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등반 및 관광 기록
일 시 : 2006. 5.12(금) - 5.14(일) 1박 3일
관광장소 : 금강산 구룡연계곡 , 만물상- 천선대 망양대, 해금강 삼일포
참석인원 : 김일상산악회장부부. 현동우동기회장부부. 최영수부부. 이주형부부
정재영부부. 조해금부부. . 구영호부부. 이상돈부부, 이유상필자부부
( 이상 9쌍 부부 총인원 18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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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란 꽃가루가 정액처럼 흩날리는 오월, 그리운 봄날 오후의 햇살이 저물고
어둠이 짙어 자정을 향해 다가가는 밤11시 20분 우리는 서울을 탈출한다.
2006년 5월 12일 .1박 3일의 여행에 9쌍 부부 총 18명의 인원이 가슴 떨리는 흥분과
기대감을 같이 싣고 어둠을 가르며 서울도심을 벗어나 0시 45분 양평에 이르러
잠시 붙인 눈을 다시 뜨고 커피 한잔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클린턴관광휴게소라는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생소함에서 어색하고 낯설다.
새벽 공기가 시원한 5시가 가까운 시간에 첫 목적지에 도착하여 이른 아침을 간단하게
들고 금강산 콘도 지하에서 현대아산안내원들의 지도로 북에 입국할 절차를 밟는다.
북으로 가져갈 수 없는 물건 - 핸드폰, 배터리. 등고선이 표시된 지도. 망원경.
캠코더카메라. 남쪽사정을 알 수 있는 신문, 잡지 , 책 그리고 성경책 등이다.
우리는 전부 핸드폰을 임시 맡기고 사진이 부착되고 개인고유넘버가 부여된
관광증을 목에 걸고 소란스러워 진 실내에서 한 무리가 된다.
27대의 대형 관광버스가 동시에 이동하니 그 인원들의 규모가 시끌시끌하고 대단하다 .
금강산관광객이 이미 백만 명을 넘어섰다고 하니 우리가 너무 늦게 온 것이 아닌가.
줄서며 기다리고 복잡하고 지루한 입국절차를 거치며 그래도 이렇게 통과하는 데
오십년 이상을 기다려 왔다는 생각에 미쳐서는 이런 것쯤이야 하고 참을 만 하다고
자위해 보지만 다른 줄 보다 우리 차례가 언제나 꼴찌다 .
남북출입사무소를 나서는 회원들
지루한 줄서기 .
어디서든 줄을 잘 서야 시간이 절약된다.
1945년 광복을 맞았으나 .1950년 6.25사변으로 씻을 수 없는 민족의 비극을 거치며
1953년 휴전의 역사적 굴절과 엉클어진 매듭을 지나면서 얼마나 많은 세월이 무심하게 흘렀던가.
이제야 우리 휴전동이들이 북으로 가고 있다.
비무장지대는 남과 북으로 2km씩 불과 4km. 자연생태계의 보고로 인간의 발걸음이
미치지 않고 반세기 세월이 흘렀다. 버스로 통과하는 데는 불과 몇 분이지만 북측초소에 북한경계군인이 초소안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것을 보고는 이제 북쪽 땅에 들어서고 있음을 실감한다.
가이드 김희성양은 관광조장으로 불리어지길 바라고 김일성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숙 여사등 고위직 성명을 직함 없이 함부로 불러서 북한안내원들을 자극하지 말아달라고 교육시킨다.
남과 북의 사람들이 같은 모습이고 같은 민족이고 같은 언어로 말하는 데 말해 보지 않고 첫 모습에서 차이점은 그들은 하나같이 김일성 뺏지를 달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뺏지라고 부르고 않고 김일성초상 휘장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금강산 안내도
09:00에 온정각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사물을 집합하여 한 곳에 모으고
09:30 첫날 첫 관광코스로 구룡연계곡(九龍淵溪谷)을 오른다.
5월 봄날 최상의 날씨다. 더 이상 좋을 수 없다.
무공해 청정지역의 햇살은 푸르른 금강의 녹색 잎을 더욱 생생하게 하고 숲길 전방에 소나무군락은 수림미(樹林美)를 뽐낸다. 소나무들이 한결같이 쭉쭉 뻗어 있어 미인송(美人松)이라 하니 과연 시원스럽다.
온정리에서 신계사를 지나면서 혜인사에서 나왔다는 스님이 나와 우리 일행에서 손을
흔들고 , 목란관식당을 거쳐 넓고 평평한 바위 앙지대(佒止臺)에서 땀을식히며 고개를 드니 금강의 계곡물소리와 기기묘묘한 산세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물소리는 청정함으로 더욱 맑고 산은 푸르름으로 더욱 깊다.
산삼 녹용이 섞여 녹아내린다는 삼록수(蔘鹿水)를 맛보고 자라바위를 지나면 세존봉을 올려다 보면 옥황상제바위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구룡연 초입
흔들다리를 즐겁게 건너다.
금강의 절경을 위에서 올려다 본다.
하느님께서 천지 창조하신 6일 중에서 마지막 하루는 오직 금강산을 만드는 데 보내셨을 것이다하고 감탄했던 스웨던 아돌프구스타프 국왕의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느님이 만드신 작품을 인간인 우리들이 어떻게 말로, 글로, 그림으로 표현하고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 그 어떤 그림으로도 완전히 다 그릴 수 없고 그 어떤 시(詩)로도 온전히 다 노래할 수 없다. 그 어떤 기행문으로도 실감나게 설명되어질 수 없고 그 어떤 글로써도 다 나타낼 수 없다.
이 필자의 졸필로써 어떻게 금강의 깊고 깊은 오묘한 맛과 멋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오직 한마디 “와서 직접 보고 느껴보시길” 하고 권할 수밖에 없다.
일 만 이천봉의 바위마다 독특한 이름이 다 있고 전설이 있으며 보는 사람에 보는 각도에 따라 기묘하게 변하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감탄사가 연신 터진다.
금강문을 통과하면서 옥류동 절경이 환하게 한 눈에 펼쳐지면서 물소리도 더 경쾌해 진다.
수정같은 맑은 물이 구슬같이 흘러내린다 하여 옥류동(玉流洞).
수정을 녹여 쏟아 부은 듯한 푸른 소(沼)가 옥류담(玉流潭)
문양고운 흰 비단을 펼쳐놓은 듯 옥같은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옥류폭포(玉流瀑布).
를 지나면 계속되는 2개의 폭포가 또 연이어 나타나서 남(南)의 친구들은 땀을 식힌다.
첫 번째 폭포가 마치 봉황새가 창공을 향해 은빛날개를 펴고 긴 꼬리를 휘저으며 나는 것 같다하여 비봉폭포(飛鳳瀑布)다. 이 비봉폭포는 구룡폭포. 십이폭포. 옥영폭포와 함께 금강산 4대 명폭의 하나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 폭포가 춤출 무 舞. 봉황 봉鳳. 무봉폭포가 있다. 마치 봉황새가 춤추는 듯한 모습이다. 폭포를 따라 계속 오르면 다람쥐가 이리저리 이방인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남한에서는 토종 다람쥐보다 변종 청솔모가 더 많이 보이는데 여기선 아직 우리 것이
더 잘 보이는 것이 반갑다. 그러나 곳곳에 놓여있는 김일성장군님의 방문 표지석(標識石)과 붉은 글씨의 주체사상만세. 등의 굵은 글씨체는 그 굵기만큼이나 마음이 아프다.
통일되어 남북한이 하나 되어 자연을 보호하고 정비해 나가려면 이 많은 글씨들을 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관 폭 정 앞에 선 대원들
주렴폭포에서 한 참을 더 오르면 구룡연 코스의 정점에 단연 돋보이는 구룡폭포를 만난다.
상팔담(上八潭)- 8개의 연속된 소(沼)가 이어져 내려오다 이윽고 절벽을 만나 구룡폭포를 만들어 낸다. . 타워 팰리스 정도의 폭표벽 높이에 74m. 너비 4m의 외줄기 폭포가 하늘을 뒤흔드는 듯한 소리와 물안개를 일으키며 쏟아지니 그 모습이 장쾌하고 아름답다.
정자를 지워 그늘을 만들고 등산객들은 폭포를 배경으로 기념촬영하기 바쁘다.
그 정자 현판은 관폭정(觀瀑亭)이라 이름 지어져 있다.
구룡폭포를 뒤로 하고 아쉬운 하산 길로 접어들어 3시간 만인 오후 1시 15분에 옥류관에 점심을 든다.
US$12의 옥류관 냉면과 US$15의 쟁반냉면은 남쪽의 맛에 비해 너무 담백하다.
접대원동무들은 남남북녀라 말이 있듯이 하나 같이 미인이다.
온정각 온천탕에 가기전에 숙소를 배정받고 체크인 한다.
간이 호텔 - 정상적인 호텔 건립이 이루어지는 날 있겠지.
많은 남쪽관광객을 전부 수용할 숙박시설은 미흡하여 게딱지처럼 다닥 다닥 붙어있는 간이 철제 막사에 4명이서 한 컨테이너에 배정되는 데 화장실과 샤워실은 별도로 떨어져 지워진 공동시설을 사용하는 것이 불편하다. 이제 개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이해할 만 하나 이제부턴 더 많은 숙박시설과 코스개방이 이루어 져야 할 것이다.
순수 100%온천수를 이용하는 온천욕장의 시설은 수준급이다 . 노천온천탕에서 다시
바라보는 금강산의 수많은 봉우리들이 꿈처럼 펼쳐진다... 옥녀봉. 채하봉, 집선봉, 일출봉, 월출봉 뒤로 1,638m의 비로봉도 아스라이 보인다.
기분좋게 기(氣)를 받도 온천(溫泉)으로 몸을 푸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우리일행은 4시30분 공연되는 원형으로 지워진 금강산문화회관으로 입장한다.
평양 모란봉 교예단.
북한에서 4개의 동일한 교예단이 구성되어 평양에서 해외에서 여기 금강산에서 공연이 펼쳐진다.
인간의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언어를 음악에 실어 무대에서 예술적으로 화려하게 연출된다.
남여가 한 조가 된 교예단의 공중 곡예는 손을 땀을 쥐게 하고 가슴을 철렁이게 하기도 하여 눈을 감게 하기도 하고 눈을 불게 하기도 한다. 같은 한 민족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가슴이 통하는 무엇이 있고 같은 피를 나눈 혈육들임을 몸으로 음악으로 전해져 오는 듯하다. 백뮤직의 음악은 왜 그렇게 애조(哀調)를 띄며 가슴을 아프게 하는 가.
세계 최강의 곡예단의 공연은 정말로 숨을 멎게 하며 호흡을 멈추게 한다. 어떻게 저렇게 새처럼 날며 공중회전돌기를 하여 다시 손을 놓치지 않고 붙잡을 수 있는가.
인민배우로 추대되어 장관급 대우를 받는다고 하지만 그들의 손짓하나 몸짓하나는 왜
그렇게 슬프게 하는가. 몇 해 전 북경에서 보았던 중국곡예단과는 비교될 수 없고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흔한 서커스와는 차원이 다르다. 공연 내 가슴 졸이며 박수치며 보던 필자는 손과 눈이 동시에 젖는다.
공연 끝난 교예단 단원들에게 기립박수로 화답하며 “또 만납시다 ”라는 북한 음악이 물결칠 때 남에서 온 가슴들이 다시 뜨거워짐을 느끼는 건 우리는 하나임을 증명하는
것이리라.
온정각에서 9쌍 부부 - 18명의 대원들이 모였다.
북한에서의 일박이일 중 첫 밤을 맞아 우리는 미리 예약해둔 고성항 횟집으로 이동한다.
한가한 포구에 잔잔한 물결위로 달빛이 교교히 내려 않은 고성항에서 현대아산직원들과 북한접대원동무들의 동시 접대를 받으며 북한 자연산 싱싱한 회와 남한소주(US $3 ) 로 회포를 풀며 통일을 위하여, 우리들의 우정을 위하여 원 샷을 부딪친다.
섬 위에 떠있는 배처럼 곡선미를 가진 해금강관광호텔 위로 같은 밤하늘 아래 보이는
남북의 같은 별들이 따뜻하게 빛나고 있다.
오늘 밤은 북쪽에 와서 북쪽하늘의 별들을 헤며 북조선의 첫 밤이 아프게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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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연 코스를 첫날에 보고 난 감흥이 그대로 남아있으므로 아침에 일어나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는 금강산의 실루엣은 더욱 정겹다.
어제 마신 술에 머리가 아프지 않은 것은 남한 술을 마셨기 때문이 아니라 북한의 맑은 공기 때문이리라. 어제 늦은 밤 까지 게임을 했어도 피곤하지 않은 것은 돈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금강산의 기를 흠뻑 받아들였기 때문이리라.
금강산관광코스는 흔히 3개의 코스가 현재까지는 일반적이다.
첫째 코스가 첫날 관광한 구룡연코스
둘째 코스가 오늘 등산할 만물상코스
셋째 코스가 해금강 삼일포 코스이다.
우리 일행은 만물상등반을 위해 나서지만, 일부 인원은 해금강 삼일포코스를 선택한다.
시간 관계상 동시에 다 관광하기엔 무리이다. 담엔 다시 올 때를 기약해야 한다.
금강산을 크게 구분하여 외금강 , 내금강, 해금강으로 3부분으로 구분 할 수 있다.
외금강은 비로봉 동쪽으로 산세가 험하고 웅장하여 바깥 외(外)자를 써서 외금강이라
한다.
동해안 충적평야와 맞붙어 있어 지형적의 상대적 높이가 크고 절벽이 많아 폭포가 발달 하였다.
외금강의 11개 코스는
만물상. 구룡연. 수정봉. 천불동. 선 창. 백정봉. 선 하. 발연소. 송 림. 은선대 구역이다.
우리는 그 중 만물상과 구룡연을 보니 맛 만 보고 가는 것이 되는 걸까.
또. 내금강은 비로봉 서쪽으로 산세가 온유하고 유순하여 안 내(內)자를 써서 내금강이라 한다.
내륙 산악지형과 인접해 있어 물이 흐르다가 멈추어서 만들어진 담(潭)과 소(沼)가 많다.
내금강 8개 구역으로는 만 천. 명경대. 망군대. 만 폭. 백운대. 태 상. 구 성. 비로봉 구역이 있다.
우리는 내금강은 근접하지 못 한다 . 다음엔 비로봉 정상을 밟을 수 있을 까.
만물상을 바라보고 철제계단을 오른다
마지막 해금강은 금강산 물줄기가 동해바다로 뻗어나가 바다의 금강산을 이루었다 하여 바다 해(海) 해금강이라 하며 동해바다에서 일어난 해식침식작용으로 생성된 것이다.
해금강의 3 개 구역은 삼일포, 해금강. 총석정 구역이 있다.
우리 일행은 해금강관광과 만물상으로 나누어졌으므로 서로 반쪽 관광으로 만족해야 했으나 담엔 온(全) 관광하는 날 이 곧 오길 기대해 본다.
전날 로얄 스트레이트 플래쉬와 에이, 자니 포커로 수입을 올린 구박사가 합류되어
우리 16명 일행은 굽이굽이 고갯길을 넘는다.
남측의 대관령이 102고개로 유명한데 이 곳 북측은 내외금강산의 유일한 관통육로로
106고개를 33인승으로 특수 제작된 현대차로 북한말로 영웅고개, 또는 승리고개를 넘어 온정리 만물상입구 만상정(萬相亭)에 닿았다.
우리는 복장을 다듬고 신발 끈을 힘주어 당긴다. 우러러 보는 하늘아래 금강산의 자태는 가까이 하지 않아도 호흡이 가빠르다. 기기묘묘한 형상은 나란히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3개의 암벽을 마주한다. 신선들이 내려와 바둑 두고 놀았다는 삼선암(三仙岩). 높이 30m 로 아파트 10층 높이다. 계속되는 기암괴석에서 그 이름 붙여진 것 만 열거해도 끝이 없다. 칠층암(七層岩), 절부암(折斧岩), 그 이름을 몰라도 된다. 신의 작품에 인간이 세속적인 이름을 붙인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냥 보고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의 형상으로 보면 되는 것이다. 귀신 같이 보이면 어떻고, 신선같이 보이면 어떤가.
중국이 유명한 문필가 소동파는 “원생고려국 일견금강산 ”(願生高麗國 一見金剛山)
“고려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한번 보는 것이 소원이다” 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아직 통일 되진 않았지만 이렇게 좋은 친구들과 함께 금강을 본다는 것으로 소원을 풀었다. 일본의 모 기자는 일본의 후지산 밑에 일본의 어떤 유명한 명산을 다 모아 놓았어도 아직 한국의 금강산의 절승과 겨루기는 모자랄 것이라고 말하였고. 영국여행가 이사벨라 비숍은
“여기 11마일에 걸친 금강산의 아름다움은 세계 어느 명산의 아름다움을 초월하고 있다. 대협곡은 너무나도 황홀하여 우리의 감각을 마비시킬 지경이다” 하고 격찬하였다.
절부암에서 7-80도의 급경사를 철제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안심대(安心臺)에 이른다. 좁은 길에 사람이 일방통행 한길이니 달리 피해 추월할 수도 없다. 일행들은 흩어져서 디지털카메라도 용량을 초과하여 더 이상 절경을 사진에 담을 수 없으나 여기서 북한 찍사동무가 기다리고 있다. 한 컷 한 장에 US 7$이니 정법무와 함께 유료사진을 기념으로 남긴다.
천선대에서 바라본 만물상
물 한모금 심호흡 한번으로 다시 내려가다 망양대(望洋臺)길로 다시 오르막이다.
왕복 1시간 표지가 되어있는 삼거리에는 북한안내원동무들이 길안내를 하고 있다.
수 십리 수 백리 발아래 펼쳐진 솟아오른 봉오리들이 톱니바퀴처럼 펼쳐지고, 또는
잔물결치고 있는 봉오리들과 암벽사이를 뚫고 올라오는 소나무, 잣나무들 그리고 산철쭉과 푸르름은 천국이 예 아니고 어디란 말인가.
김 관광조장 말에 의하면 예로부터 금강산은 음기(陰氣)가 세기로 유명해서 온천탕도 남녀를 한 달에 한번 씩 바꿔가며 사용한다고 한다. 그런데 금강산은 바위산인데 왜 남성 산이 아니고 여성산 이라서 음기가 강하다 하는가 하고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 바위가 삼각산에서 보듯 강질의 암반이 아니고 여성적 부드러움을 가진 바위라는 걸 산행 길에 바위를 가까이 봄으로써 느낄 수 있다.
이렇게 형(形)이 다양하게 연출되기 위해서는 강해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제주의 돌이 화산석으로 조금 약하기 때문에 여러 형태의 수석(壽石)이 나오지 않는가. 남한강돌처럼 강질이면 산수석이라도 정도이상의 여러 형태석이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천선대(天仙臺)에서의 경관도 기막히지만 ,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망양대(望洋臺)에 이르러 만물상의 바라보는 경치는 무어라 표현하기 어렵다. 인간세상의 만 가지 형상을 모두 놓았다 하여 만물상이라 하나. 인간세상의 형상 뿐 만 아니라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형상과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모든 형의 형상까지도 이곳에서 볼 수 있다면 과장일까.
아 .... 멀리 아니 손에 잡힐 듯 동해바다가 펼쳐져 보이고 긴 백사장은 원산의 명상십리처럼 펼쳐져 있는 데 통천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것이다.
‘한 폭의 그림이다 ’ 라는 표현은 이를 두고 말함이다.
아버님 살아생전 그렇게도 다시 한 번 가고 싶어 하시던 금강산.
세계 어느 곳을 돌아다녀 보아도 금강산처럼 빛나는 보석을 보지 못하셨다고 말씀 하시며 하루빨리 통일되어 고향에 돌아가 금강산을 가보고 싶어 하셨다. 통일은 우리 각자의 신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어떤 일이 이루어지도록 간절히 기도하면 온 우주의 기운이 우리를 도와준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지금의 우리들 2세는 통일이 되어도 좋고 안 되어도 상관없다는 태도에는 할 말을 잃는다. 이렇게 좋은 금수강산을 지척에 두고 50년이 지난 이제야 볼 수 있다는 비극이 세상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아버님은 원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와 세브란스를 졸업 하시고 통영에서 의사로 평생을 의료봉사 하시다 고향을 꿈에서도 잊지 못하시고 금강산보기를 그렇게 원하셨건만 둘째 손자가 태어나는 것을 보지 못하시고 돌아가셨다. 아버님을 모시고 오늘 금강산 망양대에 올랐다면 아버님은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통일되면 원산근교에 수 천 평 과수원 땅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도 계셨지만 땅 찾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 조국 . 같은 땅 같은 하늘 아래 남북한 주민들이 금강산을 자유롭게 오가기를 소망한다.
귀면암에서 단체사진 한 컷
하산길에 귀면암(鬼面岩)을 들러 기념촬영을 한 컷하고 내려서는 데 까마귀 한 쌍이 계곡에 바람을 일으킨다. 명산의 조건이 3가지 있다 . 첫째는 맑은 물을 가져야 하고, 둘째는 산삼이 자라고 셋째는 까마귀가 날아야 한다, 북쪽에서 까마귀는 희망의 상징이라 하니 남과 북은 여기서도 차이가 나는 걸까.
금강산을 여러 선인들이 예찬하고 세계인들이 감탄하고 찬탄과 경탄의 글과 그림을 남겼지만.
대표적으로 말하면
웅장하고 아름다운 산악미(山岳美)
풀과 나무와 바위가 조화된 계곡미(溪谷美)
신비와 감탄과 황홀감과 장쾌함의 감흥미(感興美)
세상의 아름다운 색깔들의 집결채인 색채미(色彩美)
금강산의 바람과 구름과안개가 이루어 내는 풍운조화미(風雲造化美)이다.
금강산을 부르는 명칭도 다양하다.
서릿발같이 흰산 이란 의미의 상악산(霜岳山)
가을 지나 겨울 이르면 잎이 모두 떨어져 바위가 그대로 드러나면서 뼈만 보인다는 개골산(皆骨山)
단풍으로 아름다운 산이란 의미의 풍악산(楓嶽山)
동해바다 한 가운데 살고 있는 산 (蓬萊山)
금강산은 불교적의미로 굳세고 단단하여 불변의 성질을 가지므로 불도을 구하기 위한 굳센 마음을 상징한다.
오후 3시 10분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다시 남으로 향한다. 북쪽 CIQ 지역에선 남에서 넘어올 때의 반갑습네다 노래는 다시 만납시다. 가요로 바뀌어 이별의 아쉬움을 남긴다.
배로 시작된 북한 땅 관광은 이제 육로가 열리고 6월 25일에는 남북철도가 55년 만에 경의선. 동해선이 시험운행에 합의 했다한다.
경의선 27.3km는 문산역에서 개성까지 이고, 동해선은 제진역에서 금강산역까지 25.5km이다.
다음엔 기차로 북쪽관광이 이루어지길 빌며 비로봉 정상 등반도 이루어지길 간절히 빌어본다.
그리고 개인적인 소망은 금강산산장호텔 신규 프로젝트를 맡아 민족의 영산 금강산아래
남측 북측 사람들이 자유롭게 관광올 때 쾌적한 환경에서 숙박할 수 있는 호텔을 건립하는 일이다.
통일 전망대를 거쳐 인제군 청정휴게소에 밤 8시 늦은 시간에 도착하여 저녁을 들고 신남 지나 홍천을 거쳐 서울에 닿았을 때는 6월15일 0시를 넘기고 있었다. 1박 3일 일정은 1박 4일이 된 것 이다.
금강산의 음기(陰氣)와 추억(追憶)으로 잠을 뒤척이다 다시 서울의 아침을 맞는다.
2006년 5월 15일 이 유 상 기록.
- 끝 -
첫댓글 5년전의 기억이 새롭게 조명됩니다. 그때에도 호텔의 신축때문에 다소 시끄러웠는데 아직까지... 간이 콘데이너가 왠말인가? 금강산의 정기를 품고 온 9쌍의 선남선녀들 힘좀 써 보소, 혹시...
좋은 시간을 보낸 산케 가족들에게 축하를 보냅니다...좋았겠다..가고 시퍼라...통일 되는 그날 백두대간이 이어지길...
남측 부루죠아동무들 억류되지않고 되돌아 가는걸 행운으로 알라우. ㅎㅎ. 굉장히 아름다운 모양이네. 부럽다. 나는 언제 한번 가보나. 오랫만에 주필이 펜을 들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좌로는 동해북부선철로,우로는 눈이 시린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비무장지대를 통과하는 감회는 착잡했고 아스라히 펼쳐지는 금강산 일만이천봉은 조물주의 최고 수작이 아닌가 생각되었으며,선녀와 나뭇꾼의 전설이 있는 상팔담 그리고 삼일포와 해금강을 촉박한 일정관계로 못보고 온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네요.26친구들과
함께한 1박4일간의 금강산기행 너무 즐거웠고 의미있는 만남(북녘동포와의 상기된 만남,26동기부부들간의 다정한 만남)이었소.이유상주필,훌륭한 후기 올리느라 정말 수고 많았소.
아직도 못가져갈 물품의 목록을 보니 참..그렇군.어찌되었건 친구들과 어울려 다녀온 금강산 후기..좋네. 부럽다. 희림 어머니의 밝고 환한 미소가 금강을 더 곱게 하네.
이런, 몇 년 전에 콘테이너 박스엔 현대아산 직원들과 버스 기사(모두 중국 연길 동포들)들이 거주한다고 들었는데...... 차라리 여객선 선실이 훨씬 나았겠네. 난 그새 호텔을 지어 관광객들이 그곳에 묵고 금강산 탐승하는 줄 알았더니. 고생 하셨습니다요. 에이그......
오랜만에 이주필이 필을 들었는데, 역시 본부주필다운 감성적 후기에 감사합니다.출입국수속에 다소 불편했으나, 무거운 숙제를 한 기분이다.하지만, 미화를 미국현지에서만 사용했는데, 한반도의 이곳에서 통용하니 웬지 좀 그렇다.언젠가 개성의 유적지도 방문하고 뒷골목에서 북한통화로 싸구려 냉면을 사 먹고싶다
금강산에서의 '조해금'동무의 산케가입을 축하 합니다.그리고 횟집에서 딸라로 해금이가 쏘아주어 고맙다.이제는 여기서 정식 환영회를 해 주어야겠지요.
이주필~사진과 글을 보니 나도 동행한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금강산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후기 쓰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낸 부부동반 산케 가족들 축하드립니다.그리고 조해금 친구의 26산케 가입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가슴 뭉클해졌던 1박4일의 여행이었고..남측 동무들에게 꼭 한번 가보라고 권코싶은 금강산입네다~짧은시간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몇가지 엄청난 기를 느꼈습네다.금강산에서의 거풍2회,하트로얄,1111,jjjj,대봉막걸리,접대원동무..잊지 못할겁니다.본부주필동무 담백한 후기 수고했습네다~^
그날 낮에 나와 함께 차량번호-금강산 1111을 보더니, 결국 밤에 일을 저질렀구나!
그날밤. 구박사의 강한 氣에 눌러 난, 일찍 잠에 들 수 있었다오.
모라토리움?
아 ~금강산!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해방전에 금강산 다녀 오셨다고 얘기듣고 한번 갔다 올려는게 잘 안되네.무사히 갔다온 동기들 부럽소. 다음에 갈 기회가 있겄지... 주필 글 잘 읽었소.
아~감동적인 후기입니다. 문화의 도시 충무사람다운 유려한 필치가 곳곳에...내가 8년전 금강산갔을때는 무엇엔가 쫓기듯이 산을 둘러봐 금강산의 멋과 맛을 느끼지 못했는데, 역시 주필은 주필이여~
굽이굽이 흐르는 물은 수정같이 맑고 보이는 봉우리마다 마다 천태만상이요, 걸음걸음 마다 보이는게 모두가 절경이라. 담엔 세존봉 등산로 코스로 한번 더 가고 싶다. 시간되면 한번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주필은 선친의 고향을 다녀온 감회가 새롭겠구나.
회장 혼자서 기획하고 수속밟고 인솔하여 큰 행사를 치루느라 수고했소.
내세움없이 묵묵히 챙겨주고 ..보기 좋소이다.덕분에 모두 무사히 조국의 품에 다시 안길수있었다고 보아지오~생유(=댕큐)
김회장이 북치고 장구치느라 너무 수고 많았소.김우성대장의 발목부상이 속히 완쾌되어야 역활분담이 될테데...
98년도부터 3번이나 갔다왔지만 이주필의 기행문 옛날을 회상하며 생동감있게 읽었소. 무사히 갔다온 친구들 혹시 붉은 물은 안들었나 모르겠소. 내금강은 훨씬 좋다는 말은 들었는데 그때 동참하리다. 수고했소.
제주도 크기의 웅장한 금강을 1박의 짧은 여정으로는 아쉬웠으나,오래된 묵은 숙제를 해결한 느낌이다. 10년이상 훈련했다는 교예단의 공연 후 웬지 눈물이 났고,산행중 순박한 북측 안내양을 대하는 시건방진 관광객에게 이유없는 분노도 느꼈다. 선친에게 바치는 듯한 이주필의 감동적인 후기...잘 감상했소.
축복받은 친구들~~즐겁게 보내시고 무사히 돌아오셔 참 반갑습니다. 마음 모임 때 재미있는 얘기 많이 들어 봅시다. 감상 잘 했습니다
나무꾼이 선녀옷 훔쳐서 데리고 살은 웅덩이를 육안으로 확인한게 큰기쁨이었소. 김 일상회장 혼자 준비한다고 고생했소.
김회장의 성공적인 금강산산행으로, 다음에는 대마도-산행설이 있더라.
의견 모아서 9월쯤 함 갑시다.
아홉 나뭇꾼에 아홉 선녀라..같이 못한게 아쉽지만 모두들 즐거운 여행길이었음에 나 또한 기쁘오. 이주필의 글은 감미롭기까지 하네
2년전에 돌아가신 아버님의 고향이 이북 함흥이라 꼭 한번 금강산이라도 모실라 햇으나 뜻대로 이루지 못했고.26산케들께서 금강산 유람을 무사히 마치니 부럽기도하고 아쉽기도하고 . 수고들 하였소이다.
장기 산행땐 날씨땀시 고생혔는데 이번엔 날씨꺼정 끝내주고 가슴 뭉클한 금강산행 넘 좋았답니다 이주필님의 생생한후기로 한번더 마음이 울적허고 흥분이 되네요 같이 동참한 산케분들 덕분에 더욱더.... 모든분들께 감사드리며 산케분들 덕분에 더욱더 잘웠던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