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한 "저녁"이라는 연극을 보러 갔다.
1시간 40여분 정도의 시간은 매우 길었고, 나는 자리에 앉아 있기
불편했다. 넘쳐나는 피와 폭력, 귀에 거슬리는 기괴한 굉음, 인형같은
배우의 움직임 어느 하나도 나를 편하게 하지 않는 그런 것들만이
모여 있었다. 두 여자와 아버지, 어머니
(팜플렛을 보니까 원작은 남자라네. 왜 남자를 여자로 바꾸었을까?)
두 여자는 한 여자의 분열된 내면을 각각 보여주는 듯 싶었다.
연극 마지막에 둘이 합쳐지면서 하나의 인간으로 변하는 모습에서,
둘의 내면의 합치가 아닌가 싶었다.
흰 옷을 입은 여자(그녀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폭력을 이해하려 하며,
모두가 피해자라는 주장을 한다.)와 검은 옷을 입은 여자(그녀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극도의 반감을 품고 있다.) 자식에게 모든 것을 걸었다는 어머니의
진부한 하소연과 외로움을 주장하며 자식들을 구타하는 아버지의 진부한
말이 계속되면서 나는 약간의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배우들도 짜증이
나기 시작했는지 이제 죽음의 향연을 벌이기 시작한다. 계속 쏟아지는
피는 아이들의 옷을 붉게 물들이고, 정사와중에 어머니를 살해하고, 아버지
를 죽인다. 둘은 다시 춤을 추고 무대로 사라진다....
내용은 간단하다... 그리고 느낌도 간단하다...
20여분간 충격적인 전라의 모습으로 두 배우는 무대를 활보한다. 그들이
활보하는 만큼 내 마음은 답답해진다. 그들은 자유로와지는데 왜 나는
괴로워지는가... 연출자는 위 연극을 아버지의 폭력과 어머니의 하소연이
의미하는 가부장제에 대한 반란의 춤으로 나타내려 했다는 느낌이 든다.
위 작품에서는 이미지가 난무하고 있고, 배우들의 움직임 속에 의미를
부여하려 했던 것 같으나, 이미지에 둔감한 나로서는 그것에 대한 의미를
잘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자상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하소연이 폭력적인
부모들의 그것보다 더 우리에게 괴로운 것일 텐데..... 극에서는 부모들의
폭력성이 지나치게 부각되어 있어서 마음속에 편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내 옆자리에는 아주머니들이 앉아 계셨다. 그 아주머니들은 여성들의 전라
장면부터는 "미친 년"이라던지 "말세야"등등의 말을 내 귀에 들리게 함으로써
그들의 분노를 표시했다. 왜 그렇게 아주머니들이 분노했을까?
단지 여자가 벗고 나온다는 그것 때문에? 아니면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인다는
것 때문에?
잘 알 수 없지만, 이 연극을 보면서 불편해 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처음에는 매우 불편하고 짜증이 났으나 차츰 짜증이
사라졌다. 아주머니들의 짜증이 더해갈수록 나의 짜증이 사라지니 어인
일인가..
아주머니들은 자식들에 대한 기대를 제발 접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아주머니들은
자식들의 출세가 그들의 힘인 양 설쳐대는 아주머니들의 시대가 갔으면
정말 좋겠다. 그 기대라는 것은 오로지 외면적인 직장과 연봉이라는
두 단어 밖에 없다. 나는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하는 대화 가운데 생산적인
대화를 들어본 적이 없다.
왜 이 연극을 보면서 왜 아주머니들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직장과 연봉으로 서로의 자식들을 평가하는 그런 시대라면 제발
우리 세대가 말세가 되기를 희망한다.
연극을 보고 나오니 기획자인 듯한 분이, 아주머니들에게 둘러싸여
열심히 설명하는 것이 내 귀에 언뜻 들려왔다.
"벗는 것이 이 연극의 핵심이 아니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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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선물
연극 "저녁"을 보고
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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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2.06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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