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B: Yahweh 든 Jehovah 든 Allah 든 일신교인 Judaism, Christianity 그리고 Islam 에서는 God the Creator, 창조주의 존재를 인정하고 시작하는것, i.e.
유대교의 Torah 그리고 기독교의 성경 (구약) 또한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의 선포로 시작되는데
'Be healed and Rise' 가 아닌 'Rise and be healed' 라고 명하신 예수님의 말에서 나타나듯이
오직 faith 의 첫걸음을 통해서 획득가능하다는 믿음이
신약의 구원 + 영생의 조건일텐데 조건의 차이 그리고
예수님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서 시작은 같다고 보아도 무방한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들은 각기
해석이 다른것이 지난 2000년 서양의 역사, history = His story 라고 하는것 또한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는 사견.
효진: 당신은 왜 종교를 믿지?. 하고 물으면 각자 나름 이유가 있으리라.
성철큰스님에게 왜 불교를 유독 가까이 하고 있느냐고.. 편견이 아니냐는 식으로 묻자..
불교보다 더 바르고 옳은 게 있으면 지금이라도 그것을 당장 따를 것이다 라고..
불교 역시 종교인지라 믿음을 우선하는 자들이 많지만.. 바른 불자라면 이해를 우선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성철스님 경우 'Be understand and follow'로 보인다.
므로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Credo quia absurdum est)"라는 선언은 그와 같은 불자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불합리하게 보이는 것은 그대 자신의 무지 때문일 뿐, 그런 수준이라면 따지지 말고 믿으라"라고 할 것 같다.
세존이 신의 스승이 될 수 있는 것은 그럴만한 조건이 있기 때문이지.. 그냥 우연히 어거지로 그리 된 게 아니다.
그 말은 서양사를 '히이즈 스토리^^'로 보는 것 역시 마찬가지.
종교 전쟁의 본질은 탐욕이다.
자기들 탐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들은 기독교를 명목으로 사용했을 뿐이다.
예수님은 탐욕을 버리라고 가르쳤지만, 그들은 탐욕을 위해 예수님 이름을 도용한 것이다.
그러니 서양사는 말하자면 His story가 아니 Anti-His story라고 해야 한다.
한국에서 지식인들은 기독교를 비판하고 있다.
왜냐면 기독교인이란 가면을 쓰고 Anti-His story를 만들어 가는 짓을 하고 있기 때문에..
버지니아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다는 양00 동과 통화를 했는데..
그는 말하더라.. 주위에 제대로 된 목회자는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보이지 않아 자기가 나서게 되었다고..
나는 친구의 말을 믿는다. 다만 현실은 제대로 된 목회자가 되도록 그냥 두지 않는 탐욕의 사회다.
불교는 대승불교와 소승불교가 있는데..
소승불교는 근본주의적인 불교로 남아시아 지역에서,
대승불교는 이타행인 보살행을 강조하며 동아시아 지역에서 전해진다고 배웠으리라.
저 내용은 반은 맞지만 반은 헛소리다.
헛소리라고 엄청 비판하는 이유는..
이해를 우선하며 실천하는 불교를 소승불교라 하고, 믿음을 우선하며 실천하는 불교를 대승불교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철스님처럼 이해를 우선하면 소승불자가 되기 쉽다. 우리 엄마처럼 선행을 우선하면 대승불자고..
소승이냐 대승이냐는 '무엇이 목적이며, 지금 여기서 무엇을 실천하느냐'로 구분될 뿐이지 인도인, 한국인으로 구분되는 게 아니다.
나이 팔순이 된 어느 노스님이 어제까지 참선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별안간 아미타불 염불을 시작했다고 한다.
왜냐고 물으니.. 지금까지는 여기서 부처가 되려고 노력했는데..
이 생에서 그것은 너무 어렵다고 판단해 이제부터는 극락 가기를 기원하며 살기로 했네 하더란다.
팔십까지 소승불자로 살다가 이제 대승불자로 변한 게 된다.
대승불교는 기독교와 비슷한 점이 많다.^^.
어느 정도이냐면 썩은 목회자가 많듯이 썩은 중들이 많다 ㅎㅎㅎ.
보살행을 하라고 했더니 자기 이익만 우선 챙기는 불자들이 더더 많다.
스님 법문을 듣다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4성제를 설명하다가 끝에 이르러 보시와 선행을 힘써 하시십시오 로 끝을 맺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잘못된 설법은 아니지만.. 소승법이 나중에는 대승법으로 바뀐 것을 알아채야 한다.
며칠 전 자기 누나 보이 프랜드를 살해하여 100년 형을 받고 감옥에 있다가.. 30년 감형으로 자유인이 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여기서 대단하게 본 것은.. 그의 감형을 위해 애를 쓰고, 그를 30년 동안 뒷바라지를 한 분들이 있다는 것.
XX 교회 장로님은 그를 양자로 삼고 그 분과 동료들이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빛으로 사시는 분들이 있구나!
할렐루야.. 아니 관.셈!.()^^.
가슴이 설레며 눈물이 뭉클한다.. 고맙습니다.().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난 욕심으로 설치는 목회자를 종종 비판하는데 한편에서는 저만큼 선량한 행동을 실천하는 분들이 계신다.().
불합리하면 어떠리 실천이 저리 고운데..^^
우리는 합리적인 비판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우선하는 선행은 그 무엇도 덮어 버린다. 무려 30년을!.
부처는 신들의 스승이라고 상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행이란 실천을 마주하면.. 대낮에 등불일 뿐이다.
부처님은 신의 스승이지만.. 기독교 신자들의 선행에 불자들은 고개를 숙이고 합장한다.().
단, 불합리는 당신의 무지일 뿐.. 사실이 그런 것은 아니다.
고로 "믿음을 넘어선 이해가 있다.
그것이 불교다."
<잡. 214. 2법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