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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연은 참으로 소중 하다.
오래된 인연이든 짧은 인연이든
혹은 잠시 스쳐 지나갈 인연이든.
오늘은 오랫동안 벼르던 부산 독서 모임과의 야외 나드리가 있는 날.
태안에 살 때에는 독서회 회원들과 한 달에 한 번씩 꼬박
모임도 갖고 모임 후 뒤풀이도 빠트리는 법이 거의 없었다.
처음 태안으로 이사를 했을 당시에는
잠시 바닷가가 가까운 충청도에 살아 볼 요량이라
주위 이웃이나 이런저런 모임의 사람들과 깊게 사귀게 되리라
생각도 못했다.
그저 불가원불가근이란 말 그대로
가깝게도 멀게도 지내지 않으면서
객지 사람으로서 토박이 이웃들의 지역 인심이나 풍토를 좀 알고 싶은 것 뿐
사람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정이 많은 탓일까
타지인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탓일까
이 사람은 글짓기 반을 소개 해 줬고
저 사람은 지역 전통 문화반을 소개해 줬다.
함께 배우자면서.
나 혼자서는 민요반도들어 가고 오카리나도 신청 하면서.
그러다가 우연히 글짓기 반에서 함께 공부하던 젊은 여성의 안내를 받아
태안 독서회에 가입하게 되었다.
회원은 20대에서 70대까지 참으로 그 층이 다양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화기애애하게 공부도 하고 연구도 하고
열띈 토론도 마다치 않았다.
아마 그랬기에 모임 후 거의 빠짐없이 뒷풀이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또한 그 뒤풀이에 빠진 사람도 거의 없었다.
어쩜 나와 몇 몇은 그 뒤풀이가 좋아 더욱 더 독서모임에
빠져들지 않았을까.
그 때문 이었을까
원래는 2~3년 정도만 살고 빠져 나오려던 태안살이가
의도와는 다르게 거의 6년 가까이 살다가 자식들이 있고
형제가 있고
내 젊은 날의 추억이 고스란히 살아 숨쉬고 있는
고향 부산으로 오게 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처음 의도대로 2~3년만 태안에 살았더라면
부산으로 오지 않고 또 다른 객지를 찾아 떠났으리라.
부산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도
곧장 평생학습관을 찾았다.
만약에 태안에서의 학습관 생활이나 모임들이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면
부산에 와서는 그다지 평생학습관이나 이런저런 모임에 관심을
갖지 않았으리라.
부산에 온 후에 처음 신청한 것이 일본어 중급반과 글짓기 반이다.
두 과목 다 흥미가 있고 재미도 있고
또한 내게는 실용성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은 또한 새롭게 시작된 나의 부산살이에 일상의 즐거움을 나누어 주는
인연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한 달에 한 번 혹은 두 번을 만나 식사도 하고
커피나 차도 함께 마시는 사이가 되었다.
물론 독서와 글짓기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토론도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역시 가장 좋은 것은 그들과 함께 나드리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갖게 된 것이 오늘의 모임.
창녕 남지 유채꽃밭과 능수벚꽃 길을 보러 가는 길이다.
남지 유채꽃밭은 30만평이나 된다고 하니
단일 유채꽃밭 규모로는 전국에서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날씨도 참 좋다.
어제는 봄비 치고는 유난스럽게 그 양도 많고 바람도 심하게 불며
종일 그칠 줄 모르게 내렸는 데
다행히도 일기예보대로 아침이 되니 환하게 개였다.
다만 황사가 아주 조금 있다.
그나마 그래도 부산이 전국에서 황사가 가장 약한 편이다.
다른 지역은 거의 100이상 넘어 갔는 데
부산은 30을 좀 넘었지만 40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오늘 모임에 참여한 인원도 적당하다.
늘 그렇지만 총 인원은 15명 가까이 되지만
참여 인원은 태안 독서회에 비해 아주 우수한 편은 아니다.
그나마 오늘 6명이 가기로 되어 있었는 데
한 명이 사정상 참여 못하여 5명이 가게 되었다.
그 다섯 명도 일부는 동아대 병원에서 출발하고
일부는 하단역에서 출발 하여 칠서 후게소에서 합류 하였다.
드디어 도착한 남지 개버리 유채꽃 밭.
한눈에 봐도 광활 하다.
어찌나 넓은 지 들판이 눈 안에 다 들어 오지 않는다.
그래도 가장 눈에 띄는 건 사진에도 소개되는 입구의 풍차 모형이다.
그리고 가장 많이 심혈을 기울인 것은 어린아이와 그 가족들이 좋아할 듯한
조형물들이다.
그러나 역시 내 눈에 들어 오는 것들은
자연이 주는 풍경과 그 조화로움이다.
아직 겨울인 풍경과
봄이 훌쩍 다가온 풍경의 어울림이 주는 평화로움.
그 평화로움을 즐기는 게 그저 좋다.
아무 생각도 없다.
이럴 때는 함께 한 동행도 이미 머리에서 사라진 지도 오래다.
그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아무 상관도 없다.
그들은 그들의 행복을 누리고 나는 나의 즐거움을 갖는다.
이 곳에서는 그 무엇도 찾을 필요가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즐기고
보이는 그대로를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만 해도 충분히 행복은 우리 곁에 있는 것이다.
여기서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을
내가 사는 세상 그 어디에서 더 찾아 볼 수가 없을 것 같다.
잘 왔다.
참 잘왔다.
넋을 놓은 채 남지 유채꽃 밭을 여기저기 떠돈 후
약간의 허기를 느낀 우리는 근처 식당으로 찾아 가
각자의 입맛대로 메뉴를 골랐다.
나의 메뉴는 육회 비빔밥.
그리고 인심 좋은 이웃이 나누어 준 고기 몇 점.
점심은 내가 쏘기로 했다.
지난 번 모임 때 대접 받기도 했고
오늘도 차를 얻어 탄 데다가 이 멋진 곳을 데려 와 주셨으니
어찌 내가 가만히 있을 수가있겠는가.
식사를 한 후에는 차를 마시러 갔다.
카페에 가는 대신 이 곳을 우리들에게 소개해 주고
또 아침 나를 이곳까지 태워다 주신 분의 집으로 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 분의 세컨드 하우스다.
일주일에 이틀 정도 부인과 이 곳에서 지낸다고 한다.
나마지는 다대포에서 주업을 하며 생활 한다고 한다.
아직 그다지 가깝지 않은 사이라 서로의 신상을
깊이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겉모습으로만 언뜻 보아도 사람의 부드럽고 푸근한 인품이 드러 난다.
그렇게 식사와 차를 마신 후 우리가 찾아간 곳은
수양(능수)벚꽃길이다.
수양 벚나무.
한 두 그루씩 띄엄 띄엄 있는 것은 그 동안 수도 없이
여기 저기서 보아 왔지만 이처럼
긴 길이 능수벚나무로 이루어진 곳을 보기는 이 곳이 처음이다.
더구나 수양 밪나무는 일반 벚나무보다 그 꽃이 며칠 일찍 피어 나기에
이미 꽃이 활짝 피었다.
어느 한 나무 아직 꽃이 피지 않은 나무가 없다.
그래서일까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찾아 왔고
그 고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느라고 정신이 없다.
물론 나도 그렇다.
나드리 객의 대부분이 여성들이다.
꽃보다 더 고운.
꽃을 보랴
이 고운 여성들을 보랴.
그러나 꽃을 보러 왔으니
아름다운 여성들 보다 역시 화려하고 예쁜 연분홍색 벚꽃에 더 눈이 간다.
이 아름다운 능수벚꽃 무리를 언제 어디서 다시 볼 수가 있을까.
개비리 수양벚꽃길을 한 시간 가량 거닌 후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만년교와 항미정이다.
만년교와 항미정은 서로가 약 2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먼저 찾아 간 곳은 만년교다.
이 곳 역시 수양버들 대신 수양벚꽃이 그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주말에는 얼마나 많은 관광객들로 가득할까
한 눈에 그 풍경이 다 그려 진다.
그림이 주는 풍경보다 더 아름답고 평화롭다.
근처에 있는 자목련도 활짝 피었다.
자목련은 흰목련보다 대체로 늦게 피는 편이다.
꽤 많이.
그런데도 올 해는
자목련도 여기 저기에서 일찍 그 모습을 드러낸 게 보인다.
큰 돌을 사타구니에 감싸고 있는 우람한 나무 뿌리.
그 또한 주변 풍광이 나누어 주는 덤이다.
만년교를 한바퀴 돈 후 찾아 간 항미정.
한 시야에 들어 오는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다.
이 곳 역시 분홍빛깔 능수 벚나무로 군락을 이루고 있다.
봄날에 더욱 빛나는 분홍의 아름다움.
봄은 그래서 분홍인가 보다.
호숫가 발길 가는 곳마다 치렁치렁 늘어진 꽃가지.
주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오직 능수벚꽃 가지 뿐이다.
다른 것은 보여도 보이지 않는다.
집에 와서도 긴 여운이 남는 오늘 하루.
내내 눈 앞에는 치렁치렁한 꽃가지와
연분홍빛 능수벚꽃만 아른 거린다.
아울러 내게 주어진 인연들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