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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강화인 저도 모르는 곳이 있더군요...ㅎㅎ
강화도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석모도 라는 작은 섬이다.
작년 겨울의 끝에 다녀온 석모도, 주먹밥 한개, 생수 한병 가지고 버스를 타고 배를 타고 다녀왔었다.
2시간 정도의 버스여행, 서울시내를 벗어나고 김포를 벗어나니 완전 시골길. 멀미가 날 정도로 덜컹거리는 오래된 버스여행이 나름 신선했다.
그리고는 10분 남짓 배를 타고 석모도로 들어서 다시 버스를 타고 보문사로 향했다. 오르막을 오르고 수많은 계단을 올라 중간쯤 섰을때 보였던
바다풍경. 해가 기울어져 가는 그 풍경이 추운겨울 가슴에 따듯함을 주었다. 그땐 왜 그랬을까? 그렇게 찾아간 강화 석모도에서는 오로지 보문사
만 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 후로 강화도에 대한 그리움은 계속 되었다. 그 중심엔 석모도가 있었고, 그보다 더욱 더 내 마음을 사로잡았
던건 버스를 타고 스쳐지났던 풍경들이었다.
강화도로 여행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이것저것 알아보았는데, 생각보다 좋은곳이 너무 많았다. 어릴적 국사시간에 배웠던 초지진, 전등사는 물론,
농촌체험마을, 어촌체험마을 등 나의 관심을 끌만한 것들이 강화도에는 많아도 너무 많다.
게다가! 최근에는 제주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 처럼 강화도 '나들길' 이라는 걷기 코스도 생겨서 도보여행을 할수도 있다니!
어쩜 이렇게 매력적일까! 그 많은 곳들을 1박2일로정리해서 다녀오려니 코스를 정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면서
시간관계상 걷기코스를 포기하고, 석모도를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래도 그리웠던 그곳은 한번 가보자! 싶어서 석모도를 가기로 했다.
첫날은 친구의 도움으로 차를 가지고 여행을 했고, 둘째날은 버스를 타고 여행을 했다. 준비를 어설프게 해서 갔던길을 두번을 왔다갔다도 했다.
이동경로를 수정하고, 가보고 싶었으나 못 가본 곳은 간략하게 소개를 넣어서 만들어본 강화도 여행 1박2일!!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일상탈출 1박2일! 강화도로 떠나는 여행! 개봉박두!!
"강화도여행" 1박2일 추천일정
첫째날, 고려궁지-성공회성당-용흥궁-강화역사관-덕진진-초지진-동검도
둘째날, 갯벌체험센타 - 석모도 (민머루해수욕장, 보문사)
강화도를 연결하는 다리가 두개 있다.
초지대교와 강화대교, 초지대교는 강화의 밑쪽에서 시작을 해서 해안선을 타고 동검도-동막해수욕장-갯벌체험센터-외포리 쪽으로 가기에 좋고
강화대교는 강화시내와 가까워서 시내를 중심으로 돌아보고 석모도로 들어가는 외포리로 가도 좋고, 밑으로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을 둘러보고
동검도쪽으로 가도 좋다.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코스는 강화대교를 시작으로 하는 코스!
대중교통을 이용하더라도 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고려궁지. 용흥궁. 성공회성당. 강화역사관이 있기에 쉽게 시작할수 있다.
강화도는 결코 만만한 여행지는 아니다. 풍경만을 즐기기엔 구석구석 산재해 있는 역사의 흔적때문에 역사공부를 하지 않을수가 없다.
강화도는 역사의 중심에 깊이 놓여있던 곳이고, 어찌 보면 시간이 멈춘듯 그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니산에는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한 첨성단이 있고, 많은 전쟁의 격전지 였으며, 고려의 수도가 되기도 했던 곳이다. 그런 덕분에 역사공부를
하러 학생들이 단체로 여행을오기도 하고, 가족단위로 여행을 하기에도 참 좋은 곳이 강화도다.
고려궁지, 강화역사관,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을 모두 둘러볼꺼라면 패키지 입장권을 사는 것이 조금 저렴하다.
사적 제133호로 지정되었다. 1232년(고려 고종 19) 몽골군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하여 왕도를 강화로 옮긴 후 1270년 (원종 11) 화의를 맺고 개성(開城)으로 환도할 때까지 39년 동안의 왕궁터이다. 이 자리에는 당시의 건물 기단(基壇)과 3단으로 된 돌계단이 남아 있었으나 후에 강화유수부(江華留守府) 건물이 세워졌으며, 1976년에는 3문의 출입문을 세우 고, 돌담을 돌려 국방유적으로 정화하였다. [자료출처 : 네이버백과사전] |
처음으로 갈 곳은 고려궁지. 학창시절 국사시간에 배운것도 같은(?) 곳이다. 다른곳은 몰라도 고려궁지는 꼭 가보고 싶었다. 나의 예상대로 라면
그래도 고려왕이 39년간 살았던 곳이니 궁의 모습은 갖추고 있겠지 싶었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빚나가고, 고려궁지에는 현재 유수부 동헌과
이방청, 외규장각, 고려동종이 남아있다. 허전한 마음이 컸지만 조금만 가면 만날수 있는 용흥궁과 성공회 성당에서 위로를 받을 생각으로 용흥
궁을 찾아갔다. 용흥궁은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19세까지 살던집이다. 어린학생들은 고려궁지와 용흥궁에서 공부하기 바쁜데, 난 큰 감흥이 없다.
나들길을 알려주는 화살표를 따라서 성공회 강화성당으로 이동했다.
1981년 7월 16일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11호로 지정되었다가 2001년 1월 4일 사적 제424호로 변경되었다. ‘성베드로와 바울로성당’이라고도 한다. 1896년(고종 33) 강화에서 처음으로 한국인이 세례를 받은 것을 계기로 1900년 11월 15일 이곳 강화에 한국 최초의 성당을 세우게 되었다. 건립자는 한국 성공회 초대 주교인 존 코르페(C. John Corfe:한국명 고요 한) 이다. 정면 4칸, 측면 10칸 규모의 2층 건물로, 목골조를 사용하고 벽돌을 쌓아올린 기와집이며, 2층은 바닥이 없는 통층 구조이다. 로마의 바실리카 양식을 본떠 지은 것으로, 외형상으로는 불교 사찰 분위기를 풍긴다. [자료출처 : 네이버백과사전] |
성공회성당의 입구로 들어서니 막 예배를 마친듯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살며시 안으로 들어가보니, 이곳이 성당이 맞나 싶은 건물이 나타난다.
정말 십자가만 아니라면 성당이 아닌 사찰이라고 생각을 했을듯. 여행을 할때 어렵지 않게 만날수 있는 사찰을 보는 것과는 다르게 이런 건물이
성당이라고 생각하니 느낌이 정말 새롭다. 그 시절 이곳에서 세례를 받고 예배를 드렸을 조상들을의 모습이 상상이 되지를 않는다.
뒤편으로는 사택이라고 생각되는 건물이 있고, 성당 본건물 말고 조금 떨어진 곳에 건물이 하나 있고, 고려궁지 가는 입구도 새로운 건물의 성당
이 자리하고 있다. 강화도 시내를 둘러보니 제법 큰 규모의 교회도 있고 전등사, 보문사 같은 유명사찰과, 강화성당까지 있는걸 보면 오래전부터
강화도 사람들은 타인의 종교에 대해 너그러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물론, 그 과정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테지만, 성당이 이렇게 잘
보존되어 있는것이 너무 감사하다. 종교는 다르지만 기회가 된다면 이곳에서 미사를 한번 보고싶은 마음이다.
국난을 극복한 강인한 민족의 저력과 슬기로운 문화를 이어받은 강화는 한반도 역사문화의 축소판으로서 민족문화의 창달과 민족항쟁의 위업을 선양하고 호국정신의 함양을 위하여 1984년부터 5개년 사업으로 16억 7천만원을 투입하여 1988년 9월 강화역사관을 개관하였으며, 2001년 2월에는 기존 유물을 재배치하여 역사관을 새롭게 단장하여 개관하였습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총건평 267평 건물로, 홍이포 1문과 소포 2문 등 대포 3문을 비롯하여 철재 종류가 38종, 석재 종류가 69종,목재와 지기 종류가 49종, 기타 문구 종류와 의상 등 총169점의 유물들이 보존 전시되어 있다. [자료출처 : 네이버백과사전] |
강화도의 역사를 한눈에 볼수 있는 강화역사관!
사실 강화도 여행의 시작은 강화역사관에서 하는것이 좋다. 강화도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둘러보는건 모르고 보는 것과는 또다른 느낌일테니
말이다. 하지만! 강화역사관을 못간다면 강화역사관 홈페이지 http://ghm.incheon.go.kr/ 에서 가상체험을 해보는 것도 좋다!
강화역사관을 봤다면 광성보로 고고! 강화역사관에서부터 나들길 2코스가 시작되는데, 걷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다음 코스인 광성보까지는
버스나 차로 이동하는게 좋다.
사적 제 227호.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로, 강화 12진보의 하나이다.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도로 천도 한 후에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이다. 조선시대 광해군 때 헐어진 데를 다시 고쳐 쌓았으며, 1658년(효종 9)에 강화유수 서원이 광성보를 설치하였다. 그 후 숙종 때(1679)에 이르러 완전한 석성(石城)으로 축조하였다. 1871년 신미양요때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이다. 그 해 통상을 요구 하며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오는 미국 극동함대를 초지진,덕진진,덕포진 등의 포대에서 일제사격을 가하여 물리쳤다. 그러나 4월 23일 미국 해병대가 초지진에 상륙하고, 24일에는 덕진진을 점령한 뒤, 여세를 몰아 광성보로 쳐들어왔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열세한 무기로 분전하다가 포로 되기를 거부, 몇 명의 중상자를 제외하고 전원이 순국하였다. [자료출처 : 네이버백과사전] |
광성보는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였다. 하지만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일이 없는 지금은 산책하기에 좋은 산책로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역사적 배경을 잊지말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산책을 해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안으로 들어가면 잘 꾸며놓은 정원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정돈된 공간과 멋진 숲길이 나온다. 조용히 걸어서 끝까지 다녀와도 좋은 광성보. 우리의 힘겨운역사, 승리의역사를 다시 돌아볼수 있는 시간을 가질수
있는 곳이다.
강화 12진보(鎭堡)의 하나이며, 덕진진은 덕포진과 더불어 해협의 관문을 지키는 강화도 제1의 포대였다. 덕진진은 본디 수영(水營)에 속하여 첨사(僉使)를 두고 있었는데, 1666년(현종 7년)에 강화유수 서필원이 임금에게 청하여 첨사를 경기 김포시 덕포로 옮기고 이곳에 별장을 두었다. 1677(숙종 3년)에는 유수 허질이 임금에게 청하여 만호(萬戶)로 승격시켰다. 1874년(고종 11년)에 축조한 남장포대는 15문의 포대가 남아 있다. 가 프랑스군을 격파하였고, 1871년 신미양요 때는 미국극동함대와 이곳에서 치열한 포격전을 벌였다. 그러나 초지진(草芝鎭) 에 상륙한 미국해병대에 의하여 점령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이때 성첩(城堞)과 문루(門樓)가 모두 파괴되고, 문루터만 남게 되었다. 1976년에 문루를 다시 세우고 돈대(墩臺)를 보수하였으며 남장 포대도 개축하였다. [자료출처 : 네이버백과사전] |
내가 강화도를 간 날은 정말 하늘이 환상적인 날이었다. 아침에만 해도 비바람이 불더니 어느새 완연한 가을하늘을 보여줬던 날.
덕진진 에 다다르니 비로서 하늘과 함께 바다도 눈에 들어왔다. 덕진진은 강화도 해협을 지키는 요충지였다고 하는데 위치나 모양새를 보면 그곳
의 중요성을 알겠다. 가을빛이 완연한 나무들, 강화도의 가을이 새삼스레 아름답게 느껴졌던 곳이 덕진진이다.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는데,
작은 연못과 초지진, 광성보에 비해 한적하기에 조용히 둘러보기에 아주 좋다.
1656년(효종 7) 강화유수 홍중보가 처음 설치하였다. 66년(현종 7) 병마만호(兵馬萬戶)를 두었다가 1763년(영조 39)에 첨사(僉使)로 승격시켰는데 이 때의 병력은 병마첨절별사(兵馬僉節別使) 1명, 군관 11명, 사병 98명, 돈군(墩軍) 18명, 목자(牧子) 210명, 진선(鎭船) 3척과 무기 다수가 있었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이 곳에서 프랑스함대의 로즈 소장 과 싸웠으며, 1871년(고종 8)에는 미국 아시아함대의 로저스중장이 이 곳에 침입하였을 때 필사의 방어전을 전개하다 함락된 바 있었고, 1875년(고종 12)에는 일본 군함 운요호[雲揚號]와도 이 곳에서 교전하였다. 이 초지진은 모두 허물어져 돈(墩)의 터와 성의 기초만 남아 있었던 것을 1973년 초지돈만 복원하였다. 돈에는 3곳의 포좌 (砲座)가 있고 총좌(銃座)가 100여 곳 있다. 성은 높이 4m 정도에 장축이 100m쯤 되는 타원형의 돈이다. 돈 안에는 조선 말의 대포 1문이 포각 속에 전시되어 있는데, 포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집 홍살로 되어 있으며, 대포의 길이는 2.32m, 입지름 40cm이다. [자료출처 : 네이버백과사전] |
초지대교를 건너면 바로 만날수 있는 초지진, 아마도 우리가 알고있는 강화도의 군사시설중에 가장 많이 들어본 것이 아닐까 싶다.
아름드리 한그루의 나무가 푸른하늘과 어우러져서 멋진풍경을 보여준다. 하지만 초지진은 고종 13년 강압에 의해 강화도 조약을 맺어 인천, 원산,
부산항을 개항하게 되고 또한 우리나라의 주권을 상실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픈 역사의 상처는 노송의 포탄흔적에서도 볼수 있다.
고려궁지를 시작해 강화역사관,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 까지 승리와 패배를 맛본 강화도의 역사를 돌아봤으니 이제는 본격적인
강화도의 아름다움을 느낄차례! 동검도, 갯벌체험센터, 아름다운 석모도까지 강화도의 풍경을 마음껏 여행해보자.
면적 1.61㎢, 해안선길이 6.95㎞, 최고점 106m이다. 1999년 12월 현재 79세대에 194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영종도 에서 북쪽으로 5㎞ 정도 떨어져 있다. 1696년 간행된 《강도지(江都誌)》에 "동검도(東檢島)는 신도의 북쪽에 있으며, 본부 (강화부)의 고양(羔羊)을 기르고 있고, 거민(居民)은 27호(戶)"라고 기록되어 있다. 1914년 조선총독부가 당시 조선의 행 정구역을 개편할 때 동검리로 편제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는 강화도와 제방도로로 이어져 거의 육지화되었으며, 연안에 넓게 펼쳐진 개펄에서 가리맛조개·바지락 등이 많이 잡힌다 [자료출처 : 네이버백과사전] |
<사진출처: 동검리마을 홈페이지 >
동검도라는 섬이 있다는 것은 이번 강화도 여행을 준비하면서 알게되었다. 섬인줄만 알고 어디서 배를 타야 하지? 하면서 찾아보니, 육지와
연결이 되어버린 섬이 아닌 섬이었다. 그렇게 유명한 곳은 아니었지만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사진,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곳이다. 아마 꽁꽁 숨겨두고 말해주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딱 그랬으니까. 조금 서두르면 좋았을텐데 너무 늦게 가는 바람에
해가 졌다. 그렇다고 동검도가 영 생소한 곳도 아니다. 거꾸로된집은 티비에도 여러번 나왔고 멋진 풍경속에 숙박시설도 많이 있다.
동검마을은 어촌체험마을로 갯벌 체험을 할수 있고, 망둥어 낚시, 갯벌장어잡기 대회도 한다. 동검도에서 하룻밤을묵고, 갯벌체험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동검도 어촌체험마을 홈페이지 http://donggeom.seantour.org
동검도의 또다른 매력은, 바로 일몰! 강화도는 일몰로 유명한 곳이 제법 많다. 석모도, 장화리, 이곳 동검도.
일몰 포인트를 특별히 찾아 다니기 보다는 그냥 차를 타고 가다가 적절한 곳에서 일몰을 봤다. 같은 일몰이어도 어디서 보는 곳인가에 따라
그 느낌은 천차만별. 동검도의 일몰은 작은 섬의 풍경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 잔잔하게 마음을 두드리며 지는 해를 바라보며 마음이 따뜻하다.
강화 갯벌센터 http://tidalflat.ganghwa.incheon.kr/
강화 화도면 여차리에 있는 강화 갯벌센터
갯벌센터를 건립하여 갯벌에 대한 자료를 홍보하고 체험할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갯벌의 희소가치와 생태적 가치를 살려 국내
외 관광객 대상의 환경친화적 관광모델 수립 갯벌 인근 주민들의 건강한 삶과 경제적 안정에 기여할 목적으로 만들어 졌다.
갯벌체험, 철새탐조, 농사체험 및 실내에서 할수 있는 조각목공예 체험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길수 있다.
세계 5대 갯벌에 속하는 우리나라 서해 갯벌의 중요성을 보고 느끼고, 배울수 있는 유익한 여행지로. 강력추천.
<사진출처: 갯벌센터 홈페이지>
강화터미널에서 1시간 간격으로 있는 외포리행 버스를 타면 선착장에서 석모도로 가는 배를 탈수 있다.
눈앞에 섬이 보일정도의 가까운 거리 10분 정도 배를타면 도착할수 있다. 석모도로 가는 배를 타면 새우깡을 기다리는 갈매기들이 뒤따른다.
던져주기 무섭게 날아와서 입에 물고 가는 갈매기는 너무나 익숙한듯, 가짜새우에 열광한다.
배에서 내리면 30분간격으로 있는 버스를 타고 민머루 해수욕장, 보문사 등을 갈수 있다. 석모도는 많은 이들이 찾는 섬이기에 차량의 이동도
상당히 많다. 강화도로 나가면서 보니 배를 기다리는 차들이 길게 줄을 서서 산하나를 휘감고 있을 지경이다. 다행이 버스는 그 옆길을 유유히
오갈수 있기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버스도 자주 운행을 하는 편이고, 무엇보다 자전거를 타기에 좋은 곳이다. 전화를 하면 자전거를 가지고
온다. 적당히 타다가 연락을 하면 그곳까지 다시 와서 자전거를 수거해가는 형식인데. 참 마음에 드는 방법이다.
-버스를 타고 민머루해수욕장 입구에서 내려서 자전거를 불러 타고 민머루해수욕장을 둘러보고 보문사까지 자전거로 이동하는 코스가 좋다-
민머루 해수욕장은 석모도에 있는 유일한 해수욕장이다. 물이 찼을땐 해수욕을 즐길수 있고, 물이 빠지면 갯벌 체험장으로 이용할수 있다.
내가 갔을땐 마침 물이 빠졌다가 들어오는 시간. 많은 이들이 갯벌에 나가 조개를 캐고, 게를 잡는 풍경을 볼수 있었다. 해변가에 앉아서
그 광경을 눈으로 보고 있다보니 어느새 바닷물이 바로 발 앞에까지 들어왔다. 많은 이들이 석모도를 찾는 이유를 비로소 알게되었다.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 629번지 낙가산에 있는 사찰. 강화도 서쪽의 석모도에 있다. 양양낙산사와 금산보리암과 함께 우리나 라 3대 해상 관음 기도도량이다.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에 회정대사가 금강산에서 수행하다가 이 곳에 와서 절을 창건 하였는데, 관세음보살이 상주한다는 산의 이름을 따서 산의 이름을 낙가산이라고 하였고,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의 원 력이 광대무변함을 상징하여 절의 이름을 보문사라고 하였다. <자료출처: 보문사 홈페이지> |
울긋불긋 가을의 석모도는 화려하다. 민머루해수욕장에서 보문사로 가는 길은 벌써 추수가 끝난 들판이 가을이 깊어졌음을 보여준다.
석모도는 유명한 여행지가 많은 섬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민머루해수욕장과, 보문사만 보고 여행을 오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그랬다.
두 곳만 보아도 석모도 여행은 만족스러웠다. 보문사는 단풍구경을 온 사람들까지 합세해서 인산인해를 이룬다. 작년 겨울 텅비어 움직인
버스가 이번엔 꽉꽉 차서 간다. 작년에 왔을때 보문사의 유명한 맷돌을 찾는다고 한참을 헤맸었다. 결국 맷돌을 못찾고 돌아왔는데.
나중에 다녀온 사진을 보니 맷돌이 찍혀 있었던 어이없었던 기억이 있다. ㅋㅋ 보문사 에서 수많은 계단을 올라가면 산 중턱에 마애석불좌상
이 있다. 계단을 보고 포기할까도 생각했는데, 일단 올라서니 계단에서 바라보는 서해의 풍경이 정말 멋지다. 보문사는 가을에도 멋진 산이지만
겨울에도 운치가 있고 한적한 멋이있다. 눈오는 겨울, 입구에 찻집에 앉아서 뜨거운 차를 마시며 여유를 즐겨도 좋을것 같다.
강화도에는 이밖에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화 고인돌, 전등사, 무한도전에서 농사를 지은 용두레마을 등 볼꺼리가 많다.
주변의 작은 섬들도 둘러보고, 겨울엔 나들길을 걸어서 강화도를 조금 더 가깝게 느껴볼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슴이 답답할때, 일상탈출을 하고 싶을때.
1박2일이면 더 좋고, 당일여행이어도 좋다! 강화도로 여행을 떠나보는건 어떨까?
맛집 & 숙박 & 교통정보는 강화 문화관광 홈페이지 http://tour.ganghwa.incheon.kr/
어촌체험마을에 대한정보는 어촌어항협회 홈페이지 바다여행 http://www.seantour.com/
네페르의 땅에서 별까지 걸어가는 길 < 국내여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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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해피님 덕분에 역사 공부 많이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공부을 하긴 했는데 영 임력이 안되고 밴뎅이 생각만 나네요 ㅋ ㅈ ㅇ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