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亂中日記)-82 난중일기 을미년(1595년) 3월
난중일기 을미년(1595년) 3월
1일 갑술. 맑음. 삼도의 겨울을 지낸 군사들을 모아 임금님께서 하사하신 무명을 나누어 주었다. 조방장 정응운이 들어왔다.
2일 을해 흐림.
3일 병자 맑음.
4일 정축. 맑음. 조방장 박종남이 들어왔다.
5일 무인. 비가 내림. 노대해(盧大海)가 왔다.
6일 기묘 맑음.
7일 경진. 맑음. 조방장 박종남, 조방장 신,호 우후 이몽구와 진도 군수 박인룡이 와서 만났다. 우수사 이억기가 만나러 왔다. 정원명과 순천 군관의 일로 말 기운과 낯빛이 매우 급하니 우습다.(일기초)
8일 신사. 맑음. 식사 후에 대청으로 나갔다. 우수사, 경상 수사 배설, 두 조방장 박종남, 신호 ,우후 이몽구, 가리포 첨사, 낙안 군수, 보성 군수, 광양 현감, 녹도 만호가 함께 모여 이야기했다.
9일 임오. 맑음. 늦게 대청으로 나갔다. 방답의 새 첨사 장린(張鱗), 옥포의 새 만호 이담(李曇)이 공사례를 행했다. 진주의 이곤변(李坤忭)이 와서 만나고 돌아갔다.
10일 계미. 흐리고 가랑비가 내렸다. 조방장 박종남과 이야기했다. 보성 군수 안흥국이 보고하고 돌아갔다.
11일 갑신. 흐리고 가랑비가 내렸다. 사도사(司導寺) 주부(主簿) 조형도(趙亨道)가 와서 전라좌도에 있는 왜적의 형세와 투항한 왜군이 보고한 내용을 전하였다. 그 내용은 "풍신수길이 삼 년 동안 군사들을 내보냈지만 끝내 성과가 없으므로 군사를 더 내어 바다를 건너와 부산에다 진영을 설치하려고 하는데 3월 11일에 바다를 건너 오기로 이미 정했다"는 것이었다.
12일 을유. 흐림. 박 조방장과 우후 이몽구가 장기를 두었다.
13일 병술. 흐리고 큰 바람이 불었다. 아침에 박자윤(박종남) 영공을 불러서 함께 밥을 먹었다. 저녁 식사 후에 조형도가 와서 만나고 돌아갔다.
14일 정해. 비는 계속내리고 바람은그쳤다. 남해 현령 기효근이 진에 도착했다.
15일 무자. 비가 잠간 그치고 바람도 잤다. 식후에 조형도가 돌아간다고 고했다. 늦게 활을 쏘았다.
16일 기축. 비가 내림. 사도 첨사 김완이 들어왔다. 그에게 들으니 전 충청수사 이임부(李立夫)가 군량미 이백여 섬 때문에 조도 어사 강첨(姜籤)에게 붙잡혀 심문당했다고 했다. 그의 사돈 이호문(李好問)도 붙잡혔다고 한다.(일기초) 또 충청의 새 수사 이계정(李繼鄭)은 배 위에서 불을 내었다고 하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동지(同知) 권준이 본영에 왔다고 했다.
17일 경인. 비가 걷힐 듯하다. 아들 면이 허주(許宙), 박인영(朴仁英)등과 함께 돌아갔다. 오늘 군량을 계산하여 표를 붙였다. 충청 수사 원유남이 급히 보고하기를 "수사 이계정이 불을 내고 물에 빠져 죽었으며 군관과 격군 도합 백사십여 명이 불에 타 죽었다"고 하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늦게 우수사가 급히 보고하기를 "견내량의 복병한 곳에서 온 항복한 왜인 심안은기(沈安隱己: 시미츠)를 문초했더니 그 자는 본시 영등포에 있던 왜놈인데 그의 장수 심안둔(沈安頓)이 그의 아들을 대신 세우고 가까운 시일에 본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한다"고 했다.
18일 신묘. 맑음. 권언경(權彦卿)과 아우 여필, 조카 봉, 이수원 등이들어왔다. 그 편에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는 말을 들으니 매우 기쁘고 다행이다. 우수사가 와서 이야기했다.
19일 임진. 맑음. 권엉경 영공과 함께 활을 쏘았다.
20일 계사. 비가 계속 내렸다. 식후에 우수사 에게로 가다가 길에서 배 수사를 만나 배위에서 잠깐 이야기했다. 그는 밀포(密浦)의둔전 만들 곳을 살펴볼 일로 돌아간다고 보고했다. 그길로 우수사가 있는 곳으로 가서 몹시 취하고 저물어서 돌아왔다.
21일 갑오. 맑음. 늦게 아우 여필, 조카 봉, 이수원이 돌아갔다. 나주반자(羅州半刺) 원종의와 우후 이몽구가 와서 만났다. 정오에 조방장 박종남에게 가서 바둑을 우었다.
22일 을미. 동풍이 세게 불었다. 아침에는 흐리다가 늦게 갰다. 세 조방장과 함께 활을 쏘았다. 우수사가 와서 함께 활을 쏘았다. 날이 저물어 헤어져 돌아왔다.
23일 신병.맑음.아침 식사 후에 세 조방장 및 우후와 함께 걸어서 앞산에 오르니 삼면의 전망이 막힌 데가 없고 북쪽 길이 훤하게 트여 있었다.과녁 세울 자리를 설치하고 앉을 자리를 넓게 만들어 놓고 종일토록 돌아올 것을 잊었다.
24일 정유. 흐렸으나 바람은 없었다. 공문을 처리했다. 늦게 세 조방장과 함께 활을 쏘았다. 우수사 이억기는 공무를 볼 청당을 개수하여 세우는 것을 나쁘게 여기고 헛소리를 많이 하며 보고하러 왔다. 매우 놀랍다.(일기초)
25일 무술. 종일 비가 내렸다. 권동지(權同知:권준)와 우후, 남도포 만호, 나주 반자가 와서 만났다. 영광 군수 정연(丁淵)도 왔다. 권동지와 장기를 두었는데 권준이 이겼다, 저녁에 몸이 몹시 불편했는데 닭이 울어서야 열이 조금 내리고 땀이 흐르지 않았다.
26일 기해. 맑음. 영광 군수가 나갔다. 늦게 신호 박종남 두 조방장 및 우후화 함께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저녁에 배수사, 이운룡, 안위가 와서 새 감사 맞이할 일을 고하고 사랑으로 갔다. 이경에 동쪽이 어둡다가 밝아지니 무슨 상서로운 조짐인지 모르겠다.
27일 경자. 맑음. 식후에 우수사가 여기 와서 종일 활을 쏘았다. 어두울 무렵 박 조방장에게로 가서 발포 만호, 사도 첨사, 녹도 만호를 불러서 함께 이야기하다가 헤어졌다. 탐후선이 들어왔다. 표마(表馬)와 종 금이가 들어왔는데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고 한다.
28일 신축. 맑음. 활 여남은 순을 쏘았다. 늦게 사도 첨사가 와서 보고하기를 "각 포구의 병부(兵符)를 순찰사의 공문에 의거하여 각 포구에 직접 나누어 주었다"고 했다.그 연유를 알 수 없다.
29일 임인. 맑음. 식후에 두 조방장, 이운룡, 조계종과 함께 활 스물세 순을 쏘았다. 배수사가 순찰사 처소에서 오고 미조항 첨사 성윤문도 진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