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가 떠난 후 폐허가 되어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유령도시가 된 런던은
660여년경 색슨족에의해 다시 소생한다.
이때부터 튜더왕조가 시작되는 1485년까지를 중세라고 한다.
로마가 지배하던 시기가 지나고 색슨족,바이킹,노르만족의 지배를 거치면서
국교가 바뀌고 민주주의의 기반이 쌓이고
세인트 폴 대성당,웨스트민스터 사원,런던 타워등의 세계적인 유적지가 지어진다.
604년 로마에서 보내진 수도사 Mellitus가 런던에 도착했을 때
런던은 로마시대의 바스하우스와 원형극장은 잔해만 남아 있고 ,
공회당이나 마켓은 돼지우리가 되어 있었으며,
런던인들은 라틴어를 잊고 토가를 벗은 채 무속신앙과 미개의 세계로 돌아가 있었다.
런던을 다시 살리고 문명화시키기로
마음을 굳게 먹은 Mellitus는
영국 동부의 애설버트왕과 새버트왕을 설득하여 예전의 달의 신 다이애나의 신전이 있던 자리에
작은 나무예배당을 지었다.
성 바울(세인트 폴/ St Paul)에게 바쳐진
이 예배당은
오늘날 세인트 폴 대성당(St Paul's Cathedral)의 시초가 되었다.
하지만 무속신앙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었던
7세기 런던에서 기독교의 위치는 위태로왔고 ,
616년과 618년 애설버트왕과 새버트왕이
세상을 떠나자
Mellitus는 후원자를 잃고
런던에서 쫓겨나게된다.
영국을 대표하는 수석대교주가
런던이 아닌 캔터베리에 자리잡은 것도,
이때 런던이 로마의 선교사들에게
얼마나 공격적이 었는 지를 보여준다.
로마가 떠난 영국에는
라틴어를 쓰며 본인들이 우월하다고 생각했던 로마에서 건너온 사람들과
로마 식민지 이전부터 살던
켈트말을 쓰는 켈트족 토종이 있었다.
이들은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피터지게 싸웠다.
저 멀리 독일에 있던 Saxon족에게는 희소식이었고 혼란스러운 틈을 타 영국을 침략한 Saxson족은
로마 교포와 켈트족을 노예로 삼거나 서부(웨일즈와 콘윌)와 북부(스코틀랜드 )로 몰아내고,
중남부 지역에 Northumbria, Mercia, East Anlia, Essex, Kent, Sussex, Wessex라는 왕국들을 세웠다.
Saxson족은 게르만족의 일파로
선천적으로 도시생활이 적성이 맞지않아 농장중심으로생활했던 사람들이었다.
미신적인이유로
로마시대에 돌로 지어진 건축물들의 잔해들이 신성하지 못하다 하여
그들은 론디니움을 버리고
서쪽으로 이동하여
오늘날 스트랜드.코벤트가든과 올드위치 지역에 런든윅Lundenwic이라는 마을을 설립한다.
Lunden은 런던 이고 -wic은 항구를 뜻하는 접마사이다.
항구의 도시,런든읙의 존재는 코벤트 가든 근처에서 발굴된 60여 채의 집이 있었던 길이 증명한다.
조수차가 커서 큰 배들이 드나들 수 있었던 런든윅은 론디니움의 뒤를 이어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모직을 수출하고 북해를 통해 수입품을 들여오며
북해 연안의 상인들로 붐비던 런든윅을
당시 기록은 '육지와바다를 통해 많은 나라들이 모이는 엠포리엄'이라고 표현했다.
이렇게 로마가 떠나고 인구 천 명 이하의 암흑의 도시로 전락했던 런던은 런든윅의 발전으로 인구 8000명의 도시로 다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런든윅이 번창하고 있을 무렵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노르웨이 와 덴마크에서는 바이킹들이 활약하고 있었다.
일부다처제로 인구가 폭증해서 영토를 확장했어야 했는 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 지 모르나 런든윅으로활발해진 영국이 바이킹들의 관심사로 들어왔다.
뿔달린 투구를 쓴 바이킹들은 양쪽 끝이 뾰족하게 올라간 좁은 배를 타고 섬뜩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영국을 향해 노를 저었다.
영국을 침략하여 기존의 사람들을 서쪽과 북쪽으로 쫓아냈던 Saxson족도 잔인하였지만 게르만족의 한 파였던 바이킹족은 노르만족에 속하는 북방민족으로 Saxson족과 비슷한 핏줄이었으나 훨씬 더 잔인한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기록을 보면 '바이킹들에게 강간당하고 죽은 여자와 남자들의 피가 개울처럼 흘러 템즈강으로 내려갔다.'라고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바이킹들의 잦은 침략으로 북해가 혼란스워져
무역이 타격을 입으면서
AD 886년경에는 런든윅도 쇠퇴하고 만다.
바이킹들은 도시를 만드는데는 관심이 없고
파괴할 줄만 알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너무 늦기전에 도시를 회복시키는데 관심이 있었던 알프레드 대왕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