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를 보고 나무를 안다" 는 말이 있다. 사람도 그 사람의 남긴 일의 결과를 보고 평가할 수 있다는 비유이기도 하다.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와 못 먹는 열매가 있는 나무를 비교하면 성경말씀에서 인용한 이야기 같다. 사실 열매는 초목의 모든 기운이 모아져 저장된 결정이다. 열매 가운데 사람들이 기호식품으로 먹는 것이 과일인데 봄, 여름에 나는 것은 주로 채소과일로 사람의 몸을 서늘하게 해줘서 덥고 나른한 계절을 잘 보내게 한다. 가을, 겨울에 나는 것은 대부분 나무에서 나는 과일, 그리고 딱딱한 견과류로 에너지를 보충해 춥고 움츠려드는 계절을 잘 보내게 한다.
봄을 지나 여름으로 가는 계절엔 채소과일이 많이 난다. 딸기와 토마토가 대표적이다. 비닐하우스 재배가 많지 않던 예전에 시장에 딸기가 제법 보인다 싶으면 며칠 후엔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일년 가운데 딸기를 맛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되지 않았다. 학창시절 내가 하숙하던 첫해였던가? 챙겨주는 사람이 없다보니 딸기를 맛보지 못하고 한해를 보낸 적이 있었다. 얼마나 서운했던지....
반면에 토마토는 제법 오랫동안 보인다. 여름이 다 가도록 즐길 수 있으니까. 나중에 알았는데 전세계에서 채소 작물 중 가장 많이 나고 또 많이 쓰이는 것이 바로 토마토란다. 우리나라에선 주로 토마토를 썰어 먹거나 강판에 갈아서 먹는데 서양에서는 그보다 케찹, 소스, 캔 쥬스 등 가공식품으로 대부분 소비한다.
토마토의 원산지는 남미의 멕시코, 페루, 등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700년경 도입되었는데 가지과 식물이라 번가(番茄) 또는 감처럼 생겼다 하여 일년감, 남만시(南蠻枾) 등으로 불렸다. 하지만 재배가 일반화된 것은 얼마 안되어서 지금은 우리말 이름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하긴 유럽 전역과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재배된 것도 19세기라니 토마토가 세계의 채소밭을 점령한 것은 불과 일,이백년 밖에 안된다.
서양의 민간요법에는 토마토가 소화불량, 간장 및 신장질환, 변비에 좋다고 되어 있다. 고혈압에도 좋고 또 암과 층수염(맹장염)을 예방하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서양의 민간요법은 주로 성분분석과 통계에 의존하고 있다. 토마토에는 비타민 A,C가 많고 황색 색소인 카로틴과 붉은색 색소인 리코핀이 있는데 베타카로틴은 항암작용을 하고 리코핀은 위속에서 소화를 촉진시키고 산성식품을 중화시킨다고 한다. 또 토마토속의 루틴(rutin)은 혈관을 튼튼히 하고 혈압을 내리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서구식의 성분분석에 의한 식물의 약효 판정은 자칫 견강부회되기 쉽다.
토마토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 하나는 18세기 유럽에서는 토마토를 최음제(催淫劑) 로 취급했다는 것이다. 토마토의 다른 이름은 영어로 러브애플(love apple), 즉 사랑의 사과라는 뜻인데 불어로도 같은 뜻의 이름이다. 요즘에 와서는 토마토가 성욕을 자극한다는 이야기는 근거가 없다고 부인하는 사람이 더 많다. 원래 토마토는 건조한 땅에서 자생했기 때문에 '황무지의 사과' 라는 뜻의 라틴어가 이태리어로 '포미 데이 모리'(pomi dei mori)가 되었다가 불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음이 비슷한 '폼므 다무르'(pommed' amour) 즉, 사랑의 사과라는 뜻으로 와전되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름이 잘못 전해져서 토마토가 성욕을 자극한다고 잘못 알게 되었다고 결론짓는 건 너무 성급한 것 같다.
창세기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야곱의 아들인 르우벤이 들에서 합환채를 구해와 어머니인 레아에게 갖다주자 라헬이 "언니의 아들이 가져온 합환채를 내게도 좀 주세요"라고 말하자 레아는 "네가 내 남편을 빼았아 가고서도 부족해서 이제 내 아들이 구해온 합환채 마저 빼앗아가려느냐?"하고 쏘아붙이는 대목이 나온다. 합환채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지만 성욕과 임신을 자극하는 약용식물로 알려져 왔는데 토마토와 같은 가지과 식물이다. 열매의 모양도 토마토와 거의 비슷하게 생겼다. 토마토가 성욕을 자극한다는 이야기는 단순히 번역과정에서 와전된 착오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토마토가 동양에 전래된 지 얼마 안되다 보니 한의학 서적이나 우리의 옛 식물학 서적에서 그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최근에 나온「증약대사전」에는 토마토가 '번가'(番茄)라는 이름으로 나오는데 "진액을 멈추게 하여 갈증을 멈춘다. 위를 튼튼히 하고 소화를 잘 시켜서 식욕 부진에 쓴다" 라고 짧게 기록되어 있다.
옛사람들이 토마토의 효능이나 쓰임새를 자세히 밝혀놓진 않았지만 그 형색기미(形色氣味)와 자라는 환경조건을 살펴보면 대강은 이해할 수 있다.
토마토가 자라는 환경을 보면 건조하고 햇빛이 많은 땅에서 자란다. 요즘에야 여러 개량종도 나오고 각지에서 재배하지만 원산지는 높고 건조한 남미의 안데스 산맥이다. 그리고 스리랑카의 건조한 아열대의 고지대에서 잘 자라고 아프리카에도 신맛이 많은 야생종 토마토가 자생한다고 한다. 열대지방, 그리고 건조한 지역에서 자라는 식물은 대부분 기(氣)가 냉하고 습기를 많이 가지고 있다. 토마토도 잘라보면 수분이 꽉 차 있다. 많은 채소가 그렇듯이 기운도 서늘하여 많이 먹으면 변을 무르게 한다. 자연히 토마토는 갈증을 멎게 하고 변비에 도움이 된다. 둘째로 토마토의 맛은 신맛과 단맛이 함께 있다. 소화를 촉진시키고 식욕을 돋구는 대표적인 맛이 신맛과 단맛이다. 토마토의 색깔은 겉과 속이 모두 붉은 색이다. 과육 속은 두 개의 방으로 되어 있고 씨가 가득찬 끈적끈적한 진액으로 차 있다. 붉은색은 원래 심장을 상징하는 색으로 사람을 흥분시킨다. 또 씨로 가득찬 그 속 모양이 사람들에게 토마토에 성욕을 자극하는 무엇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하지 않을가? 하지만 그런 걸 너무 기대하거나 반대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 토마토는 약으로 분류되기는 어려운 식물이다. 아무리 먹어도 기분 정도이지 약효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단지 갈증을 멎게 하고 더위를 식혀주며 소화를 촉진시키는 작용은 기대해도 좋다. 토마토는 채소과일로 덥고 나른한 계절, 식욕이 떨어지기 쉬운 계절을 잘 견딜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준비해두신 과일로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