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귀신들 - 죽었지만 죽은 것이 아닌 존재
모든 자연물들에는 에너지라 할 수 있는 '기(氣)'가 흐른다. 기(氣)는 정령(精靈)을 이루어 사물이나 현상의 특성을 규정짓는 원리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정령은 다시 혼(魂)과 백(魄)으로 나뉘는데, 각자 양과 음의 성질을 띠고 있다. 혼백이 조화를 이루어 모든 자연에는 음양이 조화되고 살아 움직이게 된다.
이 혼백의 조화가 깨어져 생긴 귀신은 음기(陰氣)를 지닌 귀(鬼)와 양기(陽氣)를 지닌 신(神)이 결합된 말이나, 대개는 전자의 것으로 일컬어진다. 이러한 좁은 의미의 귀신은 죽은 자의 영혼이며, 서양의 유령(ghost)에 해당된다. 죽어서 된 귀신들도 그 영적 능력에 따라 신령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귀'는 음허(陰虛)한 기운이 가득하나, '신'이나 '신령'은 대개 양기가 충만하다. 물론 신령 중에서도 죽은 귀신이 신격화된 것은 음하나 사람의 기운을 해치는 악한 것이 아니다. 또한 귀신이라도 아주 크게 '사고'를 치면 대접을 받게 된다.
이승에 근본을 두지 않고 사악한 짓을 하는 마귀(魔鬼·devil or evil)도 귀신이라 하는데, 우리는 마귀라는 말을 잘 쓰지 않고 '사람에게 사악한 짓을 하는 귀신'이라는 악귀(惡鬼)로 통칭한다. 절대원리나 신의 의지 또는 그러한 우주질서 혹은 그 경지에 도달하려는 수도자의 의지에 반하는 모든 현상과 실체가 마귀다. 따라서 선악의 개념이 분명한 종교적 색채가 강한 귀신들을 일컫는 용어다. 우리 나라에서는 불가에서조차 마귀라는 용어보다는 악귀라는 용어가 더욱 일반적이다.
- 객귀(客鬼·Univited Ghost) - 객사귀(客死鬼)
집이 아닌 밖에서 떠돌다가 죽은 자가 원귀가 된 것. 우리 조상들은 멀리 밖에서 죽은 시체는 아무리 가족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집안으로 들여놓지 않았다. 간소하더라도 그 죽은 자리에서 원혼을 달래주는 의식을 치른 뒤라야 비로소 들여놓는다. 바로 객귀가 붙기를 염려하기 때문이다. 객귀들은 일단 아무한테나 붙으려 하는 빙의(憑依)의 습성을 보이는 대표적인 귀신이다. 객귀는 서열이 낮기 때문에 객귀에 붙은 자가 집에 들어올 때, '고수레'를 하면 대부분 떨어진다.
그렇다면, 빙의나 해코지를 퇴치하는 고수레는 어떻게 하는가? 밥 그리고 맵거나 짜지 않은 담백한 찬 등을 박 바가지 혹은 흰 종이에 담아 한쪽에 놓아두거나, 멀리 던지며 '고수레!' 하고 외친다. 고수레라는 것은 '내가 이렇게 밥을 줄 테니, 잡귀들은 어서 빨리 오라'는 신호다. 이렇게 고수레로 객귀들을 달래서 내보내는 것이다. 고수레의 설에 대해서는 원래 '고시례'로서 한민족의 시조인 단군에 의해 농업을 관장한 '고시'에 대한 제사에서 비롯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 걸귀(乞鬼·Begger Ghost) - 걸신(乞神)·아사귀(餓死鬼)
걸귀란 빌어먹다 죽은 자로, 과도한 식탐이 특징이다. 가장 완벽한 이력을 지닌 걸귀는 평생을 거지처럼 빌어먹다가 굶어죽은 귀신이라 할 수 있다. 옛날에는 보릿고개라는 게 있어 양민이라도 굶어죽은 사람들이 많았으니, 그런 사람들도 이 불쌍하고 배고픈 조직의 일원이 된다. 걸귀는 이승의 못된 짓으로 저주받아 된 '아귀(餓鬼)'와는 이력도 다르고 증상도 비교적 가볍다. 걸귀에 들리면 일단 심한 허기가 찾아오고 비정상적인 식탐으로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한다. 먹는 모습이 복스럽기는커녕 추잡하고 게걸스러운 것이 특징이다.
걸귀는 일단 배가 채워지면 그 사람 몸에서 떠난다. 그러나 떠나는 즉시 다시 배가 고파지므로, 다시 다른 사람 몸에 달라붙는다. 걸귀는 굳이 퇴치할 필요가 없다. 평소의 식생활 습관을 바르게 가지고 심신을 안정시키면 걸귀에 들리지 않는다.
- 그슨대(Gu Seun Dae) - 어덕서니
도깨비과 정령으로, 캄캄한 길에 갑자기 나타나 상대가 쳐다보면 계속 커진다. 계속 쳐다보다간 결국 그슨대에게 눌려 죽게 된다. 귀신 특유의 마력이 있어서, 보는 사람은 눈을 떼기가 쉽지 않다. 정신을 가다듬어 눈을 마주치는 것을 피하고 무시하여 지나치는 것이 상책이다. 이런 류는 중국이나 일본의 귀신 요괴들에게도 많다.
죽어서 된 귀신은 대개 원귀(冤鬼)라 일정한 인과관계가 성립하나, 자연발생적이며 저급한 정령귀신인 경우는 아무런 이유도 없는 자폐적 행동을 반복하는 사례가 많으며, 육체적 특성이 분명하면 대개 요괴로 분류된다. 그슨대가 사람을 해치는 반면에, 어덕서니는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고 한다.
- 나무귀신(Old Tree Ghost)
나무귀신은 나무정령귀로, 사람들이 가장 경계해야 될 귀신 중의 하나다. 양기가 충만한 고목은 신령으로서 도당목(都堂木) 혹은 서낭나무 등에게 마을 사람들에게 존경과 보살핌을 받는다. 그러나 나무귀신은 요사스러운 기운 때문에 온갖 악귀 잡귀들의 소굴이 된다. 신령으로서의 나무와 귀신으로서의 나무를 구분하는 것은 이처럼 양기와 음기이다.
도당목은 큰길 가 마을의 입구나 볕이 적절히 드는 곳에 수 세기 동안 마을을 지켜온 나무로, 사람이 기대면 편안하고 좋은 기운이 돋고 그 그늘 아래 있으면 상쾌해진다. 반면에 나무귀신은 주로 깊은 산속이나 길이 나 있지 않은 음습한 곳에 자리잡고 인적과 동떨어져 있다. 나무귀신은 그 기운이 몹시 음하고 차므로 검은 빛이 돌며, 기대면 기운이 빠지고 온갖 음한 기운들을 끌어들이는 성질이 있다. 특히 그 그늘 아래는 귀신들이 놀기 좋아하는 자리라서 아주 위험하다.
신령이나 악귀가 깃든 나무는 주로 향나무(상나무라기도 함)다. 그 향이 악귀를 물리친다 하여 오래되고 양한 기운을 띠면 신령이 되는 게 보통인데, 간혹 주위의 불길한 풍수 때문에 음허한 기운을 띠어서 나무귀신이 된다. 산에 오른 자가 무심코 그 나뭇가지만 부러뜨려도, 온갖 잡귀가 묻어와서 시름시름 앓게 된다. 몹쓸 나무라고 당장 도끼를 들고 올라가 베거나 태워버리면 불난 집에 더욱 기름 들이붓는 격이라, 고급 무당이나 퇴마사를 불러서 크게 한바탕 푸닥거리를 해야 한다.
- 무덤귀(骸骨鬼·Skeleton Ghost)
무덤귀는 무덤에서 발상하는 귀신이다. 사람들의 목격된 바, 형체가 뚜렷하다는 게 특징. 허나 그 몰골이 끔찍하여 사람에게 공포와 혐오감을 준다. 물리적인 힘을 강제하거나 사람 몸에 빙의하는 적극적인 해코지가 아니라, 그 처참한 몰골만으로도 사람들을 심장마비로 죽게 하는 게 특징이다. 무덤귀는 원귀의 일종으로, 후손들이 보살핌을 등한시하여 무덤이 손상되었거나 관에 물이 찬다거나 하는 이유 때문에 발생한다. 따라서 주술사의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서구의 좀비(zombi)와는 차원이 다르다 하겠다.
- 달걀귀신(Egg Face)
이목구비가 없이 얼굴형과 머리카락만 덩그러니 있는 얼굴이다. 달걀귀신의 얼굴을 본 사람은 반드시 죽는 것이 특징. 흔히 처녀귀신이라고 알고 있는데,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제사 지내 줄 자식이나 친인척이 없는데 한을 품은 원귀, 즉 무자귀(無子鬼)의 일종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달걀귀신에 대해서는 옛 문헌이나 귀신을 주제로 다룬 논문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다. 너구리가 얼굴 없는 여자귀신인 '무지나'로 변한다는 일본 설화가 유명하다. 아마도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구전되어 전래된 것일 수 있다).
- 달걀 도깨비(Egg Dokkebi)
도깨비과의 정령이다. 달걀 도깨비는 사람이 죽어서 된 원귀(寃鬼)인 달걀귀신과는 다르다. 달걀 도깨비는 몸 전체가 달걀처럼 생겼다. 별다른 해악도 끼치지 않는다. 그냥 생겨먹은 대로 데굴데굴 굴러다닐 뿐이다. 달걀 도깨비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인간이 죽어서 된 귀신은 사람의 그릇되고 복잡한 욕망을 간직하고 있지만, 자연물이나 도구에서 절로 생겨서 난 정령들은 사람이나 원귀처럼 복잡한 행동방식을 지니지 않는다. 달걀 도깨비는 썩어 방치된 달걀에서 생긴 정령이라고 짐작된다.
- 도깨비들(Dokkebi) - 김서방·허주(虛主)·독각귀(獨脚鬼)·이매망량·영감·도채비 등
도깨비는 삼국시대 이래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기록으로도 무수히 있어 왔지만 시대적으로도 그 형태가 일정하지 않다. 도깨비 방망이로 유명한 '방이 설화'에서 나타난 도깨비는 중국 《포박자》에 소개된 아기처럼 생긴 산정 도깨비 '소'와 닮아있으며, 조선의 민간에서는 감투를 썼던 것으로도 묘사된다. 또한 도깨비의 뿌리를 고대 동이의 군신(軍神) 치우천왕(蚩尤天王)에게 두고 있다는 등, 뿔이 한 개니 두 개니 또는 아예 없다는 등 관련된 가설들도 무성하다.
도깨비는 중국에도 있고 일본에도 있다. 중국인 일본인들이 우리와 생김이 별반 다르지 않지만 민족문화와 풍토에서 비롯된 천성에 차이가 있을진대, 도깨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외형적으로 우리의 도깨비를 규정짓기보다는 우리네에 친숙한 도깨비 특유의 천성으로 구분함이 바람직하다.
도깨비는 바위나 고목 등에서 생기는 자연발생적인 것, 부지깽이·호미·괭이·도리깨·빗자루 등 사람 손에 닿았던 농기구에서 생기는 것으로 나뉜다. 우리 나라에는 후자의 것이 많다. 사람의 손을 오래 탔으나, 결국 버려진 인간의 도구들은 처녀들의 생리혈이 묻으면 도깨비가 된다. 사람들처럼 지역색을 띠어 모습과 습성이 조금씩 틀리긴 하나, 자주 출현하는 도깨비는 그 생김이 인간과 유사하고 인상이 험악하며 더벅머리인데다가 힘이 장사이고, 이해관계를 잘 못 따지고 셈하는 능력이 낮으며 두 다리 중 하나는 허깨비 다리라 한다. 곡주(穀酒)와 수수팥떡을 좋아하며, 해코지만 하지 않고 경우에 따라선 사람에게 복을 내린다. 특히 미녀를 좋아하는 탓에 몰래 납치하여 동거에 들어가기도 한다.
가랑비가 내리는 칙칙한 날이나 해저물 무렵이면 도깨비불의 형태로 돌아다니다가 폐가나 깊은 산속 등 그들만의 아지트에 모여 노래와 춤을 즐기는데, 그 가무란 것이 실은 포악질에 엉거주춤이라 인간이 그 꼴을 본다면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을 정도로 형편없다.
인간에게 장난치기 좋아하는 도깨비들은 자신의 터가 있어 여기서 진을 치며 기다렸다가, 상대하기 만만한 사람이 지나갈 것 같으면 항상 시비를 건다. 시비가 놀이라면 대개 씨름으로 한판 붙잡고 하는데, 사람들은 홀려서 그런지 거부할 수 없고 대개 응하게 된다. 붙잡고 끙끙대다 보면 웬일인지 하룻밤을 꼬박 새게 되어 결국 지쳐 기절한다. 이런 도깨비 씨름에서 이기는 방법은 진짜 다리를 건다는 것인데, 한쪽 다리가 실은 허깨비 다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닥치면 정신 맑고 지혜로운 사람만이 이것을 아는 지라, 대부분 꼼짝없이 당하고 만다.
또한 도깨비는 초인적인 괴력과 신통력을 지니고 있는데, 정작 벌려놓은 짓거리를 보면 별 이유도 없고 산만하기가 그지없다. 이것은 그들의 천성이 순박하기 때문이다. 또한 도깨비는 일단 뭔 짓을 꾸미면, 지지부진하게 끌거나 오래 생각지 않고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을 저지른다. 소를 처마에 올려놓거나 논밭에 개똥을 잔뜩 쏟아 붓는 게 그들의 낙이다. 이처럼 사람들이 놀라는 걸 좋아하는 것은 아이들이 심한 장난을 쳐서 어른들의 관심을 끌려는 심보와 같다. 장난치기 좋아하는 도깨비는 인간이 버렸던 물건들에서 기인하는 것들이라, 인간의 곁에 은근히 머물고 싶어하는 본성이 있다.
- 동티귀(動土·Dong Ti)
동티는 신성(神性) 혹은 신체(神體)를 깬 것에 대한 저주이다. 가택신을 상징하여 만들어놓은 신체, 서낭나무 앞에 쌓인 돌탑, 제삿상이나 신주를 어지럽히면 동티에 걸린다. 어린아이들이 이런 장난이나 실수를 하기 쉬우므로, 동티에 들리는 것도 주로 어린아이들이다. 증상은 주로 자는 도중에 나타난다.
질병의 연유 없이 숨을 헐떡이고 괴로워하는데,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동티귀가 아이의 몸이나 꿈속에 들어가 해코지를 놓기 때문이다. 심약한 어린아이들이 이렇게 곧잘 죽으니, 그 해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가위에 눌리는 증상 혹은 가위귀의 일부도 이러한 동티귀와 유사하다. 동티살에 맞은 것을 풀기 위해서는 신성을 깬 곳에 가서 원래대로 회복시키고나서 치성을 드린다.
- 두억시니(Duwoksini) - 두옥신·야차(夜叉)
두억시니(혹은 두옥시니)는 원리 불교의 팔부신 중의 하나이나, 민간에서는 도깨비나 귀신의 일종으로 보고 그 특징도 많은 차이를 보인다. 두억시니는 덩치가 산만하며 외모가 험악하기 그지없다. 머리카락은 불 붙은 듯하고 눈이 온통 충혈되어 있고, 날카로운 손톱을 길게 기르고 있다. 성격도 포악하기 그지없다. 요술을 쓰기보다는 몽둥이나 주먹 따위로 화끈하게 때려 죽이는 걸 즐긴다.
- 몽달귀(MongDal) - 총각귀신·도령신
엄격하게는 일생에 한번 동정(童貞)을 떼지 못하고 죽은 원귀(寃鬼)가 원칙이나, 혼인 못하고 죽은 귀신도 포함된다. 옛날에는 혼인 전에는 남녀 모두 함부로 관계를 맺지 못하였으므로, 결혼을 못하면 곧 동정을 떼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몽달귀이나 처녀귀신은 비단 정욕으로 한이 맺혀 귀신이 된 것 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면 자연히 누려야 될 좋은 시절과 자기 자손을 갖지 못해 한이 들려서 원귀가 되었다는 관점이 옳다. 따라서 색마와 다름없는 정욕귀와는 구분된다. 도령신 혹은 도령귀는 몽달귀와 그 발생은 동일하나, 생전에 신분이 높았던 부류를 일컫는다. 몽달귀를 달래기 위해서는 처녀귀신과 영적으로 혼인하는 의식을 치러 주기도 한다.
- 물귀신(水鬼·Wather Ghost)
물에 빠져 죽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것이 있을까. 옛날에는 우물에 빠져 죽은 자도 종종 있었다. 고통스럽게 폐에 물이 차고 숨이 가빠 죽는 순간에 편히 눈을 감지 못하고, 제대로 화장을 하거나 무덤에 묻히는 것도 아니어서 어떤 비명횡사보다도 원귀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할 수 있다. 또한 물의 성질이 차니 그 음한 기운이 커서, 귀신이 되어 이승을 떠돌 가능성이 십중팔구라 하겠다.
물귀신은 물가에서 노는 자 혹은 물에서 멱을 감는 자의 발목을 감아서 물 속에 끌어들여 죽인다. 물귀신의 발생을 막고 해코지를 당하지 않으려면 일단 물에 빠져 죽은 자의 시신을 찾아 제대로 제사를 치러주든지, 그게 여의치 않다면 물가에서 굿과 제를 올려서 빠져죽은 자의 넋을 위로해야 한다.
- 상문귀(喪門鬼·Funeral Ghost)
잡귀잡신계로, 상중(喪中)에 몰려드는 악귀들에 대한 통칭이다. 서열이 낮아 거지귀신들로 취급받기도 하다. 흔히 상문살을 받으니 초상집에 가지 말라는 경우가 있다. 원래 사람이 죽은 집에는 젯밥을 노리고 온갖 잡귀잡신들이 몰려드는 것이니, 이 중에 문상 온 자에 붙어 해를 끼칠까봐 그러는 것이다.
상문귀가 붙은 사람은 양기가 떨어져 별 이유 없이 앓게 되는데, 또 다른 증상으로는 심약한 몸과 정신으로 스스로 사고를 자초해 죽기도 한다. 민간에서는 상문귀를 떨어뜨리기 위해, 문상 갔다 온 사람이 집안에 발을 들이기 전에 소금을 뿌려 귀신을 쫓는 간단한 퇴마의식을 치르기도 한다. 참고로, 사람에 붙어 병을 앓게 하는 귀신을 좀 더 넓게 '처퀴'나 '청계'라는 말로 부르기도 하는데, 상문귀가 객귀와 더불어 대표적인 경우이다.
- 상사귀(相思鬼·Stocker Ghoest)
짝사랑이 지나쳐 병이 되어 죽은 사람의 원귀이다. 생전에 사랑했던 자에게 한 고백을 거부당했거나 감히 접근조차 못했던 소심한 자들이다. 이 상사병에 걸려 죽은 원귀가 해코지하는 대상은 오직 한 명, 자기가 사랑했던 자이다. 생전에 집착의 정도가 워낙 컸던 만큼 죽어서도 집요하게 상대의 곁에 머물러 관심을 끌기 위해 괴롭힌다.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자에게 접근해오는 자나 사랑하는 자가 관심 가지는 자를 질투해서 해치기도 한다. 사랑이 아니라 한으로 똘똘 뭉친 집착이고 광기 들린 귀신이니, 그 해악이 커서 한 사람의 평생을 망쳐놓을 수도 있다.
- 손각시(Son Gak Si) - 처녀귀신·손말명
몽달귀와 마찬가지로 엄격히 따져서는 순결한 처녀 귀신을 뜻하며, 넓게는 비단 처녀로 죽은 것이 한이 된 원귀 뿐만 아니라 꽃다운 나이에 시집도 못 가고 비명횡사한 귀신을 통칭한다. 옛날에는 시집가서 시댁에서 구박받는 것보다 시집 못 가는 것이 더 큰 한이었다. 시집 못간 여식이 죽은 집안에서는 손각시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 시신을 몰래 대로에 묻어 남자들이 밟고 가게 하거나, 또는 남근 모양으로 만든 나무 조각을 관 속에 넣어주는 등 위로할 수 있는 주술적 조치를 취한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몽달귀신과 영적인 혼례식을 치러주는 것인데, 이 때 중매는 무당이 맡는다. 이러한 위로를 받지 못한 손각시는 이승을 떠돌며 혼인을 앞둔 처녀를 급살맞게 하거나 맘에 드는 총각의 주위를 맴돌며 희롱하기도 한다.
- 수비(隨配·SuBi)
수비는 귀신에게 붙여진 계급과 같다. 가장 말단 귀신을 지칭하는 이름인 이들은 저지르는 해악도 미미하다. 사람들에게 높이 우대 받는 신령이나 해악 큰 귀신을 추종하여, 패거리를 지어 몰려다니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상급신령 혹은 귀신들의 잔심부름을 하거나 그를 호위하거나 대신에 행패를 부려 경고조의 해코지를 하는 것 등이 주로 수비들이 하는 일이다. 이런 '조직'을 세우거나 그렇지 못하든 간에 이들은 떼지어 다니는 것이 특성이다. 속된 말로는 쪽수로 승부하는 귀신이다. 많은 패거리들이 모였을 때는 함부로 사람이 무시하면 큰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다. 수비들은 귀신사회에 있어서 일종의 건달 혹은 저급한 한량으로 보면 좋을 것이다.
☞ '隨配(수배)'라는 한자표기는 순 우리말을 무리하게 한자로 표기한 이름이며, 원래는 수비라 한다. 귀신이나 신령 이름의 경우 이러한 사례들이 많으며, 오기(誤記)는 아니다.
- 야광귀(夜光鬼·Lingthing Ghost)
도깨비과의 정령이다. 야광귀는 주로 연초에 빛나는 도깨비불 형상으로 나타나는데, 민가에 와서 몰래 신발을 훔쳐 신고 간다. 야광귀에게 신발을 도둑맞으면 일년동안 재수가 없다. 야광귀는 날아다니는데, 왜 굳이 신발을 신을까? 야광귀는 도깨비의 일종이다. 도깨비는 인간을 놀래키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연초에 이런 짓을 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문 앞에 체를 걸어두면 야광귀가 그 체의 구멍들을 세느라 신발도 못 훔쳐가고 날이 새버린다고 한다. 이는 셈이 약한 도깨비의 특성을 말해주고 있다.
- 영산(Young San)
잡귀잡신계의 특정계급을 나타내는 원귀이다. 해악이 가장 크다고 알려졌다. 이들은 크게 피 흘리거나 고통스럽게 비명횡사하여 죽은 원귀들의 집합체이다. 어떤 연유로 사지가 잘려 죽거나 독을 마시고 괴롭게 죽거나 전쟁터에서 무참히 죽으면, 이 영산파의 일원이 된다. 아기를 낳다가 죽은 여자귀신 '하탈'도 이 무리에 속한다. 이들의 계급은 비록 낮으나 일단 무리 지어 움직일 때면 그 해악이 어떤 귀신보다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열상으로는 떠돌이 귀신으로서의 말명이나 수비와 별반 다르지 않으며, 결국 인간들 간의 잘못으로 억울하고 비통한 죽음을 당한 원귀들이므로 동정심을 살만한 귀신들이라 하겠다. 그 넋을 위로하는 위령제나 굿을 올려 그들을 저승으로 귀화시키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퇴마의 방법이다.
- 원귀들(寃鬼·Malice Ghosts)
귀신이 나쁘게만 인식되는 것인 왜 일까? 귀신이 죽은 자의 영혼이라 함은 한때 이승에 근본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산 것은 욕망이 있기 때문에, 정상적 죽음을 맞지 못하면 집착이 사라지지 않고 한(恨)이 남는다. 이러한 사연들로 죽은 영혼이 타락된 것을 원귀(寃鬼)라 한다. 그 종류는 목 매어 자살한 귀신, 물에 빠져 죽은 귀신, 실족사한 귀신, 바위에 깔려 죽은 귀신, 재수없게 벼락 맞아 죽은 귀신, 불 타서 죽은 귀신, 자식 없는 귀신, 전쟁터에서 죽은 귀신, 총각 귀신, 처녀 귀신, 억울한 누명쓰고 참형 당한 귀신 등은 죄다 원귀로 분류된다. 즉, 인생이 불쌍하고 억울하면, 죽어서 비뚤어진 한풀이를 하는 원귀가 되는 것이다. 한을 정당하게 풀려고 하다가 의도하지 않게 해코지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아주 드문 경우다. 대개는 세상에 대한 질투로서 적극적으로 해코지를 하고, 심지어는 사람을 죽게도 한다.
- 정욕귀(情慾鬼·Sex Maniac Ghost) - 색마(色魔)
남녀간에 자유로운 교제가 가능하고 독신이 많아진 요즘에는 몽달귀나 손각시가 크게 위세를 떨치지 못할 것이나, 도리어 정욕귀가 판을 친다. 정욕귀는 과도한 정사로 정력이 딸려서 복상사(腹上死)한 귀신이나, 남녀 교합에 한이 맺혀 죽은 귀신이다. 전자는 지나친 색욕으로 죽은 귀신이고, 후자는 마음껏 정욕을 채우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죽은 귀신이다. 꿈에 나타나는 정욕귀는 몽마(夢魔)라기도 하는데, 성에 눈뜨는 소년소녀들의 정기를 흡수한다. 정욕귀는 크게 사람을 해치지는 않지만 도를 닦거나 수련하는 자들을 훼방하거나 선비, 유부녀를 타락시킬 뿐 아니라 심지어 근친상간의 금기를 깨뜨리는 등 인간사회를 풍기문란케 하여 그 해악이 적지 않다. 예방이 최선으로, 평소에 심신을 바르게 하고 정욕귀로 부정탄 그림이나 기물과 장소를 멀리하는 것이 좋다.
- 지박령(地縛靈·Zi Bak Ryung)
지박령은 일정한 구역 안에서만 활동하는 귀신을 통칭한다. 어느 문화권이나 지박령이 있는데, 작게는 개인의 급작스러운 사고사가 일어난 장소에서부터 대형 참사가 일어난 지역, 혹은 사고가 비정상적으로 자주 일어나는 지역 등에도 지박령이 있다. 이 지박령들은 해악이 높은 원귀로, 물귀신도 지박령의 일종이다. 지박령이 된 원귀들은 해코지의 방식으로 자기들 영역에서 그러한 죽음과 사고가 자꾸 반복되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해코지는 특정 장소의 지박령을 자꾸 양산시키고, 사고나 죽음이 반복되는 끔찍한 악순환을 일으킨다.
지박령의 세가 커지면 그 장소는 현실 속에 지옥이나 다름없는 악귀들의 아지트가 된다. 실제로 사태가 이렇게 확산되지는 않는다. 폐가나 귀신 나오는 집, 사고다발지역 등에는 자연히 사람 발길이 멀어지기 때문이다. 참사가 일어난 지역에서는 반드시 그 죽은 넋들을 위로하며, 그 장소의 부정을 없애는 의식을 치르는 것이 좋다.
- 지귀화신(志鬼火神·ZiGwi)
지귀화신은 다른 귀신들과 매우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그는 특이한 이력을 지닌 개성신(個性神)이다. 그는 옛날 신라시대에 '지귀'라는 이름을 지닌 청년이었다. 그는 선덕여왕을 사모하며, 행차 때마다 따라다녔다. 당시 선덕여왕은 뛰어난 미모와 지성을 갖춘 만민의 '스타'였다. 지귀는 선덕여왕의 열광적인 팬이었던 셈인데, 선덕여왕은 마음씨가 너그러워 그가 따르는 것을 허락했다.
하루는 선덕여왕이 절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그는 부근에서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다. 선덕여왕이 이 모습을 보고는 측은히 여겨 그의 가슴에 팔찌를 놓아 두었다. 깨어난 지귀는 그 팔찌를 쥐고는 너무 좋아서 춤을 추다가 그만 가슴 속에 타오르는 사랑의 열정을 이기지 못해, 죽은 후 불귀신이 되어 세상을 떠돌았다. 이에 여왕은 주문이 담긴 부적을 만들어 지귀화신을 막아 백성들을 안심하게 했다고 한다. 그 주문내용은 이러하다.
"지귀의 마음에 불이 붙어 (志鬼心中火)
몸을 태워 불귀신이 되었다. (燒身變火神)
푸른 바다 밖에 멀리 흘러갔으니 (流移滄海外)
보지 말고 친하지도 말라. (不見不相親)
- 쪽박귀신
개성귀(個性鬼)로, '쪽박구우!' 라는 소리로 사람들을 괴롭힌다. 그 기원은 시어머니의 횡포에 불쌍하게 죽은 젊은 며느리의 원귀이다. 이 며느리는 죽어서도 제대로 그 한을 맘껏 풀지 못하고 '쪽박구우'라는 불쌍한 소리로 자신의 원통함을 내보일 뿐이다.
옛날, 어느 집에 며느리가 들어왔는데 시어머니가 어찌나 못되었는지 며느리를 부엌에 가둔 채 일만 시키고 밥은 주지 않았다. 그래서 며느리는 그만 굶어죽고 말았다. 이렇게 굶어 죽은 슬픔과 구박 당해 죽은 설움이 합쳐져 생겨난 원귀이다. 그 뒤부터 이 집 마당에는 밤마다 '쪽박구우!' 라는 며느리 귀신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원래 젊고 아리따웠으나, 먹지 못해 빼빼 말라 눈이 퀭 하니 불거지고 입이 삐죽 나온 모습으로 괴기함을 더한다.
- 차일 도깨비(遮日망량·Cloth Dokkebi) - 홑이불·멍석 도깨비
도깨비과 정령으로, 사람을 덮어씌워 놀래키는 습성이 있다. 차일은 천막처럼 햇살을 가리기 위한 천을 말하는데, 차일 도깨비라는 이름도 이처럼 넓은 천의 형태를 띄기 때문이다. 차일 도깨비는 마치 바람을 타듯 펄럭거리며 날아다니다가, 사람의 머리를 뒤집어씌우는 장난을 친다. 홑이불 도깨비도 차일 도깨비와 같은 부류이다. 멍석 도깨비는 갑자기 사람을 둘둘 말아버린다. 이들의 공통점은 굳이 인간 형상으로 변하지 않고, 자신이 태어난 차일, 홑이불이나 멍석의 형태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들을 잘만 사귄다면 차일이나 홑이불 혹은 멍석을 타고 하늘을 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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