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턴(U-turn)할 수 없는 생애
4기 교육학박사 김영호
유기체는 유한한 수명을 갖는 생명체다. 장생불사하고 싶지만 그것은 이룰 수 없는 과욕이며 정신 나간 말이다. 그래서 생명이 존속하는 날까지 뜻있게 살려고 하는 것이 생활이 아닌가. 생활은 생명체가 죽어가는 것이 아니고 살아가는 것이다.
추녀에 매달아 놓은 건시가 마르기 전에 하나씩 빼내어 맛있게 먹듯 하루를 보내면서 확실한 한계선을 시각 할 수 없는 생명의 영토를 가꾸며 스페어 없는 목숨이 희로애락을 각축하다가 변화무쌍한 세랑(歲浪)에 밀려 마침내 소인은 사(死)하고 중인은 졸(卒)하고 대인은 서거(逝去)하며 임금은 훙(薨)하여 생의 극점에서 유턴하지 못하고 영결종천하는 것이 생애일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가 문제이며 또한 과제일 것이다.
세월은 1초에 438km를 초음속으로 달리고 있으니 한 마디의 세월도 가벼히 여길 수 없는 일이다. 팔질에 들어서니 잠자는 시간도 어찌 아깝지 않으랴!
사람들은 나름대로 이상적인 생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목표지향 활동을 전개하면서 의미 있게 생에 가치를 부여하며 살아가는 것이 삶일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그 목표만 달성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양보의 미덕도 모르고 욕망의 하인이 되어 기만하며 살아갈 수는 없기에 아름다운 삶을 염원하고 생애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올바르게 참되게 연출해 가는 것이 바람직한 생활이 아닌가.
신라 진덕왕이 훙하여 군신들은 알천 이찬에게 섭정을 청하였더니 그는 사양하며, “나는 나이 늙고 또한 내어 놓을 만한 덕행도 없다. 지금 덕망이 높기는 춘추만한 이가 없으니 그는 실로 제세의 영웅이라 할 수 있다.”면서 양보하고 춘추를 천거하기에 군신이 드디어 춘추를 추대하여 왕을 삼으니 춘추는 재삼 사양하다가 마지못하여 왕위에 올랐던 것이다.
알천은 스스로 판단하여 늙었다는 것과 덕행이 없다는 것을 내 세우고 끝내 왕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다. 왕의 자리가 절대 권력을 상징하지만 알천은 늙고 덕행이 없다는 자판(自判)으로 그 영광스러운 왕위를 사양했다는 것은 아름다운 미덕이 아닐 수 없다.
“관 뚜껑을 덮을 때 그 사람의 가치를 안다.”는 말처럼 서거하신 김영삼 대통령의 생세에 이룩한 업적이 방영되어 다시 기억화 시켜 주었다. 보편적인 삶도 어려운데 약관에 국회의원이 되고 어린 시절에 바랐던 대통령이 되어서 많은 치적을 남겼으나 너무나 험난한 인생역경을 살다 서거하시어 재궁(梓宮)에 모셔져 마침내 떠나가고 말았다.
오로지 일신의 안녕만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모델링의 대상이 될 수 없을 것 같으나 귀중한 목숨을 어떻게 유용하게 쓸 것인가에 뜻을 둔 현량들에게는 그 실천적 방법을 배울 수 있어서 영세불망의 표상으로 기리 남을 것이다.
특히 대도무문(大道無門)을 표방한 정치적 신념은 영결종천(永訣終天) 할 수 없는 교훈적 메시지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비녕자(丕寧子)는 “나는 오늘 위로는 나라를 위하고 아래로는 지기(知己)를 위하여 죽는다.”고 백제병과 싸우다가 보여준 죽음의 대의가 전투에서 고전(苦戰)하며 이기지 못하여 사기가 떨어진 신라군에게 승리를 이끌어준 구국충절(救國忠節)이었다.
“세한(歲寒)이 된 뒤에야 송백(松柏)이 뒤늦게 퇴색함을 안다.”는 김유신장군의 은근한 말을 알아들은 비녕자가 의로운 죽음을 택했던 것은 자살폭탄을 가슴에 두르고 선량한 중생을 무차별 사살하고 자폭한 IS 무장테러들의 죽음과는 다르다.
“의(義)없이 사는 것은 의 있게 죽는 것만 못하니 그 의가 아니라면 비록 천금의 이(利)라 하드라도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는 해론(奚論)의 의로운 죽음과 “장부는 마땅히 전장에서 죽어야 한다. 어찌 상석(牀席)에 누워 가인(家人)의 간호하는 손에서 죽을 것이랴”는 소나(素那)의 말은 장부가 사세(斯世)에 태어나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보여준 존귀한 이야기로 유턴할 수 없는 생애라면 경청해야 할 교훈이라 여겨져서 여기 다시 전해 본다.
(경주김씨영분공대종회장,
학교법인 원석학원 이사장 직무대행(경주대 서라벌대학교 신라고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