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스킨헤드족 활동으로 한국인 유학생 위험
올 2월에 러시아에 유학 중인 우리나라 학생이 인종혐오주의자들의 집단 폭행으로 사망했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유학생이 대낮에 주거 지역에서 흉기에 찔려 중상을 입었다. 몇 년 전부터 매해 러시아 스킨헤드족을 포함한 극우주의자들에 의해 한국인들이 테러를 당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러시아 정부에게 강력한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3월부터 5월 말까지는 러시아를 여행 경보 1단계인 여행 유의 지역으로 선포했다. 러시아 검찰은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금서로 지정하기도 했다. 급증하는 러시아 인종주의자들의 상황은 러시아의 대외관계를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러시아 스킨헤드족의 현황
스킨헤드족은 1960년대 후반 영국의 항만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생겨난 하부문화였다. 처음에는 정치적 성향이나 인종적 편견 없이 단지 독특한 패션을 추구했다. 힘든 노동에 편리한 청바지, 쇠징을 박은 구두, 이가 생기지 않도록 삭발한(skin-head) 모습이 주요 특징이었다. 러시아에서는 스킨헤드족이 1980년대 중반 이후에 러시아 청년 하부 문화에서 발생했고, 나치즘과 연결됐다.
러시아 인종증오범죄연구단체 〈소바〉는 러시아 전역에 7만명의 인종혐오주의자들이 있다고 추산했다. 미국 국무부가 발표한 '2009년 인권 보고서'에서는 20만명의 극단주의 청년 활동조직원이 있다고 해서 러시아가 강력하게 항의하고 나섰다. 러시아 인종혐오주의자들에 의해 2005년에는 47명이, 2008년에는 118명이 사망했다. 작년에는 71명으로 잠시 주춤했으나 갈수록 흉포해지고 조직화되며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벗어나서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AI) 사무총장은 러시아의 인종주의 범죄는 러시아 위상을 추락시키는 암적인 존재라고 하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스킨헤드족으로 러시아 이민자들이 매우 위험해지고 있다고 논평했다. 이에 러시아는 2003년 하원에서 극단주의 단체 결성금지법이 통과됐고, 2008년에 푸틴 총리는 스킨헤드족에게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다.
◆러시아 스킨헤드족이 외국인을 혐오하고 나치를 추종하는 이유
4월 20일은 히틀러의 생일이고, 4월 30일은 히틀러가 사망한 날짜다. 이 시기를 전후로 하여 스킨헤드족들은 외국 대사관들에 이메일을 보내 즉시 러시아를 떠나라고 경고한다. 나치 독일과 구 소련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치열한 전투를 통해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 러시아 일부 극우 청년들은 적대국의 수장이었던 히틀러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다. 제3제국 건설을 추진했던 히틀러는 주변국들에 비해 경제적 성장이 뒤쳐졌던 상황에서 강력하고 화려한 독일을 만들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아리아인의 순수 혈통을 강조하며 유대인을 극도로 증오했다. 나치의 정신은 추락하는 러시아의 상황과 맞물려 러시아 청년들에게 자연스레 주입됐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이후 자본주의의 종주국인 미국에 유일하게 대항했던 구 소련이 1991년 완전 해체되면서 국제적 지위가 급격히 추락했다. 70여년 이상의 공산주의 체제의 모순으로 살림이 거덜 나고 경제난이 가속화되면서 실업률이 급격히 높아졌다. 이 때 점점 많아지는 외국인 이민자들이 러시아인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판단을 하면서 스킨헤드족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이들은 중앙아시아인 및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있는 캅카스 산맥 출신인들을 주요 표적으로 하고 있지만 그 외에도 아프리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인종에까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있다.
◆증오범죄와 제노포비아 현황
이방인에 대한 차별과 거부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제노포비아(xonophobia)라는 단어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책에서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런 전통이 동양인을 무시하는 사고체계를 만들어냈다고 분석했다. 인종만이 아니라 종교나 신념, 성적 취향 등의 차이를 이유로 해를 가하는 행위인 증오범죄는 다른 범죄보다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과 언젠가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너무 크다.
미국에서도 해마다 증오범죄가 증가하는데 그 중에서도 인종과 관련된 범죄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경제난과 실직의 책임이 이민자들에게 있다고 백인 인종우월주의자들은 생각한다. 세계화 속에서 자본과 노동이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이민자에 대한 범죄가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다.
◆똘레랑스 교육을 강화해야 할 대한민국의 인권 상황
우리나라도 외국인 100만명 시대를 접하면서 일부 극우주의자들에게서 외국인에 대한 반감이 서서히 형성되고 있다. 러시아나 미국과 마찬가지로 실직의 직접적 원인이 이민자들에게 있다는 생각을 한다. 실제로 이민자들이 일하는 분야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거의 일하지 않는 3D업종임에도 불구하고 실업의 논리적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러시아는 자신들의 민족적 우월성에 대한 교육을 강조하는데, 우리나라도 한민족의 우수성에 대한 교육을 강조한다. 이는 자칫 잘못하면 오도된 인종주의로 변질될 수가 있다.
3년 전에는 유엔의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혼혈, 순수 혈통'이라는 언어가 주는 차별적 이미지를 지적하면서 우리나라의 인종차별적 상황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이민자만이 아니라 동성애자, 탈북자 등 다양한 배경과 문화를 지닌 사람들을 포용해 공존하는 삶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사회가 민주주의와 인권이 성숙한 나라다.
조선일보 201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