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뜨1」 로또 동행복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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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여섯시 반 송갑수는 자리에서 일어나자 마자 간단히 세수하고 양치한 후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였다. 시장에가서 필요한 재료를 사기 위해서다. 밀가루와 계란, 소금, 간장 나무젓가락 휴지 등은 식재료상이 일주일에 두 번 다녀가면서 공급하지만 생굴이나 바지락, 대파같은 재료는 시장에서 바로 구입하고 있다. 요 며칠 눈이 오고 날씨가 무척 추워 옷을 두둑이 챙겨 입어야 한다. 간밤에 늦게 잠든 아내 오영순은 아직 일어날 생각이 없는 듯 끙하고 돌아 눕는다. 아내 오영순은 송갑수보다 세 살 아래인데 동글 동글하고 괜찮은 편이다. 송갑수가 작년 여름 연신내 시장 근처 길가에 차린 칼국수집은 그간 그럭저럭 손님이 늘어 요지음같은 지독한 코로나의 와중에도 하루 삼십만원 정도의 매상이 오른다. 그러면 재료비 빼고 집세와 공과금 제하고 월 삼백은 손에 쥘 수 있다. 오영순과 둘이 아침 아홉 시 반부터 저녁 여덟 시 반까지 하루 열 한 시간 일한 대가치고는 미흡하지만 당장 큰돈이 필요치 않은 상태에서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송갑수는 재작년 말 삼십 년 간의 경찰 생활을 마무리 하고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다. 충청도 시골에서 고졸로 서울로 올라와 이일 저일 하다가 군대에 다녀온 뒤 한 일년 여 경찰직 시험을 준비한 후 다행히 합격하여 순경부터 시작한 경찰 생활을 재작년 응암동 파출소 소장을 끝으로 30년간의 제복 생활을 마무리 짓게 된 것이다. 이제 나이 육십인 그는 아직 건강한 편이고 나라에서 나오는 연금 200 여 만원으로 넉넉지는 않으나 당장 생활에 어려움은 없지만 허구 헌날 아침밥 먹고 배낭 둘러메고 불광동 독바위역 근처 쪽두리봉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일과도 한 육 개월 해보니 지루한 것이다. 그래서 작년 여름 오영순과 상의 끝에 시작한 것이 칼국수 집 인 것이다. 송갑수는 평소에도 음식 만드는데 취미가 있어 탕수육이며 팔보채 같은 중국 요리도 만들고 매운탕도 잘 끓이고 했던 것으로 칼국수도 몇 번 시행착오 끝에 먹을 수 있을 만큼 잘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송갑수에게는 시집간 딸 하나와 군대 갔다 와서 대학에 복학한 아들 하나가 있다. 딸 미경에게는 여섯 살 아들 하나와 네살박이 딸 아이 하나가 있고 사위 최익선은 보건전문대를 나오고 대형 병원에서 엑스레이 기사로 일고 있는데 연봉 사천만 남짓이다. 몇 년 전 홀로된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아파트는 방 세 개로 하나는 미경 부부, 하나는 시어머니와 딸아이 그리고 아들 녀석은 작은 골방 하나를 쓰고 있다. 아파트는 지은 지 20여 년으로 좀 낡았지만 25평 방 세 개로 다섯 식구가 빠듯이 지낼 수 있다. 그런데 딸 미경 부부에게 최근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 그간 전세로 살고 있던 집 주인이 최근 주택가 급등으로 전세금을 이천만원이나 올려 달라고 하니 갑자기 어디서 이천만뭔을 구한 말인가? 그간 남편의 월급을 쪼개 근근히 들어 놓은 적금이 있지만 아직 기한이 일년 넘게 남아 있는데 중도 해약하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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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갑수 부부는 하루 일이 끝나자 간단히 떡 만두로 저녁을 대신하고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향했다. 집은 응암동으로 응암동 파출소장을 지낼 때 마련한 28평 빌라다. 연신내역에서 전철로 두 정거 응암역 근처에 있다. 오늘은 연신내 전철역을 지나 로데오 거리 근처 월드 24시 연신내점에 들렀다. 다른게 아니고 로또복권을 사기 위해서다. 이 가게는 가게 밖에 자기 가게에서 이번 944회 추첨에서 2들 당첨이 되었고 역대로 1등 8번 2등 43번으로 소문난 가게라는 선전 문구를 창가에 걸어 놨다. 사실 송갑수는 로또에 대하여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어 평소 로또와는 거리가 멀게 살아온 사람이지만 얼마 전부터 아내 오영순이 로또에 관심을 보이면서 로또를 사보자고 꼬득이는 바람에 이번에 사러 가게 된 것이다. 가게에 들어가 오 천원을 꺼내 들고 로또복권을 달라고 하니 가게주인은 로또 기계 앞에서 오 천원을 입력하고 무슨 영수증같은 쪽지에 여러 가지 번호가 적힌 로또복권을 내민다. 종이에는 다음과 같은 번호가 적혀있는데 무슨 간첩 들 암호 같기도 하고 그헣다.
A 04 12 25 30 35 44
B 03 08 18 20 24 26
C 05 07 12 35 36 44
D 03 09 17 36 39 45
E 02 07 14 18 29 45
송갑수는 한번 훑어본 후 오영순에게 내민다. 오영순은 무슨 귀중품이나 되는 양 찬찬히 번호를 살펴본 후 빽속에 깊이 집어 넣는다. 그날 밤 송갑수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오영순은 연속극을 계속 보고 있는 모양이다. 꿈속에서 방송국 기자들이 집으로 찾아 왔다. 송갑수가 어리 둥절 하고 있는 데 이번 로또 복권에 1등 당첨된 걸 알고 왔다며 소감을 묻는다. 송갑수가 웬일이냐며 정말이냐고 되 묻고 그러면 당첨금이 얼마냐고 물으니 무려 22여억원 이란다. 22억원이라니... 생전 이렇게 큰돈은 쥐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주위가 시끌 벅적 하면서 여러 사람이 나타나는데 시골에 사는 먼 친척 형이 보인다. 나이 먹은 형과 형수가 같이 나나탄 것이다. 그러더니 이번에 로또에 당첨 되었으니 친척들을 위헤서 좋은 일을 해야할 게 아니냐며 문중에 1억원을 기부하라고 한다. 또 한편에서는 무슨 장애인 복지 재단에서 왔다며 기부금을 내라고 한다. 송갑수가 졸업한 시골 고등학교에서도 교장선생이 직접 나타나 학생들에게 줄 장학기금에 출연하라고 한다. 옆에 있던 오영순은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면서 하는 말이 이 기회에 지금 세 들어 있는 가게 건물을 사자고 한다. 보증금과 은행 융자를 안고 사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딸 미경도 나타나 전세금 이천 만원만 보태달라고 한다. 송갑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어 잠시 멍하니 있는데 이번에는 사복입은 경찰관 두명이 나타나 사기혐의로 고발이 들어 와서 조사할 게 있으니 은평 경찰서로 가자면서 팔을 잡아끈다. 당황한 송갑수가 어어하면서 우물쭈물 하다가 문득 깨어 보니 모든 게 꿈이었다. 등어리에 온통 식은 땀이 배어있다. 원~ 꿈치곤 고약하네...꿈에라도 로또 당첨된 건 좋은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송갑수가 혼자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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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어느덧 토요일이 되었다.
토요일 오후 8시 45분 MBC 텔레비전에서 로또 당첨자 추첨이 생중계된다.
드디어 추첨 결과가 나왔다. 1등 당첨 번호는 3, 8, 17, 20, 27, 35 그리고 보녀스 번호가 26이다. 송갑수는 자기 복권표와 찬찬히 대조해 보았다. 맞는 번호는 2, 8, 20, 그리고 26이다. 그런데 보너스 번호 26은 2등에게만 해당되는 숫자라서 송갑수는 여섯 개 중 단지 세 개만 맞쳐 결국 5등 5000원을 받게 되었다. 1등 당첨 확률은 8,145,060분의 1인데 이건 마른 하늘에 벼락 맞아 죽기보다 힘든 확률이라고 한다. 2등은 1,357,510 분의 1 , 3등은 35,724분의 1, 4등은 733분의 1, 5등도 45분의 1이란다. 사실 5등 5,000원을 현금으로 받지 않고 없는 셈 치고 다시 로또 복권을 구입할까도 했는데 5등 맞치기도 2% 확률밖에 안되니 다시 복권을 사 봤자 날릴 게 거의 뻔한 사실이다. 다음 월요일 농협 은행에 들러 복권을 현금으로 찾아 왔다. 은행 문을 나서니 앞 거리에서 곶감을 파는 아주머니가 보인다. 얼마냐니까 열개에 오천원 이란다. 송삽수는 곶감을 사들고 가게로 돌아왔다. 오영순과 곶감을 먹으면서 송갑수는 그까짓 것 일등 아니길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딸 미경은 우선 집주인과 어렵사리 타협하여 전세금은 천 오백만 올리기로 하고 최익선이 병원 상조회에서 천만 원을 저리로 융자 받고 가지고 있는 이백을 톡톡 털어도 삼백이 모자란다고 하소연을 하니 송갑수는 마냥 모른 체 할 수 없어서 한 달간 일 안한 셈 치고 그간 모아 놨던 삼백을 딸아이에게 전했다.
아들 민준은 이번 학기부터 장학금을 받게 되어 등록급 전액 면제라고 알려왔다. 그리고 민준은 과외 아르바이트로 제 용돈은 제가 벌어 쓴다. 이제 다시 평범한 일상이 반복되고 이게 어쩌면 가장 행복한 나날일지 모른다고 송갑수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후로 송갑수는 로또는 두 번 다시 쳐다보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