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7월 29일 일요일 맑음
새벽 4시 기상했다. 병령사 석굴을 찾아가는 방법을 연구한다. 먼저 배를 탄다는 유가협(劉家峽)을 가는 방법을 알아본다. 가이드북과 인터넷을 살펴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글을 참고한다. 메모지에 가는 지명을 한문으로 그려놓았다. 아침 식사로 라면과 누룽지를 끓여서 먹었다. 저녁에 둔황으로 기차를 타고 이동해야하기에 짐을 챙겼다. 오전 6시 50분에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호텔에 맡겼다. 날이 막 밝아지며 세상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거리에 차들도 다니고 아침 산책과 출근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인도에는 아침 요기를 파는 노점상들이 벌써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아내도 길에 펼쳐진 노점상에서 만두 2개(3위안,510원)를 샀다. 점심용이란다. 그 옆에는 죽(粥)이라는 글씨가 보이는 포장마차도 있다. 대충 9가지 죽을 팔고 있다. 중국의 죽은 맛있고 가볍다.
메모지에 서부버스터미널(兰州汽车站)이라고 그려진 글씨를 택시 기사에게 보여준다. 알아들어서 반가웠다. 거리는 멀지 않다. 서부버스터미널로 택시를 타고 간다. 기본요금(12위안,2040원)이다. 택시기사가 멈추더니 들어가는 골목을 알려준다. 정문이 아니고 뒷문에 내려주었다. 골목을 따라 들어가니 버스터미널 매표소가 바로 나온다. 일단 표를 사기로 했다.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매표소에 유가협(劉家峽)이라는 글씨를 또 보여주었다. 외국인이라고 여권을 보여 달란다. 이름을 입력하고 표를 준다. 차비가 23위안(3910원)인데 외국인만 2원을 더 받는다. 보험료란다.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깨끗한 버스 앞에는 란조우(兰州)에서 유가협(劉家峽)을 간다는 글씨가 보인다. 란저우 서부 터미널(兰州西客站)에서 유가협 댐(刘家峡水库)으로 가는 버스가 07:00~18:20 사이에 20분마다 출발한단다. 7시 30분인데, 우리 차가 첫차다. 사람이 차면 가는 것 같다. 터미널에는 버스가 서 너 대 주차해 있다. 별로 넓지 않은 공간이다. 기다림 없이 차는 출발한다. 란저우 시내를 벗어난다. 버스는 시속 60km로 달려간다. 느리다. 속도표지판을 아주 잘 지키며 간다. 황하 강을 따라 버스는 간다. 강 건너에는 고층 아파트와 낮은 아파트가 폼 없이 세워져 있다. 사람들도 살지 않는 것 같이 조용하다. 강을 따라가던 버스는 힘들게 산악지대를 넘어간다.
어떻게 보면 가는 여정이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먼저 란저우에서 남서쪽으로 75km 떨어진 유가협(刘家峡, 류자샤) 댐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황토고원이 펼쳐진다. 먼지가 날리고 산세가 험하다. 주로 나무가 심겨지지 않은 모래, 자갈 산이다. 인근 도시인 시안의 강수량이 연 600mm에 불과하고 그 북쪽인 감숙성은 이보다 낮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황량할 줄 몰랐다. 2시간 걸려 유가협에 도착했다. 유가협(刘家峡) 가기 바로 전 댐이 보이는 곳에서 내려야하는데 더 가서 도심에 내린 것이다. 공문집단(公文集団)이라는 곳에 버스는 멈추었다. 사람들이 내리길 레 따라서 내렸다. 같이 내린 사람들이 하나 둘 도심으로 사라졌다. 어디로 가야할지 헤맸다. 유명 관광지이면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상하게 내리는 사람도 적고 특별히 가는 사람도 없어 보인다. 알고 보니 우리같이 버스를 타고 오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모두 승용차나 단체버스를 타고 오는 것이다.
병령사 석굴(炳灵寺石窟 빙링스스쿠)이라고 한문으로 적어서 보여주며 길을 묻다. 구멍가게에 들어가서 물으니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가씨가 다시 적어준다. 유가협수전점(刘家峡水電站)이라고 다시 적어주면서 이것을 보여주고 택시를 타란다. 수력발전소라고 적어준 것이다. 중국인들도 스마트폰 영어 번역기를 사용하여 우리에게 의미를 전달해 준다. 많이 발전했다. 택시(10위안,1700원)를 타고 간다. 1km 조금 넘어 보이는 거리다. 무더운 날에 걷기는 좀 부담스러운 거리다. 걸어가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주차장이 넓다. 차들이 많이 보인다. 먼저 댐을 보러가니 바로 눈 아래 강을 막은 댐이 보인다. 쓰레기가 엄청 밀려와 있다. 강폭이 좁고 높다. 불안해 보일정도로 강물의 양이 많아 보인다. 유가협댐은 양자강의 삼협댐이 생기기전에는 중국에서 가장 큰 댐이었다고 한다. 중국 황허강(黃河) 상류에 있는 협곡에 만들어진 댐이다. 간쑤성(甘肅省) 중남부, 란저우[蘭州] 서쪽 약 75km 지점에 위치한다. 황허 강 유역 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1958년 9월부터 댐의 건설이 추진되어, 1961년에 콘크리트 중력댐이 완성되었다. 높이 148m, 길이 840m, 저수량 57억m3의 다목적댐으로, 160만kW의 발전과 450만ha의 농토 관개가 가능하다. 공업도시 란저우를 비롯한 간쑤성의 전력수요를 충족하고, 간쑤성 북부평원 및 네이멍구(丙蒙古)자치구 등지의 농토를 관개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저수량은 우리나라 팔당댐의 30배란다.
배를 타는 곳을 찾아간다. 표를 파는 매표소 건물이 크다. 표를 사는 것도 쉽지 않다. 일단 줄을 서서, 느린 배가 아닌 쾌속정을 타기로 했다. 대충 한문 글씨를 보고 눈치껏 얘기했다. 친절하게 직원이 일정을 영어 번역기로 설명해 준다. 가는데 1시간, 돌아보는데 1시간 30분, 돌아오는데 1시간 걸린단다. 쾌속정은 요금이 왕복 125위안(21,250원)이다.
표를 손에 쥐고 안내해 주는 곳을 가니 선착장이 보인다. 계단을 내려가 강으로 간다. 먼저 가서 표를 내밀고 보트에 타고나니 승객 모두가 중국인들이다. 붉은색 구명조끼를 입고 자리에 앉았다. 정박해 있는 쾌속정이 많이 보인다. 기사포함 14명이다. 꽉 차서 간다. 기분 좋게 달려간다. 물이 많다.
강의 규모도 크고 깊어 보인다. 엔진소리가 크게 들린다. 황하 강이 맑고 푸른색이다. 긴 다리 하나가 머리 위로 지나간다. 또 왼쪽에 커다란 다리가 보인다. 다리 두 개를 지나가니 등대 같은 건축물이 오른쪽에 나타난다. 물 색깔이 바뀐다. 황토색이다. 물은 잔잔하다. 주변의 경관이 모두 황토색 웅장한 산들이다. 댐에서 석굴까지는 다시 54km 배를 타고 간다. 모터보트를 타고 황허가 흘러든 누런 물길을 1시간가량 빠르게 질주하는데, 주름이 가득한 절벽들이 나타난다. 산에는 나무가 없고 초록 풀들이 보인다. 강 주변 언덕에는 기념비도 보이고, 새로 지은 건물도 보인다. 앞에는 선착장도 있다. 경치가 정말 멋지다. 원시적이다. 암벽은 경사가 급하고 웅장하다.
석굴이 가까워지면서 나타나는 기암절벽이 예술이다. 일대의 바위산을 병령석림(炳灵石林)이라고 부른다. 가파른 절벽의 경이로운 모습이 석굴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한 이도 있다. 강과 어우러진 기암절벽이 정말 멋지다. 드디어 암벽에 세워진 사찰이 보이고 병령사(炳灵寺)라고 씌어 진 커다란 글씨가 벽에 매달려있다. 선착장에 도착하였다. 50분 정도 걸렸다. 보트 기사가 돌아와야 할 시간이 12点 20分(12시30분)이라고, 시계를 보여 주면서 종이에 적어준다. 1시간 30분 정도 시간을 준다.
시멘트 계단을 올라간다. 버드나무 산책길이 나온다. 병령사석굴(BINGLING CAVE-TEMPLE)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옆으로 긴 커다란 바위가 기념비로 세워져 있다. 강물과 어우러진 기암절벽이 멋지다. 왠지 이상하고 낯선 세계로 보인다. 매표소가 나온다. 입장권(문표)는 보통문표는 50위안(8,500원), 특굴문표는 80위안에서 30위안까지 있다. 126번 굴은 80위안, 132번 굴은 90위안, 169,192번 굴은 300위안이다. 우리는 보통문표를 끊어서 들어갔다. 병령사 입구 건물이 나온다. 붉은색 기둥에 노란색 현판과 회색빛 기와가 화려해 보인다. 앞에는 흰색 대리석으로 만든 사자상이 한 쌍 있다. 더 들어가니 자꾸만 눈은 기암절벽과 어우러진 강으로 간다. 황토색 물을 가르며 올라오는 보트가 풍경과 잘 어울린다.
가파른 절벽 밑에 제비집처럼 붙어 있는 작은 암자 둘러본다. 계단이 급하다. 계단을 오르며 돌아본 강물주변은 시원하게 한 눈에 들어온다. 제비집 같은 암자는 굴을 이용해 불상을 설치하교 절벽을 오르도록 불안하게 계단과 난간을 만들어 놓았다. 제법 오랜 세월이 느껴진다. 둘러보고 내려와서 산책길을 따라 석굴을 구경한다. 강우 시 물이 흘렀을 골짜기에 형성된 건천(乾川) 주변에는 포플러 숲이 간혹 보이고 버드나무들이 보였다.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중국 사람들이다. 입구에 높이 솟은 형제 바위 모양이 멋지다. 다리를 건너서 벼랑으로 이어지는 산책길을 돌아가니 건너편에 드디어 석굴들이 보인다.
약 1600여 년 전인 서진(西秦)시대에 창건되어 북위(北魏) 서위 북주(北周) 수(隋) 당(唐) 원(元) 명(明) 청(淸)에 걸쳐 확장되었다. 초기에는 강(羌)족 말로 도깨비굴을 뜻하는 당술굴(唐述窟)이라 했다. 당대(唐代)에는 륭흥사(戎興寺), 송대에는 영암사(靈岩寺)로 부르다. 명대에 병령사라 부르게 되었다. ‘병령’은 티베트어를 음역한 것으로 ‘십만 개의 불상’을 뜻한다고 한다. 불상이 매우 많다는 의미로, 높이 60m의 절벽을 따라 크고 작은 석굴이 200m가량 이어진다.
총 183개 석굴에 694개의 석상과 82개의 소조상이 있다.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대형 미륵보살은 당나라 때 만든 것으로 높이가 27m에 달한다. 그런데 왼쪽 팔목이 잘려있다. 이 석굴들은 한꺼번에 완성한 것이 아니라 17세기 초에 시작하여 청나라 때까지 꾸준히 만들어졌다고 한다. 가장 오래된 것은 169번 굴로 420년 북위 시대에 조성되었다. 원래는 대 불상 앞에 다층 누각이 있었는데, 전화(戰禍)로 파괴되면서 불상도 부서졌다 한다. 불상 위와 주변 구멍이 누각을 세웠던 흔적이다.
다리를 건너 석굴 앞으로 간다. 크고 작은 석굴에는 불상들이 있다. 모두 번호가 적혀 있고 만들어진 연대와 내용이 적혀있다. 석굴에는 아직도 남아있는 그림에 채색이 보인다. 천정화도 있다. 둥근 연꽃무늬도 있고 나무와 꽃들을 그려 놓기도 했다. 벽을 따라 나무 계단이 만들어져 있는데 입구가 닫혀있다. 병령사 석굴은 둔황의 막고굴(莫高窟), 톈수이의 마이지산석굴(麦积山石窟)과 더불어 감숙성 3대 석굴의 하나로 막고굴이 벽화, 마이지산석굴이 소조상이 유명한데 비해 병령사 석굴은 부조가 빼어나다고 한다.
석굴은 먼저 절벽에 작고 네모반듯하게 굴을 파고, 굴의 벽면에 30~40cm 크기의 불상을 대부분 부조(浮彫) 형태로 조각했다. 벽면에 정교하게 조각된 불상은, 마치 소조로 만든 불상을 벽에 접착제로 붙여 놓은 것처럼 보인다. 산책길에서 만난 상사(上寺)라는 절에는 북위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와불이 편하게 누워있다. 표정이 여성스럽다. 천천히 걸으며 살펴보는데도 제법 시간이 걸린다.
돌아 나온다. 걷기 좋게 산책길을 잘 만들어 놓았다. 병령사를 나와서 찐 감자를 사먹었다. 옥수수도 쪄서 팔고 있다. 아내가 사온 만두도 하나씩 먹었다. 만두피가 두꺼운 중국 만두는 별로 맛이 없다. 만두라기보다는 찐빵 같다. 선착장에 내려와 배를 기다린다. 시간이 다되니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온다. 타고 왔던 배를 타고 출발한다. 같은 사람들이다. 갑자기 배가 살살 아프더니 배탈이 났다. 화장실이 가고 싶다. 참기가 엄청 힘들고 고통스럽다. 심호흡을 하면서 참고 또 힘주고 참는다. 도착하려면 아직도 30여분은 더 달려야 하는데....... 미치겠다.
다리가 하나 나타난다. 잠시 후에 도 하나의 다리가 나타난다. 정말 힘들었다. 배가 막 선착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내릴 준비를 했다. 질서도 무시하고 양해를 구하고 가장 먼저 배에서 내려 화장실을 찾아 뛰었다. 매표소 화장실을 찾아 급히 들어가 해결했다. 신음 소리가 절로난다. 죽는 줄 알았다. 이렇게 힘들기는 처음이다. 원인을 생각해 보았다. 속내의를 안 입어서, 또는 아침에 산 만두, 또는 사먹은 감자....... 잘 모르겠다.
오후 1시 10분이다. 시원하게 화장실에서 해결하고 나와 아내를 찾았다. 반가웠다. 매표소 건물, 건너편에 세워진 보은사의 2개의 탑이 뿔 같이 솟아있다. 관광서비스 센터 구역이 넓고 잘 조성되어있다. 주차장을 지나간다. 버스를 타려고 걸어 내려간다. 황하명주(黃河明珠)라는 글씨가 새겨진 커다란 대문이 도로에 설치되어있다. 란조우에서 오전에 타고 온 버스를 만났다. 요금은 23위안. 보험료는 없다. 2시간 걸려 란조우 서부터미널에 도착하니 오후 3시 10분이다. 덥다.
여유를 갖고 황하 강변을 걸어간다. 강 건너편 백탑산 아래는 고층빌딩들과 모스크를 비롯한 여러 건물이 보인다. 우리가 걷는 강변 공원에는 수양버들이 심겨져 그늘을 만들어 주고 시민 휴식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영감님들로 이루어진 악대가 그늘에서 연주를 하고 있다. 아코디언과 클라리넷, 그리고 아쟁을 반주로, 할머니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산책길에는 초록색 메론과 노란색 메론을 잘라 팔고 있다. 우리도 하나씩 사서 입에 물었다. 시원하고 맛있다. 황하 모자상이 나온다. 황하는 중국민족의 어머니 젖줄이고, 아이는 한족을 상징한다고 한다. 사람들이 모자상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양피 뗏목을 타는 사람들이 있다. 옛날 황하를 건너다닐 때 사용하던 뗏목이란다. 지금은 관광레저용으로 사람들이 즐기고 있다. 공원 나무 그늘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그 옆에서 물구나무를 서고 묘기를 보여주는 아주머니도 보인다. 란저우 수차원(水車園)나온다. 커다란 물레방아가 보이는데 돌아가지는 않고 멈추어있다. 공원과 강가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즐기고 있다. 흙탕물에 낚시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이 물에 고기가 살 수 있는지 모르겠다. 건너편 백탑 산에는 여러 개의 사찰이 보인다. 공원에는 서유기의 주인공인 손오공, 저팔계, 삼장법사, 사오정 모양이 금빛으로 만들어져있다.
중국식 과일사탕 ‘과일탕후루’ 장사도 보인다. 아이들의 인기 만점 간식이다. 일명 과일꼬지다. 길거리 음식으로 설탕을 불에 녹여 바른 과일열매라는 뜻이다. 탕후루는 과일 종류에 따라 이름이 지어진다. 딸기 탕후루, 사과 탕후루, 바나나 탕후루, 포도 탕후루 등 종류도 다양하다. 백탑산으로 가는 케이블카도 강 위를 건넌다.
란저우에서 유명한 우육면 식당이 있다. 매일 아침이면 거리 곳곳에서 뉴러우멘(牛肉面) 간판이 달린 식당으로 사람들이 줄지어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말로 ‘우육면’ 이라고 부르는 뉴러우멘의 고향이 바로 란저우다. 란저우에 정착한 후이족들이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한 우육면은 어느새 중국을 대표하는 4대 국수 요리로 꼽힌다. 소고기와 무로 깔끔하게 우려낸 국물에 국수를 말고 고추기름과 채 썬 파를 듬뿍 올려 먹는 우육면은 우리나라 소고기 무국처럼 입맛에 잘 맞는다. 이곳에는 양고기 요리도 유명하다. 철판구이로 요리되는 감자구이와 떡 구이도 입맛을 유혹한다. 고춧가루와 향료를 사용한 구이가 구수한 냄새를 풍긴다.
황하에 세운 최초의 다리 중산교를 만났다. 항하가 란저우를 관통하면서 도시를 남북으로 갈라놓았다. 황하철교라고 부르는 중산교가 란저우 남쪽과 북쪽을 이어준다. 1907년 독일에서 건축자재를 들여와 세운 다리로 텐진 항구로 들어온 자재를 란저우로 옮기는 데만 17개월이 소요됐다고 한다. 1909년에 길이 233.33m, 폭 7.5m로 다리가 완성되어 ‘황하에 세워진 첫 번째 다리’라는 타이틀을 차지했다. 이 다리의 건설은 중원과 서북지역의 경제, 문화, 국방력 강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평가받고 있단다.
1954년에 인민폐 60만 위안을 투자해 전면 보수를 단행하면서 본래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2004년 재보수를 하면서 차량통행을 전면 금지했다. 사실상 철교로서의 역사는 막을 내린 것이다. 지금은 란저우의 상징적인 건축물로,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육교 역할을 하고 있다. 중산교를 건너며 바라보는 황하의 물살이 꽤나 빠르다. 다리 위에는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고 있다. 강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멋지다. 강물 위를 달리는 쾌속정, 그리고 찻집, 강 주변에 보이는 고층빌딩들, 그리고 다리, 거기에 강물위에 비치는 우리 그림자도 선명하다.
다리를 건너 백탑산으로 간다. 뜨겁다. 백탑산 입구에 세워진 건축물 바닥에 커다란 붓으로 글씨를 쓰는 인물이 있다. 중국 여행을 하다보면 종종 보는 풍경이다. 바이타산(白塔山)은 란저우 도심의 최고 전망대다. 황하가 동서로 관통하는 란저우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산 정상에 황하를 바라보고 있는 백탑사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백탑 (白塔)사는 원나라 시절 칭기즈칸을 알현하고 돌아오던 라마승이 이곳에서 병사하여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이라고 한다. 현존하는 백탑은 명나라 대종 때 (1450년~1456년) 중건되었다고 한다. 8각형의 7층이며, 전체 높이는 17m이다. 하단부의 티벳 양식과 상단부의 중국 양식이 절묘하게 결합된 탑으로 전체적인 조형미가 뛰어나 고탑 중 걸작으로 꼽힌다.
원래는 이름처럼 하얀색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백회가 떨어져 나가 황토색으로 보인다. 여행자들은 탑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란저우 전경을 사진 찍기 위해서 경사진 계단을 오른다. 한 낯의 무더위로 조금 오르다 내려왔다. 오르다 내려다 본 중산교와 강물, 그리고 고층빌딩들이 시원하게 들어온다. 아래에는 산의 전체적인 지도가 흰 돌로 잘 만들어져 있다. 다시 중산교를 건너온다. 중산철교 100주년 기념비가 있다. 2009년이 100년이란다. 쇠기둥 기념물도 있다. 연을 날리는 사람도 보인다. 느리게 춤을 추는, 체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숙소로 향해 시내로 들어섰다. 란저우 공관이 있는 그 옆에는 붉은색 십자가가 선명한 교회당 건물도 있다. 공관에는 중국 국기, 오성홍기가 펄럭인다.
백화점이 있는 복잡한 상가 광장을 지나 숙소 부근으로 돌아왔다. 어제 먹던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는다. 국물과 오이무침이 입맛에 맞다. 속이 편하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찾았다. 다시 화장실을 다녀왔다. 이제 둔황으로 이동하기 위해 란저우 역으로 가야한다. 택시(11위안 1870원)를 탔다. 란저우 기차역(兰州火车站)에 도착하니 역 건물 가운데 붙어있는 시계가 오후 6시를 가리키고 있다. 그 밑에는 작은 말 동상이 있다. 광장은 넓은 주차장이 되어 차들이 가득하다. 기차표를 바꾸기 위해 역으로 열심히 걸어간다.
그런데 기차표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단다. 표 검사가 철저했다. A4 용지 예약확인서를 보여주니 통과가 되지 않는다. 한글로 된 확인서를 알아보지 못했다. 말을 할 줄 모르니 답답하다. 우리 때문에 줄이 막히고 말았다. 친절한 역무원 아저씨 나타나서 핸드폰 번역기로 우리에게 말을 해준다. 그래도 말이 통하지 않으니 우리를 데리고 기차표 파는 곳으로 데리고 간다. 예약서를 보여주니 여권을 달란다. 표를 쉽게 끊어주어 모두 함께 웃었다. 알고 보니 먼저 우리는 역으로 들어가지 말고, 티켓팅 하는 곳을 찾아 표를 바꾼 후에 들어가야 했다. 무식하니 용감하여 혼란스럽게 하고 말았다. 그래도 친절한 역무원 아저씨 덕분에 쉽게 통과하고 대기실까지 안내되어 검표하는 직원에게 까지 부탁을 받는 호의를 받게 되었다.
대기실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가득하다. 맨 뒤로 가서 아내와 번갈아 가면서 화장실을 이용해 세면을 했다. 밤새 기차에서 자면서 가야한다. 기다리던 기차가 연착된다고 전광판에 뜬다. 우리 기차는 오후 19:00가 출발시간인데 처음에는 19;40으로 바뀌었다. 그 후에는 19:55, 20;10으로 자꾸 시간이 연장된다. 바뀔 때마다 역무원 총각이 들어와 안내를 해 준다. 드디어 20시 10분, 기차에 오르게 되었다. 우리는 7호차 16번 상, 하. 침대다. 생각보다 깨끗하다. 기차 타는 곳까지 역무원이 우리를 데리고 가서 안내해주고 태워준다. 고맙다. 이렇게 무사히 기차를 타고 밤을 달려간다. 재미있고 힘든 하루다. 첫날부터 고생, 적응이 되어간다. 아내는 아래서, 나는 3층에서 누웠다. 내일 아침 8시 50분에 둔황 역에 도착 예정이다. 역무원 아가씨가 나타나더니 카드를 주고 기차표를 바꾸어간다. 에어컨으로 시원하고 편하게 흔들리는 기차에서 잠이 들었다.
2018년 7월 29일 경비-만두 2개 3, 택시비 33, 버스비 96, 쾌속정 250,
병령사 입장료 100감자 2개 8, 물 3, 멜론 조각 6,
저녁식사 35, 기차요금 506
계 1040*170= 176,800원
누계23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