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일
새벽 4시 30분에 눈을 떴다. 9시 35분 출발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6시 30분까지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며칠 전 언론에 미국 입국이 까다로워져 인천공항에서부터 시간이 많이 지체되니 대여섯 시간 전에 공항에 나가야 한다고 했지만 공항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일한이의 말로는 수속카운터가 아침 6시 20분에 여니 그 시간에만 맞춰 나가면 된다고 하였다. 어둠을 뚫고 공항에 도착하니 6시 30분이 조금 안되었다. 일한이는 장기주차장에 주차를 하러 갔고, 우리는 출국 수속을 시작하였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짐을 부치고 비행기 티켓팅을 마쳤다. 그동안 열심히 모은 마일리지로 어머니와 나, 막내 세란이는 비즈니스석을 예약해서 수속은 아주 빨리 끝났다. 일한이도 주차를 마치고 우리와 합류하였다. 몇 년 전부터 인천공항에 마련되어 있는 노약자 우선의 패스트 트랙으로 들어가니 시간은 넉넉하였다. 라운지에 가서 가볍게 요기도 하고 시간에 맞춰 탑승게이트 앞에 갔다.
우리 일행만 제일 먼저 비행기 안으로 들어갔다.
놀랍게도 비즈니스석도 만석이었다. 내 옆에 자리를 비우려고 그동안 대한항공 홈페이지를 통해 여러 번 좌석 변경을 했는데 아무 의미 없는 일이었다. 내 옆에는 대구에서 애틀랜타의 아들네 가족을 보러 가시는 노부부가 앉으셨다. 미주 노선 중에서 애틀란타가 가장 멀다. 지도상으로 보면 뉴욕이 더 멀 것 같은데 항로로는 애틀란타가 더 멀다. 보통 인천에서 애틀란타까지는 14시간 30분을 예상하는데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사무장이 하는 얘기가 기류가 좋아 1시간이 줄어들 것이라는 반가운 소리이다. 사실 휠체어 장애인들은 비행기 내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고 꼼짝도 없이 제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는데 비장애인도 힘든 장기 비행에 장애인들은 몇 배의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또 나와 같은 경추 손상의 중증 장애인들은 10시간 이상 되는 비행에도 욕창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비즈니스석을 예약해서 꼭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는 누워서 가는 것이 좋다. 하지만 우리 속담에 말타면 경마잡고 싶다고 했던가! 좌석이 너무 좁아 누우면 양쪽 어깨가 좌우에 꼭 끼어 그 조차 그리 편한 것은 아니다. 그나마 누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그럭저럭 견디며 갔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저혈압으로 인해 많이 어지럽고 가끔은 나도 모르게 정신을 놓은 적도 있고 해서 솔직히 많이 걱정을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힘들지 않게 13시간이 넘는 비행을 마치고 애틀란타 공항에 도착을 하였다. 탑승할 때와는 반대로 도착해서는 제일 나중에 내리게 된다. 수하물 칸에 실은 내 휠체어를 비행기 게이트 앞까지 가지고 오는데 시간이 한참 걸려서이다. 아무튼 내 휠체어에 잘 옮겨 앉아 비교적 입국심사도 쉽게 공항을 빠져 나갔다. 한국에서 유심카드를 사려고 이리저리 일한이와 알아보다가 결국 미국에 가서 사자고 결정을 해 공항에 마중을 나오기로 한 사촌동생을 만날 때 까지는 아무 통신 수단이 없으니 참 답답한 노릇이다. 30년 전에는 휴대폰이나 스마트폰 없이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비행기가 1시간 빨리 도착하여 조금 늦게 사촌 동생과 이모를 만났다. 항상 미국 여행을 할 때 힘든 것은 비장애인들은 자동차 렌트를 할 때 아무 문제 없이 쉽게 렌트를 하는데 장애인 차량을 렌트할 때는 항상 보험 문제가 걸려 애를 먹인다. 그나마 몇 년 전 까지는 단기 자동차 보험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마저 없어져 더 힘이 들게 되었다. 그래서 사촌 동생의 이름으로 렌트를 할 수 밖에 없어 사촌 동생 호일이가 자동차를 가지고 우리한테 오게 되어 있었다. 잠시의 기다림 후에 호일이가 왔고, 반가운 인사를 나눈 후에 우리는 또 떠나야 했다. 그런데 이 장애인 차량이 너무 작다. 천정도 너무 낮아 내가 타고 내리기에 무지 힘들다. 이리저리 끼워 맞춰도 쉽지는 않았지만 렌트카 회사에 전화를 하니 방법은 회사까지 와서 앞 조수석 좌석을 떼어내고 가라는 것인데 그렇게 하면 두 시간 이상이 또 낭비가 될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짐을 이리저리 끼워 맞춰 싣고 나도 머리가 부딪히지 않도록 최대한의 공간을 만들어 자리를 잡았다. 내 차와 마찬가지로 운행중에 휠체어를 뒤로 눕힐 수도 없고 어정쩡한 자세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참고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금 떠나도 해가 진 후에나 첫 번째 행선지인 노스캐롤라이나의 윌슨에 도착하게 된다. 일단은 통신부터 해결해야 한다. 애틀랜타 시내의 가장 가까운 티모바일을 찾아갔다. 짐이 너무 많아 나는 내릴 엄두도 내지 않았고 남동생 정세와 일한이 둘이서 내려 다섯 명의 유심칩을 교체하고 미국 내에서의 통신과 데이터 사용을 원활하게 만들었다. 시간은 또 한 시간 가량이 흘렀다. 이제는 지체없이 출발해야 한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구글맵을 사용해 보기로 하였다. 그 전에 미국 여행을 할 때에는 미국내 네비게이션을 구입해서 사용한 후 돌아와서 다시 미국 여행을 하는 여행객들한테 파는 형식을 취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구글맵으로도 충분히 여행이 가능하다 하여 한 번 믿고 시도해 보는 것이다. 구글맵에는 일곱 시간이 조금 넘는 운전 예상을 하였다. 이제 북쪽으로 열심히 달려가는 수 밖에는 없다. 애틀란타도 교통 체증이 보통 이상은 되어 보인다. 그래도 첫 날이고 여행에 대한 흥분이 모두에게 있어 바깥 풍경을 즐기며 갈 수 있었다. 한국에서 공수해온 한국과자를 열심히 먹으며 웃고 떠들며 갔다. 맛동산. 꿀꽈배기, 꼬깔콘,
가다 쉬고, 가다 쉬며를 반복하고 갔지만 멀긴 정말 멀다. 이 놈의 나라 땅덩어리 넓은 것은 예전에 연수왔을 때부터 유학을 할 때, 그리고 지금도 너무 부럽다. 미국 사람들은 서, 너 시간 운전하는 것은 별로 멀게 생각도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그 정도면 서울에서 거의 부산까지 갈 수 있는 거리다. 구글맵의 운전 예상 시간은 일곱 시간 조금 넘게 예상했지만 실제로 운전을 하니 그보다 훨씬 오래 걸리는 것 같았다.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았을 때 기름도 넣을겸 저녁도 먹을겸 고속도로에서 살짝 빠져나갔다. 닭 그림이 그려져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잭스비’라는 프랜차이즈 식당인데 그 곳에서 가까운 몇 군데에만 지점이 있는 모양이다. 이것저것 메뉴를 골라 먹었다. 처음부터 느끼는 것이지만 미국 음식들은 왜 이렇게 짠지 모르겠다. 그저 한 끼 때운다는 생각으로 저녁을 먹고 또 윌슨을 향해 달렸다.
거의 10시가 넘어서 도착한 것 같다. 인터넷 몇 개 사이트를 뒤져 찾았던 컨트리인 앤드 스윗 바이 칼슨(Country Inn & Suite by Carson, Wilson)을 찾아 들어갔다.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갔다. 모두들 장거리 여행에 지쳤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28시간이 넘는 시간을 비행하고 운전하여 왔다. 내일부터는 이모와 사촌들을 만나고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그렇게 긴 여행의 힘들고 길었던 첫 날이 지나갔다.
첫댓글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잘 놀다 왔지... ㅎ
자세히 써주시니 너무 좋습니다. 음식도 푸짐하고 숙소도 고급스럽네요.
불편한 좌석과 렌터카에 제 몸이 다 옥죄는 거 같은데 여행에 대한 설레임과 즐거움으로 충분히 보상되는 것 같습니다. Go for it !
LoBo님 응원에 힘입어 열심히 올려 보겠습니다. ^^
긴 여행기인데도 술술 쉽게 잘 읽혀요
글을 잘 쓰셔서 그런가 봐요
긴 비행시간에 놀라고 또 장거리 운행에 놀라고
그럼에도 안전하게 잘 다녀오셔서 정말 좋아요
잘생긴 일한형제 열일 하네요~ㅎ
다음 편도 기대되지만 너무 무리하시지 말고 쉬엄쉬엄 올려 주세요
글을 잘 쓰지는 못하지만 열심히는 올려 볼게요.
읽어주시니 감사합니다. ^^
짝! 짝! 짝! 짝! 짝! ~~~ 잘 다녀왔네요^^;
사진이 적어 쪼메 아쉬웠지만 너무 보기좋네요
비즈니스로 예약할려면 마일리지 얼마나 모아야 할까요? ㅎㅎㅎㅎ
첫날은 거의 이동만 해서 사진 찍을 정신도 없었어요.
앞으로는 조금 더 많은 사진 올릴게요.
미주노선 비즈니스석은 왕복 12만 5천 마일리지가 필요해요.
업그레이드는 왕복 8마일이면 되는데 이왕이면 12만 5천 마일을 모아 왕복으로 세금과 수수료 등 몇 만원만 내면 되니 훨씬 유리한 것 같아요. ^^
@Roosevelt 헐 ㅎㅎㅎ 이제 30,000 모았는데 ㅎㅎ 어림도없네요ㅜㅜ
다음편 기대할께요 형님 ^^;
@달려라포비 부모, 형제, 배우자, 사위, 며느리, 자식, 손주 등 마일리지 모두 합산 가능하니 잘 모아봐요. ^^
사진도 사진이지만~~~~
정성스런 여행기에 감탄하게 되네요~
잘 보고 갑니다^^
명절 잘 보내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즐겁고 행복한 설연휴 보내세요.
긴 비행에 이어서 장거리 육로 여행을 잘 견뎌내셨군요~^^
제가 꽤 건강하다는 것을 실감한 여행이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