

 

***온조왕이 축성한 대두산성(영인산성, 평택성)에서 본 아산현 읍치와 아산만 //

 

***내혜홀...비봉산과 안성시 전경 //

 

***평택항 서해대교의 야경...大津...큰나루...당항성 //

 

 

* 쟁홀(爭忽)...당항성-항곶교 건너편 마을...요당마을의 유래 //

 

* 평택시 청북면...옹포(甕浦-독개나루) 상류의 신포...당항성...추정 //

 

* 직산 망해산봉수대 건너편의 심복사 대웅전 //

 

* 양직공도...백제사신도 //

 

* 사비 부여...부여대교 //

 

* 서해대교와 평택항 국제여객 터미널 //

 

* 임진왜란의 영웅...영웅암...영공암 //

 

 

*평택시청에 걸려있는 영웅암 사진 //

 

***당진 송악 한진나루에서 본 서해바다 포세이돈...영웅암 //

 

 

 

*원효대사 영정 //

 

 

* 서해대교...평택항...대진 만호리(솔개나루) //

 

***대진 영웅암...직산현 외야곶면...건너편 당진 송악 한진나루 //

 

 

***평택항...홰대기곶(괴태길곶) 봉수대...수도사(修道寺)...원효대사의 해골물 //

 

***황구지천>항곶교...항곶(項串)=당항성(黨項城=닭목성=닭의 목)의 입구

 

 

***화성방조제(화옹방조제)...멀리 화량진, 당은포 //

 

***천안시 직산현관아...호서계수아문...호서지방 경계의 첫마을 //

 

***좌성산(서운산)에서 본 백제 부소산 위례성...협탄령(엽돈재) //

 

***천안시 직산현읍치...직산초교...서거정의 제원루 시 //

 

***1200년 풍상을 인고한 성환읍 양령리...향나무 //

  

   < 대진 평택항, 大津-平澤港 > ---吾心竹 詩 //

 

파란물 부딪치는   저기가 밀머리라

비류왕 해빈고도(海濱古都)   온조왕 대두산성(大豆山城)

우두평(牛頭坪) 너른 들판   혜군(?郡)의 가리저(可里渚)라

 

협탄령(脇呑嶺) 곧장 질러   홰곶이 올라서니

당항성(黨項城) 세대박이   나당선(羅唐船) 오고가고

백제창(百濟倉) 수축(修築)하여  당숙관(唐?館) 현판(懸板)거네

 

사비성(泗泌城) 떨어진 꽃   백마강(白馬江) 흐르는데

주류성(周留城) 검가(劍歌)소리  어부(漁夫)의 노래소리

어느 뉘 해골바가지 물   시원타 말했느뇨

 

방조제(防潮堤) 막힌 곳에   숭어 떼 뛰노나니

그리운 위례고성(慰禮古城)   보고픈 님의 얼굴

뿌우웅 뱃고동소리   산동(山東)가는 카페리호

 

< 오심죽...大津...평택항에서...>

  

**주(註)

 1) 대진(大津)-옛 외야곶(外也串,吾也串, 왜곶이)--신라~당나라의 공도(貢道)의 중심 항구.

     ...평택시 포승읍 만호리--평택항.

 2) 밀머리-충남 아산시 밀두리...밀물(썰물)의 머리란 순 우릿말>밀두(密頭).

 3) 해빈고도(海濱古都)-비류왕이 세운 국가로 미추홀(彌鄒忽)

     -아산시 인주면 밀두리를 말함

 4) 대두산성(大豆山城)-백제 온조왕 27년(AD 9년) 축성-<삼국사기>

     大頭山城=大豆山城(多勿城)>섶머리성=薪城山城>靈仁山城

     *섶머리-삼각주처럼 생긴 지형. 일명 섬머리를 한자로 표현함.

 5) 우두평(牛頭坪)-당진군 면천면 삽교천 유역의 평야를 말함

     ...지금의 우강면, 신평면, 합덕읍 일대

 6) 혜군 가리저(?郡 可里渚)--지금의 충남 당진군 합덕읍 성동리의 백제 때 이름

     (예) 금마저(金馬渚)--전북 익산의 백제시대 이름.

 7) 협탄령(脇呑嶺)--지금의 엽돈령, 엽전재...입장~진천간 고개 이름.

    ...안성 서운산 청룡사~입장 양대리 부소산(扶蘇山)에 걸쳐 있슴.

 8) 홰곶이-일명 홰대기곶>괴태길곶(槐台吉串)

    -횃불(봉화)를 올리던 곶이란 뜻 / 평택시 포승읍 원정리 봉수대.

 9) 당항성(黨項城)--<닭의 목, 당나라로 가는 길목의 성>으로 아산만~덕적도 사이

     긴 해협(海峽)의 해안선을 통칭하며, 평택시 청북면 삼계리...용성 옹포(甕浦) 일대를 말함.

10) 세대박이--주로 大洋을 항해하던 범선. 古代 돛대를 3개 세운 배.

11) 나당선(羅唐船)-신라, 당나라 배.

12) 당숙관(唐?館)-당진군 합덕읍 성동리 동쪽에 당관(唐館)을 설치함.

     평택시 포승읍 만호리 인근의 차성(車城) 역시 唐館을 두었을 것으로 사료됨(대진만호-大津萬戶)

13) 사비성(泗泌城)-부여읍 쌍북리(雙北里)에 있는 백제시대의 산성.

14) 주류성(周留城)-백제부흥군 의자왕의 아들 부여풍(扶餘豊)이 이끄는 백제 최후의 항전지

     ...충남 홍성군 장곡면 일대로 추정함.

15) 위례고성(慰禮古城)-백제초도 직산 위례성(BC18~5,13년간)

     백제 온조대왕이 세운 도읍지. 입장 호당리~북면 운용리에 있슴.

16) 산동(山東)-중국의 산동 반도.

    

< 오심죽...평택항, 대백제 직산위례성의 관문...2011.3.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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